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우린 목숨 거는데 당신들은 뭘 거나”
유엔 안보리에서 ‘당장휴전’ 결의 간곡히 호소
미국, 안보리 이어 브라질 G20 회의서도 '고립'
미국과 러시아 위상, 1년 만에 공수 뒤바뀌어
G20 '두 국가 해법' 만장일치…이스라엘 반대
"하마스 의료 시설 활용 증거 단 하나도 못 봐"
"오늘 우리 의료진은 환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현장에 복귀했다. 당신들은 어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인가?" 국경없는의사회(MSF) 크리스토퍼 라키어 사무총장이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출석해 138일에 걸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 공격으로 가자 지구에 펼쳐진 참혹한 지옥도를 전한 뒤 즉각 휴전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며 이렇게 물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안보리서 '당장 휴전' 간곡히 호소
"당신들은 기꺼이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안보리 브리핑에 따르면, 라키어 총장은 이날 보고에서 "138일간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의미 있는 인도주의적 대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수십 년간 우리가 지원해온 의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우리의 환자와 동료들이 살해되고 불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상황은 이스라엘이 전 가자 주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쟁이고, 집단적 처벌 전쟁이며, 규칙 없는 전쟁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전쟁이다"라고 개탄했다.
이스라엘군이 병원 깃발로 분명히 식별되는 병원 건물들을 폭격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런 공격 패턴은 의도적이거나 난폭한 무능의 표시"라면서 "의료에 대한 공격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하마스가 의료 시설들을 군사적 용도로 활용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과 관련해 "우리는 이에 대한 독립적으로 검증된 증거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이스라엘군은 작년 10·7 하마스 사태 이후 가장 최근의 나세르 병원 습격을 포함해 모두 9곳의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도 5명 숨졌다.
라키어 총장은 "이 방에선 더 많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가자에선 매일 점점 더 고갈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최소한의 것도 없는 상황에서조차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임신부가 방치되고 플라스틱 텐트에서 출산하며, 마취 없이 절단 수술을 벌이는가 하면, 피로 물든 거즈들을 빨아서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는 극한적 상황을 소개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휴전 결의안 '비토' 미국 성토
"휴전이 빠진 어떤 결의안도 중대한 과실"
'생존 가족 없는 부상한 아이'란 뜻으로 의료진이 새로운 약어인 WCNSF(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를 만들었다면서 특히 가자 어린이들의 참상을 전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트라우마, 부상 등 눈에 보이는 상처뿐 아니라, 반복되는 이주와 끊임없는 공포, 잘려 나가는 가족들 목격 등에 따른 보이지 않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면서 "이런 심리적 상처로 인해 다섯 살 아이들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보리의 무능과 그 주범인 미국을 성토했다. 그는 미국의 비토(거부권 행사) 때문에 안보리가 휴전을 결의할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고 비판한 뒤 "가자 주민은 휴전이 필요하다. (미국이 말하는) 실행가능한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일시적 진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휴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휴전이 빠진 어떤 결의안도 중대한 과실"이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보고를 마친 뒤 미국의 로버트 우드 주유엔 차석대사는 하마스 억류 인질의 석방 없이 가자에서 지속가능한 휴전을 있을 수 없다면서 "미국은 이집트, 카타르와 함께 인질 석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드는 최후 피란처로 난민 100만 명 이상이 몰린 가자 최남단 국경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 계획과 관련해 민간인 피해와 역내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스라엘에 우리의 우려를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장쥔 주유엔 대사는 라키어 총장이 전한 "가자의 비극적 그림이 어떤 안보리 이사국(미국)의 양심을 건드렸기를 희망한다"며 또 하루의 전쟁은 더 큰 재앙을 낳을 것을 알면서도 휴전 결의안을 거부한 미국의 행동에 다시 한번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라파 군사 공격 철회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집단 처벌 중단을 촉구했다.

미국, 안보리 이어 브라질 G20 회의서도 '고립'
동맹국 호주도 가자 휴전 지지, 이스라엘 비판
국제 외교무대에서 가자 전쟁 문제로 인한 미국의 고립은 유엔 안보리에서뿐이 아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1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가자 위기가 악화하면서 G20에서 고립된 미국'이란 제목의 22일 기사에서 "미국의 즉각적인 가자 휴전 반대는 G20 기간에 반복해서 비판을 받았다"고 전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고립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WP에 따르면,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의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 대한 성토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일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이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세 번째 실패한 것을 거론한 뒤 유엔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손 놓고 있는 상황은 무고한 인명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미국 동맹국인 호주의 케이티 갤러거 재정여성공공서비스 장관도 가자의 즉각적 휴전을 지지하고,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몰린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 공격이 초래할 "추가적 대량파괴"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고했다. 갤러거는 "우리는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 말한다.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날레디 판도르 국제관계협력부 장관은 세계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허용해왔다"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미국과 러시아 위상, 1년 만에 공수 뒤바뀌어
G20 '두 국가 해법' 만장일치…이스라엘 반대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브라질 G20 회의 참석자들 발언을 보면 작년 인도 회의 때완 딴판이라고 봤다. 지난해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규합에 나섰지만, 1년 사이에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수세로 바뀌었다. 1년 전에 블링컨은 유엔 헌장과 주권의 원리를 내세우며 러시아의 점령을 비판했을 때 회원국의 공감을 얻어냈지만, 올해에는 회원국들이 동일한 유엔 헌장과 주권의 원리를 내세워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보호와 수십억 달러의 폭탄 및 군사 장비 제공을 통해 가자 전쟁을 지속시키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위기그룹(ICG)의 다자 문제 전문가인 리처드 고원은 "1년 전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를 수세로 몰아넣었다"며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 사태에서 통제력을 잃는 듯하고 11월 대선에 대한 통제력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G20 외교장관들은 이틀 일정을 모두 마친 22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한 '두 국가 해법'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마우루 비에이라 브라질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두 국가 해법이 분쟁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에 대한 사실상의 만장일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모든 참가자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했다면서 "팔레스타인이 분명한 정치적 전망을 지니고 국가를 건설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에는 평화와 지속가능한 안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가정보국, 유엔 팔 난민기구 10·7 사태 연루
이스라엘의 원 정보 공유 거부로 자체 확인 못해
비에이라 장관에 따르면, 모든 G20 국가가 가자 전쟁과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분쟁에 우려를 표하고, 휴전과 가자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 계획도 비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킴이' 미국의 블링컨 장관은 회의를 마친 뒤 행한 기자회견에서 가자 분쟁 종식이 G20 국가들의 공통 목표임을 확인했다면서도 "전략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 결과를 얻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지난주 펴낸 보고서에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소수 직원이 하마스의 10·7 기습 공격에 가담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이 타당해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원 정보 공유 거부로 자체적으로 확인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는 UNRWA 직원 1천 명 이상이 하마스와 관련돼 있다는 이스라엘의 추가 주장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실이 의심되는 이런 이스라엘의 주장을 구실로 미국과 독일, 일본을 비롯한 주요 기부국들이 재정 지원을 보류함으로써 UNRWA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자지구 즉각 휴전안 미국 거부권 행사로 또 부결
가자지구 사망 3만명 육박
- 수정 2024-02-21 21:02
- 등록 2024-02-21 10:10

워싱턴/이본영 특파원ebon@hani.co.kr
미국, 가자 휴전 반대로 외교적 고립…동맹국도 비판
이스라엘군 또 라파흐 공습…최소 7명 사망
- 수정 2024-02-23 16:15
- 등록 2024-02-23 15:59

미, 국제사법재판소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적극 옹호
가디언 “미국, 국제사회 외톨이 될 것” 비판
- 수정 2024-02-22 15:01
- 등록 2024-02-22 14:56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57년 점령, 국제사법재판소가 따져본다
- 수정 2024-02-20 19:24
- 등록 2024-02-20 13:54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이스라엘 '파괴 공작'에…유엔 팔 난민구호기구 고사 위기
하마스 연계 의혹 부풀리고, 서방은 '장단' 맞춰
3대 공여국 미·독·EU 포함 18개국 지원 중단
"글로벌 노스, 이스라엘 신호를 맹목적 추종"
이스라엘에 집단 학살 방지 'ICJ 명령' 파묻혀
"남겨진 유일한 저항 공간은 가상의 집단기억"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지난 1월 하순 이 기구의 직원 12명이 10·7 하마스 기습 공격에 연계됐다는 의혹을 이스라엘이 제기한 뒤 주요 지원국 25개국 중 상위 1~3위인 미국, 독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18개국이 '즉각' 기부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17일 알자지라에 따르면, 2022년 총예산은 11억 7000만 달러였으며, 미국 3억 4390만 달러, 독일 2억 210만 달러, EU 1억 1420만 달러 순이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의 저자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UNRWA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글로벌 노스'(서구 선진국)"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노스, 이스라엘 신호를 맹목적 추종"
하마스 연계 의혹은 지난 1월 26일 필립 라자리니 UNRWA 집행위원장의 성명을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당시 라자리니 위원장은 그런 의혹에 대한 정보를 이스라엘로부터 받아 자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서방 언론들은 이 의혹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UNRWA의 순수성에 먹칠하면서 급기야 기구의 폐기와 다른 기구로의 관련 업무 대체로까지 여론을 몰아왔다. 그 과정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UNRWA의 하마스 연계 의혹을 증폭시키려고 폭로전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가자 북부의 UNRWA 본부 건물 지하에서 하마스의 지하 터널이 발견됐다며 사진·영상을 공개했고, 이틀 뒤인 13일엔 이스라엘의 메라브 일론 샤하르 주제네바 대사가 취재진에게 이메일 성명을 보내 UNRWA 소속 교사들의 집에 인질들이 억류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제기한 혐의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유엔은 이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해 카트린 콜로나 전 프랑스 외무장관이 이끄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라자리니 위원장은 14일 성명을 통해 "UNRWA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으며 앞으로 두 달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스위스 RSI 인터뷰에서 "향후 조사에서 UNRWA 직원들이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부터 하마스 측과 정치적 유대를 맺는지, 무기 사용이나 터널 제공 등 그간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모두 검토하면서 UNRWA가 이런 일을 어떻게 예방할지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집단 학살 방지 'ICJ 명령' 파묻혀
조사 결과는 지켜보면 되겠지만, 이스라엘이 이 의혹을 미국과 유엔에 넘겨준 시점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에 따라 1월 11~12일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범죄 혐의로 이스라엘이 사상 최초로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 불려 나온 시기와 겹치고 있다. 라자리니 UNRWA 위원장의 '입'을 빌어 관련 의혹을 제기한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제노사이드 방지와 가자 주민의 인도적 상황개선 등 6개 항의 조치를 명령했다. 그러나 ICJ 뉴스는 하마스 연계 의혹 뉴스에 파묻혔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장단을 맞춰주면서 상황은 심리전에 탁월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네타냐후는 궁극적으로 UNRWA 해체를 유도하고 가자 남부의 최종 피란처인 라파에 대한 무자비한 군사작전을 '정당화'하는 데 하마스 연계 의혹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1949년 출범한 UNRWA는 그야말로 팔레스타인 난민에 특화된 유일한 기구다. 가자와 서안,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500만 명을 상대로 교육, 의료 등 필수 서비스 제공과 인도적 구호 활동, 구호시설 운영 등의 일을 해왔다. 가자 전쟁 이후 가자 전역에 154개 피란민 보호시설을 운영 중이다. 고용 직원 수는 1만 3000여 명이다. 현재 가자 주민 최대 200만 명이 UNRWA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 중 UNRWA로부터 머물 곳과 음식,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받는 이들은 100만 명에 이른다. 라자리니 위원장은 이스라엘의 UNRWA 해체 요구에 대해 14일 성명에서 "근시안적 요구다. 지난 20년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정부에 준하는 수준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은 UNRWA 외엔 없다"며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며 UNRWA를 없애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에도 "지금 매우 중요한 순간에 처해 있는 만큼 배를 버릴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75년 맞은 UNRWA, 주민 500만 명에 교육·의료 지원
미국의 진보적 유대 매체인 '주이시 커런츠'는 'UNRWA 해체 작전'이란 13일 자 기사를 통해 "최근 미국 등의 기부 중단은 귀향(歸鄕)이란 팔레스타인 난민의 꿈을 말살하기 위한 꽤 오래된 시도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주이시 커런츠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과정에서 자행한 나크바(대재앙) 당시 고향에서 강제로 내쫓긴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그들의 자손들은 그 이후로 "때론 폭력적, 때론 비폭력적으로" 귀향을 시도해왔다.
이를 막고자 이스라엘은 1950년대 가자를 침공하고 폭격해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부터 2005년 철수 때까지 가자를 점령하고, 2007년부터 가자를 전면 봉쇄해 "하늘 열린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의 의지까지 꺾지는 못했다. 나크바 70주년인 2018년 3월 수만 명의 팔 주민들은 '귀국 대행진' 시위에 나섰고 매주 금요일 가자의 이스라엘 접경에서 행진했다. 이스라엘군의 저격과 드론 공격으로 200명 이상 숨지고 3만 6000명 이상이 부상했지만 1년 넘게 이어졌다.

이스라엘 '파괴 공작' 희생양된 유엔 팔 난민기구
이 과정에서 UNRWA 해체를 위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도'는 집요했다. 이 유엔 기구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향 꿈을 부추기고 폭력을 조장한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주이시 커런츠'의 페테르 베이나르트 선임기자는 "2018년 유출된 이메일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는 이 기구가 '현상을 영구화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UNRWA 파괴'를 시도했음이 드러났다"고 썼다. 당시 미국 내 주류 유대인 단체 대다수가 이를 환영했다. 추후 트럼프 행정부는 UNRWA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취임한 직후 복원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도 2018년 "팔 난민 문제 영구화"를 이유로 UNRWA 해체를 촉구했으며, 최근인 지난 1월 말에도 "UNRWA는 팔레스타인 난민 이슈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재차 비난했다.
베이나르트 선임기자는 "UNRWA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귀향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다"면서 "UNRWA를 없앤다고 팔레스타인인 정체성의 중심인 귀향 열망을 뿌리 뽑진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팔레스타인 학자인 유수프 자바린은 "영토적인 의미에서 팔레스타인 사회는 총체적으로 패배했다. 남겨진 유일한 저항의 공간은 가상의 집단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베이나르트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지도자들의 이율배반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심한 역경을 겪었어도 전 국민의 귀국 열망이 시온주의의 중심이다"라며 이들 유대 지도자가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향 열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극히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연계 의혹 부풀리고, 서방은 '장단'
하마스 연계 의혹을 받은 UNRWA 직원은 12명(9명 해고, 1명 사망, 2명 신원 확인 중)이며 이는 가자 내 UNRWA 고용인력 약 1300명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상황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미국 등 서방국들이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게 현 상황이라는 게 베이나르트의 견해다. 그는 "아직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고 진위 확인이 어렵다. 그런 증거를 봤다는 언론인들이 없다"고 말했다. UNRWA를 없애고 다른 기구로 바꿔야 이스라엘의 안보가 개선되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 "가자에서 활동하는 모든 구호 기구는 UNRWA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인력을 가자 거주자로 충당하기 때문에 대체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안보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네타냐후가 워싱턴 내 그의 동맹 세력과 함께 앞으로 몇 달 안에 UNRWA를 망가뜨리거나 심지어 없애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과 질병, 기아 등으로 죽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구호 기구도 적절하게 UNRWA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라자리니 UNRWA 위원장은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 피란민 보호시설 가운데 150곳 이상에서 피해를 봤고 일부는 완전히 건물이 파괴됐다. 유엔 기구를 대놓고 무시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분쟁 종료 후 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2000만 유로 지원을 약속한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는 13일 의회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세계 어느 나라의 얘기도 경청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인의 말도 듣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은 분노에 눈이 멀었다"고 말했다.
◇ UNRWA 지원금 중단(18개국):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에스토니아, 핀란드, 독일, 유럽연합,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일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루마니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 (알파벳순)
◇ UNRWA 지원 지속(7개국): 벨기에, 아일랜드, 노르웨이,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튀르키예. (알파벳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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