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 국가폭력 의한 고통 깊이 사과"
현직 대통령으로 盧이어 두 번째 추념식 참석…"대통령으로서 사과" 명시
"4·3 진실은 역사의 사실" 선언…"희생자들 억울함 풀고 명예 회복하게 할 것"
"무고한 양민, 이념에 희생…평화·상생은 이념 아닌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아직도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 보는 사람 있어…아픈 역사 직시해야"
"공정·정의로운 보수·진보가 정의로 경쟁하고 공정으로 평가받아야"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이상헌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저는 오늘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일 추념사에서 이같이 언급한 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참석 이후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제주도민께 사과했다"며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족과 생존·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고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며 "이제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70년 전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고,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거지·대문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며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 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됐다"고 말했다.
4ㆍ3 추념식 국기에 경례하는 문 대통령(제주=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생존자 양경숙 씨, 양조훈 평화재단이사장, 이중흥 행불인협의회장, 최고령자 홍순 씨,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 최고령자 현경아 씨, 양윤경 4ㆍ3유족회장. 2018.4.3 hkmpooh@yna.co.kr
문 대통령은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고,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다"며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문 대통령은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줬다"며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다"며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좌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와 제주도민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다"며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아내·부모·장모·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며 "제주도민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이라며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고,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며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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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4·3 진상규명·명예회복 더이상 후퇴 없을 것”
등록 :2018-04-03 11:01수정 :2018-04-03 11:19
2014년 국가기념일 제정 뒤 현직 대통령 첫 참석
추념사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고통에 깊이 사과”
희생자·유족 국가차원 배·보상, 트라우마센터 약속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사건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2014년 국가기념일 제정 뒤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 하도록 하겠다”며 “이를 위해 유해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보상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제주 4·3을 알려온 ‘순이 삼촌’ 작가 현기영씨, ‘화산도’의 김석범씨, ‘한라산’의 저자 이산하씨, ‘동백꽃 지다’ 연작을 그린 강요배씨,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른 가수 안치환씨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4·3 사건에서 희생과 피해를 당한 뒤 한국전쟁에 참전한 고 오창기씨와 고 김태생씨 등 제주도민의 이름도 언급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제주와 공명해온 이효리, 시로 물들인 4·3추념식
소설 '순이삼촌' 현기영 "애도에만, 슬픔에만 머물지 말라고…"
가수 이효리가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제주=CBS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제주도를 새로운 삶터로 삼아 소통해 온 가수 이효리가 3일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추념식장을 찾아 시 세 편을 낭독했다. 먼저 4·3의 깊은 상처를 보듬는 제주 출신 시인 이종형의 '바람의 집'.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의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의 바람은/ 당신의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당신의/ 바람의 집이었던 것"
이효리가 시를 낭독하는 중간중간, 원통한 듯 내뱉는 까마귀 울음은 추념식장의 적막을 찢어놓았다. 까마귀들은 4·3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려는 듯이 공원 너른 벌판에 자리한 행방불명인들 표석 위를 날아올랐다.
이곳 행방불명인 표석은 모두 3895기에 달한다. 끝없이 펼쳐진 채 침묵하는 그 표석의 행렬, 그리고 적막을 찢는 까마귀 울음을 마주하면 4·3의 비극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파고든다.
앞서 소설 '순이삼촌'(1978)으로 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현기영은 이날 추도문을 통해 "4·3 조상님의 슬픈 넋들은, 지금 저 봄날의 들판에 노란 유채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났다"며 "함성처럼 일시에 피어난 저 유채꽃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남북 분단의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국가를 외쳤던 70년 전의 그 함성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4·3의 영령들은 지금 이렇게 추념식을 열어 애도를 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애도에만 머물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며 낭독을 이어갔다.
"4·3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고, 4·3의 가혹한 경험이 생산적인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만이라는 그 막대한 죽음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고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기영은 "이제 4·3의 영령들은 한반도 남북간에 증오의 언어와 몸짓을 걷어치우고 화해와 상생, 평화의 길로 나서라고 우리 등을 떠밀고 있다"며 "4·3 영령들이시여, 우리의 조상들이시여 부디 우리에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다.
◇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이날 이효리는, 추도식이 중반을 넘긴 때 다시 한 번 단상에 올라 4·3의 아픔을 그린 시 한 편을 더 읽었다. 시인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를 마친 뒤, 이효리는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4·3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자'고 했던 현기영의 추도문과도 공명하는, 김수열의 시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를 낭독했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여기 심고 싶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에 서서/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되어버린 상처마저 혀로 핥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바람을 부추기고/ 바람이 거칠면 바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고/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어른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그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푸르고 푸른/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편지 받아주세요!"..文대통령 돌려세운 여고생
오미란 기자 입력 2018.04.03. 18:09 수정 2018.04.03. 18:14
제주외고 송채원양, 제주4·3추념식서 손편지 전해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대통령님! 대통령님! 편지 받아주세요!"
3일 오전 제70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장인 제주4·3평화공원에 들어서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을 부르는 앳된 여학생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그 자리에는 제주외국어고등학교 학생회장인 3학년 송채원양(18)이 군중 속에서 흰 손편지를 흔들고 있었다.
송양은 제주4·3평화공원에 도착한 뒤 문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서 입장한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A4 한 장과 펜을 빌려 한 시간 동안 평소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써냈다.
문 대통령이 추념식장에 들어서자 송양은 손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문 대통령의 동선을 쫓아가며 거듭 '대통령님'을 외쳤고, 이를 뒤늦게 들은 문 대통령이 가던 길을 되돌아 송양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송양은 손편지에서 "올해 4·3 70주년을 맞아 추념식에 대통령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며 "앞으로 임기 끝날 때까지 (추념식에) 꼭 오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어 "다른 지역 친구들은 (4·3에 대해)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경우도 많다"며 "4·3은 절대 지역에 국한돼 있는, 지역감정 정도로 남아 있을 기억이 아니다. 전 국민이 같이 4·3의 이름을 찾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송양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제주는 세월호 목적지였던 데다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은 고(故) 이민호군의 아픔, 해군기지로 인한 강정마을의 아픔 등이 서린 곳"이라며 "손편지에는 4·3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대통령께서 제주의 다른 아픔들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찬 소감을 전했다.
제주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송채원양(18)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손편지.© News1
4·3유족들 "대통령이 우리는 죄 없다고 말했다" 눈물
안서연 기자,오미란 기자 입력 2018.04.03. 12:07
文 명예회복·진상규명 약속에 기대감
(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오미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다시 한 번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약속해 유족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추념사에서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통령으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며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한 문 대통령의 추념사에 유족들이 눈물을 훔쳤다.
4‧3당시 아버지를 잃고 9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인근씨(80‧여)는 “대통령이 제주에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해주셨다. 무슨 죄 때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부모 형제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내년에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추념식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4‧3이 발생하던 해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태어났다는 고미숙씨(가명‧70‧여)는 추념사가 끝난 뒤에도 먹먹함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고씨는 “명예회복을 해준단 말에 눈물을 쏟느라 혼났다. 70년간 마음 조이면서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를 안고 살았는데 명예를 회복해준단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해마다 추념식에 참석한다는 김연수(69)‧변술생(62‧여) 부부는 “4‧3이 앞으로 평화와 화해의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하니 앞으로 제주의 앞날이 밝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들 부부는 “문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만 이행된다면 영혼들의 한도 풀릴 것 같다”며 “제주의 봄을 찾아주겠다는 말을 꼭 지켜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린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생존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제주 4·3 추념식에 현직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2018.4.3/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4‧3 진실규명을 위해 애써온 4‧3단체 기관장들도 문 대통령의 약속에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오늘 문 대통령의 연설문은 제주도민과 유족들이 바라던 바를 그대로 반영한 명연설문”이라며 “사과뿐 아니라 특별법 제정 등 유족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들을 언급해줘서 기쁘다. 문 정부 아래서 대통령이 말한 내용들이 착실하게 실현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문교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제주4‧3의 역사의 바른 길을 다시 한 번 강조해주셨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했지만 그것을 재확인해준 것”이라며 “대통령의 추념사는 한국이 인권 국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라고 추켜세웠다.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공동대표는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사과한 역사적인 날이다. 4‧3의 못다한 과제를 풀 수 있는 전환기가 됐으면 한다”며 “그동안 아픈 역사를 일궈낸 사람들, 노력해온 사람들에 대해 고맙다고 해주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제주 4·3사건, 노무현이 사과하고 문재인이 매듭지었다
등록 :2018-04-03 11:09수정 :2018-04-03 13:51
12년전 노 대통령 추도사 “과거사 정리, 누굴 벌하자는 것 아니다”
바통 받은 문 대통령 “희생자 위해 국가차원의 보상과 배상 추진”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한 이후,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는 건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70돌을 맞은 제주 4·3 사건 추념사에서 “4·3의 완벽한 해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4·3의 완벽한 해결을 언급했다.
■ 2007년과 2018년…여전히 4·3을 보는 왜곡된 시선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활동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특별법 제정으로 시작됐다. 이후 2003년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55년 만에 제주도민 400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4·3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 사건 발생 55년 만에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가 차원의 잘못을 사과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한국 현대사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됐다. (▶관련기사: 노무현 대통령의 4·3 사과 의미)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전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제주 4·3사건 위령제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이를 마지막으로 10여년 동안 현직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은 없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말을 남겼을까?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하며,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라며 “그랬을 때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히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 국가차원의 배·보상 언급해 한 발 더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4·3 희생자 명예회복 강조 이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이 들어섰고 이후 명예회복을 위한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열린 위령제나 국가추념일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사실상 4·3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12년의 세월이 흘러 문재인 대통령은 끊어졌던 실타래를 연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에 이어 문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위해 국가차원의 배상과 보상도 추친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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