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동강난 경의선·동해선…손 안 대고 코 푼 유엔사
DJ정부 연결노력, 네오콘·유엔사 대놓고 훼방
'지뢰제거 방해' 연합뉴스 폭로로 한발 물러나
보수정권 들어서며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중단
문재인 정부 '개성공단 재개 약속' 이행 못해
북한이 15일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도로·철도를 폭파하고 17일 이 조치가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이 지난 7~8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한국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내용을 담아 헌법을 개정해 작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법적 제도화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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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헌법 "대한민국은 철저한 적대 국가"
'대한민국' '남부 국경' 같은 표현 눈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인민군 총참모부가 "남부 국경의 동·서부 지역에서 한국과 연결된 우리 측 구간의 도로와 철길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버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도 "강원도 고성군 감호리 일대의 도로와 철길 60m 구간과 개성시 판문구역 동내리 일대의 도로와 철길 60m 구간을 폭파의 방법으로 완전 폐쇄했다"며 "폐쇄된 남부 국경을 영구적으로 요새화하기 위한 우리의 조치들은 계속 취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와 적대 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으로 말미암아 예측 불능의 전쟁 접경에로 치닫고 있는 심각한 안보 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의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실행의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이 지시한 영토·영해·영공 조항 신설과 통일 관련 표현 삭제 등이 헌법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보도 내용을 보면 남한을 공식 명칭인 '대한민국', 남측 접경을 '남부 국경'이라고 표현해 남과 북이 '두 국가'임을 강조하려는 인상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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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폭파
우여곡절 끝 김대중 정부 말기에 연결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도 복원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그해 7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2002년 4월 임동원 국정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고 그해 9월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2002년 말에는 경의·동해선 임시도로가 완공됐고, 2003년 6월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MDL)에서 철도 연결식이 열렸다.
그러나 일련의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순탄하게 진행된 건 아니었다. 특히 DMZ와 MDL를 관통하는 경의선·동해선 육로를 이으려면 한국 전쟁 이후 남과 북이 50년간 뿌려 놓은 막대한 양의 지뢰를 제거하는 일이 최대 난제였다. 남북 군 당국은 그해 9월 17일 발효된 '남북 군사보장합의서'에 따라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했으나 막판에 DMZ 남쪽을 관할하는 유엔사가 남북 상호 검증단원들의 MDL 월선 문제를 놓고 '딴지'를 걸면서 마냥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때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이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2년 차인 2002년 11월이었다. 한 달 정도 후인 12월 19일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맞대결을 펼치는 제16대 대선이 예정돼 있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대중 정부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완료하지 못한 채 대북 강경 성향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된다면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연결 작업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매우 예민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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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동해선 도로 2002년 12월 연결
네오콘·유엔사 방해로 한때 무산 위기
남북정상회담 이후 탄력이 붙는 남북 화해·협력 흐름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존 볼튼을 포함한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2002년 9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까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자 급제동에 나섰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특사로 방북시켜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최대 외교적 치적인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북한도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핵 동결을 해제했으며, 2003년 1월 10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다시 선언했다. '제2차 북핵 위기'로 옮겨붙는 순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야 2002년 11월 유엔사의 '옷'을 입은 미군이 남북 간 막판 지뢰 제거 작업을 방해하며 시간만 끌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을 되짚어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가 드러난다. 만일 한두 달만 더 끌었으면 제2차 북핵 위기가 터지면서 자연히 지뢰 제거 작업은 중단되고 그에 따라 경의선·동해선 도로 연결 작업도 무산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이런 교묘한 유엔사(미군)의 '태업' 탓에 냉가슴만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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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제거 '유엔사 방해' 폭로한 연합 보도
유엔사, 반미 여론 확산 우려해 물러나
바로 이때 이런 사실을 폭로하면서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준 건 연합뉴스의 단독 보도(2002년 11월 13일. 'DMZ지뢰제거 유엔사 항의로 차질)였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들 의식해 다들 쉬쉬하고 있을 때 몇몇 '애국적' 정부 당국자들의 제보에 따른 보도였다. 연합뉴스는 그해 11월 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번 주중 완료가 예상됐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DMZ) 지뢰제거 작업이 남북 양측의 상호검증단 파견 절차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문제 제기로 막판 차질을 빚고 있다. 13일 관계당국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남북 양측 군 당국은 현재 군사분계선(MDL) 남·북쪽 100m 지점까지 근접, 쌍방 간 거리가 200m에 불과할 정도로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온 만큼 상대방 지뢰 제거 작업에 대한 상호검증을 위한 인원 파견에 원칙적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상호 검증단원들의 MDL 월선 문제를 놓고 유엔군사령부가 강력히 문제를 제기, 현재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추가 기사와 해설, 사설을 통해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대부분의 다른 주요 언론들이 합세하면서 마침내 유엔사가 물러났다. 당시 여중생 압사 사고를 저지른 미군 2명에 대한 무죄평결로 인해 반미 여론이 거세지던 상황에서 기름을 부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유엔사가 고집을 꺾으면서 DMZ 지뢰 제거 작업이 완료됐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02년 말 경의선과 동해선 임시도로가 연결됐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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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개성공단 보수 정권 때 중단
문재인 '개성공단 재개 약속' 이행 못해
그 이후 이 도로를 활용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기업의 인원·물류 이동이 이뤄졌다. 철도는 2007년 5월 시험 개통에 이어 2007년 12월 경의선 화물열차가 개통됐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11월 남북관계 경색으로 11개월 만에 중단됐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피격 사망을 계기로 중단된 이후 북한이 금강산 남측 자산 몰수하고 2019년 김정은의 지시로 남측 시설물을 철거했다. 2003년 6월 착공한 개성공단도 활발하게 가동되던 중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문제 삼은 박근혜 정부가 그해 2월 10일 일방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문재인-김정은의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지만,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눈치를 보며 과감하게 재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크게 실망한 북한은 2020년 6월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했다. 하지만,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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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엔사 '손도 안 대고 코 푼 격'
통일부 "퇴행 행태 북한 개탄스럽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강압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편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근 2년 반 동안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교류가 전면 중단되면서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철도는 제 기능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한반도 정세가 바뀌면 언젠가는 다시 활용되리라는 희망의 불씨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은 민족의 열망을 저버리고 그 불씨마저 꺼 버린 것이다.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폭파에 대해 15일 미 국무부는 "우리는 긴장을 완화할 것과 무력 충돌 위험을 키우는 어떤 행동도 중단할 것을 계속 북한에 촉구한다"고 말했지만, 22년 전 남북 도로 연결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내심 원하던 일이 이뤄진 셈이다.
결국 애초에 남북 간 경의선, 동해선의 도로·철도 연결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미국과 유엔사령부(UN Command)가 원했던 대로 돌아갔다. 그것도 북한이 제 손으로 폭파하도록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폭파에 따른 비난과 책임도 모두 북한으로 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미국과 유엔사는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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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도 규탄하고 나섰다. 통일부는 15일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4년 전 대북 전단을 이유로 남북 간 합의하에 1년 넘게 운영해왔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폭파했던 행태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퇴행적 행태를 반복하는 북한 모습에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되어 온 대표적 남북협력 사업으로 북한 요청에 의해 총 1억329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 방식의 자재 장비 제공을 통해 건설된 것"이라며 차관 상환 의무가 북한에 있다고 말했다.
말은 이렇지만, 사실상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거부해온 윤 정부로서도 북한이 제 손으로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폭파를 통해 남북의 혈맥을 끊은 것을 내심 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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