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13




강화 고인돌
joshua 2010.04.09 22:12
고인돌은 누구의 무덤이었을까? 아니면 영역을 표시하고자 하는 상징물이었을까. 고인돌을 말할 때 우리나라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세 곳 있다. 전북 고창, 전남 화순, 그리고 강화. 각각의 지역 위치가 다르듯이 고인돌의 형태도 모두 다르다. 한강을 중심으로 이남, 이북으로 구분하여 본다면 강화도의 고인돌은 북방식, 고창, 화순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 부른다. 물론 명칭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현태에 따른 차이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덮개돌이라고 부르는 상단의 돌이 넗고 평평하고 덮개돌을 지탱하고 있는 굄돌(받침돌)은 서로 수평을 유지하며 두개가 놓여 있다. 이와 다르게 고창, 화순의 남방식 고인돌은 상단의 덮개돌이 두껍고 정사각형과 같은 형태다. 하단의 굄돌은 바둑판의 다리처럼 작고 사면을 받치고 있어 모두 네개로 되어 있다. 북방시고인돌이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멋이 있다고 한다면 남방식 고인돌은 우직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형태다. 고인돌을 만드는 방법이야 큰 차이가 없었겠지만 최종 형태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구성되는 것을 보면 해당지역의 주민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문화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려산을 중심으로 하여 130여개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데 부근리 지석묘는 그 가운데서도 큰 편에 속한다.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길이. 6.5m, 너비 5.2m로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장정 200여명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날과 같이 포크레인이 없는 시대라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고인돌을 만드는 방법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지혜를 동원한것임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굄돌(고임돌, 받침돌)을 세우고 굄돌 사이에 흙을 채워 넣는다. 이로 인해 서로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 두게 되고 굄돌 정상까지 작은 언덕처럼 흙을 쌓아 올린다. 이후 상단의 덮개돌을 운반하여 굄돌 위로 올리게 되는데 거중기나 포크레인이 없었던 시기에는 오직 사람의 힘만을 의지해서 운반을 하였다. 그러나 단순하게 힘을 드러낸 것이 아닌 통나무를 이용한 굴림인데 굄돌 상부까지 둥글게 다듬은 통나무를 연달아 설치하고 그 위로 덮개돌을 끌어 굄돌 위로 옮겼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덮개돌이 자리를 잡고 수평을 유지하면 굄돌 주변에 쌓아둔 흙을 제거하고 주변 정리를 함으로 고인돌은 완성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동원되는 인원이 만만치 않기에 그만큼의 인력을 동원할 영향력은 지배층 즉, 한 부족을 이끌었던 족장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청하는 것이다.
※ 강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 탁자 모양의 북방식 고인돌입니다. 강화 고인돌은 2000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강화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죠~ 이 강화 고인돌은 한반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전체 높이는 약 2.6m, 덮개석 길이는 약 6.4m, 너비는 5.2m입니다.
그리고 강화 고인돌 덮개석의 무게는 무려 75톤에 달한다고 하네요. 강화 고인돌 ..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묘제(墓制)의 하나로서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는 길이가 710cm, 높이가 260cm, 너비가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하였다.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이다. 무게는 약 50톤이다. 청동기 시대의 탁자식 고인돌인데 고려산 둘레에 있는 120여기의 고인돌과 함께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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