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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오늘도 아이들이 죽어간다…‘미국의 침묵’으로 향하는 분노

by 무궁화9719 2023. 11. 7.

오늘도 아이들이 죽어간다…‘미국의 침묵’으로 향하는 분노

등록 2023-11-08 07:22수정 2023-11-08 11:06

“러 비판 때와 달라…위선” 꼬집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달째 지속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어린이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달리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인 1만22명이 숨졌으며 어린이 사망자는 4104명이라고 주장했다. 라파 AFP/연합뉴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1만명 이상이 숨진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눈감는 미국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지금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치열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전세계를 이끌어야 하는 미국의 리더십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6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한달을 맞은 이날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4천명 이상은 아이들이라고 밝혔다. 이에 견줘 지난달 7일 이뤄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이후 이스라엘 쪽 사망자는 1400명으로 집계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다시 한번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무덤이 되어 가고 있다”며 즉시 정전을 호소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하마스와 관계없는 여성·어린이들이 숨져 가고 있지만, 미국은 직접적 비판을 꺼리고 있다. 나아가 전세계가 강력히 요구하는 ‘휴전’은 물론 ‘인도적 적대행위 정지’마저 따르길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보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설득한 데 이어, 6일엔 직접 전화 회담에 나서 ‘잠시 공격을 멈출 것’을 요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백악관은 회담 결과를 전하며 “두 정상이 전술적 (적대행위) 정지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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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해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때 러시아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웠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 때문에 일부 아랍 지도자들은 지난달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회의 때 “러시아는 인도주의 위반으로 비난받았는데, 이스라엘이 그렇지 않은 것은 (서방 국가들의) 위선”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미국 국무부 등 실무 부서에서도 미국의 위선을 지적하는 내부 비판이 잇따르는 중이다. 그러자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는 7일 미국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계속되며 “동정적인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잦아들었다”며 “앞으로 2~3주 혹은 그보다 빨리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7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남단 라파흐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팔에 붕대를 감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사이에 난 길을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이 지금처럼 이스라엘에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장기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며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실망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칠레·콜롬비아·볼리비아 등은 이미 이스라엘이 국제 인도법을 위반했다며 국교를 끊거나 대사를 소환해 강하게 항의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를 두고 “이번 전쟁에서 서방이 가자지구에서 잃어버린 건 ‘글로벌 사우스’”라고 꼬집었다.
 
한편,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은 6일 “하마스의 주요 거점인 가자시티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현장 지휘관 여러명을 사살했고, 반격 능력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 전투공병대가 하마스의 거대한 터널 네트워크를 발견해 파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날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 내 알쿠드스 병원 주변을 공습해 “정문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미사일 두 발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홍석재 김미향 기자 forchis@hani.co.kr

이스라엘 맹폭에 가자지구 ‘의료 붕괴’… 병원마저 전쟁터 됐다

입력 2023.11.08 05:30

이스라엘 ‘하마스 근거지’ 지목하며
국제협약으로 보호받는 병원 폭격
극한 상황 내몰린 가자의 의료시설
개전 후 35개 병원 중 16곳 폐쇄돼

지난달 3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집을 떠난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알쿠즈 병원에 모여 있다. 가자지구=EPA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은 한 달 만에 가자지구의 의료기관마저 치열한 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병원을 군사시설로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민간인 대상 무차별 공습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궤변이라고 맞선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국제인도법의 대원칙인 제네바협약에서 금지한 ‘병원 공격’마저도 불사하고 있다. 이로 인한 고통은 가뜩이나 힘든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하고 있는 병원 의료진과 환자의 몫이다. 가자지구에 인도주의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도 없는 셈이다.

이미 제 기능 못하는 가자 병원들

3일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구급차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자지구=AFP 연합뉴스

 

‘상처에 들끓는 구더기와 소독제로 쓰이는 식초, 휴대폰 손전등을 켠 채로 마취제도 없이 이뤄지는 수술···.’

 

개전 32일째인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모든 장면이 오늘날 가자지구 병원의 현실이라며 참상을 전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와 더뉴아랍 등에 따르면 230만 명이 살던 가자지구의 병원 35곳 중 절반가량인 16곳이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 가자지구의 연료 공급을 중단한 이스라엘이 의료시설은 물론, 구급차마저 폭격하는 등 보복 공습을 벌인 결과다. 이날 알쿠즈 병원과 알아우다 병원도 연료 부족으로 48시간 이내에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아직은 운영 중인 병원도 제 기능을 못 한 채 최소한의 치료만 제공한다. 전기와 식수, 의약품 등이 바닥나면서 마취제는 물론, 깨끗한 물조차 없는데 환자는 매일 밀려드는 아비규환 속에서 의료진은 매 순간 누구를 죽이고 살릴지를 결정한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의 의사 모하메드 칸딜은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환자를 고른다”며 “쉬운 결정은 아니기에 죄책감이 크다”고 NYT에 말했다. 병원은 가자지구 북부에 남은 이들에겐 ‘최후의 피란처’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왜 병원을 노리나

임시로 만든 백기를 든 팔레스타인 소년이 6일 어머니와 함께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인근에 도착하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하마스는 병원에 숨은 ‘전염병’이다.”

 

IDF는 기자회견뿐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렇게 주장한다. 가자지구의 의료 붕괴를 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알시파뿐 아니라, 카타르와 인도네시아가 각각 지원하는 병원들도 하마스의 지휘본부 또는 보급소로 지목했다. ‘이스라엘 군인 권리를 위한 의사회’조차 전날 성명에서 “알시파 병원 폭격은 합법적 권리”라며 “테러 집단 근거지는 전쟁에서 보호받는 병원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여론전 목적은 뚜렷하다. 의료기관이 ‘유해한 행위’에 쓰인다면 제네바협약의 보호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사망자 급증과 함께 커진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도라고 더뉴아랍은 짚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반박하는 곳은 하마스만이 아니다. 가자지구의 각 병원 관계자, 인도주의 단체 등도 “사실이 아닌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하마스 대변인 오사마 함단은 “(IDF가 공개한) 병원 인근 구멍은 지하 터널이 아니라 연료 공급용”이라며 “가자지구 병원을 방문해 진실을 확인해 달라”고 유엔에 요청했다. 가자지구 인도네시아 병원을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의료긴급구조위원회(MER-C)도 “병원의 유일한 목적은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어떤 조직과도 연계돼 있지 않다”고 항변했다.

 

특히 전쟁에서 의료시설 공격을 용인하는 선례가 생기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가자지구 담당 윌리엄 숌버그는 “의료시설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면 의료시설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인류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미 국무부 내 "바이든, 이스라엘 공개 비판하라" 연판장

 
  • 입력 2023.11.07 17:00
  • 수정 2023.11.07 17:33

중동 근무경험자가 주도, 이스라엘 편애 비판
"팔' 민간인 학살 이스라엘에 면죄부 줘선 안돼"
"미국이 편향되고 부정직하다는 인식 확산 우려"
워싱턴주 항구에선 이스라엘 무기 선적 저지 시위
유엔 총장 "가자, 아이들 무덤"…즉각 휴전 촉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편애 정책이 '내우외환'에 처했다. 아랍‧중동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날로 거세지는 와중에, 정작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국무부 내 외교관들의 반발도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치군사국에서 대외 무기 이전 담당으로 11년 일했던 핵심 간부가 전격 사직했고, 한 외교관이 2일 "가자 주민 대량 학살 공범"이라고 바이든을 직접 비난한 데 이어 국무부 중간 간부 이하 다수의 외교관이 연대 서명한 '반대 메모'를 통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직후부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며 '팔레스타인 민간인 집단 학살' 행위에는 눈을 감아온 바이든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에서 자신의 '바이드노믹스'와 미 국영 철도회사 암트랙 투자에 관련한 연설을 하고 있다.  2023 11. 06 [AFP=연합뉴스]
 

미 외교관들, 휴전지지와 이스라엘 공개 비판 요구

민간인 폭격‧정착민 범죄‧과도한 무력 사용 적시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6일 '미국 외교관들이 유출 메모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질타하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자사가 입수한 '반대 메모'를 보면, 국무부 안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바이든의 중동 정책에 대한 "내부 분노"를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메모에 따르면 서명 외교관들이 내건 핵심 요구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휴전'을 지지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군사 전술과 팔레스타인인 대우와 관련해 지금처럼 물밑으로만 거론하지 말고 "공개적인 비판"을 하라는 주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공개 메시지와 물밑 메시지 간의 틈이 "미국이 편향되고 부정직한 행위자라는 지역 대중의 인식에 이바지해 최악의 경우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이익에 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정당한 군사 목표물로 공격 작전을 제한하는 데 실패한 것과 같은 이스라엘의 국제 규범 위반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외교관들은 "이스라엘이 (유대인) 정착민의 폭력과 토지 불법 강탈을 지원하거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과도한 무력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이 미국의 가치에 위배된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이스라엘이 면죄부를 지닌 듯이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단행된 뒤 부상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아이들을 안고 잠시 서 있다. 2023 11. 06 [AFP=연합뉴스]
 

국무부 내서 바이든 정책 '반대 메모' 다수 회람

"바이든 중동 접근법, 외교관 신뢰 붕괴 보여줘"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 메모에는 '민감하나 기밀은 아님'이란 마크가 있었으며 국무부 안에서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메모 여러 개가 서명받기 위해 회람됐다. 이는 미국 외교관들 사이에서 바이든의 중동 위기 접근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앞으로 내부 이견이 심화되면 바이든의 중동 정책 입안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폴리티코는 내다봤다. 문제의 메모는 중동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두 명의 중간 간부가 주도해 작성했다.

 

외교관들은 또한 이 메모에서 하마스 공격에 대한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자위권)를 인정하지만,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지금까지의 인명 피해 규모는 용납할 수 없다"고 적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팔 전쟁 한 달째인 6일 현재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4104명을 포함해 최소 1만22명로 집계됐다. 하마스 공격에 따른 이스라엘 사망자 1440명의 약 7배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최소 152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 이들은 그런 막대한 규모의 민간인 사망자에 대한 미국의 "관용"은 "우리가 오랫동안 대변했던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면서 그런 행동들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 모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최근 들어 바이든 팀은 민간인 보호의 중요성과 국제법 준수를 강조하는 공개적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지만, 대체로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비판은 여전히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테러 공격을 할 수 없도록 스스로 방어하고 안보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라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스라엘에 테러리스트와 팔레스타인 주민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직접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남부 가자 접경 지역에서 한 이스라엘 병사가 포격을 가하고 있다. 2023. 11. 06 [EPA=연합뉴스]
 

팔' 1만 명 사망에도 3.2억 달러 무기 제공 승인

워싱턴주 항구서 이스라엘 무기 선적 저지 시위

 

맨 먼저 불을 댕긴 사람은 국무부 정치군사국의 의회·대외 담당 과장이던 조시 폴이다. 폴 전 과장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정밀유도탄 등 대규모 살상무기를 이스라엘에 제공하면서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율배반적' 정책과 문제 제기를 그대로 묵살하는 상부의 강압적 태도에 '좌절'해 국무부를 떠났다. 그는 국무부에 보낸 사직 편지에서 이-팔 사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의 대응과 관련해 "확증편향과 정치적 편의, 지적 파산, 관료적 타성에 기반한 충동적 반작용"이라며 "한쪽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장기적으론 양쪽 주민 모두의 이익에 파과적이며 나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저지른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고 있는 게 두려웠다"고 썼다. 폴은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침해나 대규모 민간인 희생 '가능성'이 예상될 때 무기 이전 불허란 손수 만든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이스라엘에 살상 무기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6일 국무부가 3억2000만 달러(약 4000억 원) 상당의 비유도 폭탄을 보다 정밀한 GPS 유도 무기로 바꾸는 키트용 장비의 판매를 승인하고 그 내용을 담은 서한을 최근 미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보냈다. 이와 관련해 이날 미국 워싱턴주의 항구도시 터코마에서는 100명이 넘는 시위대가 항구에 모여 이스라엘 지원용 무기 등 군수물자 선적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폴 전 과장에 이어, 국무부의 중동 담당 실비아 야쿱은 2일 'X'(옛 트위터) 글에서 바이든을 향해 "당신은 무고한 가자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상당한 추가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며 "당신은 대량 학살 공범"이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스라엘 총영사관 앞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시위자가 "네타냐후 전범, 바이든 공범"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2023 11. 04 [EPA=연합뉴스]
 

유엔 총장 "가자, 아이들 무덤"…즉각 휴전 촉구

바이든, 네타냐후와 통화…일시적 교전 중지 요구

 

한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매일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며 즉각적인 휴전을 호소했다고 알자리라 방송이 전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스라엘군은 "병원과 난민캠프, 이슬람사원, 교회, 그리고 대피소를 포함한 유엔 시설들을 공격하고 있다"며 "벌어지고 있는 파국적 상황을 감안할 때 한시바삐 인도주의적 휴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마스에 대해서도 민간인의 인간 방패 사용을 중단하고 모든 인질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석방을 촉구했다.

 

'내우외환'에 처한 바이든 대통령은 급기야 이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이스라엘에 급파해 네타냐후를 설득하려 했지만, 별 성과가 없자 직접 나선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 한 뒤 △인도적 차원의 교전 일시 중지 △팔' 민간인 피해 최소화 △가자 반입 구호 물품 확대 △서안지구 유대 정착민의 폭력행위 처벌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전면적 휴전 반대를 재확인했다. 네타냐후는 이날 미국 ABC 뉴스 인터뷰에서 인질 석방이나 구호품 전달 등을 위해 "전술적 잠깐의 중지"를 검토할 것이지만 "일반적 휴전은 없다"고 못 박고 전쟁 이후 가자지구에서 "무기한 전반적 안보를 책임질 것"이라고 말해 국제사회의 반발을 예고했다.

‘아이들의 무덤’ 된 가자…“서방이 ‘하마스 2.0’ 만들고 있다”

등록 2023-11-07 16:01수정 2023-11-07 19:31

가자지구 사망자 1만명 넘어…“민간인 학살”
이스라엘 편드는 서방에 ‘글로벌사우스’ 분노

7일 가자지구 남단 라파흐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팔에 붕대를 감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사이에 난 길을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은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눈을 감는 서방 국가들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한달째를 맞은 지난 6일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명을 넘었고 이 중 4천명 이상은 아이들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발표가 나온 다음 날인 7일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자지구 사망자 대다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맹폭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꺼리고 있다. 이는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서는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민간인 희생이 잇따르는 문제를 놓고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를 나란히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먼저 민간인을 대량 살해하며 도발한 하마스는 강력히 규탄했지만, 이후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 대규모 사상을 초래하는 군사작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일부 아랍 지도자들은 지난달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 회의 때 “러시아는 인도주의 위반으로 비난받았는데, 이스라엘이 그렇지 않은 것은 (서방 국가들의) 위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7일 미국과 유럽의 이런 태도에 대해 “유럽 정상들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필요성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직접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며 “최근 몇 년간 중동 평화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이 이번 전쟁에서 공정한 중재자로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짚었다.
 
서방 주요국의 이런 태도는 유럽 내 무슬림 주민들을 향한 혐오 확대를 조장해 유럽사회 분열의 원인도 제공하고 있다. 한 벨기에 무슬림 주민은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에 우호적 발언을 했다가는 친테러리즘이라든가 반유대주의라고 점찍히는 게 지금의 유럽사회 분위기”라며 “인도주의는 강자의 편의에 의해서만 적용된다”고 꼬집었다. 노골적으로 이스라엘편을 들어온 미국 처지도 다르지 않다.
 
서방의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들에게 ‘독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럽국가들은 새로운 자원 공급망이자, 미-중 패권 경쟁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진 ‘글로벌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 신흥국) 국가들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거치며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사이에 서방의 정책은 결국 ‘힘이 정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국 서방 국가들에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전쟁 초기만 해도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역시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비판한 서방과 균열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이후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지는 데도 이스라엘의 자위권만 강조하는 서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를 두고 “이번 전쟁에서 서방이 가자지구에서 잃어버린 건 ‘글로벌 사우스’”라고 지적했다.
 
서방 지원을 등에 업고 일방적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결과적으로 ‘지는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전쟁 뒤 글로벌사우스의 일원인 칠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이 이스라엘의 국제 인도법 위반을 이유로 관계를 단절하거나, 자국 주재 대사를 소환해 강하게 항의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가 파괴하고 싶어하는 곳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있다"고 비난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히샴 헤일러 박사는 엔비시(NBC) 방송에 민간인까지 대량 살상하는 이스라엘식 보복으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방식은 더 깊은 악순환을 만들어 ‘하마스 2.0’을 만들거나,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더 나쁜 것을 만들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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