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15
![]()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른다는 낙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는데, 현재 원통보전을 비롯하여 종각·일주문·천왕문·선실·승방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관세음보살을 보신 원통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절 옆에는 의상이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만나 불당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홍련암이 있고, 의상이 앉아서 참선했다는 자리에 세운 의상대가 있다. 낙산사는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사찰이다. 신라< 新羅 > 문무왕< 文武王 > 16년(676) 의상대사< 義湘大師 >가 관음보살< 觀音菩薩 >의 진신< 眞身 >이 이 해변< 海邊 >의 굴< 窟 > 안에 머무신다는 말을 듣고 굴 속에 들어가 예불< 禮佛 >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 水晶 >으로 만든 염주< 念珠 >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주어 이곳에 사찰< 寺刹 >을 창건< 創建 >하고 낙산사< 洛山寺 >라 하였다 한다.헌안왕< 憲安王 > 2년(858) 범일대사< 梵日大師 >가 중창< 重創 >하였으나 몽고란< 蒙古亂 >으로 소실< 燒失되었다.조선 >< 朝鮮 > 세조< 世祖 > 13년(1467) 왕명< 王命 >으로 크게 중창하였고 예종< 睿宗 > 원년< 元年 >(1469)에도 왕명으로 중건이 있었으며 인조< 仁祖 > 9년(1631)과 21년(1643) 재차< 再次 > 중건이 있었으나 정조< 正祖 > 원년< 元年 >(1777)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 다시 중건하였다.1950년 6·25동란< 動亂 >으로 또다시 소실되어 1953년 재건< 再建 >하였다.사찰 내에는 조선 세조 13년(1467) 크게 중창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칠층석탑< 七層石塔 >(보물 제499호)과 예종 원년(1469)에 주조< 鑄造 >한 동종< 銅鐘 >(보물 제479호)이 있으며, 사찰 입구에 있는 홍예문< 虹예門 >과 원통보전< 圓通寶殿 > 둘레에 있는 담장< 垣墻 >은 강원도< 江原道 > 유형문화재< 有形文化財 >로 지정되었다. 부속건물로는 의상대< 義湘臺 >, 홍련암< 紅蓮庵 > 등이 있다. [출처]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강원) 낙산사(洛山寺)|작성자 nocleaf |



낙산사 동종은 2005년 화재로 종이 녹아 소실되었다
강원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며, 또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다고 하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 ·25전쟁으로 소실되고 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이 절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낙산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 ·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동해 낙산사 빈일루
빈일루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홍련암 -문화재 자료 제36호



동해 낙산사 의상대










671년 신라 의상대사에 의해 건립된 유서깊은 사찰이지만, 오랜 세월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을 겪으면서 전소되거나 파괴되고, 6.25전쟁때 다시 전소되고 복구되었건만,,, 2005년 4월 5일, 또 다시 오만하고 부주의한 인간의 손에 의해 화마에 휩싸여 제 모습을 거의 상실하였습니다.
홍예문을 통해 들어서면, 먼저 빈일루와 동종 그리고 사천왕문이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그리고 원통보전과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낙산사 7층 석탑을 보고 나면, 화살표는 관람객들을 해수관음보살상과 해수관음전으로 인도합니다. 그 다음 의상대와 홍련암 구역으로 발길을 돌려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를 실컷 만끽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보타전과 아담한 연못을 둘러보면,, 낙산사 관람은 대략 마칠 수 있습니다.
빈일루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중기 박종이라는 사람의 기행문에 처음 빈일루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기에 중수를 하였지만 소실되고, 2005년 화재로 소실되어, 2009년 새로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웅장한 동해 일출이 장관을 이루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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