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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참담합니다" 강릉 바다 보고 탄식한 전문가

by 무궁화9719 2024. 2. 2.
"참담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지식과 지혜가 축적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본과 기초조차도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해안침식 현장 앞에 설치된 돌제(육지에서 강이나 바다로 길게 뻗쳐 나오게 하여 만든 둑)를 보고 전문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사를 마친 현장은 하얀 모래 대신 흉물스러운 구조물로 뒤덮여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해변 얘기다.    

이 해변은 해안침식이 심각해서 연안침식 방지 사업을 한 곳이다. 사업 초기에는 잠제(수중방파제) 600m를 설치, 효과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잠제 설치 후 일부 지역은 퇴적이, 일부 지역은 침식이 가속화되었다. 아래, 2020년 잠제 설치전 사진과 2022년 잠제 설치후 사진을 비교해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잠제를 설치하기 전 해안 잠제를 설치하기 전에 해안은 평행을 유지한 채로 침식이 없었다.(2020/5/23) ⓒ 진재중
 
 잠제가 설치된 이후에 변화 잠제가 설치된 이후에 북쪽은 퇴적, 남쪽은 침식이 진행됐다.(2022/7/25) ⓒ 진재중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해상 공사 이후에 생긴 일 

하시동·안인 해안사구가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은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해상 공사(2018년 착공) 영향이라고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한 지역주민은 "강릉안인화력발전소 해상공사 전에 안인해변은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였습니다. 공사 시작 후 연안침식이 발생하면서 군사도로가 무너지고 시설물이 유실되면서 해안사구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안인화력해상공사 현장(2020/9/10) ⓒ 진재중
 
 안인해변 공사전 안인해변은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 진재중

이런 심각성을 인식한 관계기관과 화력발전소 측이 여러차례에 걸쳐 침식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침식은 커져만 갔다. 모래보충을 하고 마대 자루를 쌓아 임시방편으로 침식을 막아보려 했지만 큰 파도 앞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연안침식과 도로유실 도로가 유실되고 시설물이 쓰러진 현장(2022/7/25) ⓒ 진재중
 
 마대자루 쌓기 임시방편으로 연안침식을 막고자 마대를 쌓아둠(2022/4/27) ⓒ 진재중
 
지역민의 민원이 잇따르자 시행착오 끝에 내놓은 대안이 돌제다. 공사업체는 해안사구 앞에 6개의 돌제를 설치했다.

지난 13일 지역민과 함께 둘러본 현장은 영혼 없는 돌무덤 같았다. 해송 앞에 설치된 돌제는 보기 싫은 흉물로 전락했고, 그 효과마저도 의구심을 더하게 했다. 돌제를 설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일부 해안도로는 유실될 위기에 처해있어 큰 파도가 밀려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무방비 상태였다.
 
 연안침식방지공사 돌제와 옹벽쌓기를 하고 있는 현장(2023/12/3) ⓒ 진재중
 
 유실위기에 놓인 해안도로 돌제가 설치된 남쪽지역은 해안도로가 유실될 위기에 처해있다.(2024/3/13) ⓒ 진재중
       
항만기술 전문가 ㄱ박사는 이렇게 대안을 제시했다.

"해안사구 앞에 돌제와 옹벽축조는 적절한 조치가 아닙니다. 침식대책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채 외측에 대규모 방파제를 건설하면 방파제 배후 쪽으로 다량의 토사이동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퇴적방지 및 침식예방의 핵심은 방사제 설치고, 지금과 같은 침식대응 조치는 이런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경과에 따라 돌제 선단부에서 국부 세굴이 발생하고, 돌제 사이의 해안에서 모래가 서서히 유실됩니다. 침식구역에 대한 시급한 조치는 옹벽을 쌓을 것이 아니라 유실된 토사를 다시 가져오는 것입니다."
  
 안인 하시동 해안사구 방파제와 잠제, 돌제가 한눈에 보인다 ⓒ 진재중
 
 돌제와 옹벽 설치후 무너질 위기에 처한 해안도로(2024/3/13) ⓒ 진재중
    
동해안 최초의 '생태경관보전지역', 그러나... 

환경부는 2008년 12월에 이곳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23만 3천㎡를 지형 지질, 동·식물 서식지 등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자 동해안 최초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강릉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24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안의 대표적 해안사구인 신두리 사구가 약 700~1000년 전에 형성된 것과 비교하면 지질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주변에 해빈·석호·해안단구 등 동해안의 특징적인 경관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삵을 비롯해 수달·매·맷토기 등 8종의 멸종위기종과 초본식생으로 통보리사초군락, 갯그령군락, 갯메꽃군락과 관목식생으로 순비기나무군락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2008년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 ⓒ 진재중
 
 해안사구 식생 순비기나무, 갯그령, 갯메꽃 등 다양한 연생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 진재중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해안식물과 생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독특한 경관과 희소성, 생태적 중요성 때문에 자주 찾는 학습의 장이었다. 그러나 사구에서 자생했던 식생과 동물들을 알려주던 안내판은 퇴색되어 보이지 않고 해안사구 지킴이가 있던 안내소 입구에는 포클레인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방문객 김선하씨는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멧토끼, 고라니를 비롯해 특이한 염생식물들이 있어 가끔씩 들리곤 했는데 안타깝습니다. 공사 중이면 왜 공사 중이고, 왜 출입을 할 수가 없는지, 언제부터 방문해도 되는지 등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방문객을 위한 안내판 하나 없고 흉물스럽게 설치된 시설물들만 가득하니 멀리서 온 우리는 뭡니까"라고 불만을 토로하며 발길을 돌린다.
 
 생태경관보전지역 안내판 ⓒ 진재중
 
 기능을 상실한 입간판 해안사구의 생태를 알리던 입간판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퇴색됐다.(2024/3/13) ⓒ 진재중
 
환경부는 생태경관보전지역 보호를 위해 의무적으로 생태계 훼손 행위 감시, 자연환경 정밀조사와 모니터링 등을 통해 사구를 보전해야 하지만 제대로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원규 안인어촌계장은 "이 지역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 지역주민들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뽑아도 문제가 되는데 이렇게 큰 공사를 하면서 수수방관하는 환경부의 처사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시동·안인 해안사구의 염생식물 갯그령, 갯메꽃, 순비기나무 등 염생식물군락지가 공사 이후 흔적없이 사라졌다. ⓒ 진재중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염생식물이 회복되는 과정중에 공사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갯메꽃, 갯그령, 순비기나무 등이 자라던 해안가는 바다속으로 잠겨버려 흔적 조차없다. 더 중요한 것은 사구자체의 식물보다 지형이다. 해안사구는 바다와 육지의 전이 지대이며 두 생태계 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또한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구는 폭풍·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작물·주택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원주지방환경청 "더 이상 해안사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할 것" 
 
이곳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있는 최광희 가톨릭관동대 지리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일본 서쪽에서 쓰나미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해안에서 해안사구를 관리할 때는 지속적인 침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인공구조물보다는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해안사구를 잘 보호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해안식생을 연구하는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이곳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의사가 진단없이 수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류전문가, 침식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잠제, 돌제를 설치하고 계속 침식이 되는 것은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계자들은 모래가 깎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쌓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데 쌓인 모래는 해안사구에 되돌려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장무근 원주지방환경청 팀장은 "금년 상반기안에 전문가와 공사 관계자 주민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 좋은 방안이 나오면 동해지방청과 강릉시, 공사업체 등과 공동으로 현장 점검 및 모니터링을 강화, 더 이상 해안사구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인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잠제가 설치된 지역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두동강 나 있다. 군사 해안도로는 사라진 지 오래고, 염생식물이 자리매김을 할 터전인 모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끔씩 찾아오는 탐방객들은 불만을 가득 안은 채로 발길을 돌린다. 환경부는 왜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시점이다.
   
 안인·하시동 해안사구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 ⓒ 진재중
 
 생태경관보전지역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 진재중
 
 두 동강 나있는 해안사구 잠제설치 지역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두 동강 나있는 현장(2024/3/13)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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