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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5주년 삼일절

by 무궁화9719 2024. 3. 3.

“105년 전 그날의 염원…해방·민주화의 힘”

충청·대전, 3·1절 기념식…천안 아우내장터에선 봉화제

기자송인걸
  • 수정 2024-03-01 13:49
  • 등록 2024-03-01 13:46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이 충남·충북·대전에서 열렸다. 천안 독립기념관 태극기 광장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충남도 제공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이 충청권에서 일제히 열렸다.
 
충청남도는 1일 오전 도청 문예회관에서 도민·보훈단체장 등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독립선언서 낭독, 유공자 표창 차례로 진행됐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105년 전 그날의 열망과 함성은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투쟁, 산업화·민주화로 이어져 대한민국을 세우는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충남은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고 충남인의 피에는 시대와 나라를 이끈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이 새겨져 있다. 선열의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새 미래를 열자”고 말했다.
 
대전시는 이날 오전 시청 대강당에서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 보훈단체 관계자·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열었다. 충청북도도 이날 오전 청주예술의전당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3·1운동 당시 산화한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29일 밤 천안 병천 아우내봉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대형 태극기와 횃불을 앞세우고 만세행진을 하고 있다. 천안시 제공
 
앞서 29일 저녁에는 아우내봉화제가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 장터 일원에서 열렸다. 봉화제에는 박상돈 천안시장과 행사를 주최한 이운재 천안청년회의소 회장, 시민 등 3천여명이 참석했다.
 
봉화제는 유관순 열사와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헌화와 참배로 시작돼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만세 삼창, 횃불 점화, 만세 행진 등이 이어졌다. 기념식을 마친 시민들은 대형 태극기와 횃불을 앞세우고 사적관리소를 출발해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까지 1.4㎞를 행진했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아우내봉화제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매봉산에서 봉화를 올린 일을 재현하는 행사다. 아우내봉화제가 순국 선열의 애국애족 정신과 헌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하루만보 하루천자] 3·1 독립운동 희생정신 '걷기'로 되새겼다

이승진입력 2024. 3. 3. 08:00
 
105주년 3·1절을 맞아 걷기를 통해 독립운동 희생정신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한국체육진흥회는 1일부터 2일까지 이틀에 걸쳐 120㎞ '무박 만세 걷기 대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3.1절을 앞두고 용산구에서 서울 효창공원 입구에 조성한 태극기 거리 나무에 태극기가 빼곡히 걸려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행사는 탑골공원에서 출발해 한강을 일주해 청계천 한빛광장까지 이어지는 최장 120㎞ 길이의 코스로 진행됐다. 거리 종목은 10㎞, 30㎞, 60㎞, 120㎞로 나뉜다.
 
120㎞코스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1일 오전 11시30분 탑골공원을 출발해 익일 오후 6시까지 무박 2일간 코스를 걸었다. 각 거리 종목 완보에 성공한 참가자들은 국제시민스포츠연맹(IVY)이 인증하는 완보 증명 메달을 받았다.
 
올해로 17번째를 맞는 무박 만세 걷기 행사는 3·1 독립운동 정신 계승은 물론, 코스 주변 지역과 연계한 축제로 자리매김하며 걷기 운동 저변 확대와 함께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걷기 운동을 생활화해 비만, 당뇨병 등의 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3·1절을 맞아 유통가에서도 나섰다. CU는 사회공헌 플랫폼을 운영 중인 사회적 기업 빅워크와 함께 독립유공자에 대한 감사의 뜻을 모아 고객 참여형 걷기 캠페인을 3월 한 달간 진행한다.
 
참여를 원하는 고객들은 CU의 자체 애플리케이션 ‘포켓CU’를 통해 연결되는 빅워크 앱에서 걷거나 달려 누적한 걸음 수를 CU '함께 걷자, 대한민국' 캠페인에 기부하면 된다. 기부 참여 후 발급되는 인증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할 수 있다.
 
목표 걸음 수 10억보 및 캠페인 참여 인증 인스타그램 게시물 310건을 달성하면 CU는 1000만원을, 빅워크는 300만원을 출연해 총 1300만원을 기부한다. 해당 후원금은 주거복지 비영리단체 한국해비타트에 전달돼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주거 환경 개선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3.1 삼일절 바로알기(역사바로알기)

베스트온 2023. 10. 11. 22:21
 

3.1 삼일절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공휴일입니다.

이 날은 대한민국의 국경일이기도 합니다.

 

 

3.1 삼일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고 독립을 외치기 위해 만인이 일어난 대한민국 독립운동인 "삼일운동"의 개시 날짜로서 유명합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된 것으로 임시정부도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수립됐다.)

 

 

그러나 삼일운동은 한반도 내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한국 독립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희생 정신으로부터 나온 열사들과 영웅들은 그 후의 독립운동에서 큰 영감과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식으로 인정되었고 그 후 곧바로 재건기를 맞아 국경을 두고 북남으로 나뉘게 되면서, 삼일절은 북한과 남한 모두에서 국경일및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삼일절은 굳게 닫혀 있는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남북 관계 개선 및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상징하는 날로 여겨지며, 다양한 행사와 기념식 등이 개최됩니다. 또한 이날에는 전국적으로 굳게 닫혀있던 DMZ 문턱에서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의미를 가진 "DMZ 평화벚꽃 축제"도 개최됩니다.

2024년 3월1일 삼일절

서대문구 제공

https://youtu.be/9tCxD0ZRmaw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발표와 평화적 시위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족적 자존심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로 3·1 독립운동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3.1절, 유관순 열사,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영 운동에 기폭제 역활

서다니엘 24.03.01 09:13
 
게시글 본문내용
 
3.1절, 유관순 열사, 
3·1운동은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영 운동에 기폭제 역할 
"죽음 두려워 않는 조선인들에 경의" 
5·4 선언문 쓴 쉬더헝의 글 첫 공개

 

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제국주의 운동이며 전국적 항일운동이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영 운동, 베트남의 독립운동 등 아시아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자극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가기록원 자료사진

"조선인들은 참으로 피를 흘리고 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조선인에 대해 온몸을 땅바닥에 던질 정도로 경의를 표한다. (쉬더헝,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 中)"

 


1919년 일제 치하 한반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 소식은 곧바로 중국 베이징까지 전해졌다. 중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식인과 학생들이 모인 베이징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근대적인 국민의 삶을 계몽하고 열강의 간섭에 저항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 앞에서 번뇌하던 중국 지식인·학생들은 식민지배를 받던 이웃나라 조선의 민중투쟁에 주목했다. 3월부터 5월까지 3·1운동의 전개 과정을 낱낱이 보도했고, 기미독립선언서 전문까지 소개하며 높게 평가했다.

두 달 뒤인 5월 4일 베이징에서 5·4운동이 일어났다. 주도 세력은 3·1운동을 찬탄한 지식인·학생들이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학생 3,000여 명이 모여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동맹 휴학과 사상운동인 신문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중국 대중이 성장하고 청년·학생 운동이 확산하는 등 민중의 개혁과 각성으로 이어진 5·4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중국사에서 의미가 크다(출처/한국일보).

 


3.1절, 유관순 열사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1일(음력 3월1일) 유관순열사와 김구응 선생 등이 주도해 벌인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당시 일본헌병들의 무자비한 진압에 의해 19명의 애국지사가 현장에서 순국했으며 3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된 호서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이다.

1915년 봄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의 보통과에 편입하고 이화학당에서의 생활은 매우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화학당시절 유관순(13세)은 활발하고 씩씩한 여학생이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병천면 용주리)에서 출생했으며 이화학당 학생의 몸으로 1919년 서울 3.1독립만세 운동(당시 17세)에 참가한후 고향에 돌아와 아우네 기미 독립만세운동 주역으로 선봉에서 강렬한 항쟁을 전개했다.

 

(뒷줄 오른쪽끝 유관순)
1915년 봄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의 보통과에 편입하고 이화학당에서의 생활은 매우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화학당시절 유관순은 활발하고 씩씩한 여학생이었다.

 

(서대문 감옥 수형자기록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전문 중 일부)​"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1919년 삼일운동당시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돼 수감번호 371번이 선명히 찍힌 수의를 입은 채 모진 고문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충남 천안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조성된 유관순열사의 초혼묘(招魂墓·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 초혼묘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9년 10월 봉안됐다.


열사 유관순은 1902년 12월16일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병천면 용주리)에서 출생 했으며 이화학당 학생의 몸으로 서울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후 고향에 돌아와 아우네 기미 독립만세운동 주역으로 선봉에서 강렬한 항쟁을 전개했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온갖고문과 악형끝에 숨을거두는 순간까지 항거를 거듭했다.​

1920년 9월28일 유관순 열사 나이 18세로 꽃은 피워보지도 못하고 "너희들은 반드시 망하고야 만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국하시니 고금에 유례없는 ​구국의 독립투쟁열사 이시다.

유관순 열사의 어록문(語錄文)

나는 대한사람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

너희들은 나에게 죄를 줄 권리도 없고 나는 너희 왜놈들에게 재판을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재판을 거부하며)​

선생님! 저는 나라를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

2천만 동포의 십분의일만 ​순국할 결심을 하면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박인덕 선생님에게...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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