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무법자 죠스, 천안함 침몰사건(2006~2010년)
천안함 사고원인 풀리지 않는 의문 1/2





2010년 3월 26일(국방부 해군시계 2006년 5월 30일) 오후 21시 12분 백령도 남서쪽 4km 해상에서의 초계함 조난구조 SOS 신호가 발생하였다. 최초의 SOS 전파 수신자는 대청도 해양경찰(통신기지 레이더망) 및 해병대 TOD 감시초소(심야광원의 육안관측) 이었으며, 즉각적인 비상연락망 조직을 구축한후 야전군 작전사령부 측에 21시 15분 조난경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RTLS(Real Time Location System) 위치데이타 분석결과는 PCC-772 천안함 이었으며, 1987년 대한조선공사 에서 건조된후 1989년 부터 실전배치된 1,220t 소형 프리깃함 이었다. 기본제원의 길이는 88.3m, 폭 10m 이었으나 생산노후화 개량사업에 참여하면서 부터는 전면부에 심한파도를 가를 수 있는 14.5m 아연도금판 특수부품을 결합했으며, 백령도 150km(75km) 왕복운행 능력을 더욱 향상시킨 한국해군 초계함 이었다. 그렇지만 업그레이드 버젼의 105mm 자동포와 수백발 탄약적재 문제로 무게중심이 너무 앞쪽으로만 치우친 탓에 10~15노트 미만의 저속순항시 갚판에 물이차는 등 팬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NLL 북방한계선을 자주 넘어야 했으므로 천안함 승무원은 해군특수부대(UDT)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아주 위험한 군사작전에 투입될 야전부대를 코만도 부대라고 하며, 전투초계함 승무원은 국가유공자 신분증을 꼭 소지해야 하는 등 예고된 작전반경에 SOS 조난신호가 관측되었던 것이다. 천안함은 탄약물자보급 운반업무를 맡고 있어서 북괴의 반잠수정 표적이 되었으며, 매회 다른통로의 항해일지를 작성하면서 적출현 회피기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3월 26일 늦은저녁 식사를 마친후 레크레이션 단체행사를 진행하던중 원인을 알 수 없는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천안함이 반파 되었으며, 미약한 통신주파수를 통해서 SOS 무선수신 신호를 보내왔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6~7개월 전부터 천안함은 아무런 무선응답이 없었던 터라 해군작전사령부 에서는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일 만에 그것도 음성전화가 아닌 무선 모르스부호 조난구조 SOS 신호였기 때문이며, 버뮤타 삼각지대의 미스테리 사건처럼 유령선 이라고만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해병대 관측초소 에서의 TOD 실제화면이 전송되고 대청도 해양경찰의 조난자 탐지허가 연락이 오면서 부터는 기세역전의 생존자 구출희망이 생겼다고 한다. 여러가지 모의실험 결과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북괴 반잠수정 어뢰공격에 의한 한방의 폭침설이 제일 보편화된 정설 이었다고 한다. 과거로 부터 잠수함 공격에 의한 어뢰피격침몰 사건은 다양했으며, 워낙 공포스러운 전투초계함 임무여서 언론으로 확대된후 국민불안감이 조성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천안함 실종사건을 계속해서 감춰왔던 것이다. 대청도 군경합동조사단 무선주파수 청취내용은 이렇다. 3분여 SOS 조난신호와 함께 '치익~ 천안함 배에 물이 스며든다', '치익~ 천안함 생존인원 4/5 이며" , "치익~ 실종인원은 20%' 이라는 긴급한 음성메세지를 보내면서 '치익~ 심야중 백령남동 애기곳(홍합여)에 걸렸고', '치익~ 북괴 중어뢰(버블제트) 3발중 1발이 도착(진행중)', '한참동안 떠내려오다 불발탄(무장공비) 50명 있음' 이라고 수신 받았다. 그러자 해군작전사령부 에서는 '실종 아니면 납치' 이라고 했으며, '빨리말해 참모회의단 에서 듣는다', 수백명 장교들이 한곳에 모여서 1~2분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천안함은 뭔가를 감추고 있는듯 싶었으며, '해안경찰 고속정(특수부대) 보내십시오' 이라고 했으나 '안됩니다, 빨리 공작수색대(HID 특수임무수행협회 북파공작원) 보냅니다' 이라고 하였다. '몇일만 기다려도 되겠는가?' 해군작전사령부 에서는 조난구조 신호를 거부하는듯 보였다. 천안함 에서는 '좋습니다. 인원집결시 포상금작전(실탄격전)이 있을...', '(수신이 잠시 멈춘후 2발의 폭발음) 꽝꽝~' 이라고 답변 하였다.





서해바다 백령도 지역은 너울성(4~5미터) 심한파도가 발생하는 곳이라서 해양경찰 고속정 같은 소형선박이 출항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야간수색작전 및 군함이동은 불보듯 뻔한 모의작전중 실패라는 참모의견이 종합처리 되었다. 그리고 백령남동 해안초소에 방공 33진지 까지의 레이더 정찰위치 보고에 의해서 각자의 군용쌍안경 및 대구경 천체망원경에 좌표를 입력한후 천안함 조난장소와 전파송출지 목표위치를 살펴보았다. 정말로 놀라운 결과로써 6~7개월 동안 실종되었던 천안함이 자체적인 공기주입형 부력으로 절반쯤 선미앞쪽이 떠올라 있었다. 잠시후 북괴 중어뢰 공격일까? 50m 물기둥이 소쿠쳐 오르면서 천안함 앞쪽이 튕겨져 나가면서 선체는 두동강 났으며, 10여명 미만의 탈출장병이 고무보트를 타고서 대피하는 것이었다. 해군작전사령부 참모회의단 에서는 '어떻게 된것인가?' 무선으로 물어보자 해군장교 1~2명이 말하길 '군함의 구조는 최첨단 격실구조로 밀폐되며, 불완전한 어뢰폭발로 인한 해군장병의 파편인원이 발생되었다' 이라고 설명하였다. 잠시 침묵이 오가면서 누구의 책임인지 따져묻더니 당장 구출해 오라는 참모회의단 상관명령이 있었으며, 너울성 파랑이 심한 악천후 속에서도 수십대 고속정 및 한국잠수함 편대는 심야중 사건발생 위치에 보내졌다. 백령도 남서지역 주변의 해군해병대 관련자 들이 그랬으며, 민간어선 금양호 까지의 천안함 폭침위치에 긴급히 파병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천안함 침몰사건의 발생위치는 굵은 봄비와 함께 계속해서 너울성 파도가 생기는 바람에 고속정이 떠있기 조차 어려웠으며, 소형잠수함은 시야확보 문제로 심야작전을 수행하기 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물론 북괴 어뢰공격에 의한 검은색 염류희색제 탓이었고 몇시간 몇일이 지날때 까지도 SOS 구조신호 위치를 탐색했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질 못했다고 한다. 각가지 추리추측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일반화된 피격방법은 적군의 어뢰공격후 와이어로프 방식으로 수심이 깊은 곳까지 북괴의 반잠수함이 천안함을 어디론가 끌고갔다는 내용이었다. 일명 죠스-헌팅(또는 고스트-파티, 할로윈) 이라는 게릴라 전술 이었으며, 최신예 군함침몰시 공기부양력 장치에 의해서 천안함은 바닥층에 닿지않고서 몇미터 정도 떠있다가 강제로 끌려가서 천안함이 납치 되었다는 말이 일치하였다. 물론 천안함 생존인원 대다수는 UDT 해군특수부대(북파공작원) 훈련을 받으므로 야전식량 만으로 몇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보충설명을 하였다.
또한 국제분쟁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군사경쟁력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2010년 3월(2006년 5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러시아 핵잠수함 1대가 50km/h 의 빠른 속력으로 백령도 남서쪽 해상을 통과하고 있었으며, 일본자위대 대잠헬기 1대의 핵잠수함 추격전 으로서 공해상 분쟁조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2005~2011년 일본대지진 사태 및 해일공포 쓰나미 사건의 자연재해 테러와 관련되어 있으며, 종교파시즘 적군파 좌익세력이 러시아 신흥공화국 부대로 진출하는 등 항시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의 쓰시마섬 공해영역을 러시아 핵잠수함이 통과하지 못하게 했으며, 핵심 군사무기를 수출입 시키려면 서해를 통과하는 경로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대잠헬기와 위성추적 시스템을 도입한후 러시아 핵잠수함의 이동경로를 항시 추적하고 있었으며, 파괴력이 우수한 버블제드 중어뢰를 장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서해5도 백령도 부근으로 통과할때 한국 천안함, 러시아 핵잠수함, 일본 대잠헬기의 3파전 양상이 진행되었고 미사일유도탄 초계함의 한국 속초함 까지 투입되어서 영해침범의 교전이 일반화 된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여파로 국제우호 관계를 유지하던 한국과 일본은 공해상 무기반출을 시도하려는 러시아 핵잠수함을 경계한 내용이며, 고기잡이 뜰채처럼 일본 대잠헬기가 러시아 핵잠수함을 백령도 남서쪽 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국 속초함 으로 몰아넣고 있던 것이다. 별도의 대함어뢰는 갖추질 않았으나 레이더상 포착되기만 하여도 영해침범을 주장할 수 있으므로 러시아 핵잠수함 이동경로에 함정단속을 펼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제적 언어교류의 착오일까? 백령도 6km 에 근접할때 일본 대잠헬기가 중어뢰 1발을 발사하였고 이를 피하던 러시아 핵잠수함은 백령도 대청도 중간해협의 회피통로를 선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필이면 천안함의 사고발생 위치에 접근했으며, 북괴 반잠수정 여러척도 러시아 핵잠수함을 돕기 위해서 NLL 북방한계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러한 군사분쟁은 시뮬레이션 전자전 이라는 레이더 표적조사 이며, 러시아 핵잠수함이 원전터빈을 정지하고서 중어뢰를 회피한후 다시 원전터빈을 가동하려면 핵연료봉 교체작업의 약 6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백령도-대청도 사이의 한국영해 에서 한-일-러-북 4개국의 어쩔 수 없는 군사충돌이 예상되면서 부터는 비정규전 군사경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북괴 반잠수정 및 게릴라 대원들이 천안함을 납치점령 한후 한국해군을 협박해서 러시아 핵잠수함의 이동경로와 존재비밀을 지켜낼 수 있으며, 일본의 끈질긴 대잠헬기 추적으로서 단 1발로 비밀전투를 끝낼 수 있는 수중타격 중어뢰를 동원한 것이다. 그래서 서해5도 지역의 백령도-대청도 해병대 해안초소 에서는 물밖으로 나오는 모든 물체는 적군의 잠수함 종류로써 TOD 열상감시카메라를 가동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대잠헬기는 대청도 임시착륙장에 4개월 정도를 대기하면서 러시아 핵잠수함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며, 약 1~2발의 중어뢰 대잠미사일 무기를 발사했던 것이다. 물론 중어뢰 속력이 45km/h 정도이므로 핵잠수함을 맞추진 못한다. 그런데 일본의 중어뢰 불발탄을 북괴 반잠수정 에서 회수한후 무기실험차 천안함에 공격했다면 정말로 심각한 군사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천안함은 선박이상 징후로 SOS 조난신호를 보내왔으며, 한국영해에 잠복하고 있던 북괴 반잠수정이 일제 중어뢰 불발탄을 회수해 놓았다가 천안함에 버블제트 공격을 감행한 것이 틀림없다. CIA 군사위성 정찰에서는 대기권 밖의 우주에서도 이러한 군사무기류 도발행위를 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연한 군사력 경쟁으로서 한국측 초계함이 중어뢰 공격을 당한 것이며, 지진파 발생원인의 초강력 무기는 위치추적 알르바이(군사경쟁국 영해침입)와 단순한 무기정보의 배틀존(백령도 주변의 군사분쟁지역) 뿐이다. 천안함이 저절로 항해이동중 침몰했거나 정비불량 부주의로 단순폭침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군 초계함 PCC-772, 천안함은 심야퇴로 작전중 바닷물이 줄어드는 썰물에 의해서 애기곳(홍합여)에 충돌한 직후 1차 침몰했으며, 중량이 무거운 충돌부위의 바닥쪽 엔진기관실 에서 물을 빼는데만 6~7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자체적인 노력으로 침몰된 함정에 공기주입(자동 오존발생기, 반자동 컴프레샤)을 성공시키자 잠시 수면에 떠오르면서 SOS 조난신호를 보냈던 것이었다. 천안함은 3분여 무선신호(모르스부호)와 함께 자신들을 구출해줄 해양경찰 구조선을 기다렸으며, 적군의 반잠수정 여러척이 NLL 북방한계선을 넘어서 어뢰공격을 감행한후 천안함 연료보관실 디젤-글리세린 폭발로써 선체중심이 반파되었고 위기일발형 2차 침몰한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북괴적군의 스텔스 반잠수정 공격법은 게릴라 수직어뢰탄 으로서 항해항로 위치에 아군의 초계함이 지나갈때 90도 수직으로 잠항자세를 기울여서 대형선박류 중심에 있는 연료탱크를 맞추는 타켓목표물(다트헌팅) 이었다. 이때 어뢰탄두에 철갑류 표심케이스를 덧입혀서 군함의 밑바닥을 잘 관통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어뢰장약은 TNT 50~150kg 정도의 미사일 압축화약류 이다. 2차대전 당시의 일본잠수함 사보타지 공격술 에서도 비슷한 대함어뢰관 방법이 있었으며, 버블제트 이라는 뜻은 어뢰타격시 공기방울 처럼 산화될 수 있다는 것으로서 강력한 수직어뢰를 맞춰야 한다는 일본어 합성용어 이다. 백령도 해병대 TOD 열상감시카메라 목표촬영 내용이 그러하며, 대청도 해안경비선 작전인원 및 꽃게잡이 어선의 목격진술 에서도 심한 악천후 날씨 탓에 천안함이 몇달에 걸쳐서 2번이나 연속침몰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야실종자 수색작전 팀원들의 육안관측 정보에서도 50m 물기둥이 발생된 버블제트를 직접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난구조 신호발생지 백령도 남동쪽 한곳만을 계속해서 맴돌면서 천안함을 찾는데도 그림자 흔적조차 없는 귀신 숨박꼭질 놀이처럼 3~4년 동안이나 시간을 허비 시켰다고 한다. 몇가지 정황근거를 들어서 정보부 특수요원의 통신자료 감청까지 시도했으나 천안함의 조난위치는 오리무중 알수 없었고 수중 50m 에서 전송되는 충격적인 영상통화 기록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해군장병의 무선통화 내용 중에는 천안함 안에서 울부짓는 소리와 몇발의 총격소리, 영상통화를 하던중 포로심문을 당하고 공격받는 장면이 여러번 있었다는 것이다. 해군 함대사령부 공기부력탈출 명령이 있었으나 NLL 북방한계선 수면에서의 북괴 반잠수정 수직어뢰 공격을 받고서 천안함은 불과 몇십분 만에 두동강 난채 침몰된 것이며, 50m 심해에서 북괴 반잠수정 및 50여명 무장공비를 연속으로 침투시켜서 2006년 5월 부터 2009년 4월 까지 '천안함 납치사건(언론방송은 2010년 3월말)'이 발생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10년 3월 26일(국방부 해군시계 2006년 5월 30일) 21시22분. 해군작전사령부 SOS 무전수신 보고와 해병대 해안초소 TOD 열상감시카메라 에서의 버블제트 물기둥이 포착된후 불과 10여분 만에 천안함 실종처리를 정식으로 접수한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안함 특별승무원(전방탐사 조사단) 및 작전상 항해경로(반잠수정 도발공격위치)에 있다고 한다. 서해5도 백령도는 민간여객선 운항의 도서관광객이 자주 몰려드는 탓에 좀처럼 해병대 해안경비(어뢰발사관)와 적방어 기뢰설치(고속정순찰)를 하는 일이 적었으며, 사건발생 당일에도 서해5도 관광객의 천안함 승선체험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천안함 승무원 중에서도 상당수의 예비역 퇴역군인이 있었으며, 초계함 승선교육에 투입된 1/2 절반은 정치관료급 민간인이 여러명 있었다고 한다. 눈치빠른 몇명의 특수부대원 출신을 제외하곤 천안함이 1차 충돌(2005년 12월초)할때 탈출하지 못하고 수중 50m 에 갖혀있어야 했으며, 잠수함 처럼 호스튜브 연결관을 수면으로 내보낸후 공기교체를 시켰다는 것이다. 2000년 초반의 서해5도 에서는 한국전쟁 무명참전용사 ROTC 회원들이 백령도 투어타운을 찾으면서 인천으로 다시 귀항할 때에는 천안함 승무원 교육의 밀리터리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천안함 좌초발생 당일에 M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으로 갑판에서의 소동(배멀미)이 있었으며, 비밀촬영분 녹화를 진행하면서 관광객중 3~4명이 기뢰실 투척해치(안전봉 신호불량)를 파손시키는 바람에 천안함 후면내부에 물이차고 서행중 표류하다가 백령도 남동쪽 4km 애기곳(홍합여)에 충돌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안함 내부의 구명보트 8~10개 분량으로 대다수 민간인을 대피탈출 시켰으나 해군출신의 관광객 몇명은 승무원 들과 선박방수 작업을 하다가 백령도 남동쪽을 맴돌다 서서히 수중 50m 에 침몰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천안함 침몰사건의 주요원인 으로는 불법적인 방송제작분 승선체험후 1차 스크래치 좌초침몰(2005년 12월)의 책임회피식 방수작업 부주의 였으며, 천안함 선장의 군용무선보고 노출로써 북괴 반잠수정이 NLL 북방한계선을 넘은후 수직어뢰 공격의 2차 버블제트 폭발침몰(2006년 5월) 이었다고 한다. 2010년(국방부 해군시계 2006년) 백령도-대청도 에서의 백령도 도서관광객 실제목격자(정보부 실제조사) 및 천안함 항해일지의 정황근거(군용무선보고) 사실이 그렇하다는 것이다.



해군 함대사령부 내부명령 판결에서는 천안함이 1차 좌초된후 전투초계함(천안함) 작전임무 책임을 물어서 컴프레샤 공기주입후 스스로 떠오를 때까지 별도의 구조작전이 실시되지 않았으며, 미리 보관된 야전식량 및 긴급조달품 으로만 500~1000일 정도의 천안함 수중감옥화 강제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 U보트 디젤잠수함 승무원 들도 해안상륙작전시 임무실패와 비밀정보를 이유로 2~4주 정도의 유령선 심해감옥 명령이 자주 있었으며, 한국해군 천안함 침몰사건 때에도 약 1~3년여 정도를 스스로 갖쳐있는 해군수치심 영창명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천안함 선장의 명령불종복(야전식량조달 문제와 자체조난신호) 이유로 6~7개월 만에 컴프레샤 공기주입형 부양기적을 만들어 냈으나 북괴의 버블제트 어뢰공격에 의해서 다시 침몰한 것이라고 한다. 해군 함대사령부 에서는 백령도 남동쪽 부근의 적잠수함 출현사실이 있으므로 대형 군사작전시 어뢰에 피격을 당하거나 해군의 전투력이 손실될 정도로 긴급지원용 예산낭비를 초래하므로 자체해결식 위치이동 또는 고정대기를 명령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적군의 게릴라 공격전술에 걸려들고 말았으며, 반잠수정 모의작전계획(영해에 포함되질 않는 수중전투작전) 문제로 천안함 납치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SSU 해난구조대 팀원들은 백령도 남동쪽 에서의 천안함 좌초위치를 파악한후 해병대 단독임무작전 민간인 조난구조대를 보냈으며, 천안함이 레이더상 표적에서 사라진지 6~7개월 만에 다시 침몰하는 등 백령도 남쪽해안에 항시 IBS 고무보트 구명선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0~15일 마다 한번씩 고무보트 구명선이 나타났으며, 15명 정도의 민간인 탑승인원은 반쯤 흥분된 표정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치질 않는 대인기피증 현상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해병대 특수작전부대 에서는 천안함이 두번이나 침몰했으니 북괴의 반잠수정 공격이 있을테고 조난신호의 좌초위치와 수중탐색 으로서 하루빨리 천안함 승무원을 구출해야 한다는 수색작전설이 있었다. 그렇지만 해병대 기본장비는 IBS 고무보트와 해안경비대 순찰선 뿐이며, 외국군 특수부대 처럼 수중 50m 에 진입할 잠수함을 보유하질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연합사 전시작전통제권 보고로써 미해군 Navy Seals 요원들이 침몰된 천안함에 투입되기도 했으나 워낙 완강한 적군점령 방호력 때문에 작전수행중 실패하는 특수요원 몇명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천안함 승무원이 56명 정도이며, 나머지 부분승무원 49명은 천안함 체험행사의 안보관광객 이었다고 한다. 그당시 천안함 침몰납치선 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적군의 반잠수정을 타고서 수중 50m 에서 석방 되었다고 하며, '무슨일 있었습니까?' 물어보자 중년의 남성 1명이 대표하듯 말하길 'O까이 보다 났네' 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손에는 붉은색 여성속옷이 한개씩 들려져 있었는데 북괴 무장공비의 자금조 공갈협박을 받은 민간인 들은 희망의 낱알 이라는 환각희연 퍼포먼스를 연출했던 것이다. 전방의 무장공비 활동이 그러하듯이 친인척 연락으로 포로석방금 수천만원을 지급한후 겨우 풀려나는 도서관광객 민간인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은밀한 포로행위에 있어서 자금조달 문제는 특별한 석방행사 이며, 천안함 침몰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관련되면서 신체정신적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천안함 선장의 최OO 중령이 최선을 다해서 통신보고형 구출의사를 표현했어도 해군의 함대사령부 명령조치에 의해서 끝까지 배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국민이 고통받고 희생당할 문제에서는 전시관련 포로보상법 에서의 돈만 지급한후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안함 앞쪽의 선체는 도무지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공기부력과 해류이동에 의해서 백령도 남서쪽에 동떨어져 있었으며, 초계함 승선안내와 항해항로 판단미숙의 엉뚱한짓 때문에 초대형 블록버스터 스케일의 군사대작전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해군작전사령부 측의 '천안함 수중감옥' 요구로써 민간인을 제외한 현역 해군장병 구출작전은 더이상 진행되질 않았다. 천안함 전체 승무원은 약 100명 이었으며, 장교와 민간용병은 선초부근에 그리고 부사관과 의무장병은 후미쪽에 머물렀다고 한다. 특히 선박침몰 원인의 신경전 다툼으로서 선초부근의 인원들은 해군 잠수함 와이어로프 도움으로 백령도 남서쪽 50km 까지의 수중이동을 했다고 한다. 북괴의 무장공비는 NLL 북방한계선 부근의 백령도 남동쪽 으로 접근하는데 게릴라전 후방침투 경로가 그곳에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부사관과 의무장병 으로만 구성된 후미쪽 인원들은 전투경험이 부족하므로 무장공비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블로그 작성자는 특전사 707 특임대 출신으로서 직업군인 8~15년차 재징집 의무병역을 한번더 했는데 근무당시 부대가 정보사 특작부대(2공수여단)와 가까웠다. 그래서 행보관 상사의 호출로 사무실에 불려가서 '서해 북방한계선 수중작전에 참가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자주받곤 했었다. 육군3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서울대고대 ROTC 사관후보생 직업군인이 끝났으니 조금있으면 참전무명용사 마감의 병장제대 퇴역군인이 될텐데 말년까지는 몸사리고 기다렸다가 건강히 제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행보관은 뒷말이 있다는듯 귀찮게 하면서 '얼마전 UDT 상사 1명이 수중침투조 작전요원에 선발된후 특수임무에 보내졌다, 어떻게 되겠는가?' 이라고 질문을 하였다.
북괴의 게릴라 부대는 소형공작선 스텔스 반잠수정 여러대로 백령도 연안지대 및 공해상 전투함정에 잠입하는 일이 빈번하며, 한번 점령된 군사시설은 '비축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연속점거 당한다'고 말했다. 언론뉴스에 공개된 UDT 공작대원의 한OO 준위는 2008년 한미연합사 작전인원에 선발된후 수중탐색 지원자로 착출되었고 한번 실패한 군사작전은 동일한 작전내용 및 동일한 작전부대원을 계속해서 투입시키는 것이다. 대전차 지뢰를 제거하고 적군탱크의 진입로를 차단해야될 특수요원 임무랄까? 2009년 실제작전에 투입될때 UDT 공작대원은 몇명이나 희생 되었는지 질문해 보니 특수요원 10~11명 이라고 답변 받았고 언론뉴스의 1명은 그중에서 선임에 해당되는 파트장 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특수부대 용병징집제 에서는 성명계급, 지위역활, 훈련과정, 보상금액 까지도 비밀작전화 요원이며, 순번제 제비뽑기를 통해서 선발대를 보내는데 천안함 구출작전 에서는 베테랑 직업군인 150여명이 해저심해작전 50m의 수중전투를 경험했다고 한다. 상사계열 행보관 에게는 해군작전사령부 참모회의를 통해서만 전문요원화 작전인원에 선발되므로 너무 나서면 안된다는 보충설명(다이하드)을 하였다.


2008년 9월 퇴역군인 전역마감자 신분으로 특수전 교육지원 부대에서 대기하던중 뜻밖의 무장공비 총기테러와 적의심 좌익사범 으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2006~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되면서 부터는 적군의 게릴라 부대원 들이 스쿠버다이빙 심해잠수 면허를 보유한 전문요원을 찾아내서 미리 제거하려는 테러리즘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특수부대 용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트로이드제 체력증강용 약물을 주입하고서 반최면 의식통제 교육을 하는 터미네이터 인간병기 이며, 전신방탄복을 입고서 수십시간 동안의 특수임무수행 작전에 투입되므로 특수전 훈련부대의 예상인원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블로그 작성자는 월남전-이라크전 후속파병의 미해병대 그린베레(기갑항공대) 용병출신 으로서 눈치빠른 감각으로서 단순위기형 도발사태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교육지원 부대의 헌병수사대 도움으로 45구경 권총1정과 실탄 250발로 무장한채 적군파(일본유학생) 테러리스트 50명과 격전했으며, 교육지원 부대의 대원들은 야삽자루를 들고서 테러리즘 사자기방어를 도왔던 것이다. 그때 상급부대의 긴급연락을 받은 행보관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천안함 실종사건에 보내질 수중침투조 파병인원이 다수 있어서 테러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투복에 방탄복 만을 착용한채 2시간 동안의 실제총격전 수행하였고 5분대기조 및 기무대 보안형사 응원으로서 테러리스트 40명을 제압하고 10명을 검거하였다. 소형버스를 타고온 일본게릴라 적군파 대원들이 AR-12 자동소총 및 조립식 35mm 박격포로 천안함 구출작전에 보내질 특수전 전문요원을 공격한 것이었다. 장검을 들고와서 공격하는 사무라이와 극소마취제 샘플을 투입하려는 여자닌자도 있었으며, 그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겨우 위기일발 사태를 벗어나고 말았다. 퇴역대기자 말년병장 혼자서 게릴라 50명과 총격전 했다는 자체가 대단히 용기있는 행동이며, 사자기방어 영웅칭호를 들으면서 특전사 유료급여를 후원받았던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 하는 일이라곤 점호, 작업, 일과, 청소, 작업, 근무, 일과, 청소, 점호, 근무 이라서 하루 8시간 잠자는 시간과 2시간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14시간 사역근무를 하는 정말로 지긋지긋한 내무생활 이었으나 말년병장 시절에 특수임무수행 으로서 본전은 찾고서 제대하는듯 싶었다. 남들은 21개월 의무병역 인데 블로그 작성자는 사관후보생 8~15년차 직업군인 출신으로서 기본 26개월 및 연장 6개월의 기술행정병(총기수리) 유료복무를 경험했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점차 소요되는듯 싶었지만 수중납치후 석방된 민간인 및 해군장교의 증언으로는 곧 밀입국 해적들의 군사대작전이 있을거라고 하였다.
2009년 11월 정보사령부 특작부대(삼청교육대) 에서의 특수전 공수훈련(기초체력, 무기사용법, 사격측정법, 안보사상교육) 12~14주 교육을 이수받고서 천안함 실종납치사건 장소에 보내졌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약 200명 정도의 특수부대원 들은 20여대 IBS 고무보트를 나눠타고서 잠수전 호흡훈련을 지도받고 있었다. 1번조 UDT 해상부사관(민간용병) 팀, 2번조 Navy Seals(UDU 해군첩보부대) 팀, 3번조 SEAL 공정교육부대(특전부사관) 팀, 4번조 SSU 해난구조대(해병부사관) 팀 등 4가지 타입으로 나눠졌는데 해외유학 시절에 미해군 특수부대에 복무한 경험이 있어서 블로그 작성자는 2번조 UDU 팀에 선발되었다. 2009년 11월 3일 오전 5시, 수온이 5도 미만이라서 두꺼운 가죽잠수복 및 방탄외피를 입었으며, MP5 기관단총(진압작전용) 1정, MP7 기관권총(수중작전용) 1정, 45구경 전투권총(근접전투용) 1정, K-5 제식권총(작전지휘용) 1정, 레밍턴 산탄총(출입파쇄용) 1정, 수류탄 2발, 섬광탄 1발, 각가지 특수탄약 15탄창 분을 지급받았다. 대략으로 25kg 특수전 총기무장의 전체무게 90~100kg 으로서 심해작전에 투입 되었으며, 수중안내선을 쫒아서 밑으로 계속 내려가니 2분만에 50m 해저바닥에 도착하였다. 좌측에는 천안함 후미선체가 있었고 우측에는 반잠수정 4대가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다. 우측으로 좀더 가까이 접근해 보니 아군의 UDT 요원들이 보였으며, 반잠수정 1대 마다 2개식 장착된 중어뢰가 목격되었다. 이때 아군의 UDT 대원들은 수중용 펜으로 중어뢰 표면에 먼가 표식하는 장면이 포착 되었는데 '1번' 이라는 작전코드를 왼손으로 입력한후 시한폭약류를 장착하더니 동그라미를 한번더 세겨넣었다. 그리고 좌측으로 이동한후 천안함 후미선체에 접근하자 먼가 따뜻한 열기를 느꼈는데 선체유리를 통해서 안쪽을 살펴보니 짙은감색 군복의 게릴라 대원들이 약 20~40명 목격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손짓과 오케이 싸인을 보내더니 천안함 후미의 해치를 열고서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다른 대원들은 안된다는 손짓신호를 보냈고 몇분만 더 기다려 보자는 시계위치 신호를 보냈다. 그런후 천안함 안쪽으로 진입한 특수부대원 1명을 지켜 보았는데 천안함 안쪽은 산소공기가 있는듯 잠수복을 벗은 상태였고 뭐라고 외치더니 여러가지 총기연사를 하고 있었다. 6~7분 정도 지났을까? 천안함에 미리 잠입한 UDT 대원은 총알이 떨어진채 적군의 게릴라 들에게 생포된채 묶여서 가슴부위에 피를 흘리면서 고문심문을 당하는 장면이 유리통문 으로 포착되었다.





스쿠버다이빙 타이머 시계를 보자 12~14분 쯤의 에어탱크 교체시간이 되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 팀원들은 수중침투조 작전수행 명령을 듣기 위해서 무전기기 주변에 몰려들었다. '치익~ 작전사령부 코드 000 2차 잠수부터는 실전이 허가된다'는 설명이 있었으며, '외국여성 특수부대원 1명을 구출하라'는 작전지시를 들었다. 충분히 호흡하고서 잠수열량을 위한 튜브식품을 먹고 양치질 세수도 다시한번 하면서 앞으로의 작전성공 행운을 기대하였다. 다시 2번조 Navy Seals(UDU 해군첩보부대) 팀은 잠수복 및 특수무기를 지참한채 수중 50m 작전지대에 투입되었다. 상당한 특수부대 인원들이 몰려들어서 그야말로 수족관 이었으며, 수면의 작전명령을 통해서 천안함 후무해치를 개방하고서 진입하였다. 회전식 레버손잡이는 바깥쪽과 안쪽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안쪽의 해치를 닫자 거짓말 처럼 물이 배출된후 사람이 숨쉴 수 있는 산소공기 까지 투입되었다. 조금 의심스런 느낌에 화생방전 방독면을 착용한후 천천히 아래쪽으로 접근하였다. 1층 계단실, 2층 계단실, 3층 계단실에 도착하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시아어 외국인 들은 체구가 건장한 평균체형 이었고 6인 식탁 6개에 둘러앉아서 스텐인리스 접시에 놓여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조급한 아침을 먹는듯 싶었고 1번조 UDT 팀원 1명은 식료품 주방기구 앞에서 너부러져 앉자 있었다. 다른 팀원들의 도움으로 비디오 캠코더를 통해서 현장분위기 정보를 보냈는데 불과 1분도 안되서 직접교전 이라는 어텍명령이 내려졌다. 4층의 주방코너는 다른 선박실에 비해서 넓은데 수류탄 몇발로만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팅~ 퉁퉁퉁, 꽈앙!' 실내자탄용 수류탄을 던진후 백병전 타입으로 돌격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적군 게릴라는 무조건 사살해야만 한다. 안그러면 팀원들이 희생당하고 작전에 실패하는 패배자가 될뿐이다. 빨리 그리고 속전속결, 4층 주방에서만 30여명 게릴라를 제압하고서 좀더 안쪽으로 진입하였다. 그런데 천안함 안쪽의 실내조명이 붉은색 및 보라색 이었고 치이익~ 검은색 마약가스가 여기저기 세어나오고 있었다.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라서 괜찮았으나 빨리 현장을 벗어나고 싶은 안전욕구에 의해서 좌우경계를 하면서 이동하였다.
조금 괴상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천안함 40m 복도를 지날때 선원격실 마다 천안함 장병들이 묶여있는걸 보았고 얼굴과 몸에는 온갖 고문투성이 상처들이 있었다. 그리고 선박안에 무슨 파리떼가 있는지 여기저기 날벌레가 출몰하고 고문당한 장병들의 몸에는 구더기 여러마리를 목격할 수 있었다. 대테러 작전부대는 정보침투 정찰조, 근접전 공격조, 구난구출 대원조, 상황피해 보고조 까지의 4가지 임무수행이 필요하므로 나머지 잔여일당을 사살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하였다. 마침 앞쪽에 한명의 게릴라 적군이 정글칼을 들고서 뛰어오길래 기관단총 여러발로 제압하였다. 또한번 우측의 선원격실에 적군이 나와서 기관단총 으로 제압 하였고 다시 좌측의 선원격실 적군을 제거 했으나 무장게릴라 총기로 공격당하지 않았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주방식 쪽에 무기격납고와 탄약실이 있었고 대테러 작전요원이 접근한 곳은 포로심문실 및 게릴라 놀이방 이었던 것이다. 천안함 후미선체의 가운데 쯤에 도착하자 양쪽으로 나눠진 길이 나왔고 우리는 2팀으로 나눠서 계속해서 안쪽으로 진입하였다. 그때 뒷쪽에 있던 대테러 진압요원이 손으로 권총표시를 하였다. 선체의 중심부위는 얇은 도금강판 으로 구성된 파괴위험 문제로 철갑탄 기관단총은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얼마쯤 더 접근하자 아니나 다를까 적군의 기관총 공격이 있었고 손에든 권총만으로 반격하기고 말았다. 격실의 칸막이에 몸을 기대고서 여러탄창을 소비하면서 전진하자 맨 마지막 코너에 외국여성 1명의 납치포로를 목격하였다. GI 제인에 나오는 데미무어와 비슷한 얼굴생김 이었고 키는 작은듯한 160cm 이었다. '컴온 히어로' 두말할 필요도 없이 외국여성을 구출한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려는 찰라 반대쪽 으로 진입했던 팀원들이 뛰어오면서 '웨이아웃' 이라는 후퇴명령을 내렸다. 적군은 10여명 이었고 주방에서 총격을 받은 인원들도 몇명 있었다. 한쪽 코너에 몰린 팀원들은 다리와 팔에 총상을 입었으며, 멀쩡한 사람은 블로그 작성자 밖에 없어서 권총과 탄약 만으로 10여분을 방어하였다. 잠시후 4번조 SSU 해난구조대(해병부사관) 팀원들이 응원전투를 하였고 앞뒤에서 공격당한 게릴라 10여명은 곧 제압당하고 만다.


누군가 말하길 '게릴라 생존인원이 작전실패용 시한폭탄을 장착했을지 모른다. 빨리 탈출하자'는 제의에 의해서 여러명 팀원들은 다시 주방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무전호출에 의해서 몇명은 튜브를 통과해야 한다고 것이었다. 그리고 외국여성 1명은 몇년째 계속되어온 고문피해 때문인지 사람들을 두려워 하면서 혼자서 선원격실로 들어가 버렸다. 어쩔수 없이 휴대용 산소탱크를 지급한후 다시 작전위치로 달려 나갔고 후미선체 40m 중앙위치에 검은색 튜브통로를 발견하였다. 물컹거리는 탓에 기분은 나빴지만 계속해서 20m 쯤을 내달렸다. 그때 뒤쪽에서 게릴라 기관총을 난사하는 여성 1명이 보였고 산탄총을 꺼내들어서 반격하기 시작했다. 총격으로 구멍난 튜브에 물이 차면서 점차 호흡하기 어려웠고 계속해서 안쪽으로 달려가자 원형철문 해치가 보였다. 빨리 열고서 안쪽으로 진입한후 다시 해치를 닫자 거짓말 처럼 자동으로 물이 배출되었다. 한개의 문을 더 열자 놀랍게도 천안함 앞쪽 이었고 금양호 선원이라고 소개하는 러시아인 및 천안함 함장님이 마중나와 있었다. 생존인원은 몇명입니까? 물어보니 48명 이라고 했으며, 부상 당하거나 실종된 인원은? 물어보니 56명 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천안함 전체인원 104명 이었고 현재까지는 48명 만이 생존해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탈출하고서 1명만이 앞쪽으로 진입한 것이라고 하자 이곳이 위험해 질 수 있으니 당신이 먼저 탈출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양호 러시아인 선원들은 불만섞인 표정이 나타났다. 약 25m 정도를 달려가니 윗쪽으로 원형해치를 발견했으며, 격실문을 닫고서 휴대용 산소탱크를 입에 물고서 힘껏 탈출장치를 돌렸다. 바닷물이 쏟아져 나오더니 금새 물이 가득차고 해치를 열고서 바깥으로 탈출하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천안함 후미선체가 보였고 좀더 접근한후 방금전 외국여성이 있는 선원격실 바깥쪽에 접근하였다. MP7 기관권총(수중전투용) 으로 격실유리를 파괴하고서 외국여성 에게 빨리 나올것을 요구했는데 미리 준비되어 있던 휴대용 산소탱크로 잠수탈출을 하였다. 그런데 격실유리의 날카로운 부위에 외국여성 왼쪽 허벅지에 상처를 입는 불가피한 일이 발생하였다. 휴대용 산소탱크는 용량이 얼마 안되므로 빨리 윗쪽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힘껏 두다리에 힘을 줘서 물갈퀴를 만들면서 윗쪽으로 부력상승 시키는 찰라 저멀리 해저바닥의 천안함 주위에는 여러명의 수중침투조 팀원들이 적군의 게릴라 들과 수중에서 대검난투극을 벌리고 있었다. 상대방의 산소탱크를 터뜨리는가 하면 수중에서 주먹으로 가격하고 에어건 작살총기로 관통상을 입히는 등 수중전 양상이었던 것이다. 적군의 반잠수정 4대는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무인기와 같이 혼자서 선회를 하더니 천안함 에서 빠져나온 게릴라 잠수부 20여명을 실고서 급히 북쪽방향 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때 한국형 디젤잠수함 2대가 나타나더니 연차로 소형어뢰 여러발을 도주하는 반잠수점 쪽으로 발사하였다. 그리고 잠수함에 여러갈래의 에어호스가 뻗어져 나온 상태였는데 아군의 스쿠버요원 에어탱크를 보충하는 잠항용 공중급유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잠시후 천안함에 와이어로프가 연결되었고 윗쪽의 구난선박 에서의 끌어올리는 구난시도차 상승을 시켰으며, 아군잠수함 몇대는 와이어를 서로 연결시킨후 V형 으로 천안함 후미선체에 걸친후 산소발생기 공기부력을 이용해서 수면으로 들어올리는 작업을 돕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서 부력상승 물갈취 동작에만 신경쓰면서 뿌연 포멀에 멀어지는 해저와 아침햇살이 밝게 비춰오는 수면에 도달했으며, 약 4분이 지났을까? 휴대용 산소탱크의 공기는 이미 바닥나 있었다. 20초 정도는 바닷물을 잔뜩 먹으면서 겨우 수면위로 올라왔는데 후우~ 하고 더운입김을 내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을때 '바다의 무법자 죠스작전에 성공했다'는 뿌듯한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때 천안함 후면갚판이 와이어로프 구명줄에 의해서 수면으로 올라왔고 크아아~ 하는 물배출 소리와 함께 구출작전에 투입되었던 특수요원 들이 쏫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잠수복이 아닌 미리 준비한 해군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휴대용 캠코더를 들고있는 SSU 해난구조대 대원이 접근하자 와이어로프에 감싸있는 천안함 에서 뛰어 내리더니 구조요청을 하는척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해군 함대사령부 및 작전사령부 명령으로서 구출작전에 투입되었던 특수요원 들은 잠수함 와이어로프 작업의 천안함 무사히 상승시킨후 승무원 으로 위장해서 미리 연출된 방송화면에 잠시 노출되었던 것이다. 수심 50m 에서 너무 빨리 부력상승한 탓일까? 온몸의 기력이 빠져 나가더니 다리감각이 없었고 그냥 두팔만 휘져으면서 여러가지 부유물과 함께 한쪽으로 비켜나고 있었다.
30분이 지났을까 천안함 후면의 반쪽부위를 바지선에 끌어올린후 또다른 아군측 생존대원이 있는지 구조탐색을 하고 있었으며, 손짓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몇명의 스쿠버 특수요원이 있었다. 이때 무전연락에 의해서 수중침투조는 다시한번 구난작전에 투입되었고 멀리서 카메라 녹화촬영 장비를 갖춘 방송요원 까지도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천안함 사건의 수중전투와 3년 포로감금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몇명의 SSU 해난구조대 팀원들은 방송 인터뷰를 참여했으며, UDU 해군첩보부대(Navy Seals) 용병대원은 직무상 비밀신분 상태이므로 인터뷰 촬영분이 방송되질 않는다고 한다. 천안함 구출작전의 임무를 끝마친후 수면으로 헤험을 치면서 한국해군 고무보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탈출도중 부상 당했던 외국여성 1명은 용병대원 윗옷을 조금 올리더니 런닝부분의 헝겁을 만들어서 허벅지 다리상처를 감싸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노우스위밍 수영을 못한다나 미리 준비한 더블백에 외국여성을 넣고서 SSU 해난구조대 고무보트 위에 올라왔다. 정말로 아찔한 찰라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극히 위험한 상태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잠시 한숨을 돌리자 여러명 잠수요원은 수면위로 올라온 용병대원 에게 천천히 박수를 보내왔는데 특수임무수행을 했다는 씰 표시를 하더니 곧바로 구급헬기를 호출해 준다고 하였다. 용병대원이 작전임무를 수행한후 무사히 안전지대로 벗어나야만 긴급상황이 종료되는 런어웨이 작전까지 후원받은 것이다. 앞쪽에서는 천안함 후면의 반쪽이 와이어로프 구난줄에 의해서 바지선에 올려지고 있었으며, 후번조 다른 용병팀원 들도 해군복장 으로 위장하기는 했으나 무사히 해군 구난선에 승선하고 있었다. 그때 적군의 반잠수정 및 적군생존자 들도 수면위로 모습을 비췄는데 SSU 해난구조대 팀원들은 재빨리 K-1 기관단총 으로 사격하면서 게릴라 무장공비를 제압하였다. 분명히 여러곳에 총상을 입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헤엄쳐서 도망가는 게릴라 무장공비는 그야말로 철인에 가까웠다. 러시아 에서 제작된 전신방탄복을 입었거나 아드로핀 약물투입후 출혈통증을 참아가면서 북쪽으로 달아났으며, 게릴라 무장공비는 수면위로 올라온 반잠수정 돌출부위 손잡이에 몸을 바짝 붙인채 빠른 속력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몇대의 SSU 해난구조대 고무보트와 해양경찰 순찰선이 추적했으나 워낙 빠른 속력의 게릴라 반잠수정을 쫒아가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이와같이 비정규전 활동에서는 제비뽑기 순번당첨제 스페셜포스 용병부대원(숄져스 장교지원자) 을 긴급실탄작전 대원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특수전 단독임무수행 결과로써 훈장포상(격려금 500만원) 및 특별성과금(1인당 1~2천만원)을 지급한후 군장학생(국가장학생) 수업료에 희석탕감 시키는 내용이다. 현역예비역 직업군인(6~7급 이상)은 국가공무원 직무이며, 특수전 용병징집제(외인부대) 활동으로서 연금수당을 0원으로 공제받는 무명참전용사(체육군사학 장학생의 국내외 파병전투원) 이다. 아무것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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