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직 던지고 당선까지 370일..결정적 장면 4가지
김가윤2022. 3. 10. 06:06
[2022 대선]대선 도전 선언 253일만에 당선
처가 리스크·실언 매순간 위기
당 분란에 홀로서기 승부수
윤석열 당선자가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총장에서 대통령까지. 27년간 검사였던 윤석열 당선자가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70일이다. 대선 도전을 선언한 날로부터는 253일 만이다. ‘별의 순간’을 잡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뒤 검증은 필연이었고 정치적 미숙함이 부른 설화와 갈등은 지지율을 요동치게 했다. 그럼에도 강력한 정권교체 민심은 ‘정치 초보’ 윤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끌어올렸다.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 조성은 씨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나눈 통화 내용을 복원해 공개한 가운데 김 의원이 국회에서 열리는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기상청 종합국감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저는 오늘 총장직을 사직하려 합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검찰총장을 사직한 지난해 3월4일은 그에게 ‘별의 순간’이 됐다. ‘숙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교체되고 여권의 검찰개혁 공세도 잦아들 무렵이었지만 그는 대선 1년여를 앞두고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총장직을 던졌다. 대선 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자연인이 된 그는 일단 잠행하며 기회를 봤다. 정치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외교·안보, 경제 분야 전문가들을 만났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나 당내 분위기를 살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하며 정권교체론이 탄력을 받은 것도 그에겐 기회였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당심은 ‘0선·30대’인 이준석 대표를 선택하면서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판단을 했고, 강력한 야권 대선주자인 윤 당선자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해 6월29일 대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얼마 안 가 부인과 장모의 각종 의혹이 망라된 ‘엑스(X)파일’이 돌면서 처음으로 검증대에 올랐다. “주 120시간 근무”, “대구 민란” 등 설화도 터지기 시작했다. ‘정치 초보, 무소속 캠프’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애초 계획보다 빠른 7월30일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들판에서 혼자 달리기를 하다가 제1야당의 리무진 버스에 탑승한 셈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오찬 회동을 위해 서울 중구의 한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들어가 경선 승리…후보 쟁취
국민의힘 경선 버스에 오르긴 했지만 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구력이 쟁쟁한 정치인들과 맞붙어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민심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윤 당선자를 향한 경선 주자들의 공격은 거셌다.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던 윤 당선자의 발언은 내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 무렵 2020년 총선 직전 대검찰청이 여권 정치인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의혹이 물증과 함께 제기되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제보자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친분을 고리로 한 ‘제보 사주’ 의혹으로 되치기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국민의힘 내부의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상처도 컸다. 토론회에서 “집이 없어서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해 주택 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고 ‘손바닥 왕(王) 자’ 사건으로 무속 의존 의혹이 증폭됐다. 홍준표 의원의 추격이 거세지자 당심을 겨냥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찬양하며 호된 비판을 받았다. 에스엔에스에 ‘개사과’ 사진을 올린 건 점입가경이었다. 경선 막판 청년층을 중심으로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 바람은 ‘윤석열 대세론’을 위협했다.
그러나 11월5일 경선에서 윤 당선자는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에게 10%포인트 이상 뒤졌지만 당원투표에서 홍 의원을 2배 가까이 압도하며 얻어낸 승리였다. 민심을 배반한 당심이 윤 당선자를 후보에 낙점한 것이다. 불안한 출발이었지만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보며 대세론을 이어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당 분란’에 지지율 급락…홀로서기 승부수
그러나 복잡한 당내 역학구도 속에서 윤 당선자는 갈팡질팡했다.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은 갈등했고 ‘원톱’을 요구하는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영입도 쉽지 않았다. 12월3일에야 이 대표와 ‘울산 회동’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김 위원장까지 영입하며 선대위를 제대로 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약 10여일 뒤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이력 문제가 언론 보도로 불거졌고 윤 당선자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저쪽에서 떠드는 거 듣기만 하지 말라”는 항변으로 일을 키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했던 그를 향해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윤 당선자는 결국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공식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연말엔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를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 페미니스트 정치인인 신지예씨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외연 확장용 ‘빅플레이트’ 전략을 구사했지만 ‘반페미’를 기본으로 하는 이 대표와 그의 지지 그룹인 ‘20대 남성’ 그룹의 반발을 샀다. 비슷한 시기에 윤 당선자는 경북도당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문재인 정부가)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 나라를 망쳐놨다” “독재 정부가 산업화 기반을 만들었다” “(이재명 후보와) 토론하는 것은 어이없고 같잖다”는 등의 막말로 논란을 빚었다. 윤 당선자를 ‘제어’하지 못하는 매머드 선대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윤 당선자와 협의 없이 선대위 전면개편을 선언했다. 이에 결국 윤 당선자는 김 전 위원장과의 결별을 선택했고 선대위 해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최대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윤 당선자는 ‘윤핵관’들과의 거듭된 마찰로 당무를 거부했던 이 대표와 포옹하며 가까스로 캠페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매머드 선대위’를 선대본부로 축소 개편하고 청년보좌역들을 전면 배치한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 이른바 ‘이대남’ 공약에 몰입했다. ‘젠더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고조됐으나, 20대 남성들의 지지는 지지율 회복의 기반이 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월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올해 2월 초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적폐수사’ 뜻을 밝히며 또다시 위기를 자초했다. 정치보복을 예고함으로써 여권 지지층에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었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양쪽 진영이 모두 결집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추격세도 매서워졌다. 승리를 위해서는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절실했다. 그러나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윤 당선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오늘 아침 9시 단일화 결렬 최종 통보를 받았다”며 결렬의 책임을 안 후보에게 떠넘겼다. 물밑 협상 내용까지 세세하게 공개하며 안 후보의 이중성을 공격하는 방식이어서 단일화 논의는 파국에 이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법정 티브이(TV) 토론에서는 이재명 후보와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고 국정 현안에 무지함을 드러내며 불안한 이미지는 가중됐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지난 2일 마지막 티브이 토론을 마친 뒤 안 후보와 새벽 담판을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사전투표 바로 전날이었다. 양 진영의 결집으로 아슬아슬했던 박빙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승부수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월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김가윤 곽진산 기자 gayoon@hani.co.kr
'국민' 내세워 계산된 정치 행보..검찰총장, 대선 직행하나
김경욱2021. 3. 4. 19:26
[검찰 개혁]윤석열 전격 사퇴 배경·전망
"검수완박" 비판에 "대구 고향 온듯"
사흘간 치밀하게 주목도 높이기
권력 맞서는 이미지로 효과 극대화
4일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한 표면적인 이유는 여당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신설’이다.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인데, 수사청을 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면,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취지다. 이 연장선에서 그는 사의를 밝히며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퇴에 정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대선 출마’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윤 총장의 정치적 자산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될 ‘법치주의’를 지키려 했다는 모양새와 ‘권력에 맞선 공직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정계진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사이 야권을 중심으로 한 ‘윤석열 대망론’이 충분히 무르익었다.
법조계 “사퇴 외 다른 길 어려웠을 것”
검찰 내부에선 윤 총장이 이번 수사청 갈등 국면에서 사퇴 외에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일선에서 수사-기소권 분리를 위한 수사청 설치를 사실상 검찰 해체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고려하면 검찰의 최고 수장이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당이 관련 입법을 위해 ‘속도전’에 나서고, 수사청에 대한 검사들의 실명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대를 메는 것밖에 없다”며 “가만히 있으면 ‘조직이 해체되는데 총장은 뭐 하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것도 공직자로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지금껏 중도 사퇴한 역대 총장을 봐도 알 수 있듯 총장은 그런 자리”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계진출 선언
윤 총장은 이날 사의를 밝히며 정계진출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사실상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퇴임 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답하고, ‘정치도 포함되느냐’는 거듭된 물음에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한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철저히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윤 총장의 지난 사흘 행보도 결국 정치적 주목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퇴임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의 수사청 신설 움직임을 작심 비판하고, 이튿날 언론의 관심 속에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겨냥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준비된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이어간 뒤, 이날 사의를 표명한 일련의 과정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3일 ‘보수의 심장’이자 박근혜 대통령 수사 관련 부채가 있는 대구를 방문해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한 발언을 두고서도 보수층의 지지를 노린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4일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퇴근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1시간만에 바로 수용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계진출 언제 결심했나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의 정치권 진출과 대선 출마에 관해 그동안 엇갈린 전망이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최근 정치권에 투신했던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이나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의 실패 사례를 들며 “윤 총장은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다. 조직과 후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권과 대립하는 것일 뿐 결국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그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 사이에서는 “윤 총장은 원래 사회, 경제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총장이 되고 얼마 뒤부터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와 자주 연락하는 한 지인도 1년여 전부터 “확실히 달라졌다. 정치하는 걸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어떤 계기로 정치권 진출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지난해 이어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과정에서 마음이 굳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참모로 분류되는 한 검찰 간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손발을 다 묶어버린 인사가 결정적이었다”며 “지난해 총장 고립 인사와 감찰, 수사지휘권 발동 등을 거치며 직접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윤 총장을 잘 아는 한 후배 검사는 “정치를 오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윤 총장 성격상 일사불란한 검찰과 달리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치권에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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