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일 구청까지 소녀상 철거 로비…구청장도 놀라”
한정화 베를린코리아협의회 대표 인터뷰
“소녀상, 타고난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설치부터 험난했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왔지만 또 위기 맞아
정부 나몰라라 하는 사이 일본은 학교까지 로비
“김학순 외치던 독일 아이들 생각 나 눈물”
“소녀상, 탈식민지 문제이자 인류 보편 문제”
‘평화의 소녀상’은 처음부터 어떤 ‘운명’이 있는 것일까. 지난 2020년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독일 베를린 소녀상이 철거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소속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일본을 방문해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에게 소녀상 ‘철거 방침’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소녀상 설치와 영구 존치에 앞장선 코리아협의회(코협) 한정화(62)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기자를 만나 “소녀상은 타고난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말처럼, 소녀상엔 역사의 아픔을 알려야 한다는 타고난 운명, 인연 혹은 숙명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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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지켜온 베를린 소녀상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공부지’에 세워진 베를린 소녀상은 시작부터 마치 현재를 예견하듯 그 운명이 파도와 같았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2020년 8월 14일에 세우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하신 날이라 그날 (제막식을) 하려고 했는데,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도로공사를 하게 됐어요.” 한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도로 공사 때문에 소녀상 제막식은 강제로 미뤄졌고, 그해 9월 28일에야 처음으로 시민들한테 선보였다. 하지만 제막식이 늦어지면서 소녀상은 예상외의 일을 겪게 된다.
“제막식이 8월 14일이면 어땠을까요.” 마치 운명처럼 9월 28일 소녀상 제막식 직후 일본 외무상과 독일 외교부 장관의 회담이 알려졌다. 10월 1일 일본 극우언론 <산케이>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파리에서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부 장관을 만나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테기는 실제로 독일에 소녀상이 일본 입장과 어긋난다면서 철거를 요청했다. 이전까지 일본 정부의 물밑 로비는 있었지만, 일본 고위 관계자가 소녀상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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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베를린시 정부는 미테구청에 압력을 가했고, 구청은 소녀상이 세워진 지 10일째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일본 외무상과 독일 외교부 장관이 회담하고 나서 10월 7일 (미테구) 도로·녹지청 부장들이 이메일이나 편지도 아니고 손수 철거 명령장을 가져온 거예요. (독일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살았는데) 그런 사례를 처음 경험했어요.” 그들이 전한 공문에는 ‘소녀상이 독일과 일본 간의 관계를 어렵게 하고, 베를린시에 있는 100개국 이주민들에게 불화를 일으켰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7일 안에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벌금 2500유로를 물어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1.5톤(t)의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는데 철거라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행히 독일 시민 사회의 반응은 일본의 바람과 정반대였다. 한 대표는 지인 소개로 변호사 도움을 받아 베를린 행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서를 내 철거를 막았고, 단 이틀 만에 시민 1만 2000명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그 사이 독일 언론도 관심을 갖고 보도했고, 저명한 교수부터 일반 시민까지 수많은 이들이 구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미테구청장이 나중에 면담할 때 농담하듯이 ‘정말 많은 곳에서 메일이 왔는데, 북극에서도 메일을 받았을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였어요.” 이 사건으로, 베를린 내에서도 소녀상이 아시아만이 아닌 인류 보편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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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까지 찾아가는 일본의 집요한 로비
하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냈음에도 소녀상은 그간 계속해서 존치 위협을 받았다. 미테구는 지난한 과정 끝에 2022년 9월 베를린 소녀상 존치를 2년 연장했지만, 어디까지나 영구적인 존치는 아니었다. 한 대표는 소녀상의 입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로·녹지청 공문엔 어떤 일이 결정 날 때까지를 전제로 한 ‘용인’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망명 신청자와 똑같아요. 망명 신청 허가가 안 되면 강제로 추방되거든요. 소녀상의 운명이 꼭 망명 온 사람 같아요.” 그 불안한 틈 사이를 일본 정부가 파고들었다.
이번 베를린 시장의 소녀상 철거 시사 역시 일본 정부의 ‘의도’가 다분하다는 게 한 대표의 생각이다. “미테구청에서 2년간 계속 움직이지 않았어요. 아마도 베를린 시장의 일본 방문이 정해졌을 때가 2월 중순이나 말쯤으로 추측이 돼요. 왜냐하면 그때 갑자기 일본 정부가 굉장히 많은 활동을 했거든요. 신문 기자도 별 이유가 없는데 와서 저희랑 인터뷰를 했어요.” 오래 전부터 베를린 시장의 소녀상 철거 언급을 계획했을 것이란 의심이다.
최근 일본의 집요해진 로비활동은 이러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지난 2022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슐츠 총리에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숄츠 총리는 구청 권한이므로 연방정부에서 개입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독일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자치정부의 권한이 강한 만큼 중앙정부에서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해프닝이었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로비는 이제 작은 구청 단위까지 발을 뻗치고 있다. “미테구 구의원들도 구청장도 외국(일본) 대사관 직원이 찾아온 건 처음이라고 말한다”고 한 대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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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외교부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한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사이, 일본 정부는 독일 내 박물관과 학교까지 침투해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베를린 시로부터 지원받는 소녀상 관련 활동 예산들도 끊길 위기에 놓였다. 소녀상 유지 자체도 비용이 드는데, 거기에 더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최근 일본 정부와 일본 대사관의 집요한 방해로 인해, 한 대표는 독일 중학교에서 가르쳐온 전시 성폭력 문제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됐다. “일본 대사관이 베를린시 학교 감독관에게 항의하고 교장 선생님까지 찾아가서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대요. (…) 교장이 ‘한국이 일본을 나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코협과의) 협력을 취소한다’고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영화를 보고 ‘내용이 뭐야’ 하고 물으면 한국말도 잘 못하는 학생들이 ‘김학순’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김학순 할머니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 얘기했을 때 진짜 내가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꼈어요. 수업할 때 성노예화된 여성이나 아프가니스탄 분쟁 전문가들도 초청했어요. (…) 교장 선생님은 그전에 ‘당신이 하는 거 너무 좋고 훌륭하다’고 말씀하신 분이었는데, 그렇게 수업을 취소하니까 가슴이 너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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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임 정부는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와 반성에 역행한다고 비판이라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마저도 모르쇠다. “(소녀상이 세워진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일본이 저렇게까지 하고 다니는 게 너무 많은데, 모든 것을 저희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요. 저희한테만 다 맡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한국 정부에서 이제는 저희를 보호해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생각해요), 너무 힘들어요.”
탈식민주의와 인류 보편의 소녀상
또다시 소녀상이 철거 위기지만, 처음 소녀상이 자리잡을 때처럼 베를린 시민들이 이번에도 힘을 모아주고 있다. “이번 (베를린 시장) 발언으로 독일에도 있는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이 지금 엄청 화가 났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게 어떻게 일방적이냐’ ‘가해자 일본 정부가 하는 말을 이렇게 들어줘야 하냐’고요. 여러 군데서 성명서가 나오고 신문 보도도 나오고 사민당(사회민주당) 출신 시의원이 청문회에 올리려고 해요.”
아울러 독일 내에서도 소녀상이 더 이상 아시아의 작은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독일 내의 탈식민주의 운동과도 연계돼 그 상징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선 과거에 식민주의 지배 때의 잔재를 없애는 탈식민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식민 지배자의 동상이나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을 바꾸고 있는데, 소녀상이 하나의 탈식민주의적인 상징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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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전히 독일 내 다수에게는 소녀상 문제는 생소하다. 한국에선 독일이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등 과거사 청산에 노력해온 만큼 위안부 문제도 한국 입장에 설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독일 사회에서는 홀로코스트는 자기네가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범죄와 비교하지 않았고, 독일 사회에서도 지금까지 식민 지배가 무엇인지 거론되지 않아 잘 모르고 있어요.”
“독일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독일 사람들의 논리는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하면 청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문제를 청산하지 않았음에도) 독일 사람들은 문제를 너무 모르니까, 일본 정부가 지금 와서 소녀상을 문제화하면 이거는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이고, 일본이 인정하지 않은 범죄라서 청산하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을 의심해요. 한국은 문제를 청산하고 돈도 줬는데 계속해서 돈 달라고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소녀상 문제는 아시아 여성에 식민지까지 이중삼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 “유럽 중심주의에 독일 사회도 여전히 그런 식민 제국주의가 청산이 안 돼 있고 인종 차별이 있어요. (…) 저희는 (유럽이 아닌) 일본도 인정을 안 해주니까 독일에서 더 인정을 안 해주는 거죠.” 다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한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서 가능성을 본다. 이들을 변화시키는 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다.
“언젠가 선하게 생긴 일본 유학생이 베를린에 와서 굉장히 꼼꼼하게 저희 전시를 봤어요. 그러더니 ‘내가 이 빈 의자에 앉을 자격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기는 윤리·도덕상 앉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너무 슬펐어요. 어른들이 잘못했는데 젊은 학생이 무슨 죄가 있어요. 그래서 학생한테 이 의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미래를 위해서 우리와 같이 연대하고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바로 옆에 앉아야 하는 거야’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소녀상 옆 빈 의자에 몇 분간 앉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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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일부 변화에도 어려움은 여전하다. 독일 내에도 여러 곳에 소녀상을 설치했지만 온전한 존치는 쉽지 않았다. 독일 카셀대학교 총학생회가 세운 소녀상은 철거된 채 학교 창고에 처박혀 있고, 독일 레겐스부르크 비젠트 공원에 세워진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압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 내용이 새겨진 평화비문이 철거되고 이름표도 없이 남겨졌다.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 정부와 외교관들이 아무리 해도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소녀상은 정말 시민들의 모금으로 독일까지 왔잖아요. 수천만 명이 소녀상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힘이 되어요. (…) 소녀상이 독일까지 온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고, 역사에 남을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한국 정부에서 실태를 제대로 알고 일본의 몰상식한 행태를 독일 정부에 알릴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이 모아주었으면 좋겠어요.”
※ 코리아협의회 지원 방법
1) 김복동의 희망 베를린소녀상지킴이 연대활동
: 국민은행 816901-04-297903 (김복동의희망)
입금하실 때 ‘_이름(독일)’로 표기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부금 영수증 발급이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010-9893-1926 또는 hope_bokdong@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2) 직접 코리아협의회에 기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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