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브: The 5] 정부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는 이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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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을 바꾸고, 홍 장관에 수여된 건국훈장을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력을 문제 삼고 있는데요. 정부가 갑자기 홍 장군을 흔드는 진짜 이유는 뭘까요? 권혁철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The 1] 정부는 왜 육사에서 홍 장군 흉상을 없애려는 걸까요?
권혁철 기자: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광복군이냐 아니면 미 군정 국방경비대냐를 두고 오랜 논란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광복군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2018년 독립군·광복군의 흉상을 육사에 세운 것이죠. 하지만 전직 장성, 극우 세력과 역사관을 공유하는 윤석열 정부는 미 군정 국방경비대를 군국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독립운동의 역사는 자신들의 역사관과 양립할 수가 없다고 보는 거죠.
독립운동에는 자유주의, 반공주의 같은 우익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윤 정부가 보기에 국군은 한미동맹을 지키고 반공 투쟁을 하기 위해 존재해왔을 뿐이라는 겁니다. 우익 세력의 원죄를 가리기 위해서도 그래야 하고요.
[The 2] 무슨 원죄인가요?
권혁철 기자: 친일 부역이죠. 독립운동 역사를 인정하면, 친일의 역사도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백선엽 장군이 대표적이죠. 백선엽은 제 발로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 학교에 입학했잖아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군 장교로 5년이나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다 일제가 망하니 슬쩍 노선을 바꿔서 한국에서 장군도 되고, 한국전쟁에 나가 공로도 세운 거죠. 해방 후 미국과 반공주의에 올라타 친일파 청산을 피해 살아남은 뒤 각 분야에서 주류가 된 수많은 이들의 행태와 동일하잖아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2021년 8월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벽에 그의 귀환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권혁철 기자: 백선엽의 공과를 따지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정부는 백선엽이 나라를 구했다고 하지만, 당장 같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부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1사단장으로, 당시엔 남한이던 개성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이 개성부터 치고 내려왔을 때 1사단은 아무 저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전날 서울서 열린 육군회관 파티에 가서 술 마시고 자다가 부대로 복귀를 못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백선엽은 평생 대접받고 산 사람입니다. 30대 내내 장군, 40대에는 프랑스·캐나다 대사, 50대에는 교통부 장관과 공기업 사장을 지냈습니다. 60대 이후엔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호국의 별’로 떠받들어졌고요. 하지만 홍 장군은 아버지처럼 머슴과 광산노동자로 전전하다, 추운 만주 전쟁터에서 싸웠고, 나이 들어선 강제로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가 극장 경비 등을 하다 죽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의 경로를 봤을 때 육사에서 장교들에게 본받으라고 내세울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The 4] 윤석열 대통령도 정치적으로 득이 되니까 홍 장군 흉상을 철거하란 거 아닐까요?
권혁철 기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국민적 존경을 받는 홍 장군을 흔들면 선거나 정치에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하잖아요. 양당에 각각 30%의 부동지지층이 있고, 중간에 있는 40% 유권자의 표를 더 많이 가져오는 게 기본 선거 전략이니까요.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일반적인 대통령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만 목표였던 걸로 보여요. 다시 대통령 선거 나올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정책도 없는 거죠. 그냥 전 정권이 한 거 때려 부수고, 검사 때처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국가 세력’이라며 벌주는 일이나 하는 거죠. 저출산, 한반도 평화, 기후위기처럼 어려운 문제는 내버려두고요.
[The 5] 여당은 ‘대통령이 국가 기틀을 세우기 위해 표에 도움이 안 되는 일도 하고 있다’고 옹호합니다.
권혁철 기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솥엔 독립·호국·민주라는 세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훈부는 독립투사, 전쟁공로자, 민주화 유공자 모두 잘 기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보세요. ‘독립’과 ‘민주’란 두 다리는 걷어차 버리고 ‘호국’ 다리 하나만 남기려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해하기가 힘들죠. 지금처럼 민주화 된 한국에서 역사를 독점하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The 5]에 다 담지 못한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과 흉상 논란의 전말을 휘클리에서 모두 읽어보세요.
[인터뷰] 육사 18기 표명렬 예비역 장군
“차라리 홍범도-백선엽 흉상 한자리 둬 항일-친일 알게 하자”
표명렬 예비역 장군.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958년 육사 18기로 입교한 표 장군은 1985∼1987년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냈다. 정훈감 재직 시기엔 광복군 창군일을 맞아 독립군·광복군 인사들을 육사로 초청해 생도들의 사열도 받게 했다.
퇴역 뒤에도 국군의 날을 광복군이 창설된 9월17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표 장군은 육사 출신 장성들의 반발을 사 2005년 재향군인회와 육사총동창회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표 장군은 그해 왜곡된 군대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평화재향군인회를 설립했다. 다음은 표 장군과의일문일답.
―육사가 충무관 앞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중 홍범도 장군 흉상은 다른 장소로 이전하고,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은 교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의 항일 독립전쟁은 민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전쟁이었다. 소련 공산당에 들어간 것 또한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차라리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 했던 홍 장군과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한자리에 두자. 이들이 얼마나 대비된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활동은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는 육사 정체성이나 생도 교육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군은 이념의 군대가 되어선 안 된다. ‘육사는 공산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가 우리를 공격한다면, 군은 가만히 있겠다는 것인가? 육사의 존립 목적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 아니라, 오로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역할을 하는 데 있다. 군의 인식은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이다.”
―육사의 뿌리는 어디에 둬야 하는가?
“해방 뒤 친일파가 나라를 장악했듯 육사도 똑같았다. 일본 간도특설대에 있었던 자들이 육사의 생도 훈육,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생도대를 장악했다. 일제 땐 친일 앞잡이에게 고개 숙이고, 군사독재 시절엔 정부 향해 박수 치던 육사는 바뀌어야 한다. 육사는 단순히 전투원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할 지도자를 키우는 곳인 만큼 ‘민족을 지키는 군대’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결국 항일 독립전쟁을 치른 광복군과 독립군의 역사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홍범도 지우기’ 등 역사 전쟁에 뛰어들었다.
“군대가 정치에 종속된 형국이다. 진급에 눈멀고, 인생의 목표가 장군이 되는 것에 있다면 군은 얼마나 다루기 쉬운 조직이 되겠나. 장관도 대통령에게 잘 보이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군이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이런 일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 기득권에 휘둘려 광복군 정신이라는 뿌리를 지키기는커녕 파헤치고 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육군사관학교가 교정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학교 밖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앞에 흉상 철거를 반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역사학자들은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국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군의 뿌리를 두고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사회적 합의를 윤석열 정부가 깬 것이라는 취지다. 반 명예교수는 “(이번 논란은) 간단하게 흉상 철거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한만국의 정체성과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쌓아 올려온 제도·관습·규정이 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것은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묘를 만들고 이장할 때처럼, (흉상) 설치와 철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도 “(이번 논란은) 한국군의 족보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라며 “문재인 정부 때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삼는 작업으로 (군 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침해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흉상 이전 논란을 “친일 반민족 세력과 독립운동·민주화운동 세력의 오랜 역사전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군정 아래의 조선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모체로 삼는 시각에서는 독립군·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보는 상징물인 홍범도 장군 흉상이 눈엣가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수 진영이 영웅시하는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최태욱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백선엽 장군이 해방 전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항일 독립세력 토벌에 앞장섰던 이력을 상세히 설명하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백선엽 친일 행적 삭제 주장은 사회적 합의를 깨는 행위”라며 “적어도 일본군·만주국군이 되어 우리 국민에게 총을 겨누었던 군인이 구국의 영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앞서 박민식 장관은 최근 국립현충원 누리집에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바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 전쟁 배경에는 국정 실패를 가리려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국민이 원하는 민생경제 안정에 자신이 없으니까, 정부가 이를 덮어보려는 정치적 의도로 역사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서면 축사에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고 비판한다면,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도 같은 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며 “(정부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몰역사적이고 반헌법적인 폭거를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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