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신문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의 새 총리로 취임했다.
ⓒ 연합뉴스
영국이 시대 전환을 택했다. 지난 4일 총선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이 얻은 의석수는 412와 121. 2019년 총선과 비교했을 때 노동당이 214석 더 확보했고 보수당은 252석을 잃은 결과다. 노동당이 과반인 326석보다 무려 86석 많은 의석수를 얻으면서 양당의 차이가 세 배를 넘겼다.
이번 노동당 승리는 1997년 총선과 견주어진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이 418석을 얻었고 보수당은 165석을 얻었다. 수치상으로 유사하지만 두 선거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1997년 노동당의 승리는 미국 민주당과 함께 '제3의 길,' 즉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며 이루어졌다. 그에 비해 2024년의 노동당은 신자유주의를 정리 (혹은 전면 수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노동당 대표로 총리가 된 키어 스타머는 새로운 방향성 제시의 선두에 있다. 1962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검찰총장을 거쳐 2015년 하원 의원이 되었다. 2019년 총선 완패로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에서 물러난 후 2020년부터 노동당을 이끌었다. 당 대표 초기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초강세를 보였던 보궐 선거에서 대패하는 등 고전했지만 2024년 총선 승리로 정치적 비전을 구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스타머 총리가 제시한 변화는 지난 5일 첫 연설에서 드러났다.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다시(re)'였다. 재설정(reset), 재건(rebuild), 쇄신(renewal), 재발견(rediscovery), 회귀(return), 회복(restore) 등 여섯 차례에 걸쳐 나왔다. 스타머는 "영국의 쇄신"을 위해 "담대한 재설정"을 외쳤다. 여기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재발견"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정치를 공공 서비스로 복귀"시키고 "공공 서비스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벽돌 한장 한장" 쌓듯 사회를 재건하여 "공동체의 번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우리에 대한 재발견
공동체는 신자유주의에서 변방에 물러나 있던 개념이다. 198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선봉자였던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사회 같은 것은 없"고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다"며 개인을 내세웠다. 이 틀 안에서 공동체는 자유시장 내 개인들의 능력 실현과 무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쳤다. 공동체가 주는 안정성은 노동-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의 역동적이고 유동적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사회 기본 단위로서의 개인과 끊임없는 변화 속 경쟁에 대한 회의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지지했던 보수당에서 나왔다. 보수당 내 소수였던 이들은 2016년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통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코로나 정국에서 영국이 1차 봉쇄로 들어가던 2020년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사회 같은 게 정말 있다"며 코로나 위기를 전쟁에 빗대 거국적 차원에서 극복할 것을 호소했다
보수당이 개인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국가였다. 도량형을EU가입 이전, 즉 킬로그램, 킬로미터 같은 메트릭 시스템 대신 파운드, 마일 등 임페리얼 시스템으로 되돌렸다. 모든 공공기관에 국기를 게양했고 자국 역사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부심을 갖는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등 문화 전쟁에 적극성을 보였다. 유럽인권재판소와 영국 대법원의 불법 판결에도 불법 이주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허상이었다. 파티 게이트를 통해 보리스 존슨 총리 등 보수당 엘리트들이 사회적 존재를 강조했지만 자신들은 예외로 삼는 도덕적 위선을 보였다. 이후 초점을 경제로 돌려 강도 높은 친시장 경제정책을 내놓았지만 브렉시트로EU시장을 포기한 자기모순을 확연히 드러낼 뿐이었다. 그리고나서 르완다 정책 등 이주자 문제를 통해 자국 정체성을 구심점으로 삼으려 했지만 국제법과 국내법에 막혔다. 결국 보수당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재발견, 즉 신자유주의식 개인에 대한 대안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공공 영역의 회복
▲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서 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가 내각의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제시한 개인에 대한 사회적 대안은 공공 영역의 회복이다. 1980년대 보수당은 시장 중심의 사회를 지향하며 주요 산업을 민영화시켰고, 2010년 이후 보수당은 긴축 재정을 표방하며 공공 부문 예산을 대폭 삭감해 왔다. 스타머는 보수당 집권 14년을 "오랫동안 수백만 명이 불안정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외면했다"고 표현한 뒤 자신은 "정치를 공공 서비스를 위한 장으로 복구"시키겠다고 말했다.
스타머가 예고한 첫 주요 변화는 교도소였다. 긴축 재정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부문 중 하나로 영국 감옥의 최대 수용 인원이 8만 8956명인데 현재 수감 인원은 거의 꽉 찬 8만 7505명이다. 과도하게 밀집된 상황에 시설 낙후 등으로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지난 12일 샤바나 마무드 신임 법무장관은 "형무소 시스템이 붕괴 직전"이라며 응급조치로 약 8000명에서 1만 명을 9월 조기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사 대상은 위험도가 낮고 형량의 40% 이상을 채운 수감자다.
조만간 발표가 예상되는 분야는 에너지다. 에너지는 기후 변화 위기와 직결되어 있을뿐더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작스럽게 올라간 난방 고지서는 시민들의 생활을 압박하는 주요인이었다. 때문에 에너지는 안보의 한 영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기후 변화, 안보로서의 에너지 독립, 그리고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 타개하기 위해 스타머는 에너지 공기업(GreatBritishEnergy) 창설을 약속했다.
스타머 내각의 에너지 분야를 이끌 이는 에드 밀리밴드이다. 2000년대부터 기후 변화 정책을 이끌어온 그는 영국 정계 통틀어 자타공인 기후 변화 관련 최고 전문가다. 현재 영국 전역 주택 지붕에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 태양열 사용을 2030년까지 3배 늘리는 "지붕 혁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상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도 개혁 대상이다. 2차대전 이후 복지 국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시작된NHS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의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 대상 명단에서는 제외되었지만 2010년대 보수당의 긴축 재정 아래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스타머는 환자들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당 4만 건의 추가 병원 예약을 약속한 바 있다.
관건은 개혁을 위한 예산 확보와 경기 부양이다. 이것이 스타머 내각의 2인자로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된 레이철 리브스에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보수당 집권 14년의 경제 성적표를 출발점으로 삼아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그는 당분간 법인세나 부가가치세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대신 73억 파운드(13조 942억 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시장의 투자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당 스타머 내각의 본격적인 시작은 17일이다. 스타머 총리는 하원 개원 시 정부의 주요 방향과 정책을 국왕이 발표하는 국정연설(King'sspeech)에 35개의 개혁 법안을 포함시킬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권신영
결국은 '정권 심판'…민심이 등 돌린 결정적 이유는 이것이었다 [스프]
김혜영 기자2024. 7. 13. 09:03
[딥빽] 프랑스·영국 총선 결과에 담긴 함의는?
이번 총선 결과로 확인된 영국과 프랑스의 민심은 매서웠습니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14년간 장기 집권한 보수당의 의석수를 기존의 3분의 1로 줄이는 대신 제1야당이었던 노동당에 표를 몰아주며 변화를 택했습니다. 노동당은 5년 전 총선 때보다 무려 214석을 늘리며 하원 650개 의석 가운데 412석을 확보했고, 보수당은 창당 190년 만에 최악의 참패라는 냉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프랑스의 유권자들은 극우 성향의 강경 우파인 국민연합(RN)에 정권을 넘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중도 여당을 심판하는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하원 의석 577석 가운데 182석을 차지하며 1당에 올랐고, 국민연합(RN)은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앙상블(ENS)에 이어 3위로 밀려났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조기 총선 승부수가 일부 통하긴 했지만, 남은 3년의 임기 동안 과반 정당이 없는 안갯속 정국을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사회적 불안까지 가중된 건 프랑스와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닌데, 대체 각국의 국내 상황이 어떠했길래 이렇게 준엄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요?
살인적 물가에 공공의료 문제까지…'부글부글' 끓은 영국 민심
우선 영국의 경제 상황부터 살펴보면, 보수당이 집권한 14년간 크게 악화됐습니다. 브렉시트와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물가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영국 경제는 부진한 성장을 보였는데, 그 정도가 다른 주요 7개국(G7)에 비하면 꽤 심각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영국과 주요국의 2019년 4분기 대비 2024년 1분기의 경제 성장률을 비교한 표입니다. 주요 7개국 중에서도 영국은 1.7%로, 최하 수준으로 떨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국 서민층에게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된 것은 생활물가 급등이었습니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연 2.0%로, 정점이었던 11.1% (2022년 10월)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로 인해서 여전히 많은 서민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아래 그래프는 영국의 비영리 단체인 '트러셀 재단(The Trussell Trust) 푸드뱅크'가 배포한 응급식량 박스의 숫자입니다. 2021회계연도에는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2017회계연도부터 전반적으로 푸드뱅크가 배포하는 응급식량에 의존하는 인원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여론조사기관 YouGov가 2023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영국 성인 2,2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인데, 응답자의 4분의 1가량인 28%가 '생계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끼니를 거른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 조사기관은 2021년 인구 추정치를 적용해서 계산한다면, 영국 성인 147만 명이 생계 비용을 부담스러워해서 끼니를 거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강유덕ㅣ한국외대 LT학부 교수 (EU연구소장) 올해도 성장률이 0.5%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요.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지난 십몇 년 기간 중 제일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거고 물가 상승률이 높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식품 가격 상승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이렇게 민생이 어려우니까 현 정부에 대한 반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보면 2016년 브렉시트 결정하고 2021년 초에 영국이 EU에서 탈퇴를 하게 되는데, 장기적인 브렉시트의 후유증이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심도 악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 그래프는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5월 말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인데, 응답자의 73%가 영국의 현재 상태가 2010년보다 나쁘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악화됐다고 보는지를 나눠서 묻는 질문에는 생계 비용(85%)뿐 아니라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84%), 이민 제도(78%), 경제(78%), 주거(72%), 치안(71%)을 문제로 꼽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신화ㅣ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브렉시트 이후의 경제 혼란이 주요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인플레가 상승하고, 취직이 안 되고, 생활 위기가 되니까 아무래도 현 집권당 보수당한테 불만이 많겠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집권 보수당이) 와인 파티를 해서, 집권당에 대한 불신이 굉장히 커졌던 것 같아요.
결국 14년간 경제뿐 아니라 공공의료, 이민 제도, 주거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여긴 영국 유권자들이 기존 보수당 정부의 무력한 리더십과 대응 방식에 분노해 집권당을 심판한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경제 정책도, 이민 제도도 불만…프랑스 민심은 '변화'를 택했다
프랑스 총선 과정을 보면, 큰 틀에서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불만도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특히 1차에서 유권자들이 중도 성향의 집권 여당 대신, 국민연합(RN)에 표를 몰아준 건 정권 심판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재임에 성공해 7년째에 접어든 마크롱 정부에 대한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고, 이는 국민연합(RN)의 돌풍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신화ㅣ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높은 예산 적자랑 국가 부채 문제도 있었고, 또 역시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이 잘 안 돼서 힘든 부분들이 있었고요. 마크롱 정부가 재정 건전성 회복 굉장히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그게 경제적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던 것 같고요.
강유덕ㅣ한국외대 LT학부 교수 (EU연구소장) 영국하고 상황은 좀 다르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도 이민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에 있어서 경기 침체, 일자리 감소, 그다음에 고물가 현상으로 인한 민생 어려워진 것, 이런 것들이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EU(유럽연합) 27개국에 유입된 전체 난민의 40% 이상이 독일과 프랑스, 이 두 나라에 유입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독일과 프랑스에서 난민과 이민에 대해서 조금 더 민감한 정치적 환경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는데 극우 정당이 여기에 대해서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일종의 대안 세력으로서 점차 인정을 받게 된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기성 정당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그런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초 정점을 찍은 이후 1년 동안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취임 때 9%대였던 실업률이 7% 선으로 떨어지면서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 지표 일부는 좋아졌지만, 많은 프랑스 국민들, 약 82%의 국민들이 자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PEW RESEARCH CENTER가 2023년 2월부터 5월 사이에 각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최근 자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를 물은 전화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6%p가 더 낮긴 하지만, 특히 유럽 등 서방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인 82%를 기록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엄두를 못 낸 구조 개혁에 매달리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도 촉발한 바 있습니다.
오태현ㅣ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선임연구원 마크롱 같은 경우는 연금 수령 연령을 지금 62세에서 64세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이거에 대한 반대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좌파 연합 같은 경우는 이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오히려 연금 수령 연령을 60세로 다시 내리겠다고 얘기하고 있고 이렇게 다양한 경제 정책에 대해서 좌파 연합이 반대되는 의견을 들고 이번 총선에 나섰기 때문에... 좌파 연합이 제1당의 지위를 기록했다는 거는 결국 결과적으로는 마크롱의 입장에서, 마크롱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경제 정책, 개혁 정책에 대해서 프랑스 국민들이 굉장히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고, 좌파 연합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이 극우 성향의 강경 우파인 국민연합(RN)은 세금 감면, 복지 확대, 프랑스 경제 보호와 같은 우파보다는 좌파 기조에 가까운 '재정 확대'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세워 중산층과 노동 계층의 지지를 끌어올렸습니다. 반(反)이민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국가 안보, 국가 정체성 보호 명분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줄인 채 제3당으로까지 세를 확장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강유덕ㅣ한국외대 LT학부 교수 (EU연구소장)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시도하면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연령을 늦추려고 하고 있었는데, (국민연합(RN)은) '이거를 철회하자',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자'라는 걸 주장하고 있어요. 부유층과 금융 자산에 대해서는 과세를 강화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고요. 사실 좌파 정당의 주장하고 굉장히 비슷해요. 반면에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게 '이민자 자체를 통제해야 된다', 유럽연합 EU 체제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에요. 이걸 유럽 회의주의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유럽 회의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나 많은 사람들이 극우가 정권잡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EU 체제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이신화ㅣ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RN(국민연합)은 이민 제한, 국적법 변경, 국가 우선주의, 이중 국적 제한, 이런 정책을 내세워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거든요. 프랑스 시민을 우선적으로 대우하고, 외국인에 대한 혜택을 취업, 복지, 주택 지원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혜택을 축소하려고 한 거예요. 특정 국가의 이중 국적자에 대한 공직 제한을 주장하고요. 인종 차별, 배타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나치즘의 이념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나치'를 우려할 만한 내용이 아니냐는 오해면 오해, 우려면 우려를 받고 있다는 거죠. 특히 이중 국적 제한과 국가 우선주의는 나치즘이 인종 정책할 때 폈던 거랑 똑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 우리가 극우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올해 부쩍 극우 정당이 부상하는 이유는 단순한 인종 차별이나 백인 우월주의 때문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 경제 요인이 결합된, 그리고 청년들의 불안함, 불만 그런 것들이 모두 합쳐진, 종합 백화점처럼 나타난 결과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무능한 정치, 더는 못 참아"…영국 14년 만에 '좌파' 압승한 이유
송지유 기자2024. 7. 5. 15:02
망가진 경제, 악화된 의료, 살인적인 물가에 민심 폭발
영국 조기 총선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잇따른 스캔들 등으로 민심을 잃은 집권 보수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선거 결과를 맞았다. 사진은 4일(현지시간) 진행된 조기총선이 출구조사 결과를 띄운 BBC 전광판./AFPBBNews=뉴스1
영국 조기 총선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잇따른 스캔들 등으로 민심을 잃은 집권 보수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선거 결과를 맞았다. 2020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억눌렸던 민심이 대폭발하며 정권 심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AFP통신·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전날 영국에서 임기 5년의 하원의원 650명을 선출하는 조기총선을 실시한 결과 노동당이 410석으로 과반을 훨씬 웃도는 의석 확보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리시 수낵 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131석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이날 오전 6시50분(한국시간 오후 2시50분) 현재 총 650명 중 626명의 당선이 확정된 가운데 노동당은 405명, 보수당은 112명이 의석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67석,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나이절 패라지 대표가 이끄는 극우 영국개혁당은 4석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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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만을 기다렸다"…중도좌파 '노동당'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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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을 이끄는 리시 수낵 총리가 5일(현지시간) 자신의 지역구인 노스요크셔에서 총선 패배를 인정했다. /로이터=뉴스1
집권 보수당이 정권을 잃을 것이라는 경고는 현실이 됐다. 노동당이 400석 이상 확보할 것이라는 각종 여론조사 예측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보수당이 자유민주당에 밀려 제3당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일부 예측은 빗나갔지만, 집권당이 영국 의회 역사상 최저 의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오명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수낵 총리는 총선 패배를 인정하고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에 전화해 축하를 전달했다. 그는 "영국 국민이 냉정한 판단을 내렸고, 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했다"며 "나는 모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수낵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47.5%를 득표해 간신히 당선됐으나 보수당의 거물로 꼽히는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 등은 의석을 잃었다.
우파 정당이 약진하는 시기에 영국은 중도 좌파적인 정당으로 돌아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FT는 진단했다. 또 이번 선거로 영국 국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사건이라고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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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그렛" 외치는 영국인들…보수당 참패 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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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 스타머 대표는 노동당 역사상 일곱번째 총리가 될 예정이다. 이날 수낵 총리가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명하면 스타머 대표가 공식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AFPBBNews=뉴스1
영국 보수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는 브렉시트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공공의료서비스 악화, 불법 이민 급증 등 다양하다. 특히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 이후 큰 어려움을 겪었고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시 한번 타격을 입었다고 주요 외신들은 짚었다. 영국 현지에서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이른바 '브레그렛(Bregret·Brexit+regret)'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민심이 악화했다고 봤다.
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수낵 총리는 조기 총선을 선언하며 영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강조했지만 유권자들은 보수당의 경제 정책에 낙제점을 줬다. FT·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의 실질임금은 1970~2007년 두 자릿수 상승세를 지속했으나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대 들어 0%대에 그쳤다.
국가 재정을 수습하겠다며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한 것이 의료 등 공공서비스 악화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때 유럽에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자랑하던 영국에서 진료·수술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세금 부담은 계속 늘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에 따르면 현재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1948년 이후 76년 만에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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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기울어진 지지율…정권교체는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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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 스캔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재정정책 실책 등 앞선 행정부의 문제도 정권 심판론이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2021년 하반기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때부터 노동당이 우세하고 보수당이 밀리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진은 존슨 전 총리/AP=뉴시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 스캔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재정정책 실책 등 앞선 행정부의 문제도 정권 심판론이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2021년 하반기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때부터 노동당이 우세하고 보수당이 밀리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수당 인사와 당직자들이 조기총선 날짜를 두고 도박을 했다는 스캔들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됐다. 보수당이 다급하게 내세운 감세·반이민 정책 등 공약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고 FT는 짚었다.
한편 스타머 대표는 노동당 역사상 일곱 번째 총리가 될 예정이다. 이날 수낵 총리가 찰스 3세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명하면 스타머 대표가 공식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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