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와 김명국(가명)/정명운(실명)의 인터뷰
JTBC와의 추가 인터뷰를 통해 탈북 군인 출신인 김명국(가명)은 기존의 5.18 북한 개입설을 지어낸 이유와 배경들을 설명했다. 이후 김명국은 스스로 얼굴과 실명의 공개를 요청했고 JTBC는 그의 동의 아래 공개했다. 공개된 실명은 정명운이다. 유튜버 등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기자수첩] 5·18 광주 앞에 부끄러운 1980년의 지면, 2013년의 화면
- 기자명 정철운 기자
- 입력 2023.05.19 11:34
- 수정 2023.05.24 14:59
반성 없으면 언론의 잘못은 반복되고 치러야 할 대가는 늘어난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16일 ‘북한 특수군 투입설’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80년 5월24일 간첩 이창용을 ‘광주 시위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던 사건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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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전, 조선일보는 1980년 5월25일자 <시위 선동 남파 간첩 1명 검거> 기사에서 “서울시경은 24일 광주사태를 무장 폭동으로 유도하고 반정부 선전 및 선동을 위해 남파된 북괴 간첩 이창용(46)을 23일 오전 서울역 근처에서 검거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광주 잠입기도 시위선동 간첩 검거> 기사에서 “이창용은 광주 잠입을 시도했으나 군경의 검문 검색이 심해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조선‧동아를 비롯해 대부분의 신문‧방송은 “이창용이 시위 군중 속에 들어가 살인-방화 등 대담한 행동을 하기 위해 은단형 환각제를 갖고 있었다”는 대목을 강조했다.
조사위는 “경찰 발표에 언론은 일제히 5·18민주화운동이 북한 간첩의 선동으로 조종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경찰, 검찰, 국군방첩사령부, 국가정보원 기록조사와 체포 당시 관련 참고인, 경찰관 등 조사 결과 간첩 이창용의 임무는 기존 고정간첩망의 복구와 노동당 경기도당 결성이었고 검거 당시 이창용은 독약을 먹고 혀를 깨물어 상당 기간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사위는 이창용 자술서가 1982년 2월17일 작성된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창용 검거 기자회견은 제대로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광주 상황을 북한의 사주와 선동으로 왜곡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급조된 것”으로 결론 냈다.
조사위는 “북한 특수군 침투 및 개입설 등 왜곡과 조작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발언에서 시작해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왜곡 조작 과정에서 언론은 한 축을 담당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5월22일 전두환은 언론사주들과 간담회에서 “지금 공수단 복장 괴한들이 광주를 빠져나가려 하고 있어 해안선 등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언론사주들은 당시 전두환의 ‘보도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혹자는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폭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10년 전, 군사정권 시절이 아닌데도 잘못은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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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5·18 북한군 개입의 진실’ 편을 내보내며 남파 특수군 최초 인터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광주폭동 참가했던 사람들은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 자신을 1980년 광주에 있던 북한군이라고 주장한 김명국(가명)의 주장은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김명국은 1980년 5월27일 오전 9시 철수 명령을 받았으며 철수 도중 국군과 만나 교전했다고 주장했다. 프로그램 진행자 김광현 동아일보 기자는 “(김명국) 증언이 제대로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명국은 2021년 JTBC와 인터뷰에서 “1980년 광주에 간 적이 없다”며 거짓말을 실토했다.
채널A 방송 이틀 전인 5월13일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자신을 북한 특수부대 대위 출신이라고 밝힌 탈북자 임천용씨가 출연해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의 특수군 개입에 의해 움직여진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섭외와 편성을 조율한 것처럼, 당시 5·18을 앞두고 두 종편에서 잇따라 ‘5·18 북한군 개입설’이 등장했다. 이 사건은 5·18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은 게 전부였다. 1980년 광주 앞에서 언론은 쉬지 않고 반성해야 한다. 반성이 없으면 잘못은 이렇듯 반복되고 언론의 잘못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점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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