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
[단독] ‘1919년 건국’ 선명…이승만 작성 문서 공개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권한에 따라 나는 일본에 요구한다. 모든 무장세력과 군대,
그리고 통상적인외교사절과 자문관들을 제외한 모든 일본 관리들과 시민 등을 한국에서 철...
이승만의 건국 원년도 ‘1919년’이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입력 : 2016.10.02 21:50:01 수정 : 2016.10.02 22:53:06
ㆍ“대한민국 주권 인정하라” 일왕에 보낸 공식 문서 나와
ㆍ“1948년 건국 주장은 거짓”
이승만 대통령이 1919년 일왕에게 보낸 문서의 친필 사인 부분. 우당기념관 제공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19년 대한민국을 ‘독립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라며 일왕에게 보낸 공식 문서가 2일 공개됐다. 이는 이 전 대통령도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원년으로 선언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로, 1948년을 건국 원년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우당기념관(관장 이종찬)은 이날 이 전 대통령이 1919년 6월18일 일왕에게 보낸 문서를 공개했다. 영어로 작성된 이 문서에는 이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담겨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글에서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의 권한과 이름으로 대한국민의 소망을 담아 일본에 요구한다. 모든 군대와 무장세력을 한국에서 철수하라.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며 독립적인 주권국가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종찬 관장은 “이승만 박사는 단 한번도 1948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면서 “최근 이 박사를 내세워 1948년을 건국이라 일컫는 세력은 이 박사를 모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임시정부를 국가가 아니라 정부라고 하는데 국가가 없는 정부는 있을 수 없다”며 “이 박사 스스로 세계에 알리고 자필 사인을 한 이 자료는 건국절 주장이 허구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올해를 “건국 68주년”이라고 표현했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는 2015 교육과정을 개발하면서 연구진의 동의 없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해 논란을 빚었다.
[단독] ‘1919년 건국’ 이승만 문서 공개…건국절 논란 끝내나
등록 :2016-10-02 16:41수정 :2016-10-02 18:54
이승만 자필 사인 선명…일 ‘천황’에 보낸 공식 문서
박 대통령 “건국 68주년” 8·15 경축사와도 충돌
“뉴라이트 등 건국절 제정론자들에게 뼈아픈 문서”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권한에 따라 나는 일본에 요구한다. 모든 무장세력과 군대, 그리고 통상적인 외교사절과 자문관들을 제외한 모든 일본 관리들과 시민 등을 한국에서 철수시켜라.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distinct, independent, sovereign State)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
이는 1919년 6월18일 이승만이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당시 공식명칭은 대한민주공화국 집정관총재)으로서 일본 국왕(‘천황’)에게 보낸 공식 문서 내용의 일부다. 이는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면서, 그가 주도한 1948년의 분단 단독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비로소 건국된 것이라며 1919년 건국을 부인하고 임시정부 및 동북지역 무장항일투쟁 역사를 깎아내려 온 ‘이승만주의자’들과 뉴라이트의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이승만주의자들에겐 자가당착이 된다. 이 문서는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장(우당기념관 이사장, 전 국정원장)이 2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이승만은 자신이 “1919년 4월23일 한국이 완전하게 조직된 자주통치국가(completely organized, self governed State)가 됐음을 ’당신’(you, 일본 국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면서 이 모든 공식 업무들이 이에 입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그해 3월1일 한국 전역의 3백 곳이 넘는 지역에서 한국민의 총의와 의지에 따라 작성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선포됐다는 사실, 13도 대표들이 선출됐고 이들이 4월23일 서울에 모여 입법부(the Korean National Council, a representative legislative body, to goern Korea)를 구성했으며 거기서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으로 선출하고 다른 집행(행정)부 관리들(executive officers)도 선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승만의 자필 사인(Syngman Rhee)이 선명한 이 문서는 대한민주공화국(‘한성정부’) 수립(1919년 4월23일)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승만이 자신이 대통령에 선출된 사실을 통보받고 이를 수락하면서 워싱턴 현지에 대한민국 미국 사무실을 차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과 일본 등 각국 원수들에게 그 사실을 공식 통보한 문서 가운데 하나다.
이 문서를 공개한 이종찬 회장은 “1948년 건국을 주장해온 이승만 추대세력에겐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등을 세워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광복회가 주최한 ’바른 역사 아카데미’(9월28일~12월21일 매주 수요일 열리는 역사강좌) 제1주제(‘민족사적인 건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1 특강 강사로 나섰을 때에도 그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며 “1948년 건국 주장자들에겐 가장 뼈아픈 문서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이 문건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다 역사적 문서 원본을 대중들이 직접 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이 문건의 공개와 대중적 공유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특히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승만주의자와 뉴라이트들로선 자가당착”이라며 “그들의 건국절 주장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 우리 현실에선 더욱 의미 깊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8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71주년,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며 뉴라이트와 이승만주의자들의 1948년 건국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뒤, 그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를 열고 1919년 건국을 부정하고 임시정부 및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깎아내렸다. 전희경 의원이 마련한 그날 토론회에서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원장을 지낸 류석춘 교수 등은 1919년 건국은 당시 외국 국적자들(김구는 중국, 안창호는 미국,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국적자였고, 이승만은 무국적였다며)이 주도한 것이었고, 1919년 건국 주장은 결과적으로 남북이 정통성을 나눠갖게 하는 것이며, “쉽게 생각하면 김일성 정권에게 절반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희경 의원은 1919년 건국론자들을 “자신의 반대한민국적 사관을 숨기면서 대한민국 독립세력과 건국세력을 이간질하는 사람들”(<미디어 오늘> 8월22일치)이라며 예의 종북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내 국적은 일본" 이승만 美체류시절 자필 국적표기 충격
뉴시스 | 노창현 | 입력 2013.10.05 10:04
1차대전 징집카드 자필 작성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서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1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징집서류에 국적이 일본으로 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서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1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징집서류에 국적이 일본으로 돼 있다. 이 카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필기체로 작성한 것으로 당시 44세이던 그는 음력생일(3월 26일)과 함께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Korean School Principal), 주소는 ‘하와이’로 돼 있다. 이번에 발견된 고문서중엔 1933년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입항 기록을 비롯 연방 문서 60건이 발견됐다. 사진은 이승만의 ‘제1차 세계대전 징집카드. 2013.10.05. <사진=뉴욕한국일보 제공> robin@newsis.com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서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1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징집서류에 국적이 일본으로 돼 있다. 이 카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필기체로 작성한 것으로 당시 44세이던 그는 음력생일(3월 26일)과 함께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Korean School Principal), 주소는 ‘하와이’로 돼 있다. 이번에 발견된 고문서중엔 1933년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입항 기록을 비롯 연방 문서 60건이 발견됐다. 사진은 이승만의 ‘제1차 세계대전 징집카드 뒷면. 2013.10.05. <사진=뉴욕한국일보 제공> robin@newsis.com
↑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서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Ancestry.com)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1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징집서류에 국적이 일본으로 돼 있다. 이 카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필기체로 작성한 것으로 당시 44세이던 그는 음력생일(3월 26일)과 함께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Korean School Principal), 주소는 ‘하와이’로 돼 있다. 이번에 발견된 고문서중엔 1933년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입항 기록을 비롯 연방 문서 60건이 발견됐다. 사진은 이승만의 1933년 뉴욕 입항기록. 2013.10.05. <사진=뉴욕한국일보 제공> robin@newsis.com
이와 관련, 뉴욕한국일보는 이 서류는 '제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U.S. World War I Draft Registration Cards)'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Syngman Rhee), '생년'(1875년) 등과 일치하는 연방 문서 60건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필기체로 작성한 이 카드엔 나이(44세)와 음력생일(3월 26일)과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Korean School Principal), 하와이 거주 주소 등 인적사항들이 나와 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친척'은 이 심(Shim Rhee)으로 관계를 '누이(Sister)'로 한국 주소와 함께 작성했고 인종은 '아시안(Oriental)'이라고 표기했다.
놀라운 것은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국적을 '일본'(Japan)으로 기재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식민지 국민으로 전락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하와이 등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펼친 그가 신상 정보난에 국적을 일본으로 밝힌 것은 적잖이 흥미롭다.
1차 대전 징집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징집 카드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18~45세 사이의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시민권자는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남성들을 포함, 미 전역에서 약 2400만명이 카드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록했다. 현재 이 징집카드는 '셀렉티브 서비스(Selective Service)'란 이름으로 만 18~25세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가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것은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시점에서 아시아의 열강인 일본의 국민으로 신상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듬해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가 미국의 공문서에 '일본인'이라고 밝힌 것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논란거리인 그의 '친일성향'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러일전쟁 막바지였던 1905년 8월4일, 이승만은 하와이의 윤병구 목사와 함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이승만이 고종 밀사로 파견된 것이라는 설이 제기됐지만 당시 뉴욕헤럴드 트리뷴 등 미국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승만과 윤병구는 "우리는 황제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라면서 "황제는 한국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한제국과 고종을 적극 부정했다. 1904년 결성된 일진회는 이듬해 11월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늑약을 적극 찬성하는 등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친일단체로 성장했다.
뉴욕헤럴드 트리뷴은 "러시아 사람들은 줄곧 적이었고, 우리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는 윤병구의 말과 함께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들은 일본을 주인으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고문서중엔 1933년 이 전 대통령의 뉴욕 입항 기록도 있다. 1933년 유럽 방문 후 프랑스에서 출항한 '렉스'호에 올라 뉴욕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기록이다. 이 입국 서류에 나타탄 이승만의 직업은 '박사, 교수'(Doctor, Professor)였고,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냐?"는 질문란에 '그렇다(Yes)'고 돼 있다. 인종은 '한국인'(Korean), 출생지는 '한국(Korea), 서울(Soeul)'로 작성됐다.
그밖에 필리핀과 일본 등을 출발해 하와이 호놀룰루나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등에 도착한 다수의 입항기록과, 육로를 통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입국기록 등이 함께 발견됐다.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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