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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한국도 변했다…이제 '멋진' 동맹으로 가자"

by 무궁화9719 2026. 1. 30.

"미국도, 한국도 변했다…이제 '멋진' 동맹으로 가자"

 
  • 외교국방
  • 입력 2025.08.22 12:17
  • 수정 2025.09.06 14:44

[인터뷰] '브라보 한미동맹' 펴낸 이경렬 대사 ①
전략적 유연성? 미국, 새정부 출범 뒤 조심스런 반응
'전가의 보도'로 내밀던 미군 감축·철수 협박 덜 먹혀
노무현 정부 결론이 출발점…친구 좋다고 지옥 가나
"한미 FTA, 관세협상 탓 사문화…아예 폐기해야"

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식이 예정된 2007년 6월 30일. 주미 대사관 경제참사관이 잠적했다. 이른 새벽 휴대폰을 끄고 버지니아 쉐난도의 올드랙 산에 들어가 버린 것. 오전 10시 행사 시작 몇 시간 전 벌인 '일탈'이었다. 

 

그 2년 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목, 주베트남 대사관에서 긴급 공수해 온 일꾼. 그는 그날, "FTA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생각에 공직 사퇴를 결심했다. 누구보다 협상 지원에 전념했던 그는 왜 자괴감에 빠졌을까? 흔히 "뺀질이" "영혼 없는 인간" "미국 앞잡이"로 불리는 '외무공무원'이 상식적인 눈높이의 시민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이경렬 전 주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올해 잇달아 펴낸 저서의 표지. 2025.8.21. 시민언론 민들레 
 

이경렬(63) 전 주앙골라 대사.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올해 두 번째 책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을 이달 초 내놓았다.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관계의 실제와 이를 다루는 관료들의 가식과 위선, 한계를 파헤쳤다. 지난 3월 <명품외교의 길>을 펴내 "대한민국에 외교는 없다. 유사 외교 행위가 있을 뿐이다"라고 일갈한 지 다섯 달 만이다. 이번에도 직업외교관 33년 (1985~2018)의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견고한 논리를 펼쳤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이후 여러 차례 교신으로 내용을 다듬었다. 통상적인 인터뷰와 다르게 진행됐다. 같은 시기, 같은 사안을 문 안에서 본 전직 공무원과 문 밖에서 본 동년배 저널리스트는 서로 할 말이 많았다. △ 미국의 변화, 한국의 변화. 브라보 한미동맹! △ 다시 노무현 시대? 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 넘어서기 △ '외무부' 개혁 제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인물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멀쩡한 얼굴을 왜?"라는 질문에 그는 "나중에 얘기하겠다"라고만 답했다. 

 

-먼저 가벼운 이야기부터. 그날, 행사 앞두고 왜 산에 올라갔나.

 

"FTA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미 의회를 상대로 전문직 비자(H-1b) 확보 노력을 기울였다. 호주를 비롯한 국가들은 FTA에 포함했지만, 우리는 별도의 틀에서 다뤄야 했다.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의 FTA 비판은 대부분 맞는 얘기였다. 정부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으로서 부끄러웠다."

 

-외교통상부가 뒤집혔을 것 같다.

 

"선배들의 만류로 끝내 사표는 내지 못했다. 나를 걱정해 준 측면도 있겠지만, 한미 FTA의 진상이 폭로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지 않았나 싶다. 결국 키르기스스탄으로 전근 배치돼 대사관 창설 작업을 했다." (당시엔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있었다)

 

7월 29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치누크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호화로운 미군 기지다. 한국은 국민 혈세로 기지를 건설, 제공했다. 아직도 계속 지불하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평범한 공무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올해 두 번째 저서다. <명품외교의 길>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얼마 안 돼 역저를 내놓았다.

 

"<명품외교의 길>은 2023년에 이미 써놓은 거다. 마땅한 출판사를 물색하느라 발행이 늦어졌다. 그 책이 총론이라면, <브라보 한미동맹>은 각론인 셈이다. 정부 수립 때부터 시작돼,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한 숭미의 밈(meme)과 이를 뒷받침하는 진(gene)을 도려내고 멋진 한미동맹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다. 광복 80년째 사라지지 않은 돌연변이 유전자다."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최근의 관세협상을 보면서 새삼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책에서 "우리가 아닌, 미국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던데?

 

"최근 몇 가지 변화가 감지된다. 먼저 미국 쪽에서 상황을 악화시킬까 상당히 조심하는 것 같다. 얼마 전(8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도 이를 충분히 인정해야 하고 미국도 숫자가 아니라 능력에 기초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여론이 '감축하려면 감축하라'고 쿨하게 나가니까 다음 날 "감축을 얘기한 적이 없다"라고 뺐다.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상황 변화 간파한 2008년 '버시바우 기밀 보고서'
"한국 제대로 존중하지 않으면 동맹 유지 어렵다"

 

-주한미군 감축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론도 여전히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오래됐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에 보낸 긴 전문(2008년 1월 8일 자)이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보다 지속가능하고 전략적인 미-한 동맹 2020 비전(2020 VISION OF A MORE VIABLE AND STRATEGIC U.S.-ROK ALLIANCE)'이다.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MB가 들어오는 시점인데 전문의 요점은 '한국이 옛날의 그 똘마니가 아니다. 한국이 성장했다는 걸 인정하고 제대로 존중하는 시각을 갖지 않으면 동맹이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의 입장을) 한마디로 내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는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는 증거다. MB가 들어와 '노무현이 한미 관계 다 망쳐놓았다'라면서 과거로 돌아가면서 빛이 바랜 보고서다."

 

정부가 2023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상징. 시민언론 민들레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제1도련선 안의 항공모함이라는 등 브런슨 사령관의 최근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미 육군 처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미국 국방부 내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금전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 미군이 한국에 있는 덕분에 미국이 얻는 국가적 이익이 엄청나다는 걸 잘 모른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다르다. 지금도 우리 외교부와 국방부가 뭘 협상하는 것 같은데 심상치 않다. 최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루비오 국무장관과 조현 장관은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기로 했다.' (7월 31일 외교부 보도자료) '동맹의 현대화'라고 하지만 말장난이다. 바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말한다."

 

-'전략적 유연성'을 쉽게 풀어준다면.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해놓으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무엇이 유연하며 왜 전략적인지 밝혀야 한다. 주한미군의 유연성이란 미군이 한국에의 '접근, 주둔, 영공 통과(ABO)'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재명 신정부 들어와서 성숙한 한미 관계를 바라는 의견이 상당히 나오고 있다. 과거 조·중·동이 여론을 조성했다면 이제 유튜브 방송이나 <민들레>와 같은 시민언론에 한미 관계에 관한 굉장히 성숙된 의견이 많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조·중·동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별로 얘기가 없다. 그게 먹히려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위협이 먹혀야 하는 데 민도랄까, 우리의 지적 수준이 높아진 거 같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8.10. 연합뉴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 5월 15일 하와이 심포지엄에서 자신이 한미 연합사 사령관으로 "유사시 75만 명의 육, 해, 공군, 해병을 거느린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자기 밑에 75만 명이 있다는 말은 맥락이 있다. 2002년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처음 들고나온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당초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미 연합사가 역내 분쟁에 함께 간다는 구상이었다. 나중에 주한미군만 나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미국의 국익이 바로 우리의 국익'이라는 숭미 여론을 조성해 온 조선일보는 7월 26일 자 사설에서 주한미군이 역내 분쟁에 나갈 때 한국군도 따라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국무부가 24일 한국 언론에 보냈다는 정체불명의 언론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동맹의 현대화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그렇게 썼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동맹은 본질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면서 "우리 국민이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서 싸울 의사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누군가의 사주로 간보기를 한 것 같다. 그런데 안 먹히는 분위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거다."

 

(미 국무부가 특정 언론의 질문에 정리된 입장을 제공하는 경우는 있어도 '언론성명'을 한 신문에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기자는 15일 국무부에 해당 '언론성명'의 공유를 요청했지만 전달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도 7월 31일 자 칼럼에서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과 싸울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미지수'라고 적었다)

 

당초 한미 연합사, 대만 파견을 꿈꿨던 럼즈펠드
조선일보가 슬쩍 띄워 올린 '한미 대 중국 전쟁'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미·중이 격돌하면 세계 전쟁이다. 재작년인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중 전쟁 시뮬레이션 보고서에서 "누가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가 된다"고 했다. 미 해군은 세계 제해권을 잃고, 중국 공산당은 권력을 잃게 된다고 분석했다.

 

"대만 유사시, 미국이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지 20년이 됐다. 아태전략이건, 인태전략이건 중국을 포위하려는 언어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 미국은 그걸 침소봉대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미국이 미래의 가정적인 상황을 두고 한국에 '그런 상황이 오면 미국을 돕는다고 미리 약속하라'는 압력을 가한다면 절대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권국에 백지수표를 달라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계기에 미국에 "우리 의사에 반해 역내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나? 물론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을 침공한 전력이 있는 나라다. 해서 '나중에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 가서 협의하자.' 이게 노무현 정부가 분명히 해둔 지점이다."

 

미중 사이의 대만 이미지.
 

-미국이 중국과 분쟁을 벌이거나, 분쟁에 대비한다면 주한미군을 동원하려고 하지 않을까?

 

"한국군이나 한미 연합사는 물론 주한미군이 가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한국이 중국의 공격 목표가 된다. 예컨대 병력을 빼서 주일미군에 배속시키는 방식으로는 가능하다. 맞다. 미국은 우리의 친구다. 그런데 친구가 좋다고 지옥에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미국은 이번에도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흔들며 위협할 거다. 수십 년 동안 특히 한국에 너무 잘 통한 수법이다. 이제는 단호하게 "노(No)"라고 해야 한다. 미군은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간다. 못 나간다. 미국도 한국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다고 본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월 중순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보를 지지한다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도록)한다'는 실행 메모를 작성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러한 태세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한덕수 대행 체제 때 작성한 메모다.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간을 보다가 물러선 것 같다. 물론 한국 내에서 공론화가 안 되고 우리가 가만히 있었으면, 만만히 보고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26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싱크탱크 인사들도 한국 새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굳이 첨언했다. 한국이 안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비쳤다."

 

미국, 한미 정상회담보다 실무 선부터 팔 비틀수도
조현의 갑작스런 방미… 안보문제 의제 조정 요구?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건가. 

 

"미국은 (한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 논의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과거처럼 실무선에서 팔을 비틀고 들어올 수도 있다. (미국은 외교, 국방 당국자들에게 '각서'를 먼저 받는 방식을 종종 취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안의 본질을 냉철하게 볼 줄 안다고 믿는다. 미국이 압력을 가할 수 있겠지만,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충분히 단호한 입장을 정할 수 있을 거다. 엊그제(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를 보니 되레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만에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형태가 되면 절대로 안 되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돼서도 안 된다고 먼저 당부하더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갑작스레 21일 미국 방문에 나섰다. 안보 의제 조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나올까.

 

"기본적으로 경제, 통상, 관세협상, 조선 협력 문제가 나오지 않겠나. 조현 장관은 '기술동맹'을 세일즈하던데 실현되면 좋은 거다. 미국은 한국에 한 번도 제대로 된 기술을 준 적이 없다. 한미 원자력 협정 협상에 참여해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도 못 하게 하더라. 우주기술도 하도 안 주니까 우리가 러시아와 하지 않았나. 일단 정상 간 첫 만남이니까 크게 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시 올드랙 산으로 돌아가 보자. 이 대사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한 한미 FTA도 관세협상으로 사실상 사문화가 됐다.

 

"그 역시 숭미의 소산이었다. 책에 '암컷에 먹히는 숫사마귀의 슬픔'이란 제목으로 상세한 이유를 담았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66% 오르고, 35만 명의 고용이 창출된다고 했던 한국 경제연구기관들의 합동보고서 자체가 사기였다. 정직하게 일반균형연산(CGE) 모델을 돌렸으면 1%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나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 같은 독소조항만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FTA 여러 조항이 우리의 주권을 제약할 빌미가 됐다는 점이다. 어차피 관세협상으로 사문화됐으니 이번 기회에 아예 폐기하는 게 낫다. 필요하면 보다 균형잡힌 새 협정을 맺으면 될 일이다." 

 

2007년 8월 10일 한미 FTA를 반대해온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7.8.10.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통령 기망' 있어선 안 돼"

 
  • 외교국방
  • 입력 2025.09.02 16:44
  • 수정 2025.09.06 14:47

[인터뷰] '브라보 한미동맹' 펴낸 이경렬 대사 ②
"당시와 협상팀 겹치지만 대통령 바뀐 만큼 다를 것"
용산기지 이전 협상, 법적·절차상 하자에도 확정
전략적 유연성 협의, 미국과 교환각서 뒤늦게 보고
위성락, 기존 합의로 인정됐다?…본질 호도할 수도

이경렬(63) 전 주앙골라 대사.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8월 초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을 내놓았다.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관계의 실제와 이를 다루는 관료들의 가식과 위선, 한계를 파헤쳤다.

 

지난 3월엔 <명품외교의 길>을 펴내 "대한민국에 외교는 없다. 유사 외교 행위가 있을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여러 차례 내용을 다듬었다. △ 미국의 변화, 한국의 변화. 브라보 한미동맹! △ 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 넘어서기 △ '외무부' 개혁 제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인물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이경렬 전 주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올해 잇달아 펴낸 저서의 표지. 2025.8.21. 시민언론 민들레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가 돈이 들던지 추진해야 한다. 국회와 국민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과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의 개입은 최소화시킨다. 용산기지 이전을 신속히 그리고 조용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며 법률가적인 지엽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조약국의 이견은 무시한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003년 11월 18일 자로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에 수록된 외교통상부 북미국 북미3과 외무관 진술의 일부다. 북미3과는 용산기지 이전 한미 협상의 외교 창구. 일개 '과' 따위가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를 '반미주의자'로 낙인찍고 멋대로 협상을 진행했던 것. 보고서는 괄호 속 메모로 "실제로는 아이러니하게 NSC 인사들은 협상 과정의 대부분을 추인해 주었다"고 적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검사의 난은 알려졌지만, 외교안보 관료들의 난은 묻혔다. 노 대통령이 묻었다.

 

"대통령과 NSC는 반미주의자, 개입 최소화하라"
미국과 따로 움직인 북미국…세금 10조 원 지불

공직기강비서실의 평가보고서 표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멋대로 '반미'로 지목하고 미국에 최대한 유리한 협상을 해온 이들이 대통령을 속인 사건이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이석태 비서관이 주재한 두 차례 회의에는 서주석 NSC 실장,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해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은 나중에 헌법재판관이 된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의 보고서를 풀어 용산기지 이전 협상의 전말을 8개 장 중 제1장에 소개했다.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명백하게 드러난 인물을 제외하곤 가명을 썼다.

 

-가명이 너무 많아 중간중간 실명으로 전환하며 읽게 된다. 가명을 지으면서 원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박성준'으로, 북미국장을 '하성필', '민용식'으로, NSC 핵심 당국자를 '이석준'이라고 했다.

 

"내 논의의 초점은 특정인에 대한 비난보다 우리 사회의 숭미적인 구조에 있기에 가명을 사용했다. 당시 직책을 검색하면 실명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가명의 원칙은 없었다. 지금도 현직에서 활동하는 관료는 젊었을 때는 가명으로, 요새 나오는 이름은 본명을 썼다."

 

-협상팀 개편 및 원점 재검토, 관련자 문책 인사를 제안한 이석태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2004년 10월 26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간에 서명, 확정됐다. 그 결과,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거의 국민 혈세 10조 원으로 지어줬다.어찌 된 영문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이후 일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된 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용산기지 이전의 당위성만 보고받았을 뿐 상세한 조건이나 비용 부담에 대해 제대로 보고받은 적이 없다. 취임 후 거의 9개월 동안 자세한 내막을 모르면서 조속한 기지 이전의 원칙만을 되뇌었다. 몰랐더라도 어차피 자기가 벌인 일이라고 자책하며 더 이상 간여를 피한 게 아닌가 싶다. 문제 삼는다고 미국과 이미 합의한 걸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미국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걸 꺼렸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9일 미국 워싱턴의 미 국무부 청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미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6.1.19.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책에선 2000년대 초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 협의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대통령 기망 사건을 소개했다.

 

"전략적 유연성은 기본적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고쳐야 할 문제다. 조약상 주한미군은 한반도 붙박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조약 2항에도 상대방의 영토가 공격을 받아야 도와주게 돼 있다. 대만이 무슨 미국 영토인가? 미국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조약 개정 대신 외교 각서 형태로 추진하길 원하면서 우리 측에 초안 작업을 맡겼다. 2003년 10월 한미 미래동맹 정책회의(FOTA) 제5차 회의에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이 미국 측에 전달한 초안은 대통령은 물론, NSC에도 보고하지 않은 정황이 발견됐다. NSC는 국정상황실이 조사에 착수하자 2004년 3월에 가서야 북미국장으로부터 보고받았다면서 책임을 미뤘다."

 

-외교통상부 북미국이 미국 측과 주고받은 각서에 관해 설명해달라.

 

"첫째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인정한다. 둘째 그로 인해 한반도 안보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셋째가 미군이 들락날락(in and out) 할 때 한미 간에 사전 협의한다고 돼 있었다. 2004년 1월 미국이 보낸 수정안에는 2항이 삭제되고 3항의 사전협의가 단순 협의로 수정된 것이었다.(책 97쪽) 나는 공개된 내용과 상관없이 '유사시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함께 간다'는 내용의 비밀각서가 존재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입장과 달랐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공사 졸업식 연설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6월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확인을 요청하자 기죽지 않고 반복했다. 부시는 동의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알았다(I will take note of it)'라고만 말하고 얘기를 끝냈다. 노 대통령이 이 문제를 끝까지 막았다고 생각한 이유다. 당시 청와대에는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레드팀(일종의 암행어사팀)'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외무부와 국방부가 미국과 뭘 협상하는데 이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

 

"우리 의지 관계없이 '그것' 역내분쟁에 포함 안 돼"
'그것' 두고 대통령 '주한미군' 외교장관은 '한국군'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발표한 전략적 유연성 관련 공동성명에도 그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나.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이다. 여기서 '그것(it)'의 해석이 분분했다. 반 장관은 2006년 9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한국군'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시종일관 '주한미군'이라고 했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그렇다. 주한미군은 한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군이 지역분쟁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됐다. 콘디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성명을 발표한 외교통상부 장관(반기문)은 '그것'을 한국군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주한미군'으로 봤다. 한국군만 빠지는 전략적 유연성에 자신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07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되풀이 강조한 내용이다. 공동성명은 한글본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재명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안보 현안은 물론 주요 당국자도 겹친다.

 

"몇 사람이 겹친다. 책에선 가명으로 처리했지만, 특히 두 명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썼다. 기본적으로 용산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하면서 대통령을 속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모가 같더라도 그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서민적이고, 민중 지향적인 성향은 같을지 모르지만 노 대통령은 숭미 정신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비록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의 축이라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객관적인, 또 국민의 뜻에 따라 보려고 한다고 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9월 1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미 간 진행 중인 전략적 유연성 논의에 대해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조정이 있지는 않다. 원론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과거 한국에서는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2006년 (한미 합의로) 인정이 됐다. (전략적 유연성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만 남은 것"이라고 했다.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전후에, 이면에서 묵시적으로 동의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측면도 있다. 2006년 한미 외교장관 간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핵심은 주한미군이 예컨대 대만사태와 같은 역내 분쟁에 참전하는 경우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본질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2년 효순-미선 양 추모 촛불시위에 힘입어 임기를 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12.3 내란을 맨손으로 막은 '빛의 혁명'에 빚을 졌다.

 

제이비어 브런슨 사령관이 20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 사령관, 한미연합사 사령관, 유엔사 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4.12.20. AP 연합뉴스 
 

"숭미에 포획된 당시, 국민주권 정부는 다를 것"
미국 대북 압력 약화…안보 환경은 지금이 낫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 아니면 '미국을 다시 봐야 한다'는 냉철한 분위기에서 당선됐다. 그럼에도 당시는 숭미의 정신, 조·중·동의 정신이 아주 막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래선지 취임 뒤 미국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우선 이라크 파병을 했고, 실무자들의 기망이 있었지만, 용산기지 이전에 백지수표를 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했다. 그런 과정에 지지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고 본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그때는 숭미의 기반이 아주 두터웠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숭미의 기반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게 첫 번째 측면이고, 두 번째는 객관적인 안보 측면에선 노무현 정부 때가 훨씬 나빴다."

 

-이재명 정부의 안보 환경이 당시보다 더 낫다는 말인가.

 

"새 정부 들어서도 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친하게 지낼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조금 험한 말을 내놓지만, 그렇다고 안보 환경이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미국이 북한에 압력을 세게 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북한 문제는 한국이 맡고 대신 주한미군이 역외 문제에 신경 쓰게 해달라는 게 전략적 유연성 아닌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상당히 약해져 있다. 그 긴장 상태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외교부도 검찰처럼 '해체 수준' 개혁해야 선진국"

 
  • 외교국방
  • 입력 2025.09.04 10:51
  • 수정 2025.09.09 12:27

[인터뷰] '브라보 한미동맹' 펴낸 이경렬 대사 ③
엘리트 착각 속 출세 외길 걸어온 숭미주의 유전자
동맹파-자주파는 없다, 실력파-비실력파가 있을 뿐
국가발전-국민행복 추구해야 주권국의 '명품외교'
속 빈 '전문성' 타령 밥그릇 챙기려는 조직 이기주의
외부 인재 수혈, 고위 간부-공관장 절반 이상 바꿔야

이경렬(63) 전 주앙골라 대사.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8월 초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을 내놓았다.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관계의 실제와 이를 다루는 관료들의 가식과 위선, 한계를 파헤쳤다.

 

지난 3월엔 <명품외교의 길>을 펴내 "대한민국에 외교는 없다. 유사 외교 행위가 있을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여러 차례 내용을 다듬었다. △ 미국의 변화, 한국의 변화. 브라보 한미동맹! △ 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 넘어서기 △ '외무부' 개혁 제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인물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이경렬 전 주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올해 잇달아 펴낸 저서의 표지. 2025.8.21. 시민언론 민들레 
 

"대한민국의 주권 회복과 진짜 외교가 펼쳐질 날을 고대한다."

 

이경렬 대사가 지난 3월 펴낸 <명품외교의 길> 서문에 쓴 마지막 문장이다. 주권과 외교, 글로써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게 응축돼 있다. "한국 외교관은 외교를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척만 한다"고 믿기에 외국 관련 사무를 보는 '외무공무원'으로, 외교부를 '외무부'라고 칭하는 이유다.

 

미국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미국에 잘 보여야 출세한다는 신념 또는 맹목에 포획된 '숭미 마마보이들'이 이른바 주류를 형성해 왔다는 인식. 은퇴한 외무공무원이 부지런히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까닭이다. 기실, 그의 '모반'은 재직 중에 시작됐다.

-외무부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입부 5년쯤 됐을 때부터 조직 문화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명색이 외무공무원을 하겠다고 들어왔는데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무엇보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고, 두 번째 하는 일이라는 게 참 너절했다. 주한 미 대사관 3등 서기관이 보내온 편지나 번역해 장관에게 올리고, 또 그 답장을 쓰는 정도. 동료나 선배들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라는 게 무슨 외교에 관한 토론은커녕 인사 이야기뿐이었다. 북미국이니, 일본국이니 자기들끼리 담장을 치고 자신들이 외무부를 이끌어간다는 허황한 자부심에 차 있었다. 나중에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근무하면서 거듭 확인했지만, 별것도 아닌 일을 하면서 밖으로는 쉬쉬하더라.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들킬까 봐 숨기고, 또 나라 팔아먹고 있는 짓을 하기 때문에 숨기는 것 같았다."

 

1945년 8월, 서울 경복궁 내에 있던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국기를 내리고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미군들. 나무위키
 

-자신의 33년 외무공무원 생활을 정의한다면?

 

"일찌감치 북미국과 같은 '핵인싸(인사이더)'를 멀리하겠다. 오라고 해도 안 가겠다. 앗싸(아웃사이더)로 새로운 길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보람을 느껴야 하지 않겠나. 남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나라를 손 들어서 갔다. 베트남, 키르기스스탄, 앙골라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음지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 같은 게 생기더라. 외무부 내부 통신망 '나눔터'에 이런 생각을 틈나는 대로 글로 적어 올렸다. 은근히 따르는 동료, 후배들도 생겼다. 언젠가 한 후배는 '선배님, 팬 카페 있습니다. 한 100명쯤 돼요'라고 귀띔했다."

 

초대 장관 장택상, 처음부터 숭미조직으로 탄생
"미국 이익 앞장서 대변해야 출세" 80년 조직문화  

 

-노무현 정부 당시 용산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협의 과정에서 '동맹파'와 '자주파' 간의 싸움이라는 언론보도가 많았다. 안에서 느끼기에는 어떠했나?

 

"동맹파, 또는 내가 숭미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외무부 안에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다. 꽤 많다. 다만 언론이 명명한 '자주파'는 단언컨대 없었다. '위장된 자주파'가 있었을 뿐이다.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도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보고서에서 적지 않았나. 동맹파인 북미 3과에서 '반미주의자들'이라고 지칭했던 국가안보회의(NSC) 인사들이 '실제로는 아이러니하게 협상과정의 대부분을 추인해 주었다'라고. 국익을 놓고 보면, 동맹파니, 자주파니 그런 구분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실력파와 비실력파,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 실력파라고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다만 계속 들여다보면서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데 외무부 생활 33년 중 그렇게 공부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주요 7개국(G7)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관료 출신을 장관, 특히 외교부 장관 시키는 나라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일본은 외무성 관료가 올라갈 수 있는 정점이 사무차관으로 정해졌다. 왜 한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나.

 

광복 80주년을 나흘 앞둔 11일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대형 태극기가, 왼쪽 외교부 청사에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걸려 있다. 2025.8.11.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외무부는 이승만이 숭미 정권을 세우면서 만든 숭미 조직이기 때문이다. 초대 장관 장택상이 누군가. 미군정이 수도경찰청장을 시켰던 인물이다. 2대 장관 임병직은 이승만 비서 출신이다. 처음부터 미국의 앞잡이 부처였다. 80년 된 이야기다. 미국 이익을 앞장서 대변하는 선배들이 출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도 오로지 미국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군부독재 시대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관습이다.

 

"군인들의 기본 관심사가 무엇이었겠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모두 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했다. 미국이라면 껌뻑 죽었다. 이미 그렇게 최적화돼 있는 조직이 외무부이다 보니 미울 리가 있었겠나. 민주화 이후에 교수 출신 장관들이 몇 명 있었지만,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미국이 달라는 것 퍼주는 게 주된 일이었다."

 

-외교가 특수 업무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외교부 출신이 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영어도 잘해야 하고.

 

"밥그릇 챙기려고 들먹이는 말이 소위 전문성이다. 내가 볼 때 외무공무원들은 전문성만 없는 게 아니다. 함량 자체가 미달이 많다. 외무부 사람들 번지르르하게 얘기하지만 한 번 질의하고, 두 번 질의하면 더 이상 들어가질 못한다. 영어도 그런 식으로 한다. 재미있는 표현을 외워서 써먹으려고 하는 데 진짜 무슨 뜻인지 모른다. 외교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증표로 영어를 들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꾸 영어를 쓰는 데 기본적으로 생각이 짧다. 프리토킹이 안 된다."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 중인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운 영어로 '전문성' 과시, 대화-소통 부족한 '외교' 
다른 부처 공무원이 더 유창, 더 중요한 건 '국가관' 

 

-외운 영어 표현은 잘 쓰는데 프리토킹이 안 된다는 말인가.

 

"기본적으로 외교의 ABC는 사람이 하는 것, 즉 말로 하는 거다. 그런데 외국 외교관들은 기본적으로 밥 먹을 때 업무 이야기 안 한다. 디저트, 커피 마실 때 딱 5분 정도만 한다. 그때까지 음악이나, 책,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의사소통한다. 파리 OECD에서 일할 때는 사르트르나 카뮈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런 과정이 없이 곧장 업무 이야기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파탄 나기 십상이다. 의사소통을 해봐야 좋거나, 싫거나 감정이 생긴다. 의사소통을 안 하면, 좋은 감정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업무 외적 대화를 해내는 게 바로 업무다. 실력파와 비실력파가 거기서 갈린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외교관이면 엘리트 관료로 알려져 있지 않나?

 

"외교는 도외시하고 출세만 바라보다가 외교가 엉망이 됐다. 제대로 할 실력이 안 된 것부터가 문제인데 그걸 모른다. 영어만 놓고 보아도 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외무부 사람들보다 훨씬 잘 한다. 거기에 국가와 국민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췄다. 타 부처 공무원이나 학자들과 외무공무원을 붙여놔 보면 금세 안다. 외교부 사람들 몇 마디 못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누가 더 외교를 잘하겠나. 타성에 젖어서 하던 일이나 할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그럴 능력이 안 된다."

 

-이번 책에서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으로 가는 데 검찰개혁과 언론개혁과 함께 외교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에겐 '한미동맹의 강화' 말고는 외교 목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무부가 되뇌어온 '한미동맹의 강화'의 뜻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 퍼준다는 의미였다. 용산기지 이전, 한미 FTA, 이라크 파병이 그랬다. 한미동맹이 외교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지상과제가 될 수 없다는 각성이 절실하다.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외교만이 명품외교라는 점을 각인할 필요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북미국·아프리카국 정기 교체로 문화 바꿔야
인사국장 직급 낮춰 외부 출신 인사과장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이 필요할까.

 

"검찰개혁보다 훨씬 쉬운 문제가 외무부 개혁이다. 다만 검찰처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장급 이상 고위급 간부의 절반 이상은 외부의 비공무원으로 인선할 필요가 있다. 외부인으로 개혁 전담 차관직을 신설해도 좋을 것. 해외 공관장은 향후 1년에 걸쳐 전원 교체하고 신임자의 절반도 외부 인사로 충원해야 한다. 본부 조직의 대수술도 긴요하다. 정기적으로 북미국 직원을 예컨대 아프리카국이나 다른 국 직원들과 서로 교체해 뿌리 깊은 숭미 자취를 없애야 한다. 인사국장을 과장급으로 하향 조정하되 외부인에게 맡겨야 한다."

 

-<명품외교의 길>이 나온 뒤 전현직 외무공무원들에게 물어보니 이 대사에 관한 평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천재' '숨은 인재'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4차원'이라는 평도 있었다. "노 코멘트"라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책에 나온 외무부와 외무공무원의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대놓고 부인하지 않았다.

 

"내가 외무부와 한국 외교에 대해 신랄하게 쓸지 몰라도 나름대로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혜택받은 사람이 맞다. 외무부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관점에서 이 거지 같은 외무부의 환골탈태 개혁을 위해 이런 글을 남기고 싶었다. 진짜 외교를 한다면 내가 외교부를 더 이상 외무부라고 부를 이유도 없어지지 않겠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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