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주공용터미널 지하에 주검 방치
군 기록 3곳서 등장…진상규명 필요
공용터미널 학살 참상 목격자 기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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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항쟁 당시 공수 특전여단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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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상황일지와 전남합수단(505보안대)의 ‘광주사태시 전교사 정보일지’, 출처 불명의 군자료 등에 광주공용터미널에 주검이 방치돼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공용터미널 학살 참상의 목격자도 있다. 5·18항쟁 10일 동안 취재수첩 3권에 공수 특전여단 군인들이 저질렀던 학살의 참상을 꼼꼼하게 기록했던 고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는 <10일간의 취재수첩>(1988)에 “오후 6시쯤 대인동 공용터미널 주차장에는 7, 8구의 시체가 차곡차곡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전 기자는 “이 주검들은 공수부대원의 대검에 찔리거나 몽둥이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라며 “또 “공용버스터미널 주차장의 시체는 공용터미널 앞 로터리 광장에서 시위하던 군중들이 차량으로 수송된 공수부대원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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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가 쓴 <10일간의 취재수첩>(1988)에 나오는 공용터미널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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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공수 특전여단이 공용터미널에 숙영했다는 군 상황 기록.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공수여단을 시민군으로 오인해 30분간 교전…현장 참혹”
등록 2023-05-18 10:00수정 2023-05-18 12:09
5·18 전투병과교육사령부 교도대원 정광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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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육군 보병학교 교도대에서 근무한 정광효씨.
정씨는 “5·18 때 민간인들이 군인한테 당한 것을 아는데 그걸 기념하겠다고 기장을 주니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는 일기에 ‘훗날 전씨 시대가 끝날 때 이 쇳조각이 올가미의 상징일지 모르겠지만 주는 거니까 받긴 했다’는 속마음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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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복무를 했던 정광효씨가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 받은 국난극복기장과 이에 대한 생각을 쓴 일기장.
5월19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영문도 모르는 채 소총(M16)과 개인용 실탄 120발, 분대용 실탄 1060발, 비상식량, 판초우의, 모포, 야전삽 등을 챙겼다. 당시 그는 ‘북한군이 쳐들어온 줄 알았다’고 한다.
교도대는 광주와 화순, 나주 사이 경계지역에 투입됐다. 5월24일은 송암동 인근 야산에 매복했다. 시민군이 장갑차를 탈취했다는 소식에 화기중대는 90㎜ 무반동총을 챙겨 광주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1~3중대는 나주 쪽에서 오는 차량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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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1년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에서 근무한 정광효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심정을 쓴 일기.
화기중대는 곧장 무반동총 등으로 장갑차와 뒤따르던 군트럭을 공격했다. 정씨 기억으로는 30여분쯤 교전한 뒤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상대편이 11공수여단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교전 현장은 참혹했다. 11공수여단의 한 중사가 교도대장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아군 적군 구분도 못 하는 너희가 군인이냐”고 하극상을 벌였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상황이 정리된 뒤 정씨가 길 안내를 하려고 앞장서서 걷고 있는데 승용차에 탄 최웅 11공수여단장이 옆으로 다가와 권총을 겨누며 “총성이 또 들리면 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교도대는 매복 임무를 이어가다 부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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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산하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에서 근무한 정광효씨가 일기장에 그린 전교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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