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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가자 ‘굶주림 학살’ 위기 68만명…4개월 뒤면 220만명 전원

by 무궁화9719 2024. 2. 29.

한바탕 '외교 놀음'으로 끝난 바이든의 가자 결의안

 
  • 국제
  • 입력 2024.03.24 09:25
  • 수정 2024.03.27 15:54

‘즉각적 휴전’ 빼고, 이스라엘 두둔만…안보리서 부결
국정연설서 한껏 우려했던 민간인 피해 사실상 방관
"미국 대선 유권자들에게 ‘뼈다귀’ 던져주는 연극일 뿐"

가자지구 라파의 한 병원에서 지난 3일 갓 사망한 10살짜리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누워 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이의 직접적인 사인은 굶주림. 글로벌 긴급구호 단체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아사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는 지역으로 가자지구와 아이티를 꼽았다. 수십 만 명이 식량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 2023.3.3.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라고? 미국 대통령은 종종 멋있는 말을 내놓는다. 일단 '출시'되면 각국 언론과 정치인이 이를 다투어 인용하면서 국제사회의 기준(normal)이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냉전의 정점이던 1983년, 공산당 정권의 에티오피아에 인도적 지원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명언이다. 1990년대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의 당위를 설명할 때도 자주 인용됐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명언은 더 많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대표 브랜드였던 '가치'들이다. 조 바이든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바이든은 지난 8일 국정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가자지구의 비극에 통탄하고, 안타까워하며, 해결을 다짐했다. "지난 5개월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이 속이 뒤틀리고 있다"고 개탄한 뒤 가자지구의 참상을 덤덤하게 전했다. 미국인 인질의 가족들에게 각별한 위로를 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6주간의 즉각적인 휴전'을 성립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마스의 인질 석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교환하는 내용도 담겼다면서 "인질을 집에 보내고 견딜 수 없는 인도적 위기를 완화하며, 더 지속적인 상황을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백주 대낮에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제노사이드에 공범은 될 수 없다"라고 외치며 군복 차림으로 분신한 현역 미 공군 사병(애런 부시넬)의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입장 전환의 신호로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를 뜻하는 하얀 주검들 정렬돼 있고, 그 위에는 꽃들이, 곁에는 촛불들이 놓여 있다. 이번  퍼포먼스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미국 지부가 주도했다. 펼침막에는 "바이든 당장 휴전하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2023. 11. 15  [AP=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는 거악(巨惡)과 소악(小惡)이 맞물려 지옥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10.7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1139명이 사망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253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포함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200만 명이 밀집해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지금까지 3만 2000여 명이 희생됐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무고한 민간인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군의 봉쇄로 인구의 절반이 극심한 굶주림에 처해 있다. 인명은 민족에 따라 다르지 않다. 유대인 한 명의 생명과 팔레스타인인 한 명의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피해 규모로 나누면 거악과 소악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성을 들어온 미국은 하마스 소탕이라는 이스라엘의 안보적 필요를 인정하며, 민간인 학살극에 눈을 감아왔다.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면 가끔 거악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극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제스처를 내보일 뿐이다. 재앙의 본질에 메스를 댈 의지는 보이지 않으면서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인 지원을 강조한다.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부상한 한 팔레스타인 아이를 라파의 알 나자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2024. 02. 24. [AP=연합뉴스]
 

바이든의 장엄한 연설 뒤 그동안 가자 전쟁의 즉각적인 휴전을 강제하는 결의안에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던 미국은 안보리에 문제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일 중동 방문 중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고통을 겪는 민간인들을 반드시 우선순위로 다뤄야 한다"면서 결의를 내보였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민간인의 고통을 등가로 말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이 공개된 미국의 결의안은 온통 '소악'과의 전쟁 또는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22일 안보리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 알제리가 반대하고 가이아나가 기권표를 던진 까닭이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결의안의 핵심은 강제권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거나, 한국전쟁 때처럼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초안은 휴전을 '지지'하고, 인도적 구호를 '요구'하며,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는 데 그쳤다. 이스라엘군의 비인도적인 공격을 중단토록 강제하는 핵심이 빠졌다. '요구(demand)'는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바이든의 국정연설 이후 온갖 생색을 내더니 결국 이스라엘의 '거악'을 외면하고, 하마스의 '소악'에만 주의를 환기시켰다. 민간인 제노사이드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목도 없었다. 그러고는 거부권을 행사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비난에 집중했다. 오죽하면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가 "거짓된 휴전 요구로 미국 유권자들에게 '뼈다귀'를 던져주는 연극일 뿐"이라고 일축했겠나. 결의안 제출이 도널드 트럼프에 지지도가 밀리는 상황에서 부시넬의 분신과 일부 민주당 지지층의 분노를 다독이기 위해 내놓은 정치적 제스처임을 꼬집었다.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미국 유대인 단체 네투레이 카르타(Neturei Karta)의 뉴욕 지부 회원들이 26일 전통복장을 한 채 전날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한 애런 부시넬을 추모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4.2.2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은 그동안 유지해 온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했을 뿐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 강제 소개령을 취소하고,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한 지난해 10월 16일 러시아 제출 결의안에 반대했고, 아랍에미리트(UAE)가 12월 제출한 '인도주의적 즉각 휴전 결의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미국이 유일하게 제동을 걸었다. 하긴 바이든 행정부의 예외적인 결정도 아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 강점과 군사행동, 팔레스타인 국가 불인정 등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안 36개 중 3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바이든은 국정연설에서 미국 하원에 계류된 600억 달러 상당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무기 지원 예산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예산안 통과를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미국이 세계 리더십에서 떨어져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의 국제적 통솔력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바로 가자지구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참극을 이어가는 이스라엘의을 두둔하면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지위는 형편 없이 추락하고 있다. 맞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지금도 유효한 명제다. 그러나 굶어 죽고, 폭탄에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더 더욱 정치를 모른다. 미국이 글로벌 리더라는 주장이 갈수록 ‘농담’이 되어 간다. 

가자 ‘굶주림 학살’ 위기 68만명…4개월 뒤면 220만명 전원

기자홍석재
  • 수정 2024-03-19 19:37
  • 등록 2024-03-19 14:13
14일(현지시간) 가지지구 남부 칸 유니스 하마드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폐허가 된 거리에 앉아 있다.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황폐화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앞으로 4개월 안에 220만명에 이르는 주민 대다수가 심각한 기근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유엔(UN) 특별보고서가 나왔다. 이미 영양실조 등 식량 문제로 30명 이상이 숨진 가자주민을 돕기 위한 국제구호단체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유엔이 18일(현지시각) 내놓은 50쪽 분량 ‘통합 식량 안보단계(IPC) 특별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가자에서 재앙적 기근(5단계) 상황에 놓인 주민이 전체 222만7천명 가운데 67만7천명(30.4%)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재앙적 기근 위기 코앞인 ‘긴급’ 단계는 87만6천명(39.3%·4단계), 위기 단계는 57만8천명(29.6%·3단계)으로 나타났고, 압박 단계에 놓인 이들은 9만6천명(4.3%·2단계)으로 나타났다.
 
통합 식량 안보단계의 ‘식량 부족 심각성 분석’은 모두 5단계로 이뤄지는데, 가자주민 가운데 단 한명도 1단계인 ‘안전’ 등급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유엔 쪽은 “계속되는 분쟁으로 인도주의 단체의 북부지역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며 “이미 기근 수치가 대단히 높아졌고, 최신 데이터를 보면 급성 영양실조도 급격히 증가해 임계값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실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같은 날 내놓은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적대행위 리포트’를 보면, 이날까지 영양실조와 탈수로 사망한 주민이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모두 31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고, 먹을 게 없어 숨지는 가자 주민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보고서에 적힌 넉 달 뒤 상황 전망치를 보면, 7월 중순부터는 식량 부족 2단계(압박) 아래 등급에 속하는 주민이 한명도 없게 될 것으로 관측됐다. 보고서는 목숨을 경각에 두는 재앙적 기근에 놓이는 주민은 110만여명으로 주민 절반에 이르고, 나머지 110만여명은 3∼4단계인 ‘위기∼긴급’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민간단체과 독일 등 주변국이 구호물품을 바다와 하늘을 통해 보내고 있다. 로이터 EPA 연합뉴스
 
유엔은 “이스라엘군의 적대 행위가 확대되면서 생존에 필수적인 자산과 인프라가 이미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었다”며 “가자지구에서는 사실상 모든 가정이 매일 식사를 거르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식사량을 줄이고 있다”고 비극적인 현실을 전했다.
 
상황이 더 심각한 가자 북부 지역에선 전체 가정 3분의 2 정도가 최근 30일 동안 최소 열흘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남부에서도 세 가구에 하나꼴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유엔은 집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약식 회견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끔찍한 수준의 기아와 고통을 견디고 있다“며 “재앙적 기아 상황에 직면한 가자지구 주민의 규모는 통합 식량 안보단계 체계로 기록된 어느 장소, 어느 시기보다 많고, 이것은 완전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전역으로 완전하고 제한받지 않는 인도주의적 구호품 접근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합 식량 안보단계(IPC) 특별 보고서 
 
국제구호단체들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있다. 최근 키프로스에서 수송선을 띄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첫 해상 구호물품 수송을 성사시킨 국제 민간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과 오픈암스는 17일 물품을 주민들에게 성공적으로 배급했다. 이번 구호물품 수송은 아랍어로 보트를 뜻하는 ‘사피나’ 작전으로 이름 붙었다. 전쟁터인 가자지구 육로를 피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공중 보급을 대신하는 해상 수송·배급은 현재 최선의 방법으로 꼽힌다. 월드센트럴키친은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 구호선이 거의 20년만에 가자지구에 들어간 첫 배였다”며 “더 많은 식량을 싣고 다음 배를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가자에선 아이도 엄마도 누구나…“심각 수준 식량 불안정” [포토]

기자곽윤섭
  • 수정 2024-03-19 18:58
  • 등록 2024-03-19 17:58
18일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 캠프에서 아이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가자지구 인구의 100%가 “심각한 수준의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다고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영토에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을 공식 방문 중인 블링컨은 기자회견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가 이렇게 분류된 것은 처음”이며 유엔 자료를 인용해 “가자지구 인구의 100%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필요로하는 반면 수단의 80%, 아프가니스탄의 70%가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일 중동으로 향하는 블링컨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방문해 가자지구 휴전을 위한 노력과 구호물자 전달을 증대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18일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 캠프에서 주민들이 배급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18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라파의 한 집에서 가족들이 라마단의 금식 기간이 끝난 후 식사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9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주민들이 전날 밤 이스라엘의 포격을 받은 건물의 잔해와 파편을 수색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배식 기다리는 주민에 ‘헬기 사격’…가자지구 280명 사상

가자 보건부 “이스라엘의 계획된 대학살”

기자김미향
  • 수정 2024-03-15 20:43
  • 등록 2024-03-15 10:54
14일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흐에서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받기 위해 모여있다. 라파흐/신화 연합뉴스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이 시작된 지 나흘째 날, 가자지구에서 배급을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두 건의 이스라엘군(IDF) 공격이 발생해 최소 29명이 숨졌다.
 
14일 로이터 통신과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보건부는 가자지구 북부 한 교차로에서 배급식량을 받기 위해 구호품 트럭 주변에 몰려든 이들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총을 쏴 최소 21명이 숨지고 15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가자 보건부는 이 공격을 두고 “사전에 계획된 새로운 대학살”이라고 비판했다. 목격자들은 이날 신화통신에 주민 수천명이 곳곳에서 원조를 얻기 위해 교차로로 몰려들었는데 이 군중을 향해 헬리콥터에서 폭탄이 날아오고 총격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가자지구 중부 인구 5만명 규모의 도시 누세이랏에서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발생했다. 알 누세이랏 난민 캠프의 배급센터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가해져 8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의 아랍권 대변인 아비체이 아드레이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14일 저녁 인도주의적 배급 장소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 수십명을 표적 삼았다는 보도는 잘못됐다”며 이날 공격을 부인했다. 이에 더해 그는 “사고의 자세한 사항을 조사 중”이라며 “미디어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 보도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배급을 기다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격을 가한 일은 지난달 29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가자시티 인근에서 구호 트럭 주변에 몰린 가자 주민 100여명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총에 맞거나 이를 피하다 트럭에 치여 숨졌다.
 
공격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이날 밤, 새 휴전 협상안을 중재국들에 제시했다. 새 협상안은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과 철수 △인도주의적 원조 제공 △난민의 고향 복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하마스의 새 협상안은 비현실적 요구에 기반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멈추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에서 “그들(하마스)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진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160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보건부는 지난해 10월7일 전쟁 발발 이후 14일까지 총 3만1341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지고 7만3134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기아도 학살이다…굶어 죽은 ‘가자 아이’ 23명 뒤엔 수십만 고통

유엔·언론, 병원 입원 중 숨진 기아·탈수 사망자만 27명
80% 이상 어린 아이…‘이스라엘 식량공수 차단’에 비난

기자홍석재
  • 수정 2024-03-12 15:42
  • 등록 2024-03-12 13:52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흐에서 어린이들이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P 연합뉴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을 차단하는 가운데 기아로 숨진 가자주민이 확인된 이만 30명에 육박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1일(현지시각)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에서의 적대행위 보고서'를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25명이 영양실조와 탈수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이 집계한 사망자 가운데 지난 9월 가자지구 최대 병원 알시파 병원에서 사망한 어린이 3명과 생후 2개월된 아이, 20살 여성 등이 포함됐다. 특히 사망자의 80%를 넘는 21명이 어린 아이였다. 아울러 이날 알자지라 방송은 가자 북부의 카말 아드완 병원에서 어린이 2명이 기아로 숨져, 영양실조와 탈수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는 27명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이 수치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숨진 환자들만 집계한 것이다. 가자지구 전역에서 굶주림으로 숨진 사람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가자지구 북부의 2살 미만 어린이 16%가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가자 최남단 지역인 라파흐에서만 2살 미만 어린이 5%가 영양실조 상태에 놓였다고 덧붙였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은 이미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며 “휴전과 인도적 지원과 구호품의 자유로운 가자지구 반입”을 거듭 촉구했다. 구호단체들은 기아에 직면한 가자지구 주민이 이미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가자 북부에서는 2000여명에 이르는 의료진마저 기근에 직면해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은 “산모와 어린아이 90%가 다양한 식단을 섭취하지 못하는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가자지구의 영양실조 위기는 식량, 식수, 보건 서비스의 심각한 결핍으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도 심각한 상황을 보여주듯 지난 8일부터 일일보고서에 영양실조와 탈수 등 기아로 사망하는 가자 주민 수를 통계에 포함시켰다.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모하메드 슈타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가자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뿐 아니라 ‘기아 전쟁’으로 매일 수백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지난 8일엔 마이클 파크리 유엔(UN) 식량권 특별보고관은 “이스라엘이 식량과 기아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가자 주민의 식량을 차단하는 행위는) 의심할 여지없는 대량학살”이라고 ‘팔레스타인 크로니클’이 보도했다.
 
가자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명 중 절반 이상인 140만명이 밀집한 라파흐를 본격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1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아니면 하마스일 뿐 중간은 없다”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마지막 공격 예정지인 라파흐에서 지상전을 기정사실화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라파흐 작전이 이뤄질 경우 ‘레드라인’을 경고한 데 대해서도 “우리에게도 레드라인이 있다. 하마스가 살아남도록 내버려둘수 없다는 것과 (지난해) 10월7일의 일(하마스의 침공)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해골 몰골로 변한 가자 10살 소년 결국…“이스라엘 육로 열어줘야”

기자홍석재
  • 수정 2024-03-11 08:19
  • 등록 2024-03-10 11:44
지난 2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흐의 알아우다 병원에 10살 야잔 카파르네가 침대에 누워 있다. 야잔은 약품 부족과 심각한 영양실조로 지난 4일 숨졌다. AFP 연합뉴스
 
해골처럼 변한 아이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팔레스타인 가자 최남단 라파흐의 한 병원 침대에 누운 야잔 카파르네는 말라붙은 듯 움푹 패인 눈, 살을 뚫고 나올 듯 날카롭게 드러난 턱, 창백한 피부 위로 얼굴 뼈 골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온몸에 여러 개의 정맥주사를 꽂은 채 겨우 숨만 쉬는 채였다. 고작 열 살에 불과한 나이로 영양실조와 호흡기 감염을 앓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야잔의 부모는 전쟁 통에 목숨을 걸고 백방을 뛰어다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각) “음식 부족으로 야잔의 면역 체계가 약해졌고,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삼킬만한 고영양식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가자지구에서 아픈 아이가 먹을만한 부드럽고 영양 많은 음식을 구할 곳은 없었다. 야잔은 결국 지난 4일 숨졌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에 따르면, 가자전쟁 뒤 이미 20여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영양실조와 탈수증 등으로 숨졌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행동(AAH)의 영양실조 전문가 헤더 스토보는 뉴욕타임스에 “어린이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렸다가 병에 걸리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대부분이 구호물품 지원 뜻을 밝히는데도,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굶어죽는 일이 잇따르는 것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 비극적이고 끔찍한 죽음은 인위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는 남부 쪽보다 북부 쪽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에서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지면서 얼마되지 않는 구호물품의 이동 통로가 막혔고, 북부 국경 출입구는 이스라엘군이 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달 가자지구 5살 미만 어린이 약 0.8%가 심각한 영양실조에 놓였다고 보고했다. 가자 북부의 2살 미만 어린이 약 15%와 남부 약 5%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가자 남부 주민들의 (구호물품) 약탈, 이스라엘의 호송 제한, 전쟁으로 손상된 도로의 열악한 상태 탓에 몇주동안 가자 북부에는 거의 아무런 구호품이 전달되지 않았다”며 “(어린이 뿐 아니라)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아사 직전에 놓여 있다”고 했다.
 
미국 등 주요국과 요르단 같은 주변국들이 여러 방식의 인도주의적 긴급 구호물품 전달 계획을 내놓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국제구호단체 오픈암스는 스페인 선박 ‘오픈암스호’에 쌀과 밀가루, 참치 캔 같은 생필품 200톤을 싣고 인근 키프로스 항구에서 가자지구로 10일 출발한다는 계획이다. 키프로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자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이 계획이 성사되면 가자전쟁 뒤 해상통로를 통해 구호품이 전달되는 첫 사례다. 이스라엘 당국이 선적 물품 점검을 끝내고 출항을 허락하면 2∼3일 뒤 선박이 가자지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다른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은 가자지구에 이 오픈암스호가 정박할 부두를 만들고 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7일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임시 항구 건설을 미군에 지시했다. 미군은 요르단과 함께 군 수송기로 식량 등을 투하하는 지원 작전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스웨덴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의 하마스 연계 의혹 이후 중단했던 자금 지원을 재개한다고 9일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캐나다 등도 이달 들어 자금 지원을 재개한 바 있다.
 
다만 가자지구에 구호물품 지원 정상화를 위해서는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북 양쪽에 육로를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자지구 쪽에 제대로 된 항구가 없고, 연안 수심이 얕아 대규모 물품을 실어나를 대형 바지선이 드나들기 어려워 해상 수송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군이 설치하려는 가설 부두도 설치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더러 2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가자 주민들에게 필요한 분량의 식량과 물, 의약품을 배로 수송하려는 계획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데다, 결국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구호 관계자들은 트럭으로 구호품을 전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 국경에 새 검문소를 개설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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