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규탄 '미군 분신'에 침묵하는 바이든
미 공군, 부시넬 사병의 죽음을 단순 자살사건 치부
분신 전 미군의 하마스 공격 참여 사실 폭로하기도
매파 정치인 "반미행동"으로 폄하, 펜타곤 조사 요구
샌더스, "가자참상에 대한 절망의 깊이 대변한 비극"
"역사상 어떤 뉴스 사진도 그 사진 만큼 전 세계에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존 F. 케네디,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승려 틱꽝둑의 분신 사진에 대해)
적어도 61년 전의 미국은 한 인간의 분신에 대해 대통령부터 나서 각별한 주목을 표하는 제스처라도 내보였던 나라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병사의 분신 장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나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지난 25일 워싱턴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정문 앞에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외치며 분신한 미 공군 상병 애런 부시넬(25)의 죽음이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가르고 있다. 그의 뜻을 기려 이스라엘군이 작년 10월 7일부터 가자지구에서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극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그의 분신을 '관심사병'의 자살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미적인 행동"이라는 규탄까지 나왔다.
부시넬은 분신 몇 시간 전 가까운 친구에게 가자지구의 하마스 땅굴 공격에 미군이 참여했다는 1급기밀를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부시넬의 친구는 "그가 24일 '우리(미국)가 땅굴 속에 병력을 두고 있었다.
미군 병사들이 살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포스트는 제보자와 부시넬의 친분을 확인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는 부시넬이 분신을 결심한 결정적인 동기였음을 짐작게 하는 주장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개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즉각 휴전 결의안에 반대하는 한편, 이스라엘에 휴전을 종용하는 제스처를 취해 왔다. 미국인 인질의 안전을 위해 일부 미군 병력을 이스라엘에 파견해 놓은 상태다. 뉴욕포스트도 지적했듯이 이 같은 주장은 확인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1급기밀(top secret)'로 분류된 정보라면 펜타곤이 공개하기 전에는 사실 확인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부시넬의 실제 임무는 첩보자료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가자 분쟁과 관련한 첩보도 포함됐다"면서 "그는 '우리가 현지에 미군 병력을 파견해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분신 직전 "더 이상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는 부시넬의 외침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군복 입은 젊은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각별하게 여긴다. 그러나 부시넬의 분신 이후 주류 사회가 내놓는 반응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적극 두둔해 왔던 바이든 행정부는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데 그쳤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분신 이틀 뒤인 27일 정례브리핑의 끝자락에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가?
어떤 반응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통령도 알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부시넬의 분신은) 분명 끔찍한 비극이며 우리의 마음은 유족과 함께한다"라고 말했다. 장피에르는 "국방부와 워싱턴 경찰국이 조사하고 있는 만큼 앞서가지 않겠다"면서 "그날 일어난 일은 끔찍한 비극이었다"고 되풀이했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도 전날 "분명 비극적인 일이었다"라면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도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부시넬의 분신을 '관심사병'의 단순 자살로 돌리거나 '정치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려는 움직임마저 엿보인다. 데이비드 앨빈 미 공군 참모총장은 28일 브루킹스 연구소 대담에서 "공군 차원에서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라면서 "정치적 항의이건, (정신적) 회복 탄력성의 문제이건 어떠한 자살도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표준 조사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공군 성명은 부시넬의 이름을 적지 않은 채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만 표현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밖에서는 시위대가 "부시넬의 이름을 말하라, 당장 휴전하라"고 촉구했다.
앨빈 총장은 시위대의 항의가 차단된 뒤 부시넬의 죽음을 단순 자살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공군)에선 매년 100명의 자살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이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는 우리가 잃은 공군 병사의 한 명일 뿐이고, 우리는 유족과 해당 부대를 살펴보면서 사건 배후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어떤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지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외친 부시넬의 메시지를 간단히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워싱턴과 뉴욕을 비롯한 미국 내 곳곳에서 가자지구 학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애써 침묵하고 있다.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아칸소)은 오스틴 국방장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부시넬은 극단적이고 반미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서 "이러한 인물이 군 복무를 하도록 허용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코튼 의원은 육군 대위 출신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군인이다. 부시넬은 분신 전 소셜미디어에 생중계한 음성에서 "나는 극단적인 항의 행동에 나서려고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식민주의자들(이스라엘군)의 손에서 주민들이 경험한 것에 비교하면 전혀 극단적이지 않다"고 말했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의 평가는 사뭇 대비됐다. 유대인이기도 한 샌더스 의원은 가자 사태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미국의 지원 물자가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죽이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즘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왔다. 샌더스는 그러나 지난 26일 뉴스위크에 "끔찍한 비극이었다"라면서도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인도주의적 재앙에 대해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절망의 깊이를 웅변했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미국은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하고 있는 게 인도적 재앙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미국이 세계에서 이스라엘 편에 선 몇 안 되는 나라의 하나라는 게 끔찍하다"고 털어놓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시넬은 분신 몇 시간 전 독립언론 매체를 비롯해 언론사에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며(Against genocide)'라는 제목의 글과 자신의 분신 장면 생중계 동영상 링크를 보내면서 "나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군복 모자를 눌러쓴 뒤 군복차림의 온몸을 가연성 액체로 적신 뒤 선 채로 분신, 1분 동안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여러 차례 외친 뒤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대사관을 경비하던 비밀경호(SS) 요원들이 진화에 나섰지만, 살려내지 못했다.
타임스는 부시넬(25)이 공군 입대 전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 베이의 한 기독교 종교단체에서 활동해왔다고 전했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지만, 진보적인 무정부주의 행동가로 변모했다. 무주택 주민 돌봄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빈곤 퇴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말을 주변에 자주 해왔다.
가톨릭교도 고딘디엠 정권의 독재와 불교 탄압에 저항했던 틱꽝둑(20)의 분신은 20세기 인류사에서 정의와 인권에 대한 강한 메시지로 기억된다. 케네디 행정부는 고딘디엠 정부를 뒤집은 쿠데타를 지원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후 베트남전쟁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수만, 수십만의 베트남인들이 화염 속에 숨지게 했다. 케네디 그나마 역사적 명언으로 틱꽝둑의 분신을 기리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바이든의 미국'은 이제 자국 병사가 분신으로 외친 메시지마저 외면하는 국가로 변했다.

"제노사이드 공범 될 수 없다" 미 공군 사병 분신 파문
이 대사관 앞서 '팔레스타인 자유' 외치며 분신, 사망
군복 차림으로 시위 중…미국 행정부의 지지에 항의
미국 곳곳서 추모 집회 '이스라엘 국기' 불태우기도
작년 민간인 분신 이어 두 번째, 커지는 국민적 저항

"우리는 때때로 '내가 노예제도나 짐 크로 시대, 또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살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일 내 나라가 제노사이드를 범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자문한다. 그 답은 지금 당장, 당신이 하는 행동이다." (애런 부시넬 24일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 )
일요일인 지난 25일 오후 1시쯤,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 인화 촉진제를 뒤집어 쓴 한 미 공군 현역 병사가 이렇게 외친 뒤 불을 붙였다. 군복차림의 애런 부시넬(25)은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이날 밤 끝내 사망했다. 앤 스테파네크 미 공군 대변인은 그가 현역 복무 중인 병사임을 확인했다. 26일 역시 현역 공군 소장인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라면서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은 사건 발생 사실을 확인하면서 어떠한 대사관 직원도 다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부시넬은 소셜미디어 트위치(Twich)로 대사관 건물 앞으로 가는 순간부터 분신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는 생방송 중 "나는 더 이상 제노사이드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면서 "팔레스트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쳤다. 그 직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분신했다. 분신 현장에 모인 일부 군중이 이스라엘의 국기를 불태우고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멈추라고 외치고 있다.

트위치는 사건 직후 동영상을 삭제하고 "해당 채널(동영상)이 트위치의 지침을 위반했다"는 글을 대신 올려놓았다. 신문, 공중파 방송, 통신사 등 거의 모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미국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120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253명이 인질로 잡힌 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지금까지 사망자는 3만여 명에 육박한다.
국제사법재판소(IFJ)는 지난 1월 26일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제노사이드를 선동하는 것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군사작전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IFJ의 명령과 국제사회의 비난, 촉구, 호소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즉각 휴전 결의안을 몇 차례 봉쇄한 미국은 여전히 말로는 이스라엘의 자제를 당부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입에 발린 말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지난 16일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겉으로는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하면서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사용할 수백억 원 상당의 MK-82 폭탄과 KMU-572 합동직격탄 각 1000여 발을 보낼 계획이다.
21세기 한복판에 벌어지는 홀로코스트에 국제사회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참극은 뒤에 밝혀졌지만, 유대 국가가 다섯 달 가까이 자행하는 제노사이드는 TV 화면으로, 소셜미디어로, 뉴스 사진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이른바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월 대선 준비에 코가 빠져있다. 상황이 심각해질라치면 한두 마디를 내놓고 다시 딴전을 피운다. 오죽하면 현역 미군 병사가 자신을 불태웠을까.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민주·공화당 지도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단 한 명의 미군 병사도 전장에 보내지 않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맞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합동기지에 근무해 온 부시넬 역시 두 개의 전쟁 어디에도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군복을 입은 채 분신을 한 것은 미군의 일원이라는 것 자체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미 공영라디오(NPR)에 따르면 부시넬은 매사추세츠주 위트먼 출신으로 제531 첩보지원비행대(ISS)에서 사이버 업무를 담당했다. 계급은 기술병과 상병(스페셜리스트). 군 복무와 별도로 샌안토니오 무주택 주민들의 집단 치료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해왔다. 부시넬은 분신 전날 남긴 유서에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이웃집에서 맡아 주라고 당부했다. 페이스북 계정에 남긴 마지막 글에서는 모두에 소개한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분신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친구는 텍사스공영라디오(TPR)에 "실제상황 같지 않았고, 보고 있던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시넬의 죽음 상황을 기록한 비밀경호(SS)부대의 보고서는 무미건조했다. 뉴스위크가 입수해 보도한 SS 보고서는 '이스라엘 대사관 밖에서 정신적 고통의 신호를 보이는 개인과 관련한 신고 전화를 받았다. SS 요원이 관여하기 전에 그 개인은 스스로 미확인 액체로 몸을 적신 뒤 불을 질렀다"고 기술했다. 가자 학살에 항의하는 분신 사건이 미국 내에서 처음 일어난 건 아니다.

작년 12월 2일 정오쯤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몸에 두른 한 흑인 남성이 자기 몸에 불을 질러 병원으로 실려 갔다. AP 통신에 따르면 애틀랜타 경찰은 "시위자의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발표했지만, 후속 발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분신 당시 영사관 건물 앞에서 벌어졌던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그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던 경비원도 다쳤다. 경찰 당국은 테러의 흔적이 없었고, 영사관 직원 누구도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틀랜타 경찰 당국은 사건을 '극단적인 정치적 항의(an extreme act of political protest)'라고 규정했다.
평범한 미국인이 국제 이슈에 대한 정부 정책에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분신까지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자, 더 큰 반발을 예고하는 조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개시된 뒤 미국 내에서는 거의 매일 이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부시넬이 목숨으로 던진 메시지를 미국 사회가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미 현역 군인, 이스라엘 대사관 앞 분신…“팔레스타인에 자유를”
“더는 제노사이드 공범 되지 않겠다”
병원서 치료받았으나 중태
- 수정 2024-02-27 09:15
- 등록 2024-02-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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