역사107 제주 4·3의 비극, 목숨 걸고 문학에 담아 알린 문인들 있었다 제주 4·3의 비극, 목숨 걸고 문학에 담아 알린 문인들 있었다 권영미 기자 입력 2018.04.03. 14:07 수정 2018.04.03. 14:47 독재 치하에서 제주4·3 알린 현기영·이산하, 재일조선인작가 김석범 "섣부른 화해보다는 진상 규명 더 필요해"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이산하 장편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올해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정부, 시민단체, 종교계 등 각계가 민.. 2022. 9. 14. 문대통령 " 국가폭력 의한 고통 깊이 사과" 문대통령 " 국가폭력 의한 고통 깊이 사과" 송고시간 | 2018/04/03 10:58 현직 대통령으로 盧이어 두 번째 추념식 참석…"대통령으로서 사과" 명시 "4·3 진실은 역사의 사실" 선언…"희생자들 억울함 풀고 명예 회복하게 할 것" "무고한 양민, 이념에 희생…평화·상생은 이념 아닌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아직도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 보는 사람 있어…아픈 역사 직시해야" "공정·정의로운 보수·진보가 정의로 경쟁하고 공정으로 평가받아야"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이상헌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저는 오늘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 2022. 9. 14. 제주 4·3사건 '계엄선포' 문서 원본, 일반에 첫 공개 제주 4·3사건 '계엄선포' 문서 원본, 일반에 첫 공개 송고시간 | 2018/03/27 15:1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특별전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 문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30일 개막하는 특별전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계엄선포 문서 원본을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27일 밝혔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승만 정부가 선포한 계엄령은 1948.. 2022. 9. 14. ‘냉전 렌즈’ 낀 미국…4·3 시작과 끝 낱낱이 알고 있었다 ‘냉전 렌즈’ 낀 미국…4·3 시작과 끝 낱낱이 알고 있었다 등록 :2018-03-26 05:02수정 :2018-03-26 07:28 [제주4·3 70주년 기획] 동백에 묻다 ① 올레길에서 만난 4·3 ② 4·3으로 섬을 떠난 사람들 ③ 4·3, 또 하나의 냉전 ④ 백비의 침묵 ⑤ 4·3, 70년을 넘어 제123통신사진파견대가 1948년 5월15일 촬영한 이 사진은 제주도 주둔 9연대 고문관 리치 대위가 경비대 중대 장교와 공산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는 마을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이 돼 있다. 리치는 훗날 “제주도가 합법적인 군사작전지역이었다”고 주장했다. 24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관람을 끝낸 방문객들이 미국과 유엔의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용지에 서명하고 있었다. 제주4·3유.. 2022. 9. 14. '끝나지 않은 전쟁' '38선'은 한국전쟁의 도화선이었다 '끝나지 않은 전쟁' '38선'은 한국전쟁의 도화선이었다 2017. 6. 20. '시루떡 분할' 38선, 미국·소련이 서로 놀란 이유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③] '38선'은 한국전쟁의 도화선이었다 17.06.20 05:10l최종 업데이트 17.06.20 10:29l 글·사진: 박도(parkdo45) 편집: 김지현(diediedie) 38선ⓒ NARA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북한 인민군이 대한민국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했다. 이 전쟁은 3년 남짓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1953년 7월 27일, 그 총성이 멎었다. 그런데 그때 북한, 미국, 중국의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내는 강화(講和)나 평화 협정이 아닌, 잠시 전투를 쉰다는 미봉책의 협정이었다. 그래.. 2022. 9. 14. 6.25 미군범죄 고발 - 2. 전쟁범죄 6.25 미군범죄 고발 - 2. 전쟁범죄 2017. 1. 6. 2022. 9. 14. [전쟁포로 8] 고향을 눈앞에 두고 전쟁 포로가 되다니 2017. 1. 6. "엎드려"...미군에 잡혀 6일을 굶다 [전쟁포로 8] 고향을 눈앞에 두고 전쟁 포로가 되다니 14.12.18 11:45l최종 업데이트 14.12.18 11:45l 김종운(creidea) 송관호(creidea7) 이 글은 현재 86세인 장인어른(송관호)이 옛날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수기를 사위인 제(김종운)가 정리한 후 문장을 다듬어 썼습니다. 앞으로 게재할 내용은 인민군으로 북으로 후퇴하던 기록, 그리고 탈영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겪은 고초, 그 후 뜻하지 않게 미군 포로가 된 이야기, 부산과 거제도 수용소에서의 반공 포로 생활 이야기,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 조치로 전남 해남까지 피신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 한국군으로 입영해 인제 GOP에서 군 생활을 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미.. 2022. 9. 14. “6·25때 민간인 최소 5천291명 미군에 희생” “6·25때 민간인 최소 5천291명 미군에 희생” 2017. 1. 5. “6·25때 민간인 최소 5천291명 미군에 희생” 국가기관 첫 통계…피난민·지역 폭격 등이 원인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최소 5천명을 넘는다는 국가기관의 첫 통계가 나왔다. 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작성한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초기부터 1950년 9·28 수복 무렵까지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141건을 조사한 결과 4천91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141건 중 공중 폭격 90건(63.8%)의 희생자가 3천608명에 달했다. 서울 수복 이후에도 미군과 관련한 31건에서 1천200여 명이 희생된 사실이 진실화해위에서 확인됐다. 6·25전쟁 발발 이후 최소 5천291명의 민간인이 .. 2022. 9. 14. 이승만정권의 양민 초토화작전 이승만정권의 양민 초토화작전 2017. 1. 4. 2022. 9. 14. 이전 1 ···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