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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익도 한반도 미래도 못 챙긴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by 무궁화9719 2023. 4. 30.

기업 이익도 한반도 미래도 못 챙긴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등록 2023-04-30 16:23수정 2023-04-30 19:30

[특별기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을 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다른 별종의 지도자인 것 같다. 박정희 정권 이래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자신의 기질과 상관없이 대외정책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기하는 방향에서 노력하였다. 중국·러시아와 수교를 성사시킨 노태우 정권 이래 지난 30여년간 두 나라가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한 그들을 자극하여 스스로 한반도 정세의 불안을 가중시킨 대통령은 없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눈높이를 맞춘 가치외교를 내세워 중국·러시아를 자극하며 불안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미국의 압력 때문으로 보기에는 너무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다. 마치 세계를 다시 냉전시대식의 진영 간 대결로 몰고 가는 신냉전 전사처럼 보일 정도다. 그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뒤에 우리 국민이 떠안을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한국 외교가 국익을 위해 넘지 않았던 선을 거침없이 넘었다. 방미 기간 내내 가치 기반의 외교를 강조하고 중국·러시아 관련 문제를 언급하며 두 나라와 대립하는 지점에 명확히 섰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이 원하는 미국의 언어가 그대로 담겼다. 반면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양해하는 어떤 종류의 문구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중국·러시아가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나라들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두 나라는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와 국경을 맞댄 초군사 강국이며,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한반도 정전 체제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윤 대통령보다 덜 똑똑하고 자유의 가치를 몰라서 대만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 아니다. 그 길이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국가이기도 하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 총액은 같은 기간 전체 무역흑자의 90% 정도를 차지했다. 러시아도 중요한 경제협력 국가로 부상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가치외교가 노골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우리 기업들의 신음 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4월12일 광저우시의 엘지(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중국 견제 발언이 나와 우리 기업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현지에 진출해 있던 현대자동차가 철수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기업의 애로를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영 갈등의 전위대로 나서서 그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냉엄한 국가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국제정치의 장에서 국익은 무엇인가? 미-중 갈등 속에서도 프랑스는 에어버스 160대를 중국에 판매하는 실리를 챙겼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든 쿼드(QUAD)의 핵심 국가인 인도는 대러시아 제재 물결 속에서 미국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값싼 러시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아마 ‘자유’라는 가치에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이런 모습은 ‘실리 추구’보다 ‘배신적 행위’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가치외교는 ‘가치동맹’을 지향한다. 필자는 오래전에 <한겨레> 칼럼에 ‘‘가치동맹’과 가치공유의 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2012.8.1) 한·미가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실과 ‘가치동맹’이 된다는 말은 다른 뜻이다. 한국과 미국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그러나 가치외교가 지향하는 ‘가치동맹’은 이를 넘어서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나와 반대되거나 다른 이념을 지닌 국가에 대항하여 배타적 동아리를 만든다. 국가들 간 가치의 수렴은 장기간의 접촉과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라 생각되지만, 안타깝게도 ‘가치동맹’이 현실화되고 있다.
 
‘가치동맹’의 합창이 커질수록 한반도의 긴장도 비례해서 고조될 것이다. 미국은 ‘가치’를 기치로 구심력과 원심력이 혼재했던 중국-러시아-북한 관계를 한통속으로 몰아가고, 그 방패로서 동맹급의 한·미·일 군사·정치협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군사적 제압? 윤석열 정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북한의 특성과 국제역학상 아무리 강력한 확장억제 전력을 구비해도 그에 상응한 북한의 도발만 강화시킬 뿐 굴복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국이 입을 안보·경제적 손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반도 평화는 큰 도전에 직면하고 그 여파로 한국 경제는 안보 리스크까지 더해져서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당장 대북제재 체제를 크게 동요시킬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북한 핵도발로 인한 제재 조치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북미 교역과 남북 교역 등이 제로인 상태에서 대북제재는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이 대북제재가 미-중 갈등 속에서 점차 이완되어 왔는데, 이번에 윤 정부의 가치외교가 결정타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디시(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다가 미국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미국 방문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에 내준 것은 분명한 데 비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핵 대처와 관련해서도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전술핵무기 공유 정도는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컸으며, 정부도 마치 핵공유를 얻어 올 것처럼 큰소리쳤다. 그러나 핵공유는 간데없고 이전 정부가 미국과 협의하여 발전시켜온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사실 확장억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그 체제의 정교화가 아니라 양국 간 신뢰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말의 성찬으로 이루어진 확장억제 체제를 얻으려고 미국한테 스스로 핵무장 의지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큰 선물을 내주었다.
 
한편 우리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한 것은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불이익을 만회하는 것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첨단 기업들이 거대한 중국 시장의 손실을 감수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공급망 생태계 구축에 동참했으나, 결과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 죽이기로 나타난 것이 이 법안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이 동맹의 역설을 해결할 만한 어떤 구체적인 양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이 법안들을 만든 의회 지도자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어야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침묵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미국에 대한 찬사와 장밋빛 카펫이 깔린 한-미 관계도 말해야 하지만, 더불어 미국 투자 한국 기업들의 애로와 우리 국민의 우려를 솔직히 전달하고 미국의 전향적인 조치를 마땅히 요청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현대차 공장이 만들어낸 일자리를 자랑스럽게 열거하며 호혜적 한-미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 기업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실속 없이 끝났다. 행사는 요란했으나 가치외교에 가려 국익도 한반도의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향후 미국이 부과한 제약 조항으로 우리 기업의 주름살은 여전히 깊게 패어 들어가고, 한반도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 같다. 그리고 이 긴장은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의 기치를 내려놓고 외골수 외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가라앉기 어려울 것이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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