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
어린이집 앞에서 우연히 목격한 장면이 일깨워준 예쁜 말, 따뜻한 말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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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처럼 무심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 그 곁에는 나이가 지긋한 보육교사(어쩌면 보호자일 수도)로 보이는 선생님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있었다.
"꽃을 꺾으면 어떡해. 꽃이 아파하잖아. 가서 화단에 꽃을 놓고 이불 덮어주세요. 그리고 '꽃아 꽃아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오세요."

▲무언가를 꺾었을 때 '아플 수 있다'라고 상상할 줄 아는 여린 마음. 그런 감정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단단하게 지탱하게 해 주는 것 같다. ⓒ pexels관련사진보기
순간, 달콤함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 '꽃이 아프다', '이불을 덮어준다',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는 말. 이 얼마나 다정하고 예쁜 말인가. 그 안에는 누군가를 아끼고 상처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날의 일은 내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아스라한 기억이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 역시 그런 언어를 썼다.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주고, 풀잎에게 인사하고, 햇볕 아래 꿈틀대는 지렁이를 조심스레 옮기며 "괜찮아?"라고 속삭였다. 그때의 나는 말에 마음을 담았고 모든 생명에게 감정이 있다고 믿었기에 쉽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예쁜 말이 내 입에서 사라졌다. 대신 무심하고, 건조하고 때론 날 선 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사회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점 단단해져야 했고, 그 단단함은 나도 모르게 말투에, 시선에, 태도에 스며들었다.
다정한 말은 미숙함으로, 여린 마음은 약점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감정을 점점 감추게 되었고 그렇게 딱딱한 어른이 되어갔다. 어쩌다 마음속의 아이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근엄한 어른의 얼굴 뒤로 서둘러 감추면서.
그날 그 아이와 선생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건 (정의나 정책도 중요하지만) 바로 '예쁜 말' 아닐까.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다정함, 무언가를 꺾었을 때 '아플 수 있다'라고 상상할 줄 아는 여린 마음. 그런 감정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단단하게 지탱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뉴스에서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 보도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건, 바로 그런 말들이다. "꽃이 아파해", "미안해", "이불을 덮어줘야지" 같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예쁜 말.
어쩌면 아이보다 먼저 그런 말이 필요한 건 우리 어른들인지도 모르겠다. 예쁜 말은 단순한 표현이 예쁘다는 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마음의 온도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도 그런 다정함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그런 말을 건네야겠지. 오래도록 내 안에 꾹꾹 눌러두었던 '꽃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을 이제 다시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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