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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홍범도 깎아내고 이승만 띄우고…3·1절에 ‘만주군’ 박정희까지

by 무궁화9719 2024. 3. 2.

홍범도 깎아내고 이승만 띄우고…3·1절에 ‘만주군’ 박정희까지

윤석열 대통령 3·1절 기념사…흡수통일식 주장도

기자권혁철
  • 수정 2024-03-02 01:13
  • 등록 2024-03-01 20:23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에서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역사를 독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의 확장이 통일”이라며 국경일 행사 연설에선 처음으로 통일을 본격적으로 언급했다.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띄우는 한편, ‘자유를 확대’하는 통일로 독립운동 정신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흡수통일에 치우친 주장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무장독립운동과 외교독립운동,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을 열거하면서 “저는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의 언급은 원론적이었지만, 이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배경 설명은 노골적이었다. 이 관계자는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그동안 과도하게 무장독립투쟁이 강조돼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제 치하에서 문학가도 있고, 교육가도 있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무장독립운동을 양성하고 키운,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가들도, 예술가들도 있다”며 “일제에 저항해서 무슨 무기를 들고 무장투쟁한 사람만 우리 독립에 기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불거진, 대표적 무장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을 겨냥해 무장독립투쟁의 의미가 과도하다고 깎아내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 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다”고도 했다. ‘선각자’는 미국 등에서 외교독립운동을 펼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자본도 자원도 없었던 나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고속도로를 내고 원전을 짓고 산업을 일으켰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추어올렸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결국 두 분(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을 시사하는 것인데 굳이 연설에 특정한 지도자 이름을 거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은 “독립과 동시에 북녘땅 반쪽을 공산전체주의에 빼앗겼고, 참혹한 전쟁까지 겪어야 했다”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의 확장이 통일”이라고 말했다.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내용상 흡수통일에 무게를 둔 것이다. 최근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북한에 맞대응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간 윤 대통령은 이전 광복절과 3·1절 등 국경일 행사 연설에선 통일을 크게 거론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북한 정권은 오로지 핵과 미사일에 의존하며, 2600만 북한 주민들을 도탄과 절망의 늪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남북 경색 국면 해소를 위한 대북 제안 등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세가지 원칙과 기계적인 3단계 통일방안이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과 비전이 누락돼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통일관과 통일 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져 지금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 3단계 통일방안이 담겼는데,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자유주의 철학·비전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권혁철 배지현 기자, 이제훈 선임기자 nura@hani.co.kr

윤 “한-일 새 세상” 셀프 선언…강제동원 배상도 한국이 책임지고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기자이제훈
  • 수정 2024-03-02 00:39
  • 등록 2024-03-01 20:11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치러진 3·1절 105돌 기념사에서 “일본은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라며 “지금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지금껏 치유·청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일제 강점을 둘러싼 한-일의 역사인식 차이와 관련해 ‘가해자 일본’의 성찰·책임·의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픈 과거”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이라는 뜻 모를 표현뿐이었다. 이는 윤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한 뒤 한-일 관계에서 보여온 불변의 태도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일) 양국의 안보협력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고 자평했다. 그러곤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함께 풀어나간다면, 한-일 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 한-일 수교 정상화 60돌을 계기로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로 한 단계 도약시켜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의 연설 취지를 설명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향후 법원의 공탁 수령 문제, 진행 중인 재판,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의 해당 재단의 기금으로 우리 정부가 원칙 있게 밝힌 해법으로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이 국내 법원에서 일본 가해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해도 한국 정부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공언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6일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른바 ‘제3자 채무인수’(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일본 가해 기업 대신 피해자들한테 배상) 방안의 재확인이지만,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진행 중 소송’도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미리 밝혔다는 점에서 ‘일본 달래기’에 가깝다. 강제동원 피해 소송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3건(14명) 말고도 64건(1124명)이 진행 중인데, 이는 공식 파악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0.76% 수준이라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앞으론 우리가 모두 책임지겠다’며 일본에 약속한 셈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배지현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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