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인명 살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7일(현지시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하여 1200명을 살해한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침공해 지난 5일 현재 1만6015명을 살해한 것으로 공식 발표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희생자 수는 가자의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발표한 이 숫자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여 발표하는 보건부의 통계에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린 희생자들은 포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병원과 의료 기반시설도 공격받아 의사와 유엔 및 팔레스타인 담당자들의 사망이 급증하면서, 사망자 확인조차 어려워지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군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
인구 230만명으로 추산되는 가자지구에서 두달 사이에 이렇게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도 놀랍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의 희생 규모이다. 임시 휴전이 시작된 지난달 23일까지 살해된 팔레스타인인 1만4800명 중 어린이가 6천여명, 여성이 4천여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67%에 달했다. 이후 지난 5일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의 70% 정도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지난 10월26일 마지막으로 발표된 팔레스타인 보건부 보고서를 분석한 의료전문지 ‘랜싯’ 논문이 자세한 연령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사망자의 42.8%가 19살 이하의 연령층이었다. 사망자 중 0~4살 아이가 11.5%, 5~9살 11.5%, 10~14살 10.7%, 15~19살 9.1%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특히 0~4살 남자아이 사망 비율은 30~34살 남성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왜 가자지구에서는 이토록 많은 어린이와 여성이 죽임을 당하고 있을까? 팔레스타인인 1만1천여명이 사망했던 지난달 11일 시점에서 10명 이상의 구성원을 잃은 가족이 312가구를 넘을 정도의 ‘가족 몰살’이 왜 대규모로 자행되고 있을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공언한 대로 하마스를 소탕하기 위한 ‘강철검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의의 피해’일까?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요원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적으로 보며 의도적으로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독립 매체인 ‘+972매거진’의 분석 보도는 그 답을 찾을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스라엘방위군은 인공지능(AI) 시스템인 ‘하브소라’(히브리어로 ‘복음’이라는 의미)를 이용하여 공격 목표를 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 인간이 수동으로 하던 작업이 자동으로 순식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대량 살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9년 신설된 이스라엘의 ‘목표물 관리국’은 하브소라를 이용하여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공격 목표를 생산해내고 있다. 과거에는 목표물 50개를 선정하는 데 1년이 걸렸다면 현재는 하루에 새로운 목표물 100개를 생산해낼 수 있어, 이스라엘방위군의 공격 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브소라는 하마스 하급 요원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가정집을 대규모 공격의 목표물로 설정하기도 한다. 장교가 근무하는 부대가 아니라 그의 가정집을 공격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전쟁에 가담하지 않는 민간인들이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 결과 가족이 하마스 요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마스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몰살당한다. 하브소라는 인간과는 달리 세심한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하마스와는 상관없는 가족들을 공격하도록 유도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마스 요원이 회합을 했거나 지나가기만 했더라도 그 장소가 공격 목표가 될 수도 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가자의 모든 곳이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방위군이 인공지능을 장착한 ‘킬링머신’이 된 배경에는 민간인 피해를 의도하는 이스라엘 독트린이 있다. ‘다히야 독트린’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비교되지 않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민간 시설과 정부 기반시설을 공격해서 민간인들이 하마스에서 이반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민간인을 게릴라에서 분리하는 것은 오래된 반게릴라 작전이지만, 다히야 독트린은 민간인을 분리해서 전략촌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이 살고 있는 거주 지역 등을 대규모로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방위군은 공격 목표를 전술 목표물, 지하 목표물, ‘파워 목표물’, 민간 목표물 4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파워 목표물은 하마스의 군사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큰 충격을 줄 시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공격에서는 대형 건물과 정부 시설, 사원 등 파워 목표물을 집중 타격하고 있다. 또한 민간 거주지도 무차별로 타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기자의 가족이 사는 집을 폭격하여 그 가족 21명을 몰살하기도 했다.
올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이스라엘 정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대응을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네타냐후 총리가 나서서 ‘하마스 박멸’을 선언했다. 이러한 방침을 반영하여 10월9일 이스라엘 국방부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는 “방점은 파괴에 찍혀 있지, 정확성에 있지 않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다히야 독트린을 개발한 가디 아이젠코트 전 합참의장은 네타냐후 내각의 일원이다. 그보다도 더 위험할 정도의 극우적 인사들을 포함한 현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따라 이스라엘방위군은 민간인 살상에 매우 ‘관대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민간 시설을 공격하더라도 사전에 경고를 발신해 민간인들이 피신할 시간을 주었다면 이제는 사전 경고 없이 민간 시설과 거주 지역을 공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월25일에는 가자시티에 있는 12층 아파트를 사전 경고 없이 폭격하여 주민 120여명이 붕괴된 아파트 잔해에 깔려 압사당했다. 심지어는 난민 캠프마저도 공격하여 국제앰네스티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현재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대량 살상은 하브소라라는 인공지능과, 다히야 독트린, 현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방위군을 지원하고 키워온 미국과 서유럽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972매거진’에 실린유발 아브라함의 기사에 많이 의존했음을 밝힌다. 원문에는 가자지구의 피해 상황 사진 여러장이 있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1단계 난민사태→2단계 이집트로 몰아내기’ 유엔·아랍권 비난에도 이 곳곳서 이주 찬성 목소리
가자 지구 남부 접경의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설탕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하마스 박멸을 명분 삼아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에서 축출하려는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카타르 도하에서 도하포럼에서 아랍 국가 및 유엔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로 피난한 주민들을 다시 공격하면서 사실상 이들을 국경 밖으로 사실상 밀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은 “우리가 지금 가자지구에서 보는 것은 단순히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생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다.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비우려는 조직적인 노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파괴의 범위는 하마스를 박멸하려 한다는 이스라엘의 목표가 거짓임을 드러낸다면서, 이는 “대량학살의 법적인 정의”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필리페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 대표 역시 이 자리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어디에 머물거나 다른 곳으로 재이주하는지 상관없이 이집트로 옮기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자지구 북부의 광범위한 파괴와 그로 인한 난민사태는 “그러한 시나리오의 첫 단계”이고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서 민간인들을 이집트 국경 인근으로 몰아내는 것은 다음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2의 ‘나크바’로 부르는 이런 계획이 계속되면, 가자지구는 더 이상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유엔 및 미국 등 회원국들은 가자 주민들을 가자 밖으로 강제로 옮기는데 단호히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무력으로 합병하며 그 땅에 살던 76만명을 축출했다. 이 사태는 아랍어로 ‘재앙’이란 뜻의 나크바로 불리는데, 이번 가자전쟁이 제2의 나크바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로 옮기는 이스라엘의 계획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첩보부는 전쟁 발발 닷새만인 지난 10월13일 가자 주민들의 시나이 반도 강제 이주를 제안한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첩보부는 당시 가장 유력한 대책으로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 공격을 통해 북부 주민의 남부 이주→이스라엘방위군의 북부에서부터 남부로 진군.점령으로 주민들을 시나이 반도로 밀어내기→주민들의 귀환 금지를 제안했다.
이스라엘 각료와 의원들도 가자지구에서 주민을 이주시키는 방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길라 감리엘 첩보부 장관은 지난 11월에 전쟁 뒤 “한 대안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 밖으로 자발적 재이주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 다농 의원과 람 벤바라크 전 유엔 대사도 지난 11월13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유럽은 분쟁을 피하려는 난민을 돕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며, 이를 예로 삼아서 세계의 국가들은 재이주를 원하는 가자 주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전 관리들도 최근 언론과 회견에서 이집트는 국제원조를 받아 시나이 사막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거대한 천막 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미국은 가자 밖으로 주민을 쫓아내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 의견 자체가 이스라엘이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황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카타르에서 가자 남부 상황에 대해 “공중질서가 곧 완전히 파괴되고, 전염병과 이집트로의 대량 이주 압력이 늘어나 더 악화된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정의길 선임기자Egil@hani.co.kr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팔레스타인 주거지를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는 극단주의적 성향의 유대인 정착민에게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11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대상으로 제재를 내리는 동시에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극단주의 (이스라엘) 정착민에게도 제재를 부과하는 안을 논의하고 회원국에 (제재안 채택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외교장관회의에서 각국 외교수장들은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촉발된 전쟁에 대한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이날 보렐 대표는 이스라엘 정부가 최근 팔레스타인 주거지인 동예루살렘에 약 1700채에 달하는 주택을 세우기로 한 정착촌 확대 계획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이를 국제법상 불법으로 간주한다”라고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성명도 준비 중이다. 국제적인 관심이 하마스의 공격, 그에 뒤따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한 폭력이 늘어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보렐 대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외교장관들이 주장하는 하마스에 대한 특별 제재 프로그램을 회원국에 제안할 것이라면서 동시에 유럽연합이 폭력을 휘두르는 극단주의 정착민에 대해서도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이 취하려는 조처는 지난 5일 미 국무부가 극단주의 유대인 정착민에게 부과하기로 한 비자 발급 금지 제재와 맞닿아 있다.
10월 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뒤 유대인 정착민이 서안 지구 남부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고 농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올리브를 훔치는 등의 공격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스라엘 당국 역시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공격 행위를 막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유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민의 공격은 이번 전쟁이 시작된 뒤 배로 늘었다.
유럽연합이 이런 폭력 행위에 가담한 정착민의 명단을 작성하고 난 뒤 보렐 대표는 이들을 인권 침해 혐의로 제재하자고 제안할 예정이다. 유럽연합 국가 여행 금지 조처 및 역내 자산 동결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프랑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는 이미 자체적으로 비슷한 취지의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해당 조처가 효과적이려면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운 솅겐 조약 적용 지역 전체에서 해당 제재가 도입돼야 한다.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이스라엘과 굳건한 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들 때문에 이런 제재안이 모든 회원국의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대인 정착촌은 수십 년 간 계속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가장 논쟁적 사안이다. 이들 정착촌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승리해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 가자 지구 등을 점령한 뒤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점령 중이지만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다. 점령지 내 정착촌 확대는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이스라엘은 꾸준히 이를 확대해왔다. 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런 정착촌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최근까지도 계속 정착촌을 늘려가고 있다. 서안 지구 안 유대인 정착촌은 200개 이상, 정착민은 60만명에 달한다.노지원 기자zone@hani.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