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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사도광산 등재’ 동의한 윤 정부, 일 강제동원 지우기 동참한 꼴

by 무궁화9719 2024. 7. 29.

‘사도광산 등재’ 동의한 윤 정부, 일 강제동원 지우기 동참한 꼴

‘강제성’ 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일 언론 “강제동원 빼기로 사전 합의”
정부 해명과 배치…“외교 실패” 비판

기자김소연
  • 수정 2024-07-28 21:30
  • 등록 2024-07-28 16:28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 등이 빠진 채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 쪽이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줬기 때문이다. ‘강제성’은 당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어서 한-일 관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가 걸려 있는 한국 정부가 동의해주면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국 외교부는 자료를 내어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정부는 등재 결정 전에 사도광산 조선인 문제와 관련해 ‘전체 역사’를 보여줄 전시 시설과 내용 등에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내 별도 장소를 마련했고, 28일부터 전시가 시작됐다. 이날 공개된 사도섬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에는 △조선인 동원 형태와 규모 △위험한 작업에 노출된 갱내 작업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탈출·수감 기록 등 당시 가혹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내용이 전시돼 있다.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도 27일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포함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 전략 및 시설을 만들기까지 한국과 긴밀히 대화했다. (앞으로) 충실하고 완전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반영한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지만, 가장 중요한 ‘조선인 강제동원’이 빠지면서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2015년 7월 하시마(군함도)를 포함해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때와 차이가 크다.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forced to work)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노동’ 등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동원과정·노동환경의 강제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이미 정리됐다. 표현 문제를 놓고 (이번에)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합의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일본이 그것을 포함해 모든 약속을 인정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2층 D전시실 일부(파란색 동그라미)에서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하지만 일본 쪽에서 이를 부정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사도광산 조선인 전시 등과 관련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인정한 2015년 ‘군함도 약속’을 9년 동안 지키지 않고 있으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역사 지우기’도 강화되고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희석하기 위해 ‘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을 바꿨다. 2021년 4월엔 각의(국무회의)에서 ‘강제’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결정했고, 이후 모든 교과서에서 ‘강제노동’, ‘강제연행’ 등의 ‘강제’가 사라졌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용인한 것”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비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dandy@hani.co.kr

유승민 "尹정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반대했어야"

곽재훈 기자2024. 7. 29. 15:00
 
"한일 간 상호주의 안 지켜져…우리는 다 내줬는데 日은 뭐 해줬나"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유산 등재와 관련,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28일 오후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일본의 오래된 숙원사업에 윤석열 정부가 찬성했다"며 "사도광산에 끌려가 강제노역 당한 뼈아픈 역사를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가해자인 일본에게 요구하고, 그게 아니면 우리 정부는 반대 입장을 유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동원'되어 '강제노역'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그는 나아가 "윤석열 정권 들어 한일관계는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강제징용 제3자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사도광산 등 우리는 일본이 원하는 대로 다 내줬는데, 일본이 우리에게 해준 것은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안보와 경제는 일본과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으나, 대한민국의 역사·영토·주권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자료사진). ⓒ연합뉴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윤 대통령 오므라이스엔 강제징용, 이젠 사도광산까지 퍼줘"

정부 사도광산 등재 찬성에 여야 비판... 박찬대 "진상조사 통해 책임 물을 것"

24.07.29 11:14l최종 업데이트 24.07.29 11:19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고민정, 서영교 최고위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대해 '외교 참사'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사람에 충성 안 한다던 윤 대통령, 일본에 충성"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29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은 조선인 동원 강제성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는 사도 광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관련 전시물을 설치하겠단 일본의 공수표만 믿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라며 "지난 2015년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에도 일본은 강제 동원 기록 명시를 약속했지만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런 전과를 뻔히 알면서 또다시 일본이 하자는 대로 반인륜적 전쟁범죄 부정과 은폐에 손을 빌려준 것이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엔 오므라이스 한 그릇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팔아먹더니 이번엔 사도광산 문제까지 일본에 퍼준 꼴이 됐다"라며 "후쿠시마 핵오염수와 강제징용, 일본 군용기 위협 비행, 위안부 문제까지 윤석열 정권은 일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상납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독도 문제까지 윤석열 정권 임기 내에 해결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대통령이 일본에 충성하고 있는 것이냐"라며 "일본 전쟁범죄 왜곡의 거수기를 자처하니 대한민국 정부인지 일본 총독부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정권의 외교 무능과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더불어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라고 밝혔다.

서영교 민주당 최고위원도 "대한민국 정부가 맞느냐"라며 "윤석열 정권은 아무리 봐도 친일이고 매국이며 독도까지 넘겨줄 기세"라고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또 "후쿠시마 오염수가 처리수이니 마셔도 된다고 선전을 해대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수산시장) 수조 물을 떠 마시는 등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했다"라며 "그 와중에 국민의힘 대변인은 '한미일 동맹'을 강조했는데 나라를 일본에 넘겨줄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 "여당 의원들도 '사도광산 등재 철회' 결의안 찬성했는데..." 

민주당은 지난 25일 재석 여야 의원 전원 찬성으로 국회 문턱을 넘은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을 정부가 정면으로 무시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결의안에) 국민의힘 의원 한 분도 기권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라며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 외교라는 건 국민의힘 의원 다수의 입장과도 상반되게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서 "조선인 1500여 명이 강제동원돼 강제노역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라며 "사도광산에 끌려가 강제노역 당한 뼈아픈 역사를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가해자인 일본에 요구하고, 그게 아니면 우리 정부는 반대 입장을 유지했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 들어 한일 관계는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野 "윤석열 정부가 꽃길 깔아"...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비판

박세인2024. 7. 28. 16:10

민주 "퍼주기·굴욕 외교… 역사왜곡 책임" 
조국혁신 "尹 정부, 세계유산 등재 주범 의심"
與 "정부 대승적 노력에 일본도 요구 수용"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역을 찾은 시민들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야당이 "윤석열 정부가 꽃길을 깔아줬다"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국 21개국 만장일치(컨센서스) 방식의 등재 결정에 동참한 것 자체가 외교 실패라는 지적이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8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 군함도에 이어 또다시 세계적인 명소로 조명받게 됐다"며 "정부는 사도광산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꽃길을 깔아줬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을 설명하는 전시물을 설치할 것이라며 찬성표를 던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 원내대변인은 "일본 언론들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대'라며 축제 분위기인데, 이는 윤 정부의 퍼주기 외교, 굴욕 외교의 다른 이름"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수년째 막고 있는데, (사도광산) 만장일치가 웬 말이냐"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외교 실패를 넘어선 외교 참사의 책임, 역사 왜곡에 동조한 책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눈물을 외면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예고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언론에 미리 공개된 자료를 보면 ‘굴욕적 합의’가 뻔히 보이는데도 발표 시점을 조정했고, 이제는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고 있다"며 "윤 정권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의 요구에 마지못해 동의해 준 정도가 아니라, 세계유산 등재의 주범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전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을 두고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사도광산과는 동떨어진 구석진 박물관에 처박으려는 일본의 시도"라며 "먼저 해법을 제시하고, 이에 적극 동조해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표를 던진 윤 정권"이라고 규탄했다.
 
반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제동원의 전체 역사를 담은 실질적 조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전날 성명서에서 "일본은 한국 노동자의 강제동원 역사를 담은 새로운 전시물을 현장에서 설치했고, 매년 추도식을 통해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도광산 노동자를 기릴 방침"이라며 "우리의 대승적인 한일관계 개선 노력이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게 만든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일본 언론 “한·일, 사도광산 ‘강제노동’ 빼기로 사전 합의”

김소연 기자2024. 7. 28. 09:30

“강제성 표현 논의 없었다” 외교부 주장과 배치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참가국 정상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놈펜/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성 표현 문제는 일본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외교부의 주장과 배치돼 파문이 예상된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와 관련해 현지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일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어, 양 정부 관계자에게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유산 등재는 관례상 한·일 등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라는 현안이 걸린 한국 정부의 찬성이 사도광산 등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지난달 사도광산과 관련해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권고하며 ‘보류’를 결정해 양국 협상에서 한국이 우위를 잡고 있었다.
 
요미우리신문도 “애초 한국은 사도광산은 전시 중 한반도 출신들이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 현장이라고 반발하며 대응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이 물밑 교섭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시설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전시 중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 노동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는 외교부의 그동안 주장과 상반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이 빠진 것과 관련해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이미 정리됐다. 표현 문제를 놓고 (이번에)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7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엔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라고 밝히는 등 강제성을 명확히 한 바 있다. 한국 고위 당국자도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기자들을 만나 “되풀이해서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2015년)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강제노역’ 등 과거 약속을 이어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날 산케이신문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 등에 대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한일 간 ‘강제노동’ 빼기로 사전 합의하였다는 일본 언론보도는 “전혀 사실 무근이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외교부는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일본 쪽 대표의 발언문을 참고해달라고 했고, 이후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비극적인 역사 현장(사도광산)이 군함도에 이어 또다시 세계적인 명소로 조명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비엔티안/박민희 선임기자 엄지원 기자

dandy@hani.co.kr 

역사적 금 생산지에서 오욕의 ‘강제동원’ 현장 된 사도광산

홍석재 기자2024. 7. 28. 15:10
 
사도광산 관광코스의 하나로 갱도를 정비한 \'도유갱(道遊坑) 코스’의 모습. ‘골든 사도’ 누리집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근대화의 중심 역할을 한 사도 광산의 모습을 산업유산으로 남기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정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골든 사도 누리집 갈무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은 에도 시대 일본 최대 금 생산지였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으로 악명이 높던 곳이다.
 
사도광산은 제주도의 절반 크기(854.5㎢)로 오키나와 다음으로 일본에서 큰 섬인 사도에 있다. 이 섬에 있는 아이카와금산에서 1601년 금맥이 처음 발견됐다. 이후 에도시대(1603~1867년)에 일본 최대 금 생산지로 이름을 얻었다. 사도광산을 관광지로 운영하는 주식회사 ‘골든 사도’ 누리집을 보면 “에도시대 때 도쿠가와 막부 등 정부에 재정 지원을 했다”고 기록될 만큼 상당한 금·은이 채굴됐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때 시기를 19세기 중반까지로 한정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동 역사를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사도광산은 태평양전쟁(1941~1945년)이 시작되자 광산의 기능이 바뀐다. 금뿐 아니라 군사 물자에 필요한 구리·아연·납 등을 집중적으로 캐기 시작한 것이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노동자 1500여명이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사도광산에 동원됐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은 “도망갔다가 잡힌 사람이 두들겨 맞는 것을 봤다”, “지역에서 (데려갈 사람의) 할당이 있다고 해 사도로 끌려왔다”, “항상 배가 고팠고, 통제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등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사도광산은 1989년 3월 자원 고갈로 조업을 완전 중단했다. 현재는 에도·메이지 시대 당시 갱도와 작업자들을 재현해 만든 관광코스와 전시실 두 곳, 전통 찻집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지금도 미쓰비시 계열사의 100% 자회사인 ‘골든 사도’가 광산의 일부 지분과 관리권을 갖고 있다. 이 회사 사장은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되면 세계에서 보러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석재 김소연 기자 forchis@hani.co.kr

“식민 지배 정당화…사도광산 언제라도 제2군함도 될 수 있다”

김진아2024. 7. 28. 13:52

일제 강제동원 관련 전문가 3인 인터뷰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 -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갱 내부 모습. 교도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끝내 등록된 데 관해 일본 내 전문가들은 사도광산이 언제든지 제2의 하시마(군함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내 조선인 노동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며 2015년 군함도 등재 때와는 진전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언제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한 전문가 3인을 지난 19~27일 현지에서 대면 및 전화 등으로 인터뷰했다.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다케우치 야스토(67) 역사가는 27일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일본 정부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국가총동원법이나 징용에 의해 노동을 하도록 한 사실은 인정했다”며 “안내판 설명 시 강제 노동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설명이 적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 정부가 군함도에서의 강제동원에 대해 ‘일하게 했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강제노동’은 아니라며 애매하게 말을 바꾼 전력이 있다는 게 다케우치 역사가의 설명이다. 그는 “사도광산에서도 일본 정부가 같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한 강제동원 안내 시설물을 보면 “전시에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및 기타 관련 조치들이 한반도에서도 시행됐다”며 “1944년 9월부터는 ‘징용’이 시행돼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며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의미로도 해석되며 자칫 이러한 강제동원이 식민 지배 시기에는 정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사도광산에서의 강제동원 역시 그렇게 해석되도록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도광산 강제동원 명부 -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미쓰비시 광업이 1944년부터 이들에게 담배 보급을 위해 작성한 명부.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적혀 있다.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자료집 캡처
 
다케우치 역사가는 지난 6월 발간된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에 참여했다. 이 자료집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의 담배 배급 대장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이 자료를 사도섬에 있던 하야시 미치오 스님(올해 77세로 작고) 등이 입수했고 관련 사본 등을 확인하며 강제동원이 이뤄진 게 사실임이 드러났다. 이 자료집에는 조선인 노동자 7명과 유족 4명, 담배를 배급하던 곳의 관계자 등의 증언 등이 담겨 있다.
 
이처럼 30여년에 걸쳐 조사된 내용이 자료집으로 나왔을 정도이지만 일본 정부와 니가타현은 이러한 사실을 부정한 채 사도광산의 과거를 감췄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 다케우치 역사가에 따르면 조선인 노동자가 1940~42년 1000명, 1944~45년 500명 이상 동원됐다는 기록이 있고 이처럼 강제동원된 노동자 수만 1500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채굴 기술,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노동, 국제 관계라는 3가지 측면에서 봐야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노동 문제를 배제한 사도광산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사도광산이 진정한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한 광산 전체 역사를 빠짐없이 알려야 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케우치 역사가는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스스로 과거에 좋았던 점만 골라 자랑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계속되는 한 사도광산이 결국 제2의 군함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근본적 이유는 식민지배가 옳다고 판단한 데서 기초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며 “조선인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나카타 사무국장 -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알려온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면네트워크의 나카타 미쓰노부 사무국장이 지난 19일 교토의 한 시민문화회관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과거 작성한 성명문 등을 보여주고 있다. 교토 김진아 특파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나카타 미쓰노부(70) 사무국장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희생자의 추모가 되지 않도록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일부 안내판 설치 등으로 강제동원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으로 정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카타 사무국장은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잘못된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나도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시민단체는 2021년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부터 현재까지 수차례 성명서를 발표하며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를 요구해왔지만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도광산 내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과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동원된 조선인들의 명부도 공개돼야 한다. 사도광산이 위치한 니가타현은 지역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촬영한 조선반도 노무자 명부 마이크로 필름을 보관 중이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원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나카타 사무국장은 “명부 공개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일한 조선인이 누구인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식으로 일했는지 등 사도광산이 태평양전쟁 중에 어떤 식으로 활용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이를 적극 공개해야 하며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명부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시자와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 -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 대표를 맡은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가 지난 22일 대학 연구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자료집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니가타 김진아 특파원
 
이번에 발간한 자료집으로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증거가 정리됐지만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 공개와 함께 앞으로 계속 강제동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세상에 보여주는 게 향후 과제로 꼽힌다.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 대표를 맡은 요시자와 후미토시(55)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실제 노동자들에 대한 명부를 당시 운영사인 골든사도가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무시하고 에도시대에만 한정해서 보여주는 게 지역민을 무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사도광산의 역사는 곧 니가타현 지역 그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광산에서 채굴했을 당시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역사도 당연히 있는데 이를 애써 감추고 부정하며 밟은 부분만 부각하는 게 지역민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강제동원은 당시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생각”이라며 “도의적 책임은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정리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적 기술이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설명 시 포함되거나 추후 수정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니가타·교토·도쿄 김진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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