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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미국의 몽니…팔레스타인 유엔가입 거부권으로 봉쇄

by 무궁화9719 2024. 4. 19.

미국의 몽니…팔레스타인 유엔가입 거부권으로 봉쇄

 
  • 국제
  • 입력 2024.04.19 13:10
  • 수정 2024.04.19 15:40

안보리 이사국 중 반대 없자 결국 거부권 행사
미국 “‘두 개의 국가’ 찬성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승인은 중동평화 위한 모든 협상 뒤의 결과여야”
팔 “불공평하고 비윤리적이며 정당하지 못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원국 대표들이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에 대해 표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은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부결됐다. 2024.04.19. EPA 연합뉴스
 

팔레스타인에 유엔 회원국 자격을 부여하자는 결의안에 대한 18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투표에서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 이사국들 중 미국만이 반대해 결의안 채택이 무산됐다. 영국과 스위스는 기권해, 15개 전체 이사국 중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이 찬성했다.

 

12 이사국 찬성, 영국 스위스 기권

 

이날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안보리가 “팔레스타인 국가에게 유엔 회원국 자격을 인정”하자는 권고안에 대한 표결을 하기 전에 다른 국가들이 이에 반대해 미국이 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으나, 결국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을 무산시켰다.

 

투표 전에 미국 대표단이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고립을 완화하기 위해 한 두 개의 이사국들에게 기권하도록 설득하려 애썼다고 외교관들은 말했으나, (채택에 필요한 3분의 2 찬성을 막지 못하자) 미국관리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안보리는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부결됐다. 2024.04.19.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승인은 모든 협상 끝낸 뒤의 결과여야”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은 중동 평화 정착의 모든 측면들에 대한 협상을 한 뒤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두개의 국가 해결책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전적으로 믿는다. 우리는 이를 위한 가장 좋고 가장 지속 가능한 방법은 당사자들 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서 이뤄내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존 커비 전략소통 조정관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안보리는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부결됐다. 2024.04.19. AP 연합뉴스
 

팔 “불공평하고 비윤리적이며 정당하지 못하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의 거부권 행사가 “불공평하고 비윤리적이며 정당하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책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 왔다. 1993년 미국 주도 아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체결한 오슬로협정에서도 이 방안에 합의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커비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에서 민간인 보호를 위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2024.04.05. EPA 연합뉴스
 

미국, “‘두 개의 국가’ 찬성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오슬로협정 체결 30여년이 지나도록 미국은 합의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 입장만 견지한 채, 이스라엘이 찬성하지 않는 한 두 개의 국가안은 실행할 수 없다는 모순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두 개의 국가 승인을 위한 여건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는 한 오슬로협정은 실현될 수 없다는 주장은, 오슬로협정의 두 개의 국가 승인이 선결되거나 동시에 진행돼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평화공존을 위한 여건들이 갖춰질 수 있다는 주장과 대립된다.

 

유엔 주재 영국 특사 바버라 우드워드는 영국의 기권과 관련해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은 새로운 프로세스(평화공존 협상)의 시작이 아니라 그 프로세스의 끝에 와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가자지구의 긴급한 위기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여건 선결 뒤 승인 식의 해결방식은 이스라엘에 생존 자체를 의존하고 있는 절대적 약자 처지인 팔레스타인에게 매우 불리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금은 (각국이) 진정하고 긴장을 완화할 시기이며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2024.04.15. 로이터 연합뉴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두 개의 국가’안 실행 촉구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 2012년 UN 총회에서 부여받은 비회원 참관인(옵저버) 지위를 갖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정회원이 되려면 안보리와 총회의 3분의 2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의 긴장 고조로, 이스라엘과 완전히 독립적이고 실행 가능한 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 국가 사이의 지속적인 평화를 찾기 위한 선의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2개 국가 해결책을 향한 진전이 실패한다면 (중동)지역 내 수억 명 주민들의 불안정과 위험만 증가할 뿐이며, 그들은 계속해서 끊임없는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구호 접근 확대약속 성과 의문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또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의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약속은 제한적인 성과만 냈거나 전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한 분야에서의 명백한 진전이 다른 분야의 지연과 제한으로 자주 취소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이스라엘 당국이 더 많은 구호품 수송대의 통과를 승인하더라도, 당일에 물품을 전달하고 안전하게 귀환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이런 허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따라서 효과는 제한적이며 때로는 전혀 효과가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바탕 '외교 놀음'으로 끝난 바이든의 가자 결의안

 
  • 국제
  • 입력 2024.03.24 09:25
  • 수정 2024.03.27 15:54

‘즉각적 휴전’ 빼고, 이스라엘 두둔만…안보리서 부결
국정연설서 한껏 우려했던 민간인 피해 사실상 방관
"미국 대선 유권자들에게 ‘뼈다귀’ 던져주는 연극일 뿐"

가자지구 라파의 한 병원에서 지난 3일 갓 사망한 10살짜리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누워 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이의 직접적인 사인은 굶주림. 글로벌 긴급구호 단체들은 현재 세계적으로 아사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는 지역으로 가자지구와 아이티를 꼽았다. 수십 만 명이 식량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 2023.3.3.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라고? 미국 대통령은 종종 멋있는 말을 내놓는다. 일단 '출시'되면 각국 언론과 정치인이 이를 다투어 인용하면서 국제사회의 기준(normal)이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냉전의 정점이던 1983년, 공산당 정권의 에티오피아에 인도적 지원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명언이다. 1990년대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의 당위를 설명할 때도 자주 인용됐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명언은 더 많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대표 브랜드였던 '가치'들이다. 조 바이든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바이든은 지난 8일 국정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가자지구의 비극에 통탄하고, 안타까워하며, 해결을 다짐했다. "지난 5개월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이 속이 뒤틀리고 있다"고 개탄한 뒤 가자지구의 참상을 덤덤하게 전했다. 미국인 인질의 가족들에게 각별한 위로를 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6주간의 즉각적인 휴전'을 성립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마스의 인질 석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교환하는 내용도 담겼다면서 "인질을 집에 보내고 견딜 수 없는 인도적 위기를 완화하며, 더 지속적인 상황을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백주 대낮에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제노사이드에 공범은 될 수 없다"라고 외치며 군복 차림으로 분신한 현역 미 공군 사병(애런 부시넬)의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입장 전환의 신호로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를 뜻하는 하얀 주검들 정렬돼 있고, 그 위에는 꽃들이, 곁에는 촛불들이 놓여 있다. 이번  퍼포먼스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미국 지부가 주도했다. 펼침막에는 "바이든 당장 휴전하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2023. 11. 15  [AP=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는 거악(巨惡)과 소악(小惡)이 맞물려 지옥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10.7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1139명이 사망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253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포함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200만 명이 밀집해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지금까지 3만 2000여 명이 희생됐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무고한 민간인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군의 봉쇄로 인구의 절반이 극심한 굶주림에 처해 있다. 인명은 민족에 따라 다르지 않다. 유대인 한 명의 생명과 팔레스타인인 한 명의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피해 규모로 나누면 거악과 소악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성을 들어온 미국은 하마스 소탕이라는 이스라엘의 안보적 필요를 인정하며, 민간인 학살극에 눈을 감아왔다.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면 가끔 거악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극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제스처를 내보일 뿐이다. 재앙의 본질에 메스를 댈 의지는 보이지 않으면서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인 지원을 강조한다.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부상한 한 팔레스타인 아이를 라파의 알 나자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2024. 02. 24. [AP=연합뉴스]
 

바이든의 장엄한 연설 뒤 그동안 가자 전쟁의 즉각적인 휴전을 강제하는 결의안에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던 미국은 안보리에 문제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일 중동 방문 중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고통을 겪는 민간인들을 반드시 우선순위로 다뤄야 한다"면서 결의를 내보였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민간인의 고통을 등가로 말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이 공개된 미국의 결의안은 온통 '소악'과의 전쟁 또는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22일 안보리 표결에서 러시아와 중국, 알제리가 반대하고 가이아나가 기권표를 던진 까닭이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결의안의 핵심은 강제권이다.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거나, 한국전쟁 때처럼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의 초안은 휴전을 '지지'하고, 인도적 구호를 '요구'하며,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는 데 그쳤다. 이스라엘군의 비인도적인 공격을 중단토록 강제하는 핵심이 빠졌다. '요구(demand)'는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바이든의 국정연설 이후 온갖 생색을 내더니 결국 이스라엘의 '거악'을 외면하고, 하마스의 '소악'에만 주의를 환기시켰다. 민간인 제노사이드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목도 없었다. 그러고는 거부권을 행사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비난에 집중했다. 오죽하면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가 "거짓된 휴전 요구로 미국 유권자들에게 '뼈다귀'를 던져주는 연극일 뿐"이라고 일축했겠나. 결의안 제출이 도널드 트럼프에 지지도가 밀리는 상황에서 부시넬의 분신과 일부 민주당 지지층의 분노를 다독이기 위해 내놓은 정치적 제스처임을 꼬집었다.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미국 유대인 단체 네투레이 카르타(Neturei Karta)의 뉴욕 지부 회원들이 26일 전통복장을 한 채 전날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한 애런 부시넬을 추모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4.2.2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은 그동안 유지해 온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했을 뿐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 강제 소개령을 취소하고,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한 지난해 10월 16일 러시아 제출 결의안에 반대했고, 아랍에미리트(UAE)가 12월 제출한 '인도주의적 즉각 휴전 결의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미국이 유일하게 제동을 걸었다. 하긴 바이든 행정부의 예외적인 결정도 아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 강점과 군사행동, 팔레스타인 국가 불인정 등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의 결의안 36개 중 3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바이든은 국정연설에서 미국 하원에 계류된 600억 달러 상당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무기 지원 예산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예산안 통과를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미국이 세계 리더십에서 떨어져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의 국제적 통솔력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바로 가자지구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참극을 이어가는 이스라엘의을 두둔하면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지위는 형편 없이 추락하고 있다. 맞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지금도 유효한 명제다. 그러나 굶어 죽고, 폭탄에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더 더욱 정치를 모른다. 미국이 글로벌 리더라는 주장이 갈수록 ‘농담’이 되어 간다. 

가자 학살 비판을 ‘반유대’ 선동으로 모는 “이상한 미국”

 
  • 국제
  • 입력 2024.03.05 16:05
  • 수정 2024.03.07 06:31

배경에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
바이든 친이스라엘 단체 정치헌금 최대 수령자
과거사 비판을 ‘반일’로 모는 일본 보수우파
영화 ‘파묘’ 문법으로 보면 미일 주류시각 동일

2월 29일 가자 북부에서 인도지원 물자를 실은 트럭들에 몰려 든 팔레스타인 주민들. 1백여 명이 숨진 참사가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처.  2024.2.29. AP 연합뉴스
 

“미국이 이상하다”고 미마키 세이코 일본 도시샤대 대학원 교수(국제정치)는 말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그것은 제노사이드가 아니라며, 제노사이드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문책하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오히려 “유대인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부추기는 악의적 선동이라 되몰아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민주 공화 양당 모두)와 언론계, 종교계를 비롯해 미국사회 전체를 그런 분위기가 뒤덮고 있다고 미마키 교수는 지적했다.

 

2차대전 독일 공습 때보다 심한 가자 참상

 

“미국은 늘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지금 미국사회에 만연한 이런 독선적이고 맹목적인 친이스라엘 반팔레스타인 분위기는 유별나고 위험하다. 여론이나 국제사회의 표결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듯이 이는 세계 대다수 국가 및 인구의 정서와도 명백히 배치된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뒤 이스라엘군의 보복공격으로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숨졌다. 그 중 3분의 1 이상이 어린이들이다. 약 6개월 간 3만 명 넘게 죽임을 당했다면, 날수로 따져 단순계산을 하면, 평균 하루 약 170명씩 희생당했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마키 교수는 이런 참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을 공습했을 때보다 더 심하다는 보도도 인용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무기를 지니지 않은 민간인들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격멸”을 이유로 무저항의 민간인들 주거지를 향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들은 하마스만을 겨냥한다며 자신들의 공격이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희생자 3만여명의 거의 모두는 하마스 무장대원이 아니다. 미마키 교수의 지적대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가 짙다.

 

2월 29일 처음으로 가자 북부지역에 대규모 인도지원 구호품을 실은 트럭들이 가자 시에 들어서자 수많은 주민들이 그것을 에워싸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처. 2024.2.29. AP 연합뉴스
 

가자 제노사이드 비판을  '반유대'로 모는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런 팔레스타인 주민 참상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눈을 감았다. 지난 2월 29일 가자에서 인도지원 물품을 실은 구호트럭 대열에 몰려든 굶주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해 이스라엘군 호송대가 발포해 1백여명이 숨져 국제여론이 들끓을 때까지는 그랬다. 아직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고 있는 그 참상이 벌어진 뒤 바이든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참상을 거론하면서 동정을 표하고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인도물자 공중 투하를 결정했다. 질질 끌던 6주간의 휴전 협상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군의 가자 주민 학살은 제노사이드가 아니며,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유대인 학살을 선동하는 것이라는 `미국 정계와 언론계, 종교계 주류의 생각에는 미동도 없어 보인다.

 

과거사 비판을 ‘반일’로 모는 일본 보수우파

 

미마키 교수는 전쟁 100일이 지난 1월 29일 <아사히신문>에 이런 미국사회의 문제와 그 배경을 파헤치는 글을 기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왜 그런 식으로 처신할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까?

 

이런 ‘미국문제’를 정면에서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일본 주류언론의 사정은 어쩌면 이웃 한국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배상문제 등 침략과 식민지배 청산에 관한 일본 미디어들의 보도태도를 보면, 이는 전면적이기보다는 선택적이다. 주류 미디어들을 포함한 일본언론은 과거사 청산을 거부하거나 미온적인 자국의 주류 지배세력에 대한 한국 등 외부의 비판을 ‘반일’로 몰아간다.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 제노사이드에 대한 비판을 반이스라엘 내지 반유대인 선동으로 몰아가는 미국사회와 닮은 꼴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를 덮어 다른 문제로 위장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회피하는 점에서 둘은 매우 닮았다.

 

2월 29일 이스라엘군이 호송한 가자 시 인도지원 구호품 차량대열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 모습. 이스라엘 군대가 공개한 유인물 비디오에서 캡처. 가자 지구 보건부는 이날 군중이 구호 트럭을 향해 돌진했을 때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해 11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2024.2.29. AFP 연합뉴스
 

영화 ‘파묘’ 문법으로 보면 미일 주류시각은 동일

 

오컬트 영화 ‘파묘’적 문법으로 ‘한일문제’를 보면, 그것은 무당 화림이 얘기한 ‘고요한 땅’과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면서 그 땅을 차지하려는 침략자 군국일본 간의, 임진왜란과 근대의 식민지배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돼 온 오랜 대결이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 무와 문, 야만과 문명의 대결이며 침략자와 저항세력의 충돌이다. ‘파묘’를 일본 보수우파들은 또 ‘반일’영화로 낙인찍고 문제의 근본을 직시하길 거부하면서 그 해결을 회피하려 할지 모르지만, 정작 파묘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침략과 식민지배와 제노사이드의 과거 군국 일본과 결별을 고해야 하는 것은 일본 자신이이어야 한다. 그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그런 과거사 청산의 짐까지 일본은 허구적인 ‘반일’을 앞세워 그 피해자인 한국 민중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국의 문제가 더 고질적인 이유는 한국의 보수우파 주류세력이 그런 일본 보수우파의 전략에 동조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철저히 ‘친일’적이다.

 

일본 주류언론의 비판은 더 심각한 자신들의 과거사는 피해간다는 점에서, 바이든의 가자지구 제노사이드 참상에 대한 공감이 선택적이듯 매우 ‘선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마키 교수의 미국사회 비판은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미마키 교수의 기고문 전문을 번역해서 붙인다.

 

주로 후티 지지자로 구성된 시위대가 2024년 3월 1일 예멘 사나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다. 2024.3.1 로이터 연합뉴스
 

제노사이드 부정, 이스라엘 비판 불허하는 미국의 특이성에 대한 독해

 

가자에서 (지금) 자행되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아닌가. 국제사회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가자를 거점으로 한 이슬람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감행해 이스라엘 시민 1200명이 희생되고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 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이 ‘자위’를 위한 조치로 가자 전역에서 전개해 온 군사행동은, 1월 14일로 100일을 맞았다.

 

가자 보건당국에 따르면, 주민의 희생은 지금 2만 5천 명(3월 초 현재 3만 명)을 넘었고, 그 중 1만 명 이상이 어린이들이다. AP통신에 따르면,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괴는 2012년부터 2016년에 걸쳐 시리아 아레포에서 일어난 파괴,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파괴,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의 독일 공습 이상의 격심한 파괴라고 한다.

 

12월 말, 남아프리카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제노사이드 조약이 정한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하지만 이 남아프리카의 제소에 대해 미국은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정면으로 부정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유대인 대량학살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죄를 문책하려는 쪽이야말로 ‘제노사이드’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규탄까지 하고 있다.

 

미국이 얼마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에 냉담한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 하마스의 기습공격 100일째를 맞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이다. 성명에는 하마스에 구금당한 (이스라엘인) 인질들에 대한 언급만 있고,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 희생이 약 2만 4천 명에 이른 것, 가자에서 하루에 10명 꼴로 팔 다리를 절단당한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주민의 90%가 강제이주 상태에 있는 것, 그리고 40% 이상이 위기적인 기아상태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언급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가자에서의 이스라엘 군사행동이 법적인 의미에서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앞으로 신중하게 논의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단기간에 가자에서는 인구의 1%가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어린이들도 그만큼 희생당하고 있으며, 지원물자 반입 제한으로 조직적인 기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제노사이드’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것이 ‘자위’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될 수는 없다. 바이든 정권은 이 사실에 대해 계속 눈을 감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 군사작전과 관련해 피난민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2024.02.13. EPA 연합뉴스
 

팔레스타인계 의원에게 “하마스의 공범자”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한 비판을 압살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는 사람은 “반유대주의자”로 비판받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제노사이드를 선동하고 있다”고 규탄당하기까지 한다.

 

미국의 언론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 의회 유일의 팔레스타인계 의원 라시다 탈리브 하원의원(민주당)이 받아 온 무수한 중상비방과 공격이다. 예전부터 이스라엘이 가자나 요르단강 서안에서 자행해 온 것은 일찍이 남아프리카의 백인정권이 흑인에게 강제한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인종차별)와 같은 것이라며,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해 온 탈리브는 이번에도 일찌감치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행동을 비판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해 왔다. 그런데 이 때문에 탈리브에게는 “하마스의 공범자”라는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의회는 그런 탈리브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에 대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왔다. 지난해 11월 하원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를 추구하는 부적절한 언동이었다”며 그런 탈리브에 대한 문책 결의안이 제출돼 찬성 다수로 가결됐다. 특히 문제시된 것이 탈리브가 휴전을 요구하며 SNS에 투고한 동영상에 “강에서 바다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한 점이다.

 

이 “강에서 바다까지” 구호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지중해까지의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해방돼 자유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현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널리 회자돼 온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은 이 구호가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를 의도하는 것이라며, 그런 동영상을 투고한 이상 탈리브에게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규탄했다.

 

탈리브는 자신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주민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인권, 평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일 뿐이라고 거듭 설명했으나, 그녀에 대한 문책 결의안은 민주당 의원들까지 다수가 찬성해 가결됐다.

 

미국의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회원들이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맨해튼 방문을 앞두고, 이곳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근처에서 "우리 이름을 팔지 말라"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잠시 근처 5번가 도로를 점거했다. 2024.02.08. AFP 연합뉴스
 

다양성과 관용의 한계 드러내

 

(미국에서는) 팔레스타인계의 젊은 여성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활발하게 정책을 논의할 수 있다. 탈리브의 존재는 미국의 다양성과 관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자 위기사태를 맞아 휴전을 촉구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한 탈리브를 향한 수많은 중상비방은 미국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의 한계를 드러낸다.

 

미국에서 팔레스타인계 여성 의원의 존재는 확실하게 인정받고 존중받지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는다. “이스라엘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는 언동을 하면 아무리 정론이라도 허용될 수 없다. 오히려 정곡을 찌른 이스라엘 비판일수록 더욱 ‘반유대주의’로 매도당한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언론상황이다.

 

12월에는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에서 ‘대학 캠퍼스 내의 반유대주의’에 관한 공청회가 열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세 사람이 소환됐다.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앞세우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과 점령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여 온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3명의 총장들은 ‘대학 캠퍼스 내의 반유대주의’의 대두를 용인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회 안팎에서 맹렬한 비판을 받고 2명이 사임했다. 미국의 정치사회에서는 가자에서의 대량학살은 직시하지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유대인 학살 선동자’로 비판하며 입을 닫게 만드는 이상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리면,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옹호하는 미국의 입장은 점점 더 소수파로 전락하고 있다.

 

12월, 유엔 총회 긴급회의는 가자 즉각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153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10개국 뿐이었다.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죄로 문책하는 남아프리카의 제소에 대한 찬동도 121개국이 참여하는 비동맹 국가들을 포함해서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연간 38억 달러의 군사지원을 해 왔고, 다시 14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추가지원까지 검토하고 있는 미국을 ‘제노사이드 가담자’로 보는 움직임도 국제사회에 확실히 퍼져 가고 있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 2인자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가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미치 매코널 미 상원 원내대표를 만난 뒤 국회의사당을 나오고 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간츠 대표의 미국 방문이 정부 승인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불편해하고 있다. 2024.03.05. EPA 연합뉴스
 

미국 최강의 로비단체

 

그럼에도 왜 많은 미국 국회의원들이 휴전에 반대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한 비판조차 하지 못할까. 여기에서 ‘이스라엘 로비’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에 유리한 정책을 미국이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부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으고, 그 자금력으로 여러 가지 공작을 하는 단체가 있다.

 

이런 단체가 반드시 미국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유대계만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기독교 복음파도 활발한 친이스라엘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복음파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유대인에게 주었다고 믿고,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미국 최강의 로비단체로도 불리는 것이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다. 풍부한 자금력을 활용해 오랜 기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의원들과의 관계를 구축했고, 이번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격에서도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옹호해 왔다. 탈리브 등 휴전을 주장하는 의원들에게는 “테러 옹호” “하마스의 공범자”라는 딱지를 붙여 철저히 공격했다. 최근에는 미시간 주 선출 탈리브를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자며 유력 후보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의회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해 온 소수 의원들 중에 AOC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뉴욕 주, 민주당)이 있는데, 그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고, 소액 헌금으로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확고한 지지층을 지니고, 자금면에서 독립성을 확보함으로써 이스라엘 로비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의원만이 솔직하게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있는 이상한 상황이 돼 있다.

 

“미국정치가 이스라엘 로비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은 극단적 주장이지만, 가자 위기사태를 통해 로비단체나 부유층이 돈의 힘으로 불균등하게(합당한 그들의 대표성 이상으로) 큰 목소리를 내는 미국정치의 왜곡된 모습이 드러난 것은 분명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주민들이 4일(현지시간) 이곳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단에서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 검문소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에서 난민들이 대거 몰려올 것을 우려해 검문소를 열지 않고 있다. 2024.02.04. AFP 연합뉴스
 

바이든의 선택적 공감

 

“나는 차별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타인의 고통을 아는 인간이다”라며 ‘공감형’ 대통령임을 어필해 온 바이든이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와 대조적으로, 바이든은 유대인들에 대한 공감은 감추지 않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가톨릭 교도 부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존경심이 싹텄다. 자녀들은 유대인과 결혼해 유대인 손주가 있다. 바이든은 모든 자녀들과 손주에게 14세가 됐을 때 독일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방문하도록 했다고 한다. (나치 독일 때) 유대인의 강제수용뿐만 아니라 인체실험 등도 자행됐던 곳이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상기하며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만일 유대인의 목숨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인종차별이다.

 

정치자금 움직임을 조사하는 비영리단체 ‘오픈 시크릿’에 따르면, 오래 의원생활을 한 바이든은 지금까지 정치헌금을 받아 배분하는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 정치행동위원회)를 통해 친이스라엘 단체로부터 430만 달러 이상을 받은 최대의 수령자라고 한다.

"병 주고 약 주는 미국" 살인무기 공급·가자 구호품 투하

 
  • 국제
  • 입력 2024.03.05 01:30
  • 수정 2024.03.05 08:37

29일 가자 ‘참사’ 뒤 이례적 구호품 공중 투하
미시간 예비선거서 유권자 분노표출 뒤 조처
발포냐 압사냐, 엇갈리는 참사 진상규명 공방
가자 주민 4분의 1인 57만여 명이 기아상태
그럼에도 안보리 ‘깊은 우려’ 성명 채택엔 반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 중단과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2번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고, 앞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인도적 차원에서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4.02.23. 로이터 연합뉴스
 

“인명 손실에는 가슴이 아프다. 무고한 사람들이 참혹한 전쟁에 휘말려 가족들을 먹이지도 못한 채 지원을 받으려고 필사적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며, 그렇게 할 것이다.” “가자에 반입되는 지원품은 도저히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몇 대가 아니라 수백대의 트럭을 투입해야 한다. 나는 방관하지 않겠다.” “조만간 우리는 요르단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함께 우크라이나(‘가자’를 잘못 발언)에 구호품을 (항공기로) 투하하는데 동참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백악관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참상에 대해 이토록 큰 관심을 나타내며 지원조치까지 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의 지원물자 공중 투하, “병 주고 약 주나?”

 

그 하루 전인 2월 29일 가자 시에서 38대의 트럭에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 물품을 싣고 가던 구호품 차량행렬에 몰려든 수백명의 굶주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전차로 차량들을 호송하던 이스라엘군의 총격 속에 1백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사망자가 적어도 115명이고 부상자는 수백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줄곧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격을 지원하면서 이로 인해 3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사망한 참상을 외면해 온 미국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의식했음이 분명한 바이든의 이런 발언에 대해 국제 비정부기구(NGO) 옥스팜의 인도주의정책 고문 스코트 폴은 X(예전의 트위터)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행위와 기아를 (미국정부가) 조장하고 있다. 미국 고위관리가 양심의 가책을 덜고 싶어서 한 말일 뿐이다. 안전한 (지원물자) 배급계획도 없이 (공중) 투하를 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정작 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고, 휴전교섭과 인질석방에 힘을 쏟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마디로, 병 주고 약 주는 짓 그만두라는 얘기다.

 

미국정부는 2일 식품 3만 8천 명분을 포함한 지원물자를 항공기에 실어 공중에서 투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 뒤 기자들과의 문답 과정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를 기억하지 못해 한 동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2024.02.07. EPA 연합뉴스
 

대선 경합주인 미시간 주 유권자들 동향 때문?

 

<가디언>은 2일, 바이든 정부가 이처럼 전례없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동정하며 지원 조치를 취하고, 질질 끌던 휴전협상이 진전을 보게 된 변화가 그 며칠 전 미시간 주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예비선거에서 바이든 정부의 신통찮은 이-팔 분쟁 위기 대처 능력에 10만 유권자들이 분노를 표시한 지 며칠 뒤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는 11월의 대선 때 바이든이냐 트럼프냐를 좌우할 경합주(swing state)들 가운데 하나인 미시간 주의 유권자들 지지 동향에 바이든 대통령이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참사는 전쟁이 부른 폭력행위

 

바이든 비판자들은 그가 이스라엘에 대한 핵심적인 무기 공급이자 가장 중요한 동맹인 미국의 막강한 지위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주민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막고 그들에 대한 인도지원을 증대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은 “이스라엘군 발포 때문인지, (과잉밀집한) 군중사고인지, 트럭에 깔린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는 모두 분쟁(전쟁)이 초래한 폭력행위”라고 말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9일 카리브해의 방문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에서 “독립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나는 몇 개월 전부터 가자에서의 인도적 휴전과 인질의 즉각 무조건 석방을 주장해 왔다. 지금까지 유엔 안보리는 이런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회원들이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맨해튼 방문을 앞두고, 이곳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근처에서 "우리 이름을 팔지 말라"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잠시 근처 5번가 도로를 점거했다. 2024.02.08. AFP 연합뉴스
 

미국 이번에도 안보리 성명 채택 반대

 

이번 참사 직후에도 유엔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일제리의 요청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1시간 이상 이 사태를 비공개로 논의했으나, 상임 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서 하나도 채택하지 못했다. 성명서는 내용 표현을 두고 난항을 겪은 끝에 표결에 들어가 15개 이사국 가운데 14개국이 성명서 채택에 찬성했으나 미국은 이번에도 사태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반대했다.

 

매튜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참사가 일어난 날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가정보를 긴급하게 수집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가자지구 전역에서 안전하고 확실하게 지원이 전달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깊은 우려’ 표명 정도의 성명서 채택조차 미국은 이스라엘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며 사실상 막고 있다.

 

이스라엘이 5일(현지시간) 새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의 거점도시 칸 유니스를 맹폭해 거대한 포연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면서 가자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2024.02.05. AFP 연합뉴스
 

가자 주민 4분의 1인 57만여 명이 기아상태

 

유럽연합과 유엔의 발표문들을 보면, 이번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미국의 주장대로 설사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스라엘 쪽의 끊임없는 공격과 과도한 인도지원 통로 제한과 규제로 극도의 공포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공황상태가 그 배경에 깔려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총격이 의도적이었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결과였든, 단순한 사고였든 결국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공포와 굶주림으로 몰아간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격과 제재가 비극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 해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연일 계속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4.02.26. AP 연합뉴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가자지구 230만 명의 인구 가운데 4분의 1인 57만 6천여 명이 기아 일보 직전”의 극한상태에 있다면서, 이대로 갈 경우 5월까지 가자 북부의 농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전문가들 견해를 전했다.

 

가자로의 물자 반입 트럭은 지난해 10월의 전쟁 시작 전에는 하루 500대 정도였으나 지금은 격감해 일시적인 휴전기간을 빼고는 하루 50대 안팎(2월)으로 10분의 1로 줄었다. 최후의 피난처로 알려진 남부 라파는 전투가 격화되면서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물자반입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대신 가자 동부지역 검문가 반입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나 단속적으로 폐쇄되기도 해 원래 적었던 반입량이 더욱 격감했다.

 

이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하루 하루 마시는 물과 음식물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기아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정심을 잃고 물자를 서로 빼앗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29일 지원물자 수송 차량들이 나타나자 굶주린 주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든 통제 불능상태가 이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민들이 미국 내 친(親)이스라엘 단체인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학살을 부추기고 있다며 AIPAC 꾸러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이-팔 전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4.02.23. 로이터 연합뉴스
 

아이들 90%가 감염증, 영양실조 6명 중 1명

 

생활을 거의 전적으로 유엔이나 자원봉사단체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실 것을 구하기 위해 먹을 것이 있는 곳에 일상적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설사 음식을 구한다 해도 그 양은 빈약하다. 시장에 물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은 가난한 주민들에겐 너무 비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의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유엔 주재 알제리 대사는 “5살 미만의 아이들 중 적어도 90%가 하나 이상의 감염증(전염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BBC는 영국 자선단체 ‘액션 에이드’의 발표를 인용해 가자 북부지역에서 많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2살 미만 유아들은 6명에 1명 꼴로 영양실조로 쇠약한 상태이며, 이는 (전쟁 시작 이후) “최근 3개월 간 일어난 일로,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영양상태가 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액션 에이드는 밝혔다.(<아사히신문> 3월 1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룰라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브라질 대통령실 제공] 2024.02.19. AFP 연합뉴스
 

참사 충격 속에 휴전 협상에 진전

 

이번 참사 충격 때문인지 계속되는 공격과 주민 희생에도 질질 끌기만 하던 휴전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보도는 휴전협상에 개입해 온 미국정부가 2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교섭에서 이스라엘 쪽이 휴전 조건을 잠정적으로 수락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했다.

 

양쪽 협상 당사자들은 그 동안 이슬람의 라마단(금식)이 시작되는 10일이나 11일 전에, 하마스의 이스라엘인 인질 40명과 이스라엘이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인 400명 맞교환 형식의 석방 등을 골자로 한 6주간의 휴전에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하마스 쪽이 이를 받아들일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마스쪽은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인도지원 강화와 함께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면 철수를 주장해 왔다. 그런 조건만 충족되면 “24~48시간 안에” 합의할 수 있다고 하마스 대변인은 말했다.

 

이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줄곧 하마스를 완전히 분쇄하고 모든 인질들이 석방되기 전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줄곧 말해 왔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해 집은 떠나 남쪽으로 피신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5일(현지시간) 라파의 공동묘지에 앉아 있다. 뒤로는 난민들이 임시로 기거하기 위해 만든 텐트가 설치돼 있다. 2024.02.06. 로이터 연합뉴스
 

협상 중임에도 공습으로 주민 하루 90명 사망

 

협상 중임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있고 2일 하루에만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90여 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가디언>은 가자지구 보건부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들 중에는 밤중에 잠자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몰사한 일가족 14명도 포함돼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3일 베이트 라히야의 카말 아드완 병원에서 어린이 16명이 영양실조와 탈수로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이-팔 전쟁에서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주민 3만 명 이상이 이스라엘군의 보복공격으로 사망했고, 전체 주민 230만 명의 85% 이상이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으며, 가자지구 인프라의 절반 이상이 파괴됐다고 유엔과 가자지구 보건부는 밝혔다. 이스라엘 쪽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죽고 250명이 인질로 붙잡혀 갔다고 밝히고 있다.

 

발포냐 압사냐, 엇갈리는 참사 진상규명 공방

 

29일의 참사 경위를 놓고 양쪽은 여전히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쪽은 사상자들 대부분이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으나, 이스라엘 쪽은 경고사격만 했다며 사망자들은 과잉밀집으로 그들끼리 압사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군 다니엘 하가리 대변인은 29일 이스라엘군이 가자 북부지역 주민들에게 지원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민간업자 트럭 38대로 수송대를 꾸려 정해진 통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한 뒤 5분이 지난 이날 오전 4시 45분께 “잠복해 있던 폭도들”이 트럭들을 멈춰 세웠고, 그 순간 주민들이 달려들면서 약탈사태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송대를 호송하던 전차가 안전을 확보하기 몰려드는 주민들을 쫓아내려고 몇 발의 경고사격을 했으나 수천명이 계속 몰려들자 전차부대 대장이 철수를 결정했다며, 주민들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며 분신 시위를 벌이다 사망한 미 공군 병사를 추모하는 시위대가 모여 있다. 이날 워싱턴 DC 광역경찰국은 분신 시위를 벌인 텍사스주 출신 공군 병사 에런 부슈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024.02.27. 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발포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주민들의 증언은 달랐다.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사건발생 때로 보이는 영상을 내보냈는데, 어둠 속에서 총성과 예광탄 불빛이 뒤섞인 장면과 날이 밝으면서 많은 희생자들이 땅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현장의 주민은 “우리가 트럭에 다가가자 이스라엘군 전차가 발포했다. 함정인 것 같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지원물자 따위 필요없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병원 의사가 “사상자들은 총탄이나 포탄 파편을 맞았다”고 한 말을 전했고, BBC는 혼란 속에서 달려가던 트럭에 많은 사람들이 깔렸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만수르는 29일 뉴욕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군이 갑자기 발포하고 총격을 가했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로는 수십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공중을 향해 발포한 게 아니다. 의도적으로 겨냥해서 죽였다”고 주장했다.

 

유엔 인도지원업무조정국(OCHA)의 팔레스타인 사무소는 지난 1일 이번 사태가 “국제법 위반의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전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지난 1월 중순에서 2월까지 인도지원물자를 찾아 몰려드는 주민들을 공격해 사상자를 낸 유사한 사건이 적어도 14건이나 발생했다.

 

미국, 진상규명부터하라며 이스라엘 두둔

 

유엔과 유럽연합(EU) 쪽은 대체로 팔레스타인 쪽 주장을 지지하며 진상을 밝히라고 이스라엘 쪽에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이스라엘 쪽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대외관계청(EEAS)은 2일(현지시각)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담당 대표 명의의 성명을 통해 “어떤 경우든 국제법 규정을 준수하고 민간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분배를 보호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책임”이라고 지적하며 비판했다. EEAS는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군의 (과도한) 제재와 인도적 지원 제공을 막으려는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의 방해” 때문에 일어났다며 “인도적 지원을 위해 가자에 진입하는 것을 제한한 것이 식량 부족, 기아, 질병뿐만 아니라 폭력을 초래하는 절망감 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인도적 지원 진입과 검문소 개방을 막는 제재를 규탄한다”며 검문소 및 항구를 개방하라고 촉구하고, 요르단 쪽으로 이어지는 인도주의 통로 이용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왼쪽)이 2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장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알사니 국왕은 가자지구 휴전과 인질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2024.02.28.. AFP 연합뉴스
 

세계 대다수 여론은 미국 반대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X를 통해 “시민(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된 것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며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군의 소행임을 단정적으로 얘기했다. 튀르키예 외교부도 29일 성명을 내 “이스라엘이 또 한 번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무고한 주민을 겨냥하며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X를 통해 “휴전교섭 노력을 강화해서 휴전과 인질석방 조건을 (빨리)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한 세계의 대다수 국가와 인구는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며 즉각 휴전과 인도지원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확실히 미국 반대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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