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월이여~ 광주여~
oo년이 지난 현재,
409명은 여전히 행방불명자로 등록되어 있으며
최초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 장소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96년 1심에서 전두환 사형, 노태우 22년 6개월 선고
항소심에서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으로 최종 선고.
추징금 각 각 약 2,205억 2,629억원, 후에 전 재산 29만원 발언
김영삼은 1997년 12월 22일
국민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사면복권 시킵니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1980년 5월에 광주지역에서 비롯된 민주화운동. 광주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도 한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발단
유신체제의 폭압정치에 눌려왔던 국민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특히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에는 민주화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러난 12.12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국민이 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야 말았다.
1980년 봄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었으며,
신군부 세력은 이에 맞서 5.17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광주에서는 비상계엄확대 소식을 듣고 18일 아침에 전남대 교문 앞에 대학생 200여명이 모였는데,
공수부대가 과잉 진압을 하여 부상자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자 학생들은 광주 도심지로 옮겨 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는 곤봉과 대검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19일에는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동참하여
5.18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5월 17일 (토요일, 맑음)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24시 00분 :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및 학생 연행
5월 18일 (일요일, 맑음)
·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10시 00분 :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10시 15분 :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10시 20분 :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15시 40분 : 유동 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진압작전 감행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3시 00분 : 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10시 00분 :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14시 40분 :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15시 00분 :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16시 30분 :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의해 부상
·20시 00분 : 수만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 외침.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10시 20분 : 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18시 40분 :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20시 10분 :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21시 05분 : 노동청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21시 50분 : 광주MBC건물 방화
·23시 00분 :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 사망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시 35분 :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2시 18분 : 시외전화 두절
·4시 00분 :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 남로에 등장
·4시 30분 : 광주KBS건물 방화
·8시 00분 : 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10시 15분 : 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 맨 앞으로 교체
·10시 19분 : 광주세무서건물 전소
·11시 10분 : 대형헬기, 도청광장에 도착
·12시 59분 :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13시 00분 :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 사격 시작
·13시 20분 :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14시 15분 : 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14시 35분 :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14시 40분 : 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15시 48분 :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16시 00분 :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16시 43분 :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17시 30분 :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5월 22일 (목요일, 맑음)
·9시 00분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10시 30분 :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11시 25분 :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12시 00분 :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13시 30분 :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15시 08분 :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
·15시 58분 :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17시 18분 :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17시 40분 :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21시 30분 : 박충훈 신임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8시 00분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10시 00분 :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10시 15분 :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11시 45분 :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13시 00분 :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15시 00분 :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
·19시 40분 :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14시 20분 :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14시 50분 :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 00분 :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15시 00분 :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21시 10분 :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등 논의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5시 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8시 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10시 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4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15시 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19시 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 시킴.
·24시 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5월 27일 (화요일, 맑음)
·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4시 00분 :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4시 10분 :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5시 10분 :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6시 00분 :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7시 00분 :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8시 50분 : 시내전화 통화 재개
5,18 민중항쟁 영령들에게...
이 땅에 민주화를 실현키 위해
산화한 그대들의 숭고한 영령들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부디
한서린 민주화의 바램 내려놓으시고
민주화된 천상에서 영면 하소서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정태춘 글-
'5.18.6.10.4.19(민주화운동)외 형제복지원.실미도 등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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