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파병' 기다렸다는 듯 한국 무기 탐하는 미국-나토
미 북한군 참전 확인 못했다면서도 "무기 지원 환영"
나토 수장 "한-우크라-나토 3각 방산협력 강화하자"
국빈 방한한 방산 고객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살상무기 직접 공급, 현지 방산공장 참여 위한 포석?
우크라 전쟁의 불길 한반도로 불러들인다면 "파국"
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이동을 계기로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직접 지원을 기대해 왔던 미국과 나토의 오랜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장기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크라에 대해 재래식 무기의 '현지 생산, 현지 사용'을 추구하는 구도가 한국의 자발적 참여로 완성되기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나토 앞당겨 퍼붓는 "갈채"
직접적으로 이를 드러낸 것은 미국이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공격용 무기 제공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대해 "물론 우리는 우크라에 대한 어떤 나라의 지원이건 환영한다"라고 반겼다. "자국의 안보지원(결정)은 한국에 맡기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제임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23일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을 공식 확인하기 전 한국의 공격무기 제공을 앞당겨 환영한 셈이다.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신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북한군 파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우크라-나토 간 방산 협력과 안보 대화를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뤼터 총장이 말한 '방산 협력'은 바로 155㎜ 포탄을 비롯해 전장에서 수요가 높은 재래식무기의 직접 지원을 말한다. 우크라전 개전 이후 미국과 나토가 줄곧 보여 온 태도의 연장이다. 2023년 1월 29~30일 방한했던 당시 옌스 스톨덴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한국이 지원을 더 했으면(step up) 한다"라면서도 "군사적 지원이라는 구체적 이슈는 결국 한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었다.
2차 대전 당시를 방불케 하는 포격전과 참호전이 벌어지는 우크라 전선에서는 포탄의 수급이 단기적 승패를 좌우한다. 한국은 그동안 포탄을 미국과 나토 회원국에 수출하고, 해당국이 우크라에 자국 비축용 포탄을 제공하게 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을 해왔다. 폴란드는 한국산 다연장로켓 천무와 K2 전차, K9 자주포 등을 사들인 뒤 자국의 낡은 무기체계를 우크라에 보냈다. 포탄이나 무기의 최종 사용자(end-user)를 해당국으로 제한하는 안전장치가 달린 계약이었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한다면, 우회 지원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 전쟁에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공교롭게 한국의 최대 방산 수출국인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국빈 방한 중이다.
남북한과 우크라 전쟁
미국과 나토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국의 탄약과 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의 생산량을 늘려 왔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부가가치 첨단무기 생산으로 전환한 상태였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의 포탄 생산라인을 늘렸지만,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왔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방산업체들은 그렇다고 재래식 무기 생산 설비를 대폭 늘리지도 못하는 처지다. 우크라 전쟁이 끝나면 다시 쓸모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집속탄 공급에 이어 열화우라늄탄까지 제공하고 있겠나.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 많은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산 포탄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포탄의 국제정치학에는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가 모두 포함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전쟁 첫해인 2022년 11월 2일, "북한이 상당량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정보가 있다"라면서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에 보내는 방식으로 목적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9월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122㎜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관치 않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한국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함정의 북한 항구 기항, 적재된 컨테이너 등의 위성사진을 증거로 내놓으며 북-러 간 포탄 거래를 주장해 왔다. 펜타곤은 같은 해 9월 5일 북한의 포탄 공급을 주장, 여론을 조성해 놓은 뒤 바로 다음 날 우크라에 10억 달러 상당의 열화우라늄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잠깐만 뜯어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언론 플레이'였다.
나토가 말하는 방산 협력의 정체는?
전쟁이 장기화하자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 내에 재래식 무기 생산공장을 건설해 자체 수급토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에 일자리를 공급,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서방의 골칫거리였던 재래식 무기, 포탄의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버티며 건설하기(hold & build)' 전략에도 부합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9월 워싱턴 회담에서 "우크라와 모든 파트너국을 강화할 새로운 방위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에 합의했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도 우크라를 '유럽의 무기고'로 만드는 것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직접 재래식 무기 생산라인을 깐다면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뤼터 총장이 윤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국-우크라-나토의 방위산업 3각 협력의 요체다.
미국과 나토가 여전히 러시아 이동 북한 특수부대의 우크라 전쟁 참전 의도를 확인도 하기 전에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된 건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 덕분이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고, 방위산업 3각 협력을 한다면, 북한군의 참전과 무관하게 우크라 무기 공급의 고민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선 "방산 수출을 늘렸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 분명한 사안. 그러나 우크라 살상무기 공급은 타산으로만 접근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미국과 나토에 행복은 우리에게 단순히 불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크라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로 날아오는 파국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산 포탄의 미국 수출이 확인된 2022년 10월 27일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하면, 한러 관계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작년 7월 우크라 방문 두 달 뒤 북러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이 열렸다. 무기 수출 및 방산 협력으로 푼돈을 챙길는지 모르지만,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행위다.
'북한 파병' 몰이, 우크라에 무기‧병력 제공 위한 빌드업
각본‧연출 바이든, 주연 배우는 한국 윤석열
무기‧병력 지원 먼저 정하고 분위기 조성
러시아 "허위, 과장 정보…한국 반응 당혹"
살상 무기 주면 "가시적이고 가혹한 대응"
김용현 국방장관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
예비역 준장 "북한 파병하면 한국 안보 더 안전"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살상 무기와 필요하다면 한국군 파병 지원의 명분을 쌓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빌드업 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이 '음지'에서 활동해야 할 정보 부처답지 않게 '북한군 파병'을 공개 발표한 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대내‧외 여론몰이 중이다.
우크라에 살상 무기 주려는 치밀한 빌드업
'북한 파병' 발표 이후 대대적인 여론몰이
국정원의 18일 발표 핵심은 △ 북한이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20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했고 1차로 1500명이 러시아 연해주의 군부대들에 분산돼 적응훈련 중이다 △ 북한이 지금까지 컨테이너 1만3000개 이상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했다는 두 가지다.
이 발표를 사실로 단정한 곳은 한국과 우크라이나 둘뿐이었고, 닷새가 더 지난 23일에야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다"고 거리를 두던 미국의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이 병력을 러시아에 보낸 증거가 있다. 그러나 병력 배치 목적은 아직 분명치 않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오스틴 장관의 확인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동맹국들이 북한의 러시아군 파병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2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6000명씩, 2개 여단의 북한군이 훈련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태용 국정원장은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 지금까지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3000여 명이며 12월경 총 1만여 명에 이를 것이다 △ 전투 현장에는 없고 러시아 내 다수 훈련시설에서 분산돼 현지 적응 중이다 △ 북한군 파병 대가가 1인당 월 2000달러 수준이다 △ 북한 내에 파병 소문이 유포돼 '선발 군인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했다'는 말도 회자된다 등의 추가적 내용을 공개했다.
김용현 국방장관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
북한 특수작전부대란 국정원 발표와 대조
24일에는 대통령 경호처장을 지낸 실세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가세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은 러시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러시아군 통제하에 아무런 작전 권한도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총알받이 용병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자기 인민군을 불법 침략 전쟁에 팔아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군 파병' 이슈를 어떻게든 크게 키우고자 애쓰는 모양새다. 북한군 파병 대가가 1인당 월 2000달러 수준이라거나 북한의 '선발 군인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했다'는 말이 회자된다거나 하는 세밀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휴민트'(인적 정보)를 통해 획득한 것일 텐데 국정원이 휴민트의 정체 탄로를 감수하면서까지 공개하고 나선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윤 정부는 국정원의 첫 발표 당일인 18일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 주재의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북한군 파병'이 국제사회는 물론 '한국'에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22일에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고 러·북 군사 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방어용에 이어 공격용 무기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공식 제기함으로써 국제사회로 전파하는 데도 주력했다.
무기‧병력 지원 먼저 정하고 분위기 조성
각본‧연출 바이든, 주연 배우 한국 윤석열
한국의 안보 상황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고, 사실이라더라도 북한의 전력이 그만큼 약화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안보 측면에선 오히려 반길 '북한 특수부대의 러시아 파병' 이슈를 두고 맨 앞에 서서 '호들갑'을 떤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보와 관련된 이 사안을 억지로 '한국 안보 위협'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윤 정부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면 북한군 파병 문제 때문에 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을 검토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일 공산이 더 크다. 다시 말해 사전에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을 이미 결정해놓고 '북한군 파병' 이슈를 키워 한국민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분석이 진실에 더 가깝다면 당연히 미국이 배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닷새가 더 지나서야 뒤늦게 '일부 사실'을 확인하는 등 적당히 거리를 두고 뜸을 들인 것은 각본과 연출의 주체가 미국이고 윤 정부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숨기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허위, 과장 정보…한국 반응 당혹"
살상 무기 주면 "가시적이고 가혹한 대응"
이에 러시아 외무부는 사실상 첫 공식 답변을 내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북한군 파병 보도를 "허위, 과장 정보"라며 일축했다. 이어 국정원이 왜 북한군 파병 발표로 소란을 일으켰는지 의문이라며 "추적해보면 우크라이나의 영문 매체에서 첫 메시지가 등장한 이후 한국 정보당국이 이를 포착했다"고 말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사실을 확인했다는 지적엔 즉답을 피한 채 "그들(북한군)이 어디에 있는지는 평양에 물어보라"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하로바는 한국의 북한군 파병 발표와 대응책에 대해 "한국 정부의 반응이 당혹스럽다. 한국 정부는 '테러 정권'인 우크라이나 정권에 놀아나면 안 된다"면서 한‧러는 서로 다른 정치적·지정학적 견해를 가졌지만 경제·인도주의 분야에서 서로 교류‧협력한 훌륭한 경험을 쌓았다면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은 한국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자하로바는 공격용 살상 무기까지 포함한 단계적 우크라이나 지원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윤 정부의 발표에 대해 "러시아는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가혹하게 대응할 것이며 이러한 조치는 가시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참여했을 때 한국 안보에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며 "한국 당국이 신중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윤 정부가 살상 무기 제공이나 파병에 나설 경우 러시아가 북한에 △ 핵무기 완성도 제고와 △ 전략 미사일 고도화 △ 노후 재래식 무기 현대화 등에 도움을 줌으로써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군 파병, 한국 안보와 직접 연관 없어
한설 "북한 파병하면 한국 안보 더 안전"
정부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독면과 의약품 등 비살상용 군수물자를 지원해왔지만 살상 무기 제공은 유보해왔다. 우리 군은 155㎜ 포탄 55만 발을 미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윤 정부는 지난 6월 19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통해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 관계를 맺자 당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총괄을 지낸 한설 전 장군(예비역 준장)은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의 정보 발표, 윤석열의 안보회의 소집과 우크라이나에 군대 및 무기 지원이라는 것이 이미 사전에 기획되어 움직였다는 매우 합리적인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며 "최근 미국과 나토의 행동을 보면서...윤석열 정권이 군대와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윤석열은 이런 각본에 따라 움직였을까?"라고 반문한 뒤 국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지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한 전 장군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한국의 안보는 더 안전해진다"며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고 있는 동안 남한에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이 러시아에 매우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의 병력도 부족하지 않아 "러시아가 북한군을 전투 현장에 배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5000만 국민 생명·재산 볼모 삼은 윤석열의 도박
러에 무기·병력 제공, 왜 우리 안보 위협?
국정원 발표 이후 윤 정권의 수상한 행각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하려고 안달
국정원 "북한 파병"…아직 더 지켜봐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18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발표하고 나서 닷새가 지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군 파병을 기정사실화한 나라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대한민국 단 두 곳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만일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된다"란 가정법을 구사하면서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소재 군사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국정원은 이 사진에서 해당 연병장 내 북 인원이 400여명 모인 것으로 추정했다. 2024.10.18 [국가정보원 제공.]
국정원 "북한 파병"…아직 더 지켜봐야
모스크바와 평양 당국은 아직 국정원 발표의 진위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뉴욕의 주유엔 대표부를 통해선 "터무니없다"(러시아) "근거 없다"(북한)라고 일축하고 있다. '북한군 파병'이 사실일 수 있지만, 아직은 국제사회 전체가 공인한 사실은 아니란 얘기다.
국정원 발표의 핵심은 △ 북한이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20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했고 1차로 1500명이 러시아 연해주의 군부대들에 분산돼 적응훈련 중이다 △ 북한이 지금까지 컨테이너 1만3000개 이상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했다는 딱 두 가지다.
국정원 발표 당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의 긴급 안보회의에선 두 가지를 확인했다. 현 상황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안보 위협이며,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의 날인 10월 1일 다음날인 2일 '서부지구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현지시찰하시면서 전투원들의 훈련실태를 료해하시였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2024.10.4 연합뉴스
러에 무기·병력 제공이 왜 안보 위협?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일단 국정원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고 치자.
윤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에 묻고 싶은 게 있다. 특수작전부대 1만2000명과 함께 어마어마한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의 무기가 북한에서 러시아로 빠져나갔다면, 그것이 한국의 안보에 어째서 해가 되느냐다. 간단한 산수만 해도 막대한 전력 유출로 인해 북한의 안보에 해가 되고, 한국의 안보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마치 윤 정권은 러시아가 북한에 파병하고 막대한 무기 지원이라도 하는 듯이 수상하리만치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다. 이런 북·러의 천인공노할 짓을 우리만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이슈를 국제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나토조차 북한군 파병을 "확인된 게 아니다"란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자 급기야 21일 윤 대통령이 전화를 통해 직접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에게 "우리 정보 당국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파했고,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국정원 발표 내용을 설명하고 국제적 전파에 주력했다. 국군심리전단은 남북 접경지역의 대북 확성기를 통해 관련 내용을 북한 쪽에 알렸다.
그리고 22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의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선 북한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고 러·북 군사 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방어용에 이어 공격용 무기도 지원할 수 있다는 초강경 입장을 정리했다. 미리 세워둔 '계획'에 따라 군사 작전하듯 대통령과 국가안보실, 국정원, 군, 외교부, 재외공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우크라에 살상 무기 제공하려고 안달
나토 총장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러·북의 무모한 군사적 밀착이 인도·태평양 지역과 대서양 지역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확신시키는 동시에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의 '단계별 조치'에 들어갈 것임을 밝혔다. 설사 북한군 파병과 무기 지원이 사실일지라도 우크라이나 안보와 유럽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뿐, 한반도 평화에는 직접적 위협은 되지 않는다. 억지 논리다.
무슨 속셈인지 궤변을 구사해 어떻게든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살상 무기를 주려고 애쓰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윤 정권이 한·러 관계의 파탄이 가져올 한국의 국익 훼손은 전혀 안중에 없고, 도리어 한국과 척지지 않으려는 러시아를 계속 자극해 관계를 파탄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 구실을 만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중시하는 '가치 외교'와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을 내걸고 자유의 전사가 되고자 다짐해온 윤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고전 중인 우크라이나가 북한군의 가세로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하자 이를 돕고자 발 벗고 나선 것이라고 보면 착각이다. 우크라이나의 안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훼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22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도하훈련장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K1A2 전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육군 제7기동군단 예하 7공병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다목적 교량중대 등이 참여했으며 지난 6월 전력화된 한국형 자주도하장비 '수룡'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2024.10.22 연합뉴스
윤 정권의 수상한 행각…진짜 속내는?
그럼 이런 수상한 행각의 진짜 배경은 뭘까. 우선은 윤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내야만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한·러 관계 파탄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만일 그런 사정이 있다면 미국의 '요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의 '북한군 파병' 발표를 확인하지 않고 "만일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된다"라고 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스탠스는 자신은 뒤로 빠진 채 윤 정권을 전면에 내세워 살상 무기 지원 문제를 풀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한미 정부 간에 내밀한 조율을 통한 역할 분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정치적 위기를 '안보 위기'를 조성해 덮으려는 작업일 공산도 크다. 최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계기로 특검과 함께 윤 대통령 탄핵 여론이 치솟고 있고 국정 지지율은 10%대에 진입할 정도로 날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국정 동력이 완전히 상실한 상태인데다 국민 대다수 여론에 맞춰 남은 기간 국정을 쇄신할 생각도 없으니 '군사 모험주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사회를 전쟁 동원 분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투와 전단 살포 이슈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북한 외무성이 11일 중대 성명을 통해 세 차례(10월 3·9·10일)에 걸쳐 한국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밝히고 "재발되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튿날인 12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에서 "우리 수도 상공에서 대한민국 무인기가 다시 한번 발견되는 순간 끔찍한 참변은 일어날 것"이라고 최후통첩성 발언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략미사일기지를 시찰하고 발사 관련 시설 요소별 기능과 능력, 전략 미사일 전투직일 근무(당직 근무) 상태 등 나라의 안전과 직결된 전략적 억제력의 가동 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2024.10.23 연합뉴스
국민 생명·재산 볼모 삼은 윤석열의 도박
정전협정을 위반해 대북 도발을 했다는 얘기인 만큼 군 당국은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윤 정권이 도모하는 '군사 모험주의'의 또 하나의 사례다. 북한을 자극해 선공을 유도함으로써 '자위권'의 명분을 얻어 국지전을 치르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국지전을 명분으로 한 계엄 시나리오도 생각해봤을 수 있다.
정치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초조함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나온 행동들인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무인기 사건을 통해선 한반도 전쟁, 북한군 파병 건을 고리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으로 한국민을 끌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추후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 핵무기 완성도 제고와 △ 전략 미사일 고도화 △ 노후 재래식 무기 현대화 등에 도움을 줌으로써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으로 다가왔을 때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은 '가치 외교'와 '글로벌 중추 국가'란 허상에서 벗어나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한 도박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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