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짓고 나면 고용 늘텐데, 한국 근로자에 무슨 짓”…미정부 최악 판단에 ‘일침’

기술자는 가두지만 기술을 원한다…미국 제조업 부활의 역설[기자수첩-산업]
정진주2025. 9. 16. 07:11
조지아주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한국인 기술자 300여 명 구금
미국은 제조업 부활 외치면서 외국 기술자 체류는 제한
이번 사건, 한국 기업이 미국 내 투자 주도권 확보할 계기 될 수 있어

한국인 기술자 내쫓더니 “우려가 결국 현실로”…발칵 뒤집힌 美 상황
텅 빈 미국 첨단 공장
숙련공 부재, 건설 ‘올스톱’
“미국인 고용은 비현실적” 호소

300명 기술자 공백… 멈춰버린 ‘첨단 공장’ 심장부


가르쳐서 쓰라고?…’5년 걸릴 일’에 한숨 쉬는 업계

‘3D 업종’ 인식까지… 꼬여버린 비자 문제, 해법은?

불신 커진 기업들, 200조 대미투자 전략 손본다 [美 구금사태 후폭풍]
LG·현대차 배터리공장 완공 지연
미국 내 공장 신증설 추진 기업들
멕시코·캐나다 등 대체거점 추진
장비 공급 중기도 진출전략 수정

조지아 현대-LG 공장 건설 “최대 3개월 늦어진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그룹 CEO “2~3개월 지연”
정의선 회장 “양국이 좋은 (비자)시스템 구축 희망”
복잡한 미국 비자, 20개 그룹 80종 이상
비즈니스 목적 H1B는 주로 고소득의 IT업계용
미국 투자 외국기업들 다수가 단기비자에 의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 현대-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미국 이민당국의 대규모 노동자 체포 구금 사태로 공장건설 일정이 최대 3개월 늦어질 것이라고 현대자동차그룹 호세 무뇨스 CEO(최고경영책임자)가 밝혔다. 이번 사태 발생 뒤 현대자동차 쪽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인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오토모티브뉴스 콩그레스'에 참석한 무뇨스 CEO를 취재한 <일본경제신문>이 12일 보도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이 자동차 관련 이벤트에 참석한 무뇨스 CEO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혼란으로) 배터리공장 건설이 적어도 2~3개월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강연 중에 “양국(한미) 정부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미국의) 비자 제도는 매우 복잡하다. (양국 정부가) 함께 좋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외국기업 투자 유치와 비자발급 요건 강화는 모순
<닛케이>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투자 외국기업들이 공장건설 과정 등에서 인력 부족으로 자국에서 인재·요원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지만, “미국의 취업비자 발행조건이 매년 더 엄격해지고 있어서 단기비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외국자본의 투자유치에 힘쓰는 미국정부 정책과 모순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썼다.

미국 비자 20개 그룹 80종 이상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의 비자는 이민에 해당하지 않는 ‘비이민’용 비자만 해도 그룹별로 20종이 넘는다. 세분하면 80종 이상으로 나뉜다. 고도의 전문기능을 지닌 인재를 대상으로 발급되는 H1B비자 외에 회의나 상업적 면담 등 일시적인 비즈니스로 단기체류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기상용 B1비자, 기업 내 전근용 비자인 L1비자 등이 있다.
그리고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단기상용 목적의 경우에는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을 이용해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 VWP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42개국·지역이 이용할 수 있다. 대상국의 국적 보유자는 전자여행허가 시스템(ESTA)에 등록되면 비자 없이도 미국에 들어가 최대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다만 ESTA로 입국했을 경우에는 노동행위를 할 수 없다.
비즈니스 목적 H1B는 주로 고소득의 IT업계용
비자 중에서 주로 비즈니스 목적의 체류를 대상으로 한 H1B비자는 발급받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23년도(2022년 10월~2023년 9월)에 발급된 H1B비자(신규 및 소지자의 계속 신청까지 포함)는 39만 9395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63.9%인 25만 5250건이 고소득 분야인 IT업계용이었다. H1B비자 취득자의 연간수입 중앙치는 12만 달러로, 연봉이 높은 전문직 외에는 이를 취득하기가 해마다 힘들어지고 있다.
미국 투자 외국기업들 다수가 단기비자에 의존
H1B비자 취득이 어려워지면서 외국자본 다수가 종업원을 미국에 일하러 보낼 때 단기비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뒤인 2021년 이후 단기상용 B1비자로 입국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번 현대자동차 조지아 공장에서 구금당한 한국인들 다수도 B1비자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2024년도 B1비자와 단기 관광용 B2비자 발급 거부율은 일본이 5.76%, 한국이 14.97%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20일 취임할 때 비자 발급심사를 강화한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국무부 등은 미국여행 자격요건과 불법체류 단속을 강화해 왔다.
대만 TSMC도 애리조나 주 공장건설 인력 부족
이런 영향으로 미국 내에는 건설작업인력을 비롯한 인력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대기업 대만집적전자회로제조(TSMC)가 미국 서부 애리조나 중에서 건설 중인 공장에서도 작업원과 전기기사 등이 부족해 문제가 됐다.
트럼프 정권이 해외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으로 (관련 요원들의) 입국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 소스트린 이민변호사사무소의 리타 소스트린 변호사는 ”외국기업의 대미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 고 했다.
일본기업도 파급 우려, 종업원 채용 요건 강화
<닛케이>는 이번 현대자동차 사태의 영향이 일본기업에도 파급될 수 있다며, 미국 내 일본기업들이 종업원 채용절차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디트로이트 자동차 관련 이벤트에 참석한 브리지스톤 미국법인의 스콧 데이먼 CEO는 자사의 경우 “(종업원 등의) 채용 프로세스는 매우 엄격하다. 누구를 채용하든 합법적인 종업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근로자 풀어주자마자 또 압박…비자문제 어떻게 해결될까[영상]
- CBS노컷뉴스 오수정 기자 메일보내기
- 2025-09-13 05:00
단기 근로자 '맞춤형' 새 비자 카테고리 신설 논의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확대·한국 전문인력 비자 입법도
하워드 "적법한 절차 밟아라"…논의 난항 예상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12일 귀국하면서 사태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이제 관심은 근본 원인이 된 비자제도 개선에 쏠린다. 한국과 미국은 향후 비자제도 개선을 위한 워킹그룹을 만들어 본격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돌연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적합한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딴지를 걸면서 협상이 순탄히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워킹그룹 만들어 새 비자 카테고리 만드는 데 협의할 것"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크게 현재 비자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과 새로운 비자 유형 신설방안이 있을 수 있다"며 "시급하게 이 문제의 해결에 접근해야 하므로 단계적 접근법을 취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새로운 비자 유형의 신설이 추진된다. 조현 외교부장관은 한미외교장관회담 직후 "국무부와 외교부 간 워킹그룹을 만들어 새 비자 형태를 만드는 데 신속히 협의해 나간다는 것까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개월 미국에 머물면서 공장 설치와 인력 훈련을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맞춤형' 비자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미국 측도 원활한 대미 투자를 위해선 비자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비자 개선 협의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 취업이 가능한 전문직 취업비자(H-1B)의 한국인 할당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간다. 기술·공학 등 전문 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는 연간 발급 대상이 8만5천개로 제한돼있고 추첨제로 운영된다. 전세계적으로 H-1B 비자 신청자는 50만 명에 달하지만 한국인은 2천명 내외가 승인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국인 전문인력만을 대상으로 별도 비자(E-4) 쿼터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 입법에도 힘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다만 E-4비자는 적용 대상이 '고학력 전문직'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 구금된 근로자들에게는 해당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숙련공까지 비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 걸리는 워킹그룹…B-1비자 탄력 운용도 논의

다만 새로운 비자 유형을 만들고 입법을 통과시키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정부는 단기상용 비자(B-1)의 탄력적 운영을 일단 요구할 방침이다.
특히 B-1 비자의 허용 범위를 두고 미국 정부 내에서도 부처간 해석이 달라 혼선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구금된 인력 중 일부는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B-1 비자로 장비 설치·공장 시운전 지원 등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았음에도 단속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우리나라의 B-1 비자는 설비나 시설 초기공정의 경우 파견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며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번에 미국 당국이 클레임을 걸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B-1 비자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는 데 논의를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제도 개편 없이 비자의 허용 범위를 조정하면 돼, 유사사례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신속한 방안이다.
근로자 석방하자마자 딴지 건 러트닉…비자개선 순탄할까

한미 간 비자문제 개선 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도 나온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한 일은 관광 비자로 들어와 그냥 공장에서 일한 것"이라면서 "옛날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 근로자들을 데려오고 싶으면 적법한 절차를 밟아라"라고 말했다.
한미가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비자 개편 문제를 협의하기로 결론내고 한국인 근로자들이 석방된 상황에서 나온 상반된 발언이다. 다만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한미 관세 후속협상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한국 근로자들의 자진출국을 앞두고 미국에 남아 현지 인력 교육을 권했던 만큼, 미국도 비자 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전향적이지만 실제 후속논의에도 적극적으로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 지구적 자본 약탈, 고용 약탈, 기술 약탈
미국 내 한국 노동자 체포의 정치경제학적 의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지난 8월 26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를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라고 하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 대통령 앞에 기죽지 않고 ‘선수’를 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며 회담 성공을 자축할 만했다. 그런 식으로 한미관계의 궁합이 잘 맞아들어 갈 듯했다. 그런데 그 뒤 10일도 채 지나지 않은 9월 4일, 현대차그룹과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미국 당국이 느닷없이 한국인 350여 명을 포함, 약 470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를 체포했다. ‘뒤통수’를 맞은 셈!
필요한 비자 발급수 제한하면서 비자 없다고 체포
미국 주류·담배·총포 담당국(ATF) 애틀랜타 지부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린 글에서 “국토안보수사국(HSI), 이민세관단속국(ICE), 마약단속국(ICE), 조지아주 순찰대와 함께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차그룹-엘지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을 벌였다”며 “불법 체류·노동자 475명을 체포했으며 이는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미 당국 관계자는 영상물에서 “우리는 국토안보부다. 우리는 현장 전체에 대한 수색영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공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불법’ 노동자인 이유는 원래 단기 사업용인 B1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입국한 관광객 신분으로 임금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 국내 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위해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려면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비자는 연간 8만 5000명 수준으로 제한된다.
이미 한국은 지난 7월 3500억~6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는 대대적 투자를 위해 한국 기업이 움직이려면 ‘H-1b’ 비자가 발급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 내지 ‘편법’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연합뉴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이번에 체포된 이들은 단기 체류 목적 무비자협정에 따른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여행객처럼 미국에 들어와 단순한 관광이나 방문 목적이 아닌 임금 노동을 했기에 ‘불법’이 됐다. 한 관계자는 “해당 공장은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체포된 상당수가 공장 건설을 위해 고용된 협력·하청 업체 관계자들이고 한국인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미국 당국이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입국해 단순노무 등 노동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긴 했는데, 이번처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공장에까지 진입해 체포 작전을 벌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에서 벌어진 폭력과 약탈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9월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에스케이배터리아메리카(SKBA)의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13명이 전자여행허가를 받고 일하다 체포된 뒤 자진 출국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이 불법적인 관행을 계속해온 셈이다. (2021 바이든 정부와 2025 2기 트럼프 정부 이래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이라는 강제 아래 한국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 22곳, 총투자액 138조 원 규모다. 미국 요구대로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 더 투자해야 한다. 약탈적 수준!) 물론 이는 한국 기업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대적인 단속과 체포 사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합법을 빙자한 폭력, 그리고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과 사실상의 약탈,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나 한국에서 상당한 충격파를 던진다. 이른바 ‘불법 노동자’를 단속한다면서 군헬기, 무장 병력, 장갑차, 총기류 등을 동원한 500여 군단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사태와 관련,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이번 단속의 직접적 계기는 트럼프와 동일한 정당인 공화당 소속 극우 성향 정치인 토리 브래넘(Tori Branum)이 이민세관국(ICE)에 조지아 주 내 한국 기업들이 ‘불법체류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고 있다고 제보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토리 브래넘이 페이스북에서 스스로 밝힌 바다. 브래넘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미 해병대 출신의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논리는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취지다. 얼핏 반자본의 논리 내지 불법 근절의 논리를 보여주지만 평소 그녀의 성향으로 볼 때 본심은 다르다는 해석이 많다. 그것은 그녀가 조지아주 제12지역구 연방 하원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SNS에서 “선거 캠페인에 더 많은 관심과 돈을 끌어들이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워싱턴D.C. 성경 박물관에서 열린 백악관종교자유위원회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9. 08 [AP=연합뉴스]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 펴는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
둘째,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토리 브래넘과 같은 특정 개인의 이익과 관련해서만 볼 순 없다. 트럼프의 국가 경영 방식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트럼프 정부의 쇼비니즘적 보호주의 정책이 한편으로 불법 이주나 불법 노동을 규제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나 기후위기 같은 글로벌 이슈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기에 이번 단속 대상 기업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꼴도 보기 싫은’ 짓일지 모른다. 나아가 정치가라기보다 비즈니스맨에 가까운 트럼프는 이번 단속을 계기로 돈이나 기술 전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전문가를 불러들여 미국 노동자를 훈련해 직접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 약탈과 고용 약탈에 이어 기술 약탈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서 트럼프는 ‘피스 메이커’라기보다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내지 ‘피스 브레이커(peace breaker)’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국경차르’로 통하는 톰 호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조지아 현대차 공장에서 한 것처럼 사업체에 대한 대규모 이민 단속을 많이 할 건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직장 단속 작전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협상을 한 끝에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하기로 합의”했다며 “이번 주 안에(9월 10일) 전세기를 띄운다는 계획”을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거래를 암시한다. (과연 체포, 구금된 노동자들의 ‘전세기 귀국’으로 사태가 완결된 것인가?)
셋째, 이런 현실의 기저에 깔린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무대로 가치증식 운동을 하는 자본은 경향적으로 일국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한다. 자본은 늘 이윤을 추구하기에 이윤율이 높으면 지옥까지 달려갈 판국이다. 따라서 자본이 이윤을 버는 원천인 노동력의 가치가 낮을수록 자본에게는 유리하다. 자본은 경향적으로 노동력의 가격이 싼 쪽으로, 동시에 이윤율이 더 높은 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이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 노동은 어떤가? 인간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가격을 더 많이 인정받는 쪽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본운동의 방향과 노동이동의 방향이 서로 같거나 조화롭다면 별 문제 없지만, 방향이 다르거나 조화가 깨진다면?
‘세계 전쟁’까지 준비할지 모르는 자본의 ‘대리인들’
이 경우에 국가라는 이름의 공권력(폭력)이 동원된다. 이 공권력은 노동 쪽보다는 자본 쪽을 더 경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원리가 가진 일차적 문제는 노동자 즉, 사람이 능멸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체포 당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은 마치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나 도망 노예처럼 손발이 쇠사슬로 묶여 어거정어거정 걸어야 했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차적 문제도 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자본과 국가의 대응은 중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점! 미국 당국이 말하듯, 불법 체류나 불법 고용은 범죄로 규정된다. 그러나 모든 불법 고용을 일거에 근절한다면 미국 경제나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보호주의 내지 자국이기적 정책들을 편다면 국가 간, 민족 간, 인종 간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위험이 크다. 그간 ‘세계화’란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부르짖던 위선마저 (그것이 더 이상 미국 자본주의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이 고약한 행태가 향후 (자본의 이윤 위기가 더욱 고조될 때) ‘세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미 구미 각국에서는 나치 히틀러를 부활시키려는 극우들의 준동이 심각한 수준이지 않은가? 설사 비자 문제 등이 ‘합리적’으로 해소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진정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되려면 세계를 압도하는 헤게모니(패권) 위에서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무한정 뽑으려는 패러다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 정부에서 그런 기대는 불가하다. 설사 트럼프가 (일각의 기대나 예측처럼) 10월의 경주 APEC 회담에 오기 전에 북한을 방문, ‘평화협정’을 맺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한 조치가 될 리 만무하다. 차라리 그런 평화협정은 미국 자본의 새로운 이윤 공간을 위한 수단(예: 원산갈마-마식령 관광지구 개발 등)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화당의 트럼프도, 민주당의 바이든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금의 행태는 ‘파쇼적 약탈’ 모양을 띤다.
‘탈(脫)자본, 진(進)생명’ 기치 내건 아래로부터의 국제 연대
바로 이런 눈으로 이번 사태를 읽어 낸다면, 이재명 정부의 과제도 달라진다. (우리들 다수가 꼭 성공하길 바라는)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아닌, ‘패러다임 메이커(paradigm maker)’가 되려면 정치경제적 지도급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형식적 만남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을 넘어서는) ‘세계생명평화동맹’ 같은 새로운 연대관계를 ‘아래로부터’ 하나씩 구축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자본주의 성장과 착취, 약탈과 파괴가 아닌, ‘탈(脫)자본, 진(進)생명’의 길이 인류가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런 철학을 먼저 전 세계에 공표하고 그 방향에 공감하는 나라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나가야 옳다. 그리하여 그간 세계자본이 초래한 세계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등을 범지구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극복하려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당’ 별칭을 가진 야당 대표와도 회담을 갖고 여야 공동으로 ‘민생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함으로써 ‘하모니 메이커(harmony maker)’가 됐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계를 무대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진영을 막론하고 ‘글로벌 민생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그 철학적 기초가 곧 ‘탈(脫)자본, 진(進)생명’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세상이 ‘생산, 소비, 성장’에 대한 맹목적 질주를 계속할 때 총체적 파국이 필연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정직한 절망’의 힘으로 죽임의 패러다임 넘어서야
지구와 인류가 ‘정상적으로’ 공존할 마지노선인 1.5도(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를 이미 작년에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도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연초에 밝힌 바 있다. 이제 2도를 넘는 건 시간문제이고, 그 이후는 마치 높은 산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듯 지구 위 인류 문명이 급속히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올해 봄 곳곳의 산불사태, 그리고 여름의 홍수와 산사태를 겪으면서도 ‘강 건너 불 구경’만 하다간 바로 우리 자신이 참사의 희생자로 전락할 것이다. 지혜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여, 범지구적 파국에 빠지기 전에 (자본주의 황금기의 부활만 생각하는) ‘국익’ ‘성장’ 경쟁‘ ’이윤‘ 등 죽임의 패러다임을 넘어 진정 ‘함께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슬기롭지 않은가? 과연 이런 경고에 누가 얼마나 귀 기울일까? 차라리 우리는 참된 ‘패러다임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정직한 절망’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장기판 졸’ 아닌 한국, 독자적인 전략축 만들어야
동맹관계 이미 깨졌고, 대미 의존 시대도 끝나
국제무대 관심조차 못받으면 ‘장기판의 졸’ 신세
일본 “‘글로벌 사우스’ 10국을 G7 우군으로”
유럽, 중국에 이어 미국과도 ‘디리스크’
미 현대-LG 공장 한국인 구금사태, 대미 의존 때문
한국, 방산과 하이테크, 조선 분야 우월적 지위
독자적인 외교·안보·경제 전략축 구축해야

“전략없는 ‘미국 제일주의’에 의존하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이제 미일동맹을 절대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장차 동맹의 형태를 바꿀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동북아시아 과장, 북미국 심의관, 아시아대양주국 국장, 정무담당 외무심의관을 지낸 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특별고문이 9일 <마이니치신문>에 올린 기고문("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인가?")의 일절이다. 일본 외무관료 출신 중에서 시야가 넓고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다나카 고문이 한 얘기는 한미동맹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다나카는 그러나 같은 글에서 “물론 당분간은 미일동맹을 대체할 안전보장 틀이 (달리) 없기 때문에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동아시아의 안전보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일본이 자율적인(독자적인) 외교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중국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의식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신뢰조성 및 지역적 경제협력 틀을 강화하는데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그는 촉구했다. 일본이 스스로 독자적인 동아시아 외교의 축을 형성하라는 얘기다.

대미 의존 벗어난 일본 독자적인 외교축 구축
사우디아라비아와 태국 주재 일본대사를 지낸 외교사 연구자 오카자키 히사히코(1930~2014)가 2002년에 설립한 ‘오카자키 연구소’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 대처하기 위한 3가지 포인트를 그의 2기 정권 출범 초기에 공표한 적이 있는데, 우파 성향의 오카자키 연구소의 관점이 다나카의 그것과 닮은 점이 있다.
요컨대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더는 의존할 생각을 그만두되, 당장은 그것을 대체할 대안의 틀이 없으니 오히려 ‘미국 제일주의’로 미국이 잃어 버리고 있는 부분을 일본이 채워 주면서 일본의 지분을 키우고, 나아가 미국 없는 또는 미국을 보완하는 일본 중심의 외교·안보, 지정학적 틀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첫째, 동맹관계는 이미 깨졌다
오카자키 연구소는 3가지 포인트의 첫 번째로 “동맹은 특권이 아니다”는 트럼프 정권의 기본인식을 들었다. “국무부의 향후 행동이나 지출은 그것이 미국을 ‘더 강하게, 더 안전하게, 더 번영시키는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공청회 발언을 인용하면서, 한마디로 대외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구체적 행동 및 판단기준은 그 나라가 미국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동맹관계는 이미 해체됐다는 얘기다.
둘째, 관심조차 못받으면 ‘장기판의 졸’ 신세
두 번째 포인트는, 첫 번째 포인트와 연결돼 있는 것이지만, 동맹국이냐 아니냐의 판단기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나라, 트럼프 정권 관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나라는 버림받는다는 것이다. ‘팽’ 당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집요한 해양침투로 긴장관계 아래에 놓인 동남·서남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인도 정도를 빼고) 트럼프 정권 관계자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동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비로소 트럼프 정권의 레이더 스크린에 필리핀이 등장하겠지만, 중국과의 딜(거래) 과정에서 무시당할 수 있는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이런 행동방식은 실은 트럼프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른바 ‘대국’들의 일반적인 행동양태에 가깝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필리핀과 조선을 각기 식민지로 나눠가진 게 그 전형이다. 1945년 8월에 미국과 소련이 패전국이자 전범국인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를 절반으로 갈라 서로 나눠가진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가 ‘졸’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낡은 ‘대국주의’
21세기에 자국의 대외전략이나 국제정책에서 ‘대국주의’를 드러내 놓고 과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시진핑의 중국과 트럼프의 미국,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다. 그들은 국제관계를 자신들이 주역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국주의’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고대사에서 한국이 속국이고,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의 뿌리가 중국이라 주장하며 한국이 이를 훔쳐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식의 ‘억지’를 정당화하는 근거도 이 낡아빠진 전근대적인 ‘대국주의’ 세계관 내지 환상이다.
대만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운명은 이들 몇 나라의 딜(거래)에 의해 그 영토나 영해의 일부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졸’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오카자키 연구소는 얘기한다.
따라서 오카자키 연구소는 그런 ‘졸’ 신세가 아니라 졸들을 움직이며 장기판을 ‘경영’하는 또 다른 ‘대국’ 일본이 되는 방안으로, 일본이 “자주성을 발휘해서” 일본 뒷마당에 있는 그들 나라(동남아 국가연합, 대만, 한국까지 포함해서)들의 중요성과 일본이 그들을 지켜 주고 있다는 인상을 미국에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빼고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일본 등이 참여하는 ‘아시아판 쿼드(QUAD)’를 만들어, 필리핀이 주도해 온 동남아 국가들의 해안경비대 제휴관계를 남중국해 공동(군사)훈련으로 판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했다. 쿼드는 원래 미일동맹이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든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국의 안보협의체다.
미국과 완전히 결별하는 디커플(de-couple)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위험을 경감, 관리하는 정도의 디리스크(de-risk)가 오카자키 연구소의 전략인 듯하다.
일본이 그런 차원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키우면서 그것이 “미국을 더 강하게, 더 안전하게, 더 번영시키는” 것이라 주장하면 미일동맹이 더욱 강화되는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셋째, 일본 주도로 ‘글로벌 사우스’ 10국을 우군으로
오카자키 연구소가 얘기한 세 번째 포인트는 이들 두 포인트와 불가분의 관계지만, “미국이 (트럼프 정권 때문에) 우호·동맹국들을 상실해 갈 수밖에 없는 이상, 그것을 보완할 정도로 우호·동맹국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일본과 같은 (미국)동맹국의 책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개도국 및 신흥국들)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했다
G7 확대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동반국가군에 포함시킬 나라로 오카자키 연구소가 지목한 10개 국은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의장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호주,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 또는 미일동맹이 ‘주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브릭스(BRICS) 국가들과 동남아 및 중동, 아프리카의 주요국들,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에게도 한국은 손잡아야 할 주요국이다. 최근 일본이 주도해 온 ‘포괄적이고 선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이 가입하는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부메랑이 될 ‘동맹 이지메’
역사가 니얼 퍼거슨도 지적했듯이 동맹국들을 미국의 자산을 빼앗아 자기 힘을 키우는 ‘갈취 집단’ ‘착취 집단’으로 몰아가면서 동맹을 상호이익 관계가 아닌 미국의 일방적인 손해로만 인식하는 트럼프의 뒤틀린 사고는 동맹관계를 사실상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동맹의 적대국들에 호의를 보이면서 그들을 이롭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정권 덕에 가장 큰 이득을 보고 있는 나라가 트럼프 관세전쟁의 주적인 중국이라는 역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영국의 경제전문 저널리스트 휴고 딕슨은 일찍이 이런 미국의 행태를 “동맹국 이지메(괴롭히기/ 해코지)”라면서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돼 트럼프를 타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일국의 이익 제일주의로 내달리면서 장애물로 인식하는 모든 나라들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트럼프의 미국은 점점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를 닮아가고 있다. 그린란드와 캐나다의 합병과 파나마 운하 재탈환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합병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모든 것을 미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더라도 미국이 이해타산 끝에 군사개입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이 판단할 경우 양안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다나카는 지적했다. 한반도의 경우도, 북한이 핵보유국이라 공언하면서 김정은과의 딜 가능성을 얘기해 온 트럼프가 북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을 직접 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ICBM)만 규제하면서 북과 거래할 가능성이 있고, 일본은 그런 경우를 ‘최악’의 안보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럴 경우 한국에서는 독자적인 핵개발 여론이 더욱 커질 것이고, 한국의 핵개발은 일본의 핵개발로 이어지고, 한일의 핵개발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과 일본, 한국이 무한 군비경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식 사고방식이라면 그럴 경우에도 그것이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면 상관없다.

유럽, 중국에 이어 미국과도 ‘디리스크’
휴고 딕슨이 지적했듯이 2년 전부터 ‘중국 리스크’(시장 및 희토류, 태양광 패널 등의 지나친 중국 의존)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거리를 두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디리스크)한 유럽은 트럼프 2기 정권 등장 이후 미국에 대해서도 그럴 필요를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예컨대 지난 5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들이 수입한 무기의 64%가 미국제 무기였다. 그런 대미 의존 상황에서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며 군사기밀정보와 무기 제공을 중단하기도 했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푸틴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및 크림반도 할양을 전제로 한 정전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조지아 현대-LG 공장 한국인 구금도 대미 의존 때문
조지아 주 서배너 인근에 짓고 있는 현대-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한국인 숙련 노동자들을 일제단속식 범죄소탕 하듯 요란스레 체포하고 구금한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자신이 요청하고 압박한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그런 식으로 후려치면서 자신의 국내 정치적 목적과 관세협상을 위해 써먹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한국은 경제와 안보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대미 의존이 강해 압박해도 반발하지 못하고 순응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미 의존도 높은 유럽의 방산, 하이테크, 에너지 분야
이처럼 유럽의 대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전략분야가 F-35 전투기, 스타링크 통신체제, 원자력잠수함 등의 국방(무기)이다. 딕슨이 그 다음으로 유럽의 대미 의존이 큰 것으로 본 전략분야는 AI(인공지능), 컴퓨터 등의 하이테크 분야고, 그 다음은 에너지다. 올해 초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의 82%를 유럽이 구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 유럽이 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을 서두르고 있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도 ‘트럼프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유럽은 중국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디리스크’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유럽만 그런 게 아니다. 인도를 비롯한 브릭스와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자본을 축적해 온 유럽은 이제 그것을 미국이 아니라 유럽 역내의 방위, 하이테크, 인프라에 투입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는 않겠지만, 유럽의 일반여론은 점점 더 ‘반미’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고 딕슨은 지적했다.
다나카와 오카자키 연구소가 생각하는 일본전략이 그렇듯, 유럽은 탈미국적인 독자적 움직임을 강화하면서 미국 외의 나라들과의 제휴를 강화해 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그 주요 대상국들이다.
한국, 방산과 하이테크, 조선 분야 우월적 지위 확보
유럽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방위산업, 하이테크 등의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덩치는 작지만 유럽과 일본보다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 반도체와 AI,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의 첨단 전략분야 기술에서 한국은 일정부분 그들 나라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조선업과 대중문화분야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다.
트럼프 정권이 ‘사상 최대의 기획 검거작전’을 펼친 조지아 주의 현대-LG 합작공장이 자동차용 배터리공장이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카자키 연구소의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그 공장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같은,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관심밖’이 아니라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에 사상 최대의 작전 대상으로 선정됐을 것이다. 작전 뒤 사태가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번지자 트럼프가 변명하듯 쏟아낸 말들 속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미국에는 없는 기술을 한국인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빨리 데려 와 미국인들을 교육시키게 해야 한다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회원들을 설득하듯 얘기했다. 한국은 미국이 지금 갖고 있지 못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정보기술의 일부 핵심 분야와 미국에게 당장 절실한 조선업 등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고, 유럽이나 일본도 추월했다. 그런 면에서도 한국은 이제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

조지아 공장 기획 검거 사건의 발단이 된 제보자 토리 브래넘은 트럼프주의자들과 ‘트럼프의 당’이 된 공화당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겠지만, 이번 사건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그렇게 마음대로 주물러 목적한 바를 달성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대로 각인시킨 사건일 수도 있다.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한 그 지역 토박이 트럼프주의자 정치 지망생인 브래넘은 그것으로 내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조지아에서 이겨야 하는 공화당과 MAGA주의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한국을 ‘이지메’할 경우, 휴고 딕슨이 얘기했듯이 트럼프와 MAGA를 가격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자각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한국인들과 한국기업이 입은 손실이 크겠지만, 한국기업들의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 기술과 한국인 기술자들을 그런 식으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트럼프와 MAGA주의자들은 제대로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들이 주적으로 삼고 있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이기려면 한국을 그런 식으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것을 차제에 분명히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한국 독자적인 외교·안보·경제 전략축 구축해야
그것을 미국에게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킬 방법 중의 하나가 다나카 히로시와 오카자키 연구소, 휴고 딕슨이 제시하거나 시사한 방식을 한국 실정에 맞게 변용해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전략없는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에 대한 의존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것, 하지만 당장 한미동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당분간 그것을 유지하면서, 미국이 트럼프주의로 잃어버리는 부분을 보완하면서 지분을 키우는 것, 그리고 ‘미국 없는 시대’까지 시야에 넣은 한국 독자적인 안보·외교·경제·지정학적인 전략의 축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근세의 전환기에 조선은 일본과 미국 유럽, 중국의 ‘졸’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부터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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