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4시, 제주의 동쪽 끝 제주시 구좌읍 종달항 선착장에 20여명의 종달리 해녀들을 태운 어선이 들어왔다. 남편과 친지들이 해녀들이 채취한 성게를 담은 포대와 물질 도구를 배에서 끌어 올렸다. 해녀들의 바구니에는 해삼이나 오분자기도 보였다. 해녀들은 이날 오전 10시 배를 타고 앞바다에 나가 오후 3시30분께까지 성게를 채취했다.
어선에서 내린 해녀들은 잠수복을 입은 채 다시 무거운 포대를 둘러매고 성게 작업을 하러 자리를 옮겼다. 성게를 까서 노란 성게알을 일일이 용기에 넣은 뒤 수협 등에 넘긴다. 제주바다를 텃밭으로 평생 살아온 해녀들의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다.
1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종달항에서 성게를 채취한 해녀들이 성게를 짊어지고 옮기고 있다. 허호준 기자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이것만(해녀 물질) 평생 행 먹엉 살아신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주게.”
기자가 배에서 올려준 물건을 같이 나르다 해녀 한순덕(65)씨에게 “원전 오염수가 걱정되느냐”고 묻자 곧바로 “걱정되주 안 되쿠과? 하루종일 입에 물 물엉 살암신디”(걱정되지 안 되겠어요? 온종일 물질하면서 바닷물을 입에 물고 살고 있는데)라며 이렇게 답했다.
한씨와 남편 함명의(67)씨가 선착장 앞에 자리를 잡아 채취한 성게를 풀어놓고 일일이 까고 있었다. ‘아우, 지쳐~’하면서 잠수복을 입은 채 털썩 바닥에 앉은 한씨는 “내가 아는 사람도 소금 40포를 사더니 다음날은 20포를 더 사는 걸 봤다. 소금 사재기를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며 소금 사재기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씨가 “(오염수 해양방류를 어민과 시민사회가) 막아보려고 하지만 대통령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남편 함씨가 덧붙였다. “말 듣겠어? 1년이 넘도록 (야당) 대표도 한 번 만나지 않았는데”라며 “정치가 경허는거우꽈?(그렇게 하는 겁니까)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선착장 곳곳에서는 성게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 앞에서 한 해녀가 우뭇가사리를 말리면서 오정개 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제주도를 둘러싼 환해장성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구멍이 숭숭 뚫린 바닷가 빌레(너럭바위)에는 수국, 노란색의 산괴불주머니, 하얀색 돌가시나무, 나팔꽃 비슷한 갯메꽃이 서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해안도로변 어촌계마다 해녀들이 타고 다니는 삼륜오토바이와 스쿠터, 트럭들이 주차돼 있고, 주황색의 테왁들이 걸려있어 이채로웠다.
온평리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남자 보앙 온평리에 결혼 안 허고, 바당 보앙 결혼한다.” 그만큼 온평리 바다가 좋아서 해녀들이 바다를 보고 시집온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물살이 세서 품질 좋은 미역이 자라는 바다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26일 해안도로변에 있는 온평리어촌계에서 성게 작업을 하던 해녀 현복실(65)씨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열 받아 죽어지커라. 그추룩 먹엉 좋댄허민 무사 반대허여. 진짜로 일본이 방류하면 성게고 뭐고 데모허래 가사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어촌계에 걸려있는 해녀들의 물질도구인 테왁들. 허호준 기자
현씨는 해녀들이 모이면 ‘원전 오염수’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옆에서 부지런히 성게를 까던 동료 해녀(70)는 “물질을 직업으로 사는 우리 해녀들한테서 좋은 소리가 나오겠느냐. 큰일이다”고 했다. 이 해녀는 “바다에 방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성게를 까던 현씨는 “우리나라에서는 ‘괜찮다’, ‘먹어도 된다’는 식으로만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염수를) 먹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물질을 하기 시작해 50여년이 됐다. “초등학교 4~6학년 때는 미역을 채취하는 날은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보냈다. 미역 채취를 도우라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온평리에는 ‘학교바당’이 있었다. 1950년 온평초등학교가 불에 타자 해녀들이 온평리 바다 양쪽 경계를 학교바다로 정해 공동으로 미역을 채취하고 팔아 교실을 지었다. 지금도 학교에는 이를 기리는 ‘해녀공로비’가 있다. 현씨의 어머니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역사가 있는 바다에서 살아온 해녀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현씨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 당할 수만은 없지 않으냐”고 해다. 또 다른 해녀도 “물질을 해서 해산물을 판다고 해도 우리 자식들한테 가고, 여러 사람이 먹게 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온평초등학교에 세워진 ‘해녀공로비’. 해녀들의 학교 건설에 쏟은 노력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허호준 기자
성산일출봉 바로 앞 오정개 해안에서 만난 고숙자(78)씨는 물질 경력 62년째의 현역 해녀다. 오정개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엔 일본 쓰시마가 보인다. 오정개 옆으로 일출봉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주황색 감귤 모양의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고씨는 “먹고살 것이 물질밖에 없는데 오염수를 방류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까지 72년을 물질한 은퇴해녀 오옥추(90)씨는 옆에서 가만히 오정개 해안을 바라보다가 고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던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 잔물결이 이는 귀덕2리어촌계 인근 정자에 전·현직 해녀 두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현역 해녀 김조자(87)씨는 “평생 바다에서 먹고 살았는데,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라며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그 얘기뿐”이라고 했다. 이곳에서도 한창 성게 채취를 하고 있었다.
“보리가 상글상글할 때 성게가 잘 먹고 요마. 사름 곹으면 솔쪄.”(보리가 익어갈 무렵 성게도 잘 먹어서 내용물이 꽉 차. 사람 같으면 살쪄)
옆에 있던 은퇴 해녀 고순화(90)씨가 이렇게 말하며 “그런 때 해녀들이 작업하는 거야”라고 했다.
“우리는 육상보다도 해상을 크게 믿고 살았지. 바다를 가꾸면서 오늘까지 살다 보니 이런 일(오염수 방류)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평생을 바다에서 산 입장에서는 모두 반대해.”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어촌계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린 성게에서 성게알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씨는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섬에서 무엇을 해먹고 사나. 바다를 믿고 살지.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 어민과 해녀들이 데모하는 거다”라고 했다.
“나는 늙어서 오염수 방류 반대하는 데모에 동참하라고 하면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노인일자리 나가서 한달 동안 번 27만원 가운데 7만원은 (데모하는 사람들한테) 희사하겠어.”
애월에서 한림으로 가는 해안도로에는 짙은 보랏빛 송엽국이 몽글몽글한 돌담 사이에 비집고 꽃을 피워 뜨거운 햇살 아래 정열을 뿜어냈고, 그 옆의 갯무꽃은 소박했다. 한 해녀는 물질한 뒤 자가용에 물질 도구를 싣는 모습도 보였다.
한림읍 수원리어촌계에서 만난 해녀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성게 작업을 하면서도 오염수 이야기가 나오자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영국 교수님이 그 말씀 하던데 그 가족들 먹이라고 헙서. 조류라는 건 온 나라를 다 돌아댕기는 거 아니우꽈. 그 교수님신디 몇 년간 먹으랜 해봅서. 우리 해녀들은 바닷물을 하루에도 몇번씩 먹읍니다.” 어촌계장 해녀 양영삼(75)씨가 말하자 현경옥(82)씨가 말을 이었다.
“아이고, 참말로. 우선은 대통령한테 먹으랜 헙서. 원원. 파도가 칠 때는 우린 괄락괄락 먹어집니다.”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해녀들이 배에 실은 비양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를 뭍으로 옮기고 있다. 허호준 기자
성게알을 하얀 용기에 담던 김영옥(80)씨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아니라도 바다가 오염돼서 백바당이 됐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오염됐는데, 후쿠시마 오염수까지 방류하면 되겠냐”며 “바다에만 오면 화가 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찾은 한림읍 옹포리 해녀들은 비양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를 배로 실어왔다. 그 시간 남편들은 전날 밤에 빗방물이 내려 포구에 널었던 우뭇가사리를 거둬들였다가 다시 널어 말린 뒤 30㎏씩 대형 포대에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장아무개(73)씨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어도 무슨 소용이 있나. 국민이나 어민들이 걱정하는 심경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잖아”라고 말했다. 박아무개(75)씨는 해녀들이 채취한 우뭇가사리를 옮기다 말고 “불쌍한 우리는 외쳐봐야 소용없어. 언제나 일본사람들한테 당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제주시 도두동 어민들이 해상시위에 나선 데 이어, 지난 13일에는 어민과 해녀 등 1천여명이 일본총영사관이 있는 제주시 노형로터리 부근에서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평생을 물질로 먹고 살아온 해녀들의 본능적 불안은 위정자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겹쳐 정부와 전문가의 어떤 ‘과학적’ 설명으로도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일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기자말]
▲ 노점상의 시름 성산포 위판장 한 켠에서 노점상을 하는 고숙자(83) 씨는 핵오염수 바다 투기로 평생직장을 어떻게 유지할지 걱정이다.
취재는 13일 새벽 6시에 시작됐다. 해 뜨기 전까지 근해에서 고기를 잡은 어선이 속속 들어오고 경매가 이루어지는, 일출봉 아래 성산포 위판장. 그 시각 그곳에 가서 핵오염수 투기에 관한 어민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연안어업인중앙연합회가 오염수 방류 저지에 앞장서온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를 고발한 건도 의아했다.
어선에서 생선을 받아 주민과 관광객에게 파는 노점상은 어업 종사자 중에서도 가장 영세한 축에 든다. 그러나 위판장 한 켠에서 노점상을 하는 고숙자(83)씨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럴 만큼 판매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균렬 교수 고발 뉴스는 본 적이 없다면서도 고발 이유를 알려주자 분개하다가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우리가 먹고사는 바당(바다)에 오염수를 버린다니! 우리도 고기도 다 죽게 생겼네. 이래 봬도 이걸로 자식 교육 다 시켰어요. 직장 그만둔 딸한테 이 좌판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제주도민이 '일치단결'하는 이유
▲ 차량시위 발대식 농어민들이 성산포 부두에서 트랙터 등 차량 50여대가 집결한 가운데 범도민대회 차량시위 발대식을 하고 있다.
제주의 집회와 시위는 육지와 너무나 달랐다. '초짜기자' 때부터 수많은 집회와 시위를 취재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제주 범도민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이날 오전 10시 성산포에서 발대식을 열고 출발한 차량시위부터 오후 4시 제주시 일본총영사관 맞은 편 노형오거리에서 끝난 본대회까지 지켜본 소감이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자 인근 지역에서 트랙터와 트럭 등 차량 50여 대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바다를 지키려는 대회에 해녀연합회, 어촌계장협의회, 수산업중도매인연합회 같은 어업인 단체뿐 아니라 전국농민회, 유기농협회, 임업후계자협회, 한라봉연합회의 제주 지부와 지회 등 50여개 단체가 차량에 현수막을 걸고 나타난 이유가 뭐지? 발대식 진행자도 전국농민회제주도연맹 채호진 사무처장이었다. 대회가 끝난 뒤 채 처장에게 전화했다.
"제주는 어업과 농업 종사자가 구분이 안 되는 뎁니다. 어민도 밀감밭 한 뙈기쯤은 가진 이가 많고요. 해녀는 바당일을 하다가 밭일도 해야 합니다. 예전부터 그래야 살아남는 곳이었으니까요. 수협도 어민 없으면 어떻게 존재합니까? 경찰도 굉장히 호의적이에요. 다들 농어민가족이니까요. 시위대를 함부로 못 대하죠. 뉘 집 아들딸인지 금방 소문 나는데…"
수협은 대정부 관계를 고려해 참여단체 명단에는 빠졌지만 지역 수협들이 버스를 대줬다. 경찰은 동서 두 방향 차량시위대가 성산포에서 일주동로, 안덕계곡에서 일주서로를 따라 제주시 노형오거리로 집결하는 전 구간을 에스코트해줬다.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채증반이 나와 있었지만 시위대를 촬영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괸당문화'와 '수눌음'의 집회 동력
▲ 핵오염수 저지 대회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범도민대회가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가운데 푸른 색 유리창 건물이 일본총영사관이다.
제주도의 이런 풍토는 일단 '괸당문화'로 설명된다. 혈연과 지연으로 뭉친 섬 지역 특유의 정서인데, 몽골과 고려 등 외세의 침략, 4.3학살 등을 겪으면서 그런 도민의식은 더 굳어졌다.
'삼촌'이라는 호칭도 그렇다. 제주4.3을 처음 부각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읽기 전에는, 나도 그랬지만,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아는 이가 많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잘 아는 사람인데 자신보다 나이가 꽤 더 들었으면 남녀 구분없이 붙이는 통칭이다.
'수눌음'은 '품앗이'를 뜻하는 제주어인데, 육지에는 그런 전통이 거의 사라졌지만 제주에는 강하게 남아있다. 바당일이나 농사일이 바쁠 때는 물론이고 장례 같은 큰일을 치를 때도 서로 '수눌음'을 주고받는다.
제주민이 자기 이해관계가 직접 걸리지 않은 사회현안에도 동조시위에 나서는 이유다. '섬의 섬'인 가파도 등에서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차량시위대가 중도에 조천읍 등 큰 동네를 지날 때 차량들이 가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집회 시작 30분 전 도의회 기자실에서 국민의힘 도의원 12명이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반대' 의사를 밝힌 것도 그런 제주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노형오거리는 제주시에서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있는 가장 활기찬 거리일 뿐 아니라 일본총영사관까지 있어 이번 집회장소로는 최적지다. 총영사관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집결한 농수축산업 종사자는 저마다 '저지! 핵오염수 해양투기, 사수! 국민생명권' 같은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어올리며 목청을 높였다.
제주 범도민대회는 결의문에서 "일본 내부에서조차 신뢰를 받지 못하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안정성이 타국에서 신뢰받는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면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핵오염수에 대한 공포와 불안, 우려를 괴담에 기인한다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포장하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결의문은 또 "(핵오염수가) 정말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면 자국 내에서 처리하면 되지 왜 먼바다로 흘려보내려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포기하고 자국 내에 보관하라"고 촉구했다.
결의문은 이어 "윤석열 정부는 해양투기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하고, 오영훈 도정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강력히 항의하고 민관협력을 통해 해양투기 반대행동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일본과 싸우는 장수 등에 칼 꽂는 행위"
원자로 설계 경력이 많은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바이든이 오염수 해양 방류에 오케이 했기 때문에 기시다가 버린다"며 "바이든한테 탄원 편지를 보내는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해양 투기를 합리화하는 데 동원되는 과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오염수 투기를 우려하며 동분서주하는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를 고발했는데, 이는 일본과 전쟁하는 장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평생을 바당에서 일한 해녀'라고만 밝힌 한 집회 참가자는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제주지사 시절 한 발언을 뒤집은 것에 분노했다. 당시 원 지사는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이미 일본과 미국의 입김이 워낙 센 기구여서 (거기서) 안전하다고 그랬지만 상대방 주장을 넙죽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며 "단 한 방울의 오염수 방류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 국회에서 "개인 견해에 변함이 없지만 정부의 의사결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빠져나갔다.
일본총영사관, 문 잠그고 항의문 안 받아
▲ 집회 대표단이 일본총영사관에 항의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문이 잠겨 있어 외벽에 항의문을 붙였다.
범도민대회는 집회참가자들이 대형 욱일기를 찢고 해녀가 물질할 때 바다 위에 띄워 놓는 테왁을 불태우는 '상징 행사'로 마무리됐다. 대회가 끝난 뒤 주최쪽이 일본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을 일본총영사관에 전달하려 했으나 거부됐다. 총영사관을 경비하던 경찰이 대표단에게 길을 열어줬지만 영사관 출입문이 잠겨 있어 밑으로 밀어 넣고 외벽에 항의문을 붙이는 것으로 끝났다.
노형오거리 범도민대회 참가자수는 경찰이 800여명으로 추산했지만, 집회군중 맨 앞뒤를 오가며 직접 추산한 바로는 1000명이 넘어 보였다. 성산포와 안덕계곡의 발대식장에만 나왔다가 생업으로 바로 복귀한 인원 등을 합하면 연인원은 1500명으로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
제주에는 죽고사는 생계의 문제... 소금 수요 급증
제주도민들이 상당한 응집력을 보인 건데, 이는 제주도 특유의 집회문화뿐 아니라 도민 대부분의 생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성산포수협의 강대종 활어유통과 직원은 "거의 모든 걸 바다에 걸고 있는 제주 경제에서 중요한 건 수산물에 관한 불신"이라며 "이걸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횟집이 '바가지'를 씌우는 등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지만 안 그래도 관광객이 줄어드는 판국에 핵오염수 바다 투기가 제주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불신'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횟집뿐 아니라 제주 해안가에 줄줄이 들어서 있는 양식장들도 바닷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신에 따른 소비위축이 예상된다.
회는 최악의 경우 안 먹으면 되지만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식품이다. 성산포수협에 따르면, 12일부터 천일염 20kg 한 포 값을 2만4000원에서 2만8000원으로 올렸는데도 수요가 급증해 물량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사재기 현상까지 가세하면서 산지에서 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해 출하를 꺼린다는 것이다.
제주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 등도 대부분 젓갈로 만들어지는데 소금 값 급등은 수많은 염장식품의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얼핏 바다 오염과 상관없을 듯한 감귤과 흑돼지 등 제주의 농축산물도 수산물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타격을 입게 돼있다.
정부가 핵오염수 투기 방조에 따른 제주도민의 저항을 가볍게 여겼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육지 사람에게는 단순한 '먹거리 문제'일 수 있지만 섬 사람에게는 죽고사는 '생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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