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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윤 대통령, 외교부 ‘협상 전략’ 뭉개고 보수원로 ‘경고’도 뿌리쳐

by 무궁화9719 2023. 3. 8.

윤 대통령, 외교부 ‘협상 전략’ 뭉개고 보수원로 ‘경고’도 뿌리쳐

등록 :2023-03-07 21:30수정 :2023-03-08 10:01

이제훈 기자

‘일 정부 사과·피고기업 배상 참여’
외교부 버텼지만 윤 3·1절 기념사로 꺾어
“대통령께서 정말 세게 밀어붙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사과와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가 없는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셀프 배상안’ 발표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밀어붙이기가 결정적 작용을 했다는 정황이 여러군데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사안의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물론, 전직 보수 외교 원로들도 한-일 관계의 민감성과 역사성 등을 고려해 ‘속도 조절’을 권유했으나 윤 대통령은 ‘나 홀로 직진’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일본 외무성과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에 관한 공식 협상 시작 때부터 △일본 정부의 사과 △일본 가해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참여를 최저 요구선으로 삼았다. 외교부는 최악의 경우에도 둘 중 하나는 관철해야 한다는 협상 방침을 막바지까지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 6일 정부가 최종적으로 발표한 ‘제3자 변제안’(일본 기업이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변제)에는 두가지가 모두 빠졌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대통령께서 정말 세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11월24일 일본 도쿄에서 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의 사과와 배상 참여’를 타진했으나 일본 쪽은 거부했다. “현안 조속 해결”에 공감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캄보디아 프놈펜 정상회담(11월13일) 직후였다.
 
외교부는 협상안을 바꾸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공론화한 나흘 뒤인 지난 1월16일 도쿄 한-일 국장급 협의 직후에도 “사과와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필요하며, 그래야 (한국 정부가 해법을) 발표할 수 있다”고 일본 쪽에 말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그 뒤 외교부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압박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쪽으로 대일 협상안을 후퇴·조정했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본 기업이 (피해자 배상) 기금에 참여하지 않으면 협상을 깰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한-일 관계 전문가가 <한겨레>에 전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저항은 “일본은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는 윤 대통령의 3·1절 경축사로 무력화됐다.
 
윤 대통령의 선택은 보수 성향의 외교 원로들의 조언과도 달랐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이를 포함한 보수 원로들은 “일본 정부 사과와 피고 기업 배상 참여를 협상의 최저선으로 삼아야 한다. 서둘지 말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경고했다고 한다. 한 전직 외교부 장관은 “서두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위안부’ 합의 때보다 심한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정부 쪽에 지속적으로 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발표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대일 협상안의 기본 구상을 제안했던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마저 우려한 ‘제3자 변제안’을 윤 대통령의 의지로 밀어붙인 것이다. 앞서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도 지난달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외교라는 건 시점을 정해놓고 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 방일에 맞추려 서둘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제3자 변제안’ 발표 당일인 지난 6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외교와 안보, 국방, 이 모든 정책의 책임은 대통령인 내게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관계에 깊이 관여해온 외교안보 분야 원로는 “윤석열 정부가 6일 발표로 일본에 꽃놀이패를 쥐여준 꼴”이라고 말했다.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윤 정부 ‘백기 투항’, 강제동원 피해자 30년 투쟁 무참히 짓밟아

등록 :2023-03-08 05:00수정 :2023-03-08 10:17

길윤형 기자

뉴스분석 강제동원 배상안 굴욕적인 이유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4년 반 동안 이어졌던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지난 6일 윤석열 정부의 ‘백기 투항’으로 마무리됐다. 일본으로부터 지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정당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겠다는 한국 시민사회의 치열했던 전후 보상 투쟁 역시 ‘거대한 실패’로 마무리될 위기에 놓였다. 1965년 한-일 협정, 2015년 말 ‘위안부’ 합의에 이어 한-일 역사 갈등을 정의롭게 해결하려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3차 봉인’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해방 뒤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지난 식민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려 13년8개월에 걸친 처절한 협상을 이어갔다. 그 결과는 1965년 6월22일 도쿄에서 정식 서명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2조에 담겼다. 한-일은 “1910년 8월22일(병합조약)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을사조약 등)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965년 12월18일 이동원 외무장관(왼쪽 넷째)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오른쪽 셋째)이 정부청사 장관실에서 한-일 협정 발효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고 있다. 협정 체결은 이에 앞서 1965년 6월22일 도쿄의 일본 총리관저에서 이뤄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조약이)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구절을 ‘병합조약 등은 처음부터 불법·무효’였다고 해석한 데 견줘, 일본은 ‘이미’란 부사어를 통해 ‘원래는 합법·유효했지만, 일본의 항복과 한국의 건국으로 1965년 현재 무효가 됐다’고 해석했다. 해결이 불가능한 역사 문제를 미봉한 고육책이었다. 그 대가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받아들여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게 되는 경제 개발의 틀을 잡았다.
 
두번째 봉인은 2015년 12월 이뤄졌다. 1차 봉인의 두꺼운 벽을 깨뜨린 것은 1991년 8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처음 밝힌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외로운 외침이었다.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올바른 사죄를 받아내는 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됐다.
 
하지만 한-일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한 1차 봉인의 벽은 높고 두꺼웠다. 일본 정부는 1995년 7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여성기금)을 만들었지만, ‘65년 체제’를 이유로 “정부 예산은 투입할 수 없다”고 버텼다. 한국 사회는 위안부 문제가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도의적 책임’만을 인정한 ‘여성기금’을 거부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치열한 법적 투쟁 끝에 2011년 8월 일본 정부와 교섭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결정을 손에 넣게 된다.
 
2015년 12월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각자 발언하는 형식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이후 한·일 두 나라는 4년에 걸친 살벌한 외교 협상 끝에 2015년 말 ‘12·28 합의’에 도달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그동안 인정해온 ‘도의적 책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선언했고, 10억엔(약 108억원)의 정부 예산을 기금에 출연했다. 한국은 그 대가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문구를 삼켜야 했다. 이 합의는 한국 입장에선 아쉽기 짝이 없는 타협이었지만,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합의가 공개된 뒤 일본의 극우 인사 사쿠라이 요시코는 “너무나 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석열 정부는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최소한의 ‘이익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30여년에 걸친 투쟁의 성과인 대법 판결을 스스로 폄훼했다. 6일 브리핑에 나선 대통령실 당국자는 이 판결에 대해 “국제법적으로 그리고 65년도 한·일 양국 정부의 약속에 비추어 보면, 일본은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당국자가 공식 브리핑에서 대법 판결을 옹호하는 대신 일본의 입장을 두둔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7~9월 민관위원회의 결론이었던 일본 기업들의 ‘사과’와 ‘배상 참여’라는 목표를 실현하려는 외교부 실무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법 판결의 취지를 허무는 안이하고 굴욕적인 길을 택했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7일 <산케이신문>에 “일본의 완승이다.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택한 3차 봉인의 어이없는 귀결이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일본 시민사회도 우려…“강제동원 피해자 요구, 아무 반영 안 돼”

등록 :2023-03-08 08:05수정 :2023-03-08 09:24

김소연 기자

야노 국장 “피고 기업 책임 져야”
니시노 교수 “일본 정부도 구체 역할 밝혀야”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대폭 양보하는 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일본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한국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는 피해자가 원했던 내용이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소송을 지원한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서는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노 국장은 “첫 번째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도 ‘안보와 경제’를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하면서 일본과의 합의를 서두르고 말았다. 이게 제일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 피고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노 국장은 “피고 기업은 한국 민사소송의 당사자로 확정판결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계속 ‘남의 일’처럼 행동하는 것은 명백한 ‘컨플라이언스’(기업이 법과 명령을 준수해 경영하는 것)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6월에 (피고 기업의) 주주총회가 있다”면서 “그에 맞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 참여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도 어제 ‘민간기업의 자발적 기부활동 등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피고 기업이 자금을 출연하라고 촉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정치학·현대한국연구센터장)
 
“일본 정부의 추가적인 호응이 없으면, 한국 정부의 해결책이 지속 가능할 수 없게 된다.
 
”6일 한국 정부의 양보안에 우려의 뜻을 밝히기는 일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정치학·현대한국연구센터장)는 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일본 피고 기업의 사과와 배상 참여가 빠지면서 한국에선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이 강하다”며 “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시노 교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일본 국회와 기자들 앞에서 과거 담화 계승을 표명한 것도 아쉬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국민, 나아가 국제사회에 역사 인식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도 가능하면 문구를 다시 상기시키면서, 자민당뿐만 아니라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한) 민주당의 간 나오토 총리 담화까지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니시노 교수는 “새로운 한-일 관계가 한국에 유의미하다는 것을 두 정상이 보여주지 못하면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됐을 때 이 문제(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는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도광산 등 한-일 사이에는 다양한 현안이 있다. 너무 무리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신뢰 관계를 회복하면서 차분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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