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 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등록 :2022-11-12 09:00수정 :2022-11-12 10:38
박용현 기자
헌법에 역행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 ‘책임관’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157명의 생명, 157개의 우주가 사라진 참사 앞에서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정운영 책임자들은 여전히 책임 회피에 급급합니다. 누구 한명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번인데도 현장에 출동해 구조 활동을 지휘했던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공분하는 것도 정작 큰 책임을 져야 할 윗선들은 숨은 채 현장에서 땀흘린 이들만 희생양 삼는다는 의구심에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헌법 제7조 1항을 읽어보며 시작하겠습니다.
헌법 제 7 조 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법적·정치적 책임 혼동하는 대통령의 ‘엉뚱한 말’
“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에 기반한 강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무기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맹자> 양혜왕장구상 제3장)
이렇게 국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절대권력 체제를 혁파하고 들어선 게 현대의 민주공화제입니다. 모든 공직자로 하여금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책임정치는 현대사회가 이루어낸 민주공화국 통치구조의 구성원리인 것입니다. 이를 두고 ‘막연하게 책임지라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헌법질서와 헌정사의 상식을 허무는 일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하는 것도 후진적”(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그래서 시대착오적입니다.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나는 책임 없다’는 시각에서 출발
헌법 제 34 조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 재난안전법 ) 제 4 조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 · 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 · 시행하여야 한다 .
제 6 조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 · 조정한다 .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왜 네 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요.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에스엔에스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 대통령의 말씀은 검사의 언어 , 검사의 생각입니다 . 법률적으로는 맞는지 몰라도 , 인간적 , 윤리적 , 국가적으로는 잘못된 말입니다 . 용산경찰서장 , 용산소방서장 , 용산구청장 등 ‘ 용산 ’ 공직자들이 줄줄이 입건되었습니다 . ‘ 용산 ’ 에만 책임을 묻는다면 대한민국은 왜 존재합니까 .”
‘안전’을 가볍게 다룬 대통령의 책임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대통령이 평소 안전 문제를 꼼꼼이 챙겼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윤 대통령은 되레 안전과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지난 6월 원전 업체를 찾아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상징적이고 파격적인 발언입니까. 정부가 우선시해야 할 절대적 목표로 인식돼온 ‘안전’의 가치 등급을 추락시킨 순간으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장면입니다. 예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는 재난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국장급 공무원이 파견나와 있었는데, 현 정부에서는 이 기능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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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관은 대통령 아닌 국민에 책임져야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윤 대통령은 그런 이 장관을 합동분향소 조문에 이틀 연속 동행시켰습니다. 대통령의 신임이 이 장관의 무책임 행보의 뒷배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왕에게만 인정받으면 무탈한 왕정시대 신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공직자는 헌법이 규정하듯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통령에 대해 책임지는 게 아닙니다.
현 정부에서 공직자의 책임 의식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여러가지 지금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제 마음의 책임입니다.”
구청장보다 백배, 천배의 책임을 느껴야 할 대통령은 참사 9일 만에야 겨우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과를 했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습니다. 아무런 문책도 없었습니다. 제 살을 도려내는 각오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도, 구체적 방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경찰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거친 발언뿐이었습니다. 수사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듯했습니다. 경찰은 이튿날 경찰 수뇌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행정안전부는 제외했습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모습은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적절한 선에서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는 일개 검사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국정의 총사령탑에 걸맞은 책임감과 안목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중차대한 지위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집니다.

【논썰】 “막연하게 정부책임 묻지말라” 검사인가, 대통령인가. 한겨레TV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이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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