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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이말 꼭 써주세요" '여성시대' 양희은이 대선 앞두고 전한 말

by 무궁화9719 2025. 5. 29.
올해로 방송 50주년을 맞이한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 입니다>의 진행자들 ⓒ MBC 라디오관련사진보기
 
 
"정치인이 우리 방송 많이 들었으면" 양희은의 직설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의 진행자 양희은·김일중이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모습. *촬영 : 신나리 / 편집 : 이주영 신나리관련영상보기

"저는 노래보다 라디오 사랑이 더 큰 사람이에요. 가끔 라디오만큼 노래를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 해봐요. 지금도 진행 때문에 전국 콘서트는 어려워요. 내 공연을 못한대도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그만큼 우선순위가 확실해요."

가수 양희은에게 MBC 표준 FM(95.9Mhz) <여성시대>는 1순위다. 이를 위해 무대를 줄여야 한대도 아쉽지 않다. 가장 먼저 스튜디오에 도착하는 걸로 유명한 양희은은 1999년 6월 7일, 처음 방송을 진행한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렇게 26년째 매일 오전 9시 5분부터 11시까지 라디오 부스 안에서 세상의 여러 삶을 만나고 있다.

곁에서 양희은의 '우선순위'를 듣던 방송인 김일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젊은 부부의 사연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던 그는 2년째 양희은의 옆자리에서 진행을 맡고 있다.

 
<여성시대>가 2025년에 50주년을 맞이했다. 1975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옆에 붙은 진행자의 이름은 몇 번 바뀌었지만, '여성시대'는 지워진 적 없다.

사람이라면 하늘의 뜻을 깨닫는 '지천명'의 시기, 방송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야기를 전하며 50년 째 매일 애청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전하는 <여성시대>는 2024년 2분기 청취율 조사에서 동시간대 전체 1위 청취율을 달성했다. 화려한 문장이나 기교를 자랑하기보다 묵묵히 자기 앞의 삶을 써내려 간 사연이 매일 도착한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삶을 정성스레 전달하는 진행자 양희은·김일중을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만났다.

"내가 이 사연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콘텐츠이자 그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활용되지만, <여성시대>에서는 좀 다르다. 1~2부에 나가는 노래는 3곡이 전부다. 나머지는 청취자의 사연이다. 일상에서 마주한 소소한 행복을 전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많은 일이 벌어져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가난과 질병, 폭력에 시달린 삶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들의 사연을 전달하는 사람 역시 사연의 영향을 받는다. 양희은 역시 여러 삶이 몸에 콕콕 박혀 무거웠다.

"MBC가 여의도에 있었을 때는 방송 전에 새벽에 한강을 걸었어요. 또 여의도 공원을 두 바퀴 걷고요. 그렇게 여의도에 있던 유일한 대중탕에 가서 씻고 방송에 들어갔어요. 이 사연들이 다 너무 무겁고 아파서요. 아픈 사연은 되게 나를 얹히게 했어요.

사실 진행 초반 몇 년은 한계를 느끼기도 했어요. 내가 이 사연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싶어서요. 돈 문제로 식구들을 허구한 날 때리던 놈이 내가 사연을 읽는다고 안 때리는 것도 아니고, 징하게 가난한 사람에게 갑자기 돈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요, 사람들 사이에서 파문이 일더라고요. 폭력 남편과 사는 누군가의 사연을 들은 폭력 남편과 살던 청취자들이 그 집구석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거예요. 애들 데리고 집을 나가서 기술 배우고, 쉼터에 있다고 연락이 오기도 하고요.

그때 알았죠. 이 사연을 전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계속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빛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확실한 도움은 못 줘도 '나도 그렇게 사는데 당신도 그렇게 사는군요' 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요. 자기 상황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자기 객관화가 되는 거예요."

가만히 양희은의 말을 듣던 김일중은 "함께한 지 2년째인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 도착한 여러 삶을 폭 넓게 이해하고 싶어 심리학을 공부할까 고민하고, 전국에서 온 사연을 잘 전달하고 싶어 사투리 공부를 준비할 만큼 진행에 진심이었다.

"사실 기쁜 소식을 전하며 응원하는 건 제 마음도 기쁘고 좋죠. 다만 어렵고 힘든 사연을 위로하는 게 쉽지 않아요. 내가 뭐라고 감히 누군가의 삶에 한 마디를 얹나 조심스러운 거죠. 사실 저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는데, <여성시대> 사연의 깊이는 정말 남달라요. 얼버무릴 수 없는 사연이죠. 그래서 타인의 삶과 마음을 어떻게 소화해서 전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김일중의 고민에 양희은은 "나도 이 방송 시작하면서 연기랑 화법을 수업 받았다. 모든 사연이 내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렇게 소화해야 하더라"라고 조언했다.

"정치인에게 '여성시대' 권합니다"

양희은은 올해로 26년째 <여성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김일중은 지난 2023년 5월 29일부터 합류했다. ⓒ MBC 라디오관련사진보기

시대에 따라 사연도 변할까. 서로를 향해 날이 서 있고 혐오와 관련한 범죄가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청취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묻자 양희은은 "뉴스에는 무서운 소식만 전해지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건강하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한테 오는 사연에는 누구를 미워하고, 편 가르고, 날이 서 있는 그런 내용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저는 '풀뿌리는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막 사람들이 편 가르기 하잖아요. 저는 그런 걸 뉴스에서나 보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는 못 봐요. 우리에게 오는 사연은 나름 다 건강해요.

저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게 여러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서로에게 날 세우지 않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힘 덕분이라고 봐요. 그래서 정책 만드는 정치인이 우리 방송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사는지 배우고 또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정치인들이 철이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요, 이제 대선을 앞두고 있잖아요. 정치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발 서로 편 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 꼭 써 주세요.

또 인상적인 건 폭력 범죄도 늘고 사회는 많이 무서워진 것 같은데, 가정폭력 사연은 많이 준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요, 가정폭력 자체가 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상담전화나 쉼터 등 여러 방법이 많이 알려진 게 아닐까 싶어요.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낼 정도로 갑갑한 상황에서는 벗어난 게 아닐까 싶어요."

김일중은 "어르신들 사연 중에 피싱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가 여럿 있다. 피싱이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지다 보니까 청취자들이 '이런 것도 있다'면서 서로 알려주기도 한다"라며 "이런 지점에서는 사회적 분위기나 범죄의 유형 같은 게 사연에 담기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사연이 도착하지만 세대는 보통 중장년층인 것 같다는 질문에 양희은은 "방학 때는 초등학생한테 편지가 온다"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젊은층이 많이 들어도 좋죠. 20대 청취자도 종종 있는데, 사연을 보면 누군가 곁에서 '톡' 쳐주며 권해서 듣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나 동료, 옆집에 사는 이웃이 권하기도 하고요. 그런 사연 보면 반갑고 감사하죠. 지금은 안 들어도 또 중장년층이 돼서 듣게 되기도 할 거예요. <여성시대>가 그때까지 같은 자리에 있어주면 될 것 같아요. 변함없이 무언가 있다는 건 사람을 안심시키잖아요. 우리가 그런 프로그램이 되면 좋죠."

김일중 역시 "지금 젊은 분들은 아무래도 좀 자극적이고 짧은 이야기들에 익숙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 사연이 귀에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면서도 "다만 개인적으로는 젊은층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나 드라마, 음악이나 트렌드는 끊임없이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아둬야 여러 세대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 둔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고운 마음에서 항상 배운다"

<여성시대>에는 직접 쓴 편지도 도착한다. 방송 앞으로 왔던 과거 편지들을 살펴보는 진행자 양희은·김일중 ⓒ MBC 라디오관련사진보기

50주년을 넘어선 <여성시대>는 또 무엇을 꾸리고 준비하며 이어가야 할까. 애청자 명칭인 '당당이'를 언급하며 김일중은 '가족'이라고 설명했다.

"당당이들과 하루에 매일 두 시간을 함께하는 거잖아요. 각자의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고 하면서요. 그러니까 우리 '당당이들'은 가족과 같아요. 가족이라도 이렇게 서로에게 집중해서 매일 두 시간을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우리는 그걸 하니까요. 저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것도 공부하고 사투리 연기도 열심히 해볼 테니, 우리 당당이들 하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면 좋겠어요."

양희은 역시 애청자인 '당당이들'를 언급하며 "나의 스승"이라고 칭했다.

"당당이들과 <여성시대>는 내게 인생 스승이에요. 평소 '여성시대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내가 항상 많이 배우죠. 사실 우리는 라디오 부스 안에서만 소통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걸 항상 느껴요. 다 자기가 지고 있는 하늘이 다른데, 필요할 때는 그 마음을 모아서 전달하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요. 그래서 우리가 '어깨동무'하며 함께 있다는 걸 늘 느낍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내게도 많이 귀하죠. 물결이 큰 어깨동무와 같은 '당당이들'에게 제가 항상 배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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