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KAL858기 폭파사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 폭파사건
대통령선거를 약 2주 앞둔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5분쯤 버마(現 미얀마)근해인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보잉 707기종의 대한항공 858기가 북한공작원에 의해 폭파돼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비행기는 UAE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서울로 오기 전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인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는 중이었다. 탑승객은 중동에서 귀국하던 근로자가 대부분으로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오열하는 유족들
사건발생 이틀만인 12월 1일 중간 기항지였던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승객 2명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이 문제의 두 일본인은 `하치야 신이치(본명 김승일)`와 `하치야 마유미(본명 김현희)`였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바레인에서 요르단으로 탈출하려다 위조여권 적발로 체포되자 담배 속에 숨겨둔 독극물을 삼켜 자살을 기도, 김승일은 숨지고 김현희는 중태에 빠졌다.
김현희의 신병은 바레인 당국에 의해 한국으로 인도되어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됐다. 김현희는 압송 8일만인 12월 23일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858편 기내 좌석 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폭발물을 놓고 내려 공중에서 폭발하도록 했다고 자백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김현희(당시 25세)가 그해 12월 15일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그 후 김현희는 1990년 3월 27일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전향의사 표명과 김정일의 도구로써 이용된 점이 정상 참작되어 1990년 4월 12일,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안기부 촉탁직원이 됐다. 이후 김현희는 반공강연 활동을 해오다 1997년 전 국정원 직원과 결혼한 뒤 대외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수사 발표 이후 사건의 진실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되었다. 먼저 한국 정부의 태도가 의혹을 낳게 했다. 미얀마와 태국의 산중 수색에 1주일을 허비한 후 수중 수색을 착수했는데 이 역시 단 열흘간 수색작업을 펼치고 현지조사단을 철수하고 수색작업을 중단했다. 더구나 사고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블랙박스(바다 속에서 1천 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 배를 견디면서 30일 동안 반경 2마일까지 발신음을 보낸다)에 대한 수색작업도 사고 발생 초기에 포기했다.
대한항공의 대처도 의심스런 부분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항공사가 사고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험청구 회피 이유에 대하여 가족들과 보험 전문가들은 영국 국제로이드보험사는 한국 정부의 사고 조사와 달리 KAL기 사고에 대한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실사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두환 정권의 사고 조사와 다른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고 보험 청구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고 당시 KAL 858기가 미얀마 해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물론, 승객과 승무원의 유해, 유품과 기체의 조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사고 발생 2년 4개월 후인 1990년 3월 13일 안다마 해역에서 사고기 동체 파편 61점이 발견되었다.
오늘의 역사
11월 29일 北 공작원 '마유미' 김현희... KAL858기 폭파 사건
미국이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한 사건이 오늘(29) 일어난 KAL 858기 폭파때문이다.
중동 모래바람 속을 가르며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115명을 싣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한 바그다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비행기는 북한이 사주한 공작원에 의해 폭파됐다고 밝혀졌다.
부녀지간으로 위장한 남녀 승객 2명이 범인으로 지목돼 체포하는 과정에서 하치야 신이치는 자살했고 여성인
하치야 마유미만 검거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현희였다.
김현희가 범인으로 잡혀 대한민국에 들어온 때가 12월15일 이었다. 이 날은 마침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 둔
날이기도 했다. 초췌한 얼굴에 입에는 테이프가 꽁꽁 봉해진 모습으로 도착한 김현희에 선거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의 항쟁으로 전두환 독재시대 막을 내리고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은 역사적인 시대를 맞이 했지만 북한의
도발로 이익을 얻은 사람은 노태우였다.
전두환 정권의 핵심으로 역할을 했던 노태우가 다시 대통령에 뽑히자 분노한 사람들은 KAL 858기 사고에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음모론이 제기 될만도 했다. 테러가 하필 대선 직전에 터졌다는 것과 한 구도 발견되지 않은 시신, 블랙박스, 어린시절 화동이었다는 증거로 나온 사진에는 자신이라고 지목한것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더욱 증폭됐다.
논란의 어린 김현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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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기부는 1972년 11월2일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소녀가 김현희라고 주장했지만 귀 모양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이것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북측은 바로 반박하여 사진 속 실제 인물이 정희선이라고 주장함.
김현희가 가짜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와 반박
1.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고 사망자의 시체와 유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구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 007기(1983년 격추)는 1년이 지나도 계속 부유물을 발견했고, 인도양의 모리셔스 해에서 추락한 남아프리카의 점보기도 1년에 걸쳐 항공기 잔해와 승객의 유품을 발견했다. 그에 비해, 아무리 강력한 공중폭파라고 해도, 전후 41미터 길이에 좌우 양 날개 너비 40미터나 되는 보잉 707기(KAL 858기)의 기체 조각 하나 찾지 못했다. - 사건 당시 항공기 동체를 찾지 못하다 2년 반이 지난 1990년 3월에야 잔해가 발견되었음
2.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안기부에서 일부를 폐기하였다는 설 주장)
블랙박스(바다 속에서 1천 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 배를 견디면서 30일 동안 반경 2마일까지 발신음을 보낸다)에 대한 수색작업도 사고 발생 초기에 포기
3. 당시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이 매우 빠른 속도로 수사를 종결처리하였다.
미얀마와 태국의 산중 수색에 1주일을 허비했으며, 간신히 수중 수색에 착수하기는 했으나, 이 역시 단 열흘간 수색작업을 펼치고 현지조사단을 철수하고 수색작업을 중단함.
4. 작전명 '무지개 공작' 문건(12월 2일)
이건 실제로 시행되었고, 당시 안기부가 KAL기 폭파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은 사실로 드러났다.
KAL858기 폭파 사건의 수상한 의혹 : 김현희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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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대통령 선거는 민주세력인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군부출신인 노태우와 김종필로 1노 3김의 팽팽한 세력대결이었다. 여론조사 발표가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분위기는 민주화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노태우는 5공화국 전두환 폭정의 후계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실상의 당선은 힘겨워 보였다. 칼858기 폭파사건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1987년 대선을 1개월 정도 남기고 불쑥 일어난 사건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항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었다. 좀더 정확히는 태국과 미얀마의 상공 어디쯤에서 김현희에 의해 폭파된 사건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폭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범인도 사건의 내막도 전혀 조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기부를 통해 받아쓰기 기사가 흘러나온 것이다. 결국 안기부 조사 결과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고 일본인으로 위장한 특수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2인조가 액체 시한 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김승일은 경찰에 잡히던 순간 음독자살했고 김현희는 자실미수에 그쳤다는 발표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테리가 남아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밝혀진 것은 없었다. 안기부는 김현희의 경호원이었던 정모씨와 김현희를 결혼까지 시키며 진실 은폐의 시도도 서슴치 않았다. 1997년 둘은 결혼했지만 남편 정모씨는 2021년 2월 경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살과 심장마비라는 추정 속에 김현희 남편의 사망원인도 의혹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에 대한 물음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당시 태국 해상에서 비행기용 항공보트 발견되었으며 이는 칼 858기의 항공보트라는 표식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김현희가 국내에 도착한 2일후 폭파지점 수색을 종료해 버린다. 주변이나 바닷속을 수색하면 추가 잔해가 발견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별다른 이유없이 수색 종료를 발표한다. 국민들이 반발하고 유족들은 분노했지만 수색은 재개되지 않았다. 사고 3년후 태국에서 태국어민의 그물에 칼858기의 잔해 동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압축충격에 의한 파손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체잔해는 현재 사라지고 없다. 우리 정부가 동체 잔해를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미얀마 앞바다에서 칼기의 잔해가 또다시 발견되었지만, 유품이나 흔적을 확인도 하지 않고 잔해를 파기해 버린다.
둘째, 김현희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존재한다. 김현희는 평양출신에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했으며, 북한외교관의 딸이라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평양 출신의 다른 여러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김현희의 말투는 평양 억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길림성이나 연변 주변의 말투라는 증언이 계속되기도 했다. 또한 김현희의 어린 시절 6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찍힌 사진을 공개했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6명의 어린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면서 내 사진을 김현희가 조작했다고 반발하며 나선 것이다. 사진속의 실제 주인공은 김현희와의 공개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다.
셋째, KAL858기 사건이 88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의 공작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남한은 북한과의 축구 등 일부 종목 공동개최를 요청했으며 IOC와 북한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88올림픽 방해공작이라는 발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한 88올림픽 방해를 위한 공작이었다면 올림픽 개최시기나 올림픽 개최 직전 서울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상식적이지 고위층이나 정치인 한명 없이 중동노동자들만 가득태운 비행기를 폭파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이다.
넷째, 사건이후 이라크에서 조사를 받던 김현희의 남한 압송은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벼락같이 이루어졌다.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행보였다. 지금처럼 사전투표가 존재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김현희가 비행기에서 내리던 장면을 생중계로 보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적중한 것이다. 또한, 당시 김현희의 위조여권은 일본여권이었기에 일본경찰은 자신들이 수사를 진행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일본에서 발을 빼며 한국으로 압송된 것이다.
김현희는 사건 발생 약 3년여가 지난 1990년 3월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사형선고 후 불과 16일 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된다. 살아있는 블랙박스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이유였다. 교도소에 수감조차 되지 않고 안기부의 특별 보호실에서 상주하는 동안 사면된 것이다. 즉,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된 이후 단 한명의 민간인은 물론이고 외부의 접촉도 없이 오직 안기부에서만 생활하다 특별사면되었고 이후에도 경호원의 특별한 감시 속에 지내다 경호원과 결혼해버리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KAL858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지 36년이 되었다. 아직도 유족들은 밝혀지지 않은 진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승무원과 중동노동자로 헌신했던 115명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 세 가지
[기고] 방요한 고려신학대학원 전도사
- 기자명 방요한
- 입력 2023.10.02 15:59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1945년 분단 아래 수많은 단일 민족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여러 참사를 겪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를 망각하는 방법으로 현재 사회를 영위했다.
불과 작년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는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정의는 사라지고, 유가족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유족의 슬픔을 닦아주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실종 사건(폭파 사건)’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진실이 점점 희미해졌다.
사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항공 858편의 폭파범으로 지목된 두 명의 의문의 남녀. ‘김승일(金勝一)’과 ‘김현희(金賢姬)’의 정체. 그리고 항공사고 조사의 기본인 ‘CVR(음성 녹음 장치)’, ‘FDR(비행 기록 장치)’의 회수 및 기체 잔해 수거. 마지막으로 정확한 폭탄과 폭약 종류에 관한 조사. 삼위일체와 같이 기본적인 세 가지 조사만 이루어진다면,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실체는 규명될 수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세 가지 의혹 중 어느 하나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 이 점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도 400쪽의 조사보고서에서 인정한 대목이다. 그러므로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원인은 불명확하다. 아래 의혹을 살펴보면 쉽게 대한항공 858편 실종 사건의 주범이 북한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 대한항공 858편의 탑승객 ‘김승일’은 누구인가?
1987년 11월 29일에 사건이 발생한 이래, ‘KAL858기 가족회’는 끊임없이 김현희의 정체에 관한 의문을 제시했다. “그녀가 과연 북한의 공작원이 맞는가?” 김현희의 다양한 의문점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 학자들이 정리하였으므로, 본 소고는 김승일의 정체에 관한 의혹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1) 김승일의 언어 구사에 관한 의혹
현재 외교부는 생산 30년이 지난 문서들은 정리 후 공개하고 있다.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김승일은 일본의 위조여권(성명: 蜂谷 真一, 여권번호: MG 5741632)을 통해 일본-동유럽을 거쳐 중동으로 향했다.
김승일은 김현희와 함께 바그다드 공항에서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고,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하기를 한 후, 난데없이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항공편을 발권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바레인 암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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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김승일의 행적은 수상한 측면이 많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와 외교부 전문과 모순적인 부분이 많다. 가령 국가안전기획부는 김승일을 4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로 소개했다(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하지만 유시야 참사관의 지시에 따라 김승일의 정체를 파악한 김정기 대리대사의 전문에 따르면, 리젠시 호텔(Regency Hotel)에서 김승일을 만났을 때,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일본인이라 한자 필담으로 겨우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바그다드와 암만에서는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를 구사했으며,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구사했다는 외교부 전문 보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김현희의 진술 외에는 김승일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인 셈이다.
2) 김승일은 과연 폭약 전문가인가?
이제 김승일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발표와 같이, 북한의 능숙한 폭탄 전문가인지 따져봐야 한다. 김승일이 장갑을 끼고 화약을 만졌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손톱에 화약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의아하다. 1987년 12월 28일. 국가안전기획부장 앞으로 회보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감정서에 따르면, 김승일의 손톱에서는 화약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과거 50~80년대는 종종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국과수 화학과에서 총기 사건을 감정했었다. 화학에 일가견이 있는 화학과가 김승일의 손톱에서 폭약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점은, 과연 김승일이 폭약을 만진 적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김승일은 폭약 전문가였는가? 과학적으로만 따지면, 그는 화약을 만진 적이 없다. 단지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조작된 정체불명의 테러범에 불과하다.
3) 김승일의 담배 필터 의혹
국가안전기획부 언론 발표문에 따르면 김승일이 청산가리 작은 유리병(aempeul)이 든 담배 필터를 깨물어 자살한 것은 명백한 북한 공작원의 자살 수법과 같다. 그러나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 의해 부정된 사실이다.
또한 황적준 박사, 이정빈 교수에 의해 이뤄진 김승일의 부검에 따르면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들이 폐와 기관지 모두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감정서 결론부에서는 청산가리에 의해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져, 일직선의 골절이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또한 강제로 약물을 주입했거나, 타격했다는 증거로는 활용될 수 없다는 내용을 첨부했다.
하지만 이는 최소 10일이 지난 시신을 부검한 것이며, 당시 현장 사진을 보거나 방문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안전기획부의 진술을 바탕으로 부검한 결과다. 반증하듯 부검의 이유 자체가 ‘하치야 신이치’의 진짜 정체를 밝혀,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노인을 부검한다고 해서, 그의 신원이 밝혀질 리가 없다. 또한 법의학자가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 부검했다가 패착을 본 사례가 많다. 공교롭게도 김승일을 부검했던 두 명의 법의학자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995)’에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정보만을 듣고서는, 피해자의 시반을 잘못 파악하여 사망 시간을 오판했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폐와 기관지에서 담배 필터와 유리 파편,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고 해서 그가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4) 김승일의 시신 처리와 부검감정서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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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진실을 명백히 밝혀 줄 김승일의 시신과 부검감정서는 어디 있을까? 김승일의 시신은 사진과 영상을 모두 촬영한 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화장 처리를 하여 경기도 파주의 북한군/중공군 묘지에 안장했다. 따라서 김승일의 시신이라는 주요 자료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승일의 시체를 촬영한 영상(VTR)은 어디 있는 걸까? 대한항공 858편을 주제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박강성주 박사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김승일의 사진과 영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다른 답변을 했다. “저희는 부검할 때, 따로 영상을 촬영하지 않습니다(202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김승일의 시체 처리 문서의 내용과 전혀 대비된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현재 국가정보원 또한 김승일의 부검 및 시체를 촬영한 영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2022년). 하지만 간혹 노태우 정권 때 의문사를 당한 대학생의 부검 영상들이 있다는 사례를 볼 때, 과거나 현재나 따로 부검 영상을 촬영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여러 의혹을 부른다.
김승일의 부검감정서는 현재 나라기록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로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부분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됨). 그러나 2022년 만 해도 나라기록관은 김승일의 감정서를 ‘부존재 문서’로 인지했다. 왜 문서를 찾는데, 무려 1년이나 걸렸을까? 이에 대해 국가 기록관의 직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문서 이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국과수 감정서 문서가 어떻게 등록이 되냐면, ‘감정서 회보’ 딱 다섯 글자로 나가요. 그걸로 저희는 못 찾아요. 날짜도 없고, 문서 번호도 없고…(2023년 국가 기록관).”
2. 대한항공 858편 기체 잔해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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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조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사고 항공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CVR’과 ‘FDR’의 회수. 그리고 기체 잔해의 수거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기체가 수장된 안다만해 수색을 게을리했다. 더불어 1990년대 발견된 일부 기체 잔해는 태국의 어부가 그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그것도 1988년 서울 올림픽 특수 도장이 아니었다면,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태국에서 촬영한 기체 잔해 사진은 국가정보원에서 소유하고 있다. 의아한 점은 기체 잔해 원본 사진들이 ‘비밀정보 2급’으로 분류되어, 열람만 가능한 상태다. 더불어 국가정보원이 2020년 11월에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로 대여했으나, 2023년에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회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놀랍지 않다. 정작 놀라운 것은 1990년도에 국가안전기획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감정 의뢰한 기체 잔해들이 모두 폐기 처분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얀마 정국이 안정되어, 안다만해에서 나머지 기체 잔해를 수거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 볼 점은 기체 잔해 사진이 정확하게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이며,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기체를 감정한 감정서는 현재 위치가 묘연하다는 점이다.
“그쪽에서(국가정보원) 보내준 사진이 몇 개 있는데, 707기…손상된 사진이 858편 동체하고 관련된 게 있는데…기체 잔해가 폭파되어서…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기체 도면하고 CVR. 이런 사진들이 몇 개 있어요…이것일 것이다. 기체를 안다만해서 꺼내지도 못했어. 몇 개는 이럴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몇 개가 있는데…(2023년 국가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국과수에 지금 요구해도 국과수에 그 시스템을 담당하는 담당자도 그 감정서에 접근을 못해요. 기체 감정서 때문에, 혹시 문서 번호라도 확인할 수 있는지 요청했는데 접근조차 안 돼요(2023년 국가 기록관).”
3. 대한항공 858편을 추락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한 이후, 여러 가설이 나왔다. 첫 번째 가설은 기체 결함으로 인한 비상착륙 시도다.
1971년 대한항공에 도입된 보잉 707(HL-7406)은 구형 기체로서 1977년, 1987년 랜딩 기어 문제로 김포국제공항에 두 번이나 동체착륙을 한 사례가 있다. 1977년은 항공기관사의 조작 실수, 1987년은 기체 결함으로 인해 앞의 기어가 나오지 않아, 뒷부분의 기어만으로 동체가 활주로에 미끄러지듯이 착륙을 강행했고, 다행히 두 사건 모두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1987년 교통부 항공국에서 조사한 조사보고서는 현재 국가 기록관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국가 기록관은 수사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문서’로 처리하고 있다. 두 달 뒤 발생한 대한항공 858편의 기체 상태를 알 수 있는 주요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 기록이 비공개 상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정말 기체 결함으로 인해, 미얀마와 교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단지 구형 보잉 기체이며, 미국에서 수리받은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가설은 폭탄테러 설이다. 1988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는 대한항공 858편이 라디오로 가장한 폭탄에 의해 추락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1-2권에서 폭약에 관한 황당한 진술로 인해 여러 의혹이 나왔다.
그중 특기할 진술은 김승일이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TNT가 든 배터리를 복대에 숨기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는 것. 그러나 외교사료관을 통해 공개된 국가안전기획부의 언론 보도문에 따르면,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 RF-085’에 은닉된 폭약은 분명 ‘컴포지션 C-4’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1987년 12월 회보)에 따라, 김현희의 진술서에서 폭약이 컴포지션 C-4에서 급하게 TNT로 변경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TNT 배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2006년 국방과학연구소도 이에 부정적인 회신을 보냈다.
또한 2006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의 조사보고서의 부록에 국가안전기획부-외교부의 전문이 실려 있는데, 김승일과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기 전 받은 보안검사에서 ‘양주병’으로 가장한 ‘PLX’ 액체 폭탄이 발견되지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라디오와 양주병으로 가장한 폭탄으로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했다는 허위 사실을 발표했다.
1988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외교부 문서 그 어디에도 PLX 액체 폭탄의 실험 결과가 없다. 단지 컴포지션 C-4의 실험 결과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350g). 이러한 내용만으로는 대한항공 858편의 추락 원인이 폭탄인지, 기체 결함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위한 비밀 작전인 “무지개 공작(1987. 12월 2일 작성)”에 따라 북한의 소행으로 서둘러 발표했다.
“KAL858기 등록번호 HL7406 확인해야”
‘KAL858기 연구소 그 마음’, KAL858 국회 토론회 개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입력 2023.08.14 22:03
- 수정 2023.08.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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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든 비행기에는 주민번호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KAL858기 같은 경우에는 HL7406, 이것은 전 세계의 모든 비행기 통틀어서 KAL858기에만 특정된, 부여된 번호입니다.”
‘KAL858기 연구소 <그 마음>’이 지난 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한 ‘KAL858기 진실규명 국회 국제토론회’에서 발표자 박강성주 박사는 대구MBC에 의해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KAL858기 기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지만 “KAL858기의 것이라고 확인된 것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강성주 박사는 기체 추정 물체가 KAL858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물증이 등록번호 HL7406과 꼬리 부분 날개에 있는 태극 문양, 그리고 태극기 표식이라며 특히 등록번호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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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3일 <MBC 뉴스데스크>는 “MBC 특별 취재팀은 1년 가까운 추적 끝에 미얀마 안다 만의 50미터 해저에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했다”며 관련 영상을 방영한 바 있다.
KAL858기 가족회와 유족회 등은 현장 수색을 촉구했고, 외교부는 2021년과 2022년 관련 예산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얀마 정정 불안 등으로 수색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고, 현재는 관련 예산마저 책정되지 못한 상태다.
박강성주 박사는 또한 “블랙박스는 실제로 두 가지”라며 조종실녹음장치(CVR; Cockpit Voice Recorder)와 비행기록장치(FDR; Flight Data Recorder) 모두 꼬리 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인양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9년 심해에서 인양된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는 고압 살수 세척 과정에서 데이터가 유실됐고, 2011년 해저에서 발견된 에어프랑스의 블랙박스는 즉시 처리수에 넣어 데이터를 지킨 사례를 비교, 예시하기도 했다.
박강성주 박사는 “증거를 찾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미안마 앞바다에 있는 기체가 KAL858기의 것인지 확인을 하고, 확인이 된다면 인양을 하는 수색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전반적으로 이를 기점으로 다시 재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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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발표에 나서 “이 사건은 일단 전반적으로 미스테리 한데,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량과 그 다음에 시민사회의 양심 이것을 저울질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 사건의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얼마든지 민주당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토론과정에서 반론도 제기됐다.
정 교수는 ‘젠더 정치의 일상화’를 지적하며 “김현희 씨의 비키니 사진하고 몸매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이 사건을 완전히 김현희 사건으로 대체를 했다”며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 모든 시민들이 공모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건처럼 완벽하게 피해자가 비가시화되고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조차 없는 사건은 제가 아는 역사상 사건으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현희는 언론 매체에 등장하고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유가족이 오히려 사회적 성원권을 박탈당하고 안기부 사찰대상이 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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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올가 페도렌코 서울대 교수는 “부끄럽지만 이 토론회를 통해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며 “앞으로 있을 한반도 냉전 관련 수업 시간에 사건을 다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철우 전 한겨레 기자는 토론에서 “대형 사건사고, 참사에 이르게 된 과정을 되짚어봄으로써 사건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려는 우리 사회에 무척 중요한 문제”라며 “제대로 된 재조사의 ‘과정’ 자체와 우리 사회의 관심이 희생자와 유족의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다 설명되지 않은 의문, 의혹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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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을위한과학기술인포럼(FOSEP) 대표는 토론에서 “조사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제3의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자유롭게 검증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과거 정부의 조사과정은 ’과학적‘ 조사로 보기 미흡한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에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의 적극적 조사 및 인양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당초 비대면 토론자로 예정된 리처드 잭슨 오타고대 국립평화분쟁연구소 소장을 비롯해 비대면 격려사 예정자 등 외국 학자들은 온라인 접속이 안 돼 참여하지 못했고, 신시아 인로 클라크대 교수는 『슬픈 쌍둥이의 눈물: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한울) 추천사로 격려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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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는 “지금 잘 아시는 대로 윤석열 이런 정권 하에서 이게 진상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우리가 불꽃은 꺼뜨리면 안 되겠다. 불꽃을 살리는 이러한 일을 해야 된다라는 그러한 소명에서 바로 국회 이 자리에서 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고 격려했다.
함세웅 신부는 특히 “이 일의 배경은 대한민국 정부와 그 당시에 안전기획부뿐만 아니라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개입이 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지만 후배들, 공직자들이 안 움직인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가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대신 내 목숨을 바치겠다라는 그런 결의를 통해서만이 이 KAL858기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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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격려사에서 “KAL858기 사건이 굉장히 노태우 대통령 당선되는 데 기여한 건 틀림 없는 사실”이라며 “범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왔는데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얘기한 게 하나도 없다”고 지적하고 “36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설훈 의원은 “유족들이 36년 동안이나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다”면서 “유족들이 지금 코너에 몰려 있고 가해자는 숨어 있는 상태”라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수색) 예산 자체를 다 깍아 버렸다”고 비판하면서도 “이제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자유발언 과정에서 “민주당 180명 국회의원들 데리고 행정권력 견제 하나도 못하지 않느냐”며 “마음 아픈 가족들 희망 고문하는 계기가 안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야당 의원들을 향한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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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으로 친형을 잃은 김영 전 인하대 교수는 “우리들은 사실 그동안에 좀 지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잊을 수가 없다”며 “사건이 36년이 지나서 잊혀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박강성주 박사가 연구 논문을 제출해서 국제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규명의 시초를 열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김 교수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다”며 “나 개인의 가족 사의 문제만 아니고 우리 한국 사회, 현대사의 비극의 문제의 실체를 밝히고 또 유해를 발굴해서 우리 가족들 모두들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일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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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는 ‘KAL858기 연구소 <그 마음>’과 국회의원 설훈, 김홍걸 의원실이 공동주최했고,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격려사를 했으며, KAL858기 가족회의 진상규명 활동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패배의식의 패배를 위하여’라는 이날 토론회 부제나 ‘불가능의 시대, KAL858기 이야기’라는 발표문 제목처럼 이날 토론회는 윤석열 정부에서 진상규명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객관적 상황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기도 했다.
박강성주 박사는 인사말에서 “지금 여러 가지 상황상 이 KAL858기 사건 관련된 진실규명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라는 그런 어떤 좌절감 절망감이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노력을 했다라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오늘 토론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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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고 직전 미국서 정비받아
외교부 문서공개, 'ICAO 결의' 놓고 남북 엇갈린 평가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입력 2020.03.31 12:03
- 수정 2020.04.01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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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사라진 KAL858기 사건에 대해 당시 외무부는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회에서 북한 규탄 결의를 도출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무지개 공작’의 대외홍보지침을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
결국 ICAO 이사회에서 규탄 결의가 채택됐지만 '북한'은 명시되지 않았고, 우리 외교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고, 북한은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는 상반된 평가를 낳았다.
더구나 미국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을 옥죄는 활동을 한국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편 사실도 확인됐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북미관계에 대못을 박았다.
외교부가 30년이 경과한 방대한 분량의 외교문서를 31일 공개했고, 그 가운데 KAL858기 사건 관련 외교문서가 지난해에 이어 2,000여 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공개된 외교문서들이 사건 발생부터 조사결과 시점까지의 외무부 움직임을 담았다면,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들은 정부의 조사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특히 ICAO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책임을 성토하는 외교활동을 주로 담고 있다. 분량 역시 지난해 1만건 이상에 비해 2천여 건에 불과하다.
안기부장, 수사결과 앞두고 '관계 장관회의' 주관
먼저, 88년 1월 15일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1월 14일 안기부장이 주관한 ‘관계 장관회의’가 열려 각 부처별 협조사항이 시달됐고,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와 문공부는 ‘대언론 협조 조치’로 안기부1차장이 1월 14일 정오 주요언론사 사회부장단에게 사건개요를 고지하고 ‘보도방향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14일 오후 8시 전 언론기관에 보도자료를 사전 배포하고 ‘조직적인 확대 보도 유도’를 했다.[03-0141]
뿐만 아니라 문공부는 ‘정부 대변인 대북성명 발표’를 시행하고 안기부와 국방부, 문공부는 ‘대북 심리전 전개’를, 내무부와 문공부는 ‘반공연맹, 이북 5도민회 등 반공 및 안보관련 단체의 대북괴 만행 규탄 운동전개’에 나서도록 했다. 특히 외무부와 문공부, 안기부는 '외교 관련 조치'로 미국, 일본, 바레인에 수사결과를 사전통보하고 '수사발표 지지논평 유도'를 지시했다.
사전통보 대상으로 미국에는 '주한미국 대사 및 CIA 거점', 그리고 현지 'FBI 본부'에, 일본에는 '주한 일본대사 및 내각 조사실, 현지 경시청 공안조사실을 적시했다. 나아가 미국측에는 '소련, 중공측에 내용을 전달해 줄것과 양국이 북괴에 재발방지를 촉구토록 요청'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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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주요 외국 정보기관 사전통보 협조', '주한 외교단에 대한 브리핑', '주재국 언론 및 아국 특파원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 '북괴 규탄 켐페인 및 제재 조치 유도', '국제기구 제소' 등도 추진했다. 여기에는 '재외공관 현지 주재국 대상 대북 단교 유도활동'과 '국제 인권 및 항공기구 제소, 북괴규탄 결의안 채택 유도'가 포함돼 있고, 이후 외무부는 ICAO 등에서 이를 실행하게 된다.[03-0143]
이번에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는 주로 사고조사결과 전파(전3권)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123차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회(88.2.29-3.31)에서 대북 규탄 성명 도출을 위한 외교활동(전7권)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KAL858기 실종사건 관련 ICAO 회의를 통한 북괴 만행의 규탄'은 당시 외무부 국제기구과가 1987년 12월 9일자로 벌써 검토에 들어갔다.[06-0003] 물론, 유엔안보리, 항공법회의, 유엔인권위,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서방 7개국 정상회담, 유엔총회 제6위원회 등 88년 9월까지 주요한 국제기구나 회의장도 모두 북괴 규탄이 추진됐다.[06-0018]
몬트리올 ICAO 이사회를 겨냥한 외교는 88년 1월 15일 수사결과 발표일을 하루 앞둔 1월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우선 외무장관은 몬트리올 주캐나다 대사에게 '가능한 조속한 시간내에 몬트리올에 출장 ICAO 이사회 의장 면담'을 추진하라고 지시하고 '우선 사무총장 자격으로서의 대북괴 경고조치을 취하여 줄것을 요청'하라고 지시한다. 필요할 경우 마유미(김현희)와 ICAO 관계기관의 면담도 가능하다고 알린다.
외무부 활동, 공개된 '무지개공작' 해외홍보방향과 일치
ICAO 이사회 결의, '야비한 행동' 주체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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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외교문건 내용은 국정원을 상대로 <통일뉴스>가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해 행정소송 끝에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해 9월 공개된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 이른바 '무지개공작' 추가공개 내용 중 '마. 해외 홍보 방향'과도 일치해 주목된다.
사건 발생 사흘만인 88년 12월 2일자로 작성된 '무지개 공작'은 "(1) 금번 사건은 랑군 사건을 자행한 북괴의 또 다른 만행임을 들어 전세계 각국, 국제 적십자사, UN, IOC 등 국제기구가 북괴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북괴와의 관계를 재고토록 제의"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ICAO 이사회까지는 눈길이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ICAO 이사회에서 북한 규탄 결의 채택을 모든 외교력을 동원해 추진했고, 결국 3월 25일 33개 이사국 전원 일치로 '결의(RESOLUTION)'을 채택 "115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낸 민간항공기 파괴를 가져온 야비한 행동"을 "강력 규탄"했지만 '야비한 행동(despicable act)'의 주체는 명기하지 못했다.[10-0166]
즉 북한을 범행주체로 특정하지 못한 것. 33개 이사국 중 23개국이 규탄 발언을 했지만 '소련, 쿠바, 체코, 탄자니아 등 4개국'은 북한측을 비호했고, '중공'도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ICAO 이사회 규탄결의, 남북 엇갈린 평가
외무부는 "친북 이사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무투표로 의제채택을 관철"했다며 "북한을 간접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은 금번 사건이 북한의 범행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부각한 외교 노력의 성과"라고 자평했다.[10-0179]
그러나 북한 대표단은 이같은 결과에 '매우 만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몬트리올 총영사가 캐나다 법률국장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서다. "작(지난) 3.29.북한대표단이 자신을 방문하였을 시 이들은 ICAO 이사회의 858기 토의 결과에 매우 만족해 하는 태도로 보였음"이라는 대목이다.
이어 "동 결의안은 누가 보아도 북한을 겨냥하여 DESPICABLE ACT를 강력 규탄한 것인데 북한대표단이 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음"이라고 덧붙였다.[11-0027]
캐나다 관료는 ICAO 이사회 결의가 북한을 규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했겠지만 북한 외교관들은 결의 내용에 '북한'이 적시되지 않은 것을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대북 응징 '추가 조치'에 관심
이번 외교부 공개문건 중 KAL858사건 관련 미국의 적극적인 '북한 응징' 움직임도 눈에 띈다. 88년 2월 3일 주한미국대사관 밀러(Miller) 1등서기관과 면담한 외교부 국제연합과장은 밀러 서기관이 "금번 대한항공기 폭파사건과 관련, 국무부로부터 대북한 응징을 위한 추가 조치 필요성 여부에 관하여 한국측과 협의 하라는 지시를 받음"이라고 면담기록을 남겼다.
특히 "미국은 세계 각국 특히 서구 지역 국가들이 북한을 응징하기 위한 추가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는데 한국측과 협조할 용의가 있는 바 예를 들면 북한이 서구 국가에 주재시키고 있는 통상 대표부와 대사관의 직원을 축소시킨다거나 그들의 격(level)을 낮추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서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도 유도하도록 하는데 대한 한국측의 의견을 듣고 싶음"이라고 기록했다.[07-38]
이같은 미측의 의견을 들은 외무부 유엔과장은 "아국도 각국이 가능한한 대북한 제재 조치를 취하여 주기를 요청하고 있으며 세인트빈센트의 대북한 단교 조치도 이러한 아국 노력의 결과"라고 맞장구쳤고, 밀러 서기관이 다시 "덴마크와 같은 나라는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하자 유엔과장은 "가능만 하다면 아측은 그러한 국가가 대북한 단교조치를 취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화답했다.[07-0039]
미국은 KAL858기 사건을 기화로 '서구 국가'들과 북한을 떼어놓기 위한 '추가 조치'에 관심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은 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북미간 외교관 접촉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양자제재를 발표한 상태였다.
실제로 유엔안보리와 ICAO에서 KAL858기 사건에 관한 규탄 결의가 나왔지만 '북한'을 명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테러지원국 지정 등 강력한 대북 제재에 착수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본격적인 북미대결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KAL858, 사고 직전 미국 정비사에서 엔진에 소음경감장치 장착
이미 알려진 사실 중 중요한 대목들이 공문으로 다시 확인된 점들도 있다.
당시 교통부가 외무부에 공문(88.1.11)으로 보내온 항공국의 ‘항공기사고조사보고’(87.12)에는 ‘버마의 ’우리디스‘(어디스) 인도양 상공’에서 11.29 14:01분에 최종교신한 뒤 다음 보고지점인 267km 떨어진 ‘타보이’에 14:22분 예정된 교신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비상호출신호도 없었다.[03-0025]
사고기는 사건 두 달전인 87.9.2 ‘LOCK ROD 파손’으로 87.9.7-9.28 수리작업을 거쳤고, ‘동체전면 하반부 표피 및 골격교체’ 작업이 있었다. 특히 “사고기에 대한 최종 수리개조 작업은 ’87.10.13부터 약 4주간에 걸쳐 미국 산타바바라에 있는 TRACO CO. 에서 항공기 엔진에 소음경감장치(HUST KIT)를 장착하였으며 이때 장착엔진 4기에 대한 전반적인 성능시험결과 정상이었음”이라고 기록돼 있어 주목된다.[03-0026]
국정원발전위(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조사결과보고서에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1988.1.1부터 HUST KIT를 장착하지 않은 B707기의 운항금지를 권고"했다고 밝힌바 있다.(국가정보원,「과거와 미래의 성찰 -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 (Ⅲ)」,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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