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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변제' 후폭풍… 日은 빠지고 우리끼리 다툼만 남았다

by 무궁화9719 2023. 3. 8.

'제3자 변제' 후폭풍… 日은 빠지고 우리끼리 다툼만 남았다

정승임입력 2023. 3. 7. 18:32

정부 '공탁' 강행 시 피해자 측 법적 대응 예고
승소 피해자 증가 시엔 우리 기업 부담 가중

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등 참석자들이 레드카드를 들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한편으로 국내 분쟁의 불씨도 남겼다. 일부 피해자들이 재단을 통한 배상금 수령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피해자와 재단 간 송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또 다른 갈등 요인이다. 2018년 최종 승소한 피해자 15명 외에 계류 중인 소송에서도 승소하면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정부 방침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수백억 원이 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 과정에서 빠지면서 국내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7일 국회에서 1,532개 단체와 개인 9,632명이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2023년 3월 6일은 '제2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는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도 참석했다.

정부 ‘일방 공탁’하면 피해자 측 법적절차 돌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주 할머니. 뉴스1
 
재단은 우선 배상금 수령 의사를 밝힌 유족들을 접촉해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2018년 판결에 따라 이들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해 갖는 채권은 소멸된다. 다만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승소 피해자 15명 중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를 포함해 원고의 절반 이상이 제3자 변제 방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승소 피해자가 끝까지 판결금을 수락하지 않으면 공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들의 판결금을 법원에 맡겨 채무변제 효과를 보겠다는 뜻이다. 이에 피해자 측 임재성 변호사는 "재단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 공탁을 하면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재단이 전범기업으로부터 채무를 인수했다는 증거가 되는 채무인수계약서 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우리 대법원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전범기업이 채무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추가 승소할 때마다 韓 기업이 부담 떠안아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전날 "재단은 현재 계류 중인 소송도 원고 승소 확정 시 판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관련 소송은 70건에 육박하고 유족을 포함한 원고만 1,139명이다. 앞서 확정된 판결 3건의 위자료가 1인당 1억~1억5,0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의 부담액은 최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기부금을 낼 기업으론 포스코를 비롯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본 KT&G,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 등 16곳이 꼽힌다. 그러나 이들이 재단에 기부금을 낼 법적 의무는 물론, 정부가 이들에게 갹출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정부가 '민간의 자발적 기여'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강압으로 기업이 미르재단 등에 기부금을 내 홍역을 치른 최순실 사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부금 출연에 적극 검토 의사를 밝힌 건 포스코 정도다. 이마저도 2014년 재단 출범 당시 출연하기로 한 100억 원 중 아직 내지 않은 40억 원을 내겠다는 의미다. 2016년 정부가 청구권 수혜 기업에 재단 출연 검토를 요구했을 당시 상당수 기업들은 배임 가능성 등을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박근혜 정부는 ‘강제동원 재판거래’, 윤 정부는 피해자 승소 무력화

등록 :2023-03-07 15:17수정 :2023-03-07 22:26

신민정 기자

일 기업 배상 강제집행 심리 대법원에 의견서
위자료 판결 취지 몰각한 ‘제 3자 배상’ 강행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기업에 청구한 배상금을 국내기업 돈으로 지급한다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피해자들이 어렵게 받아낸 승소 판결을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방해해 재판을 장기화시켰는데, 윤석열 정부는 10년 만에 받아낸 대법원 승소 판결의 취지를 무력화한 셈이다. 일본기업으로부터 배상도, 사과도 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 상황에 놓였다.
 
현재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법정 다툼은 한국에서만 햇수로 13년이 걸렸다. 1997년 일본법원에 소송을 냈던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03년 패소 확정판결을 받자 2005년 한국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1·2심은 “일본 판결의 효력이 한국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이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위자료청구권까지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취지에 따라 2013년 7월 “일본제철은 피해자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라”며 처음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일본제철이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공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러나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대법원의 재상고심 판결은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로 예상을 뛰어넘어 장기화했다. 한·일 관계 경색을 우려한 박근혜 정부는 판결을 미루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요구했고, 양승태 사법부는 당시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이에 호응한 정황이 당시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드러난 것이다. 대법원이 2012년 판단한 취지대로 파기환송심이 판결했음에도, 재상고심 결론이 나오는데 5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 2018년 10월에야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심리불속행 기각(4개월 안에 본안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기대했던 고령의 피해자들은 결국 승소 판결이 확정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일 제시한 ‘제3자 변제안’은 이런 진통 끝에 확정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무시한 방안이다. 불법행위를 한 일본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을 대신해 손해배상액을 지급하고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킨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2018년 패소판결 확정 뒤에도 손해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기업을 상대로 국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강제집행 과정을 진행 중인데, 정부는 이 사안을 심리 중인 대법원에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 피해자 쪽으로부터 “재판개입”이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사실상 사건 처리를 지연해 달라는 요청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정부 발표 뒤 “왜 윤석열 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해주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정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느냐”며 비판 성명을 냈다. 강제동원 사건을 대리하는 김정희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부의 이번 결정은 대법원 판결에 반한다. 법률의 최종적 해석 권한은 사법부에 있는데, 정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를 몰각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판결금) 공탁이 이뤄진다면 무효를 다툴 계획”이라고 밝혔다.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모금 당사자 전경련도 당황···안갯속 '미래청년기금'

입력 2023.03.07 18:00

일본 언론에만 언급된 기금
일본 측에선 배상문제 해결 뒤 공식화할 전망
결과에 따라 백지화 가능성도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미래청년기금(가칭)은 일본 측에서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유일하게 참여할 수단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한일 양국 정부 관계자 누구도 기금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배상 문제가 마무리되면 일본 측에서 공식화하며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7일 재계 관계자와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전날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으로 배상금 변제 카드를 꺼내면서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고 기업 등은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일본 민간 기업의 자발적 기여는 막지 않기로 해 간접적 배상 창구를 열어뒀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미래청년기금'이라 부르며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또 일부 일본 언론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검토를 제안했다"고도 했다.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관계 개선을 위해 청소년 장학금 사업을 벌이기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게이단렌에는 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도 회원사로 가입돼 있어 자연스럽게 회비나 기여금을 내는 형식으로 우회 참여가 가능하다.

 

전경련도 일본 측이 확보한 기금 액수에 맞춰 회원사인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모금을 할 수도 있다. 일본 교토통신은 "일본 기업이 피고 기업의 배상금을 대신 부담하는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사실상 용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경련조차 검토 못한 미래청년기금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최종안을 발표한 6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관계자가 출입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이 기금이 실제 어떻게 운영될지 구체적 밑그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조차 전날 정부 입장을 발표하며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양국 경제계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전경련 실무진조차 기금 조성 검토 사실이 알려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정부 발표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정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음을 인정했다.

 

전경련은 6일 오후 늦게서야 입장문을 내며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 간 합의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 방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금과 관련해서는 "기금에 관한 논의를 포함해 모든 방안을 제로(0) 베이스에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기금이 현실화되려면 정부의 말처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요미우리신문도 "배상 문제가 정리돼야 피고 기업이 가입한 게이단렌이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사업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측에서 '숙제'를 먼저 하지 않으면 기금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전경련 기금 모금에 나선다고 해도 쉽지만은 않다.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회원사가 아니어서 모금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어렵고 현 김병준 대행 체제에선 회원사 간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의 시작이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이었기에 전경련 입장에선 또 다른 기금 조성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재계의 큰 형님 역할을 회복하려면 4대 그룹이 합류할 수 있는 당위성을 만들어 설득해야 하고 국민적 지지도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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