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없이 떠난 노태우·전두환…대신 무릎 꿇은 아들·손자
김유민입력 2023. 3. 30. 15:05
전두환 손자 우원씨 광주 찾아
“천사처럼 환영해주셔서 감사”
노재헌씨도 가족 중 처음 사과
“5·18 유가족 여러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이 사건으로 정신적 피해를 본 모든 분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전우원씨가 광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한 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인사하고 있다. 2023.3.29 연합뉴스 5·18민주묘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5·18 희생자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2020.5.29 노재헌 씨 측 제공

전두환(오른쪽)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출석한 모습.1996.9.2.서울신문 DB
고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27)씨가 29일 광주를 찾았다. 전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그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 38시간 조사를 마치고 약속대로 광주로 향했다.
전우원씨는 입국 당시 “마음 다치신 분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고, 5·18 단체는 “격하게 환영한다. 당당하게 용기를 잃지 말고 5·18 영령들과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달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전씨는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전두환심판국민행동의 상임고문 전태삼씨는 “지나간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를 고대했다. 응원하고 함께할 것이니 역사를 바로 세우고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전우원씨는 이날 ‘5월 광주 학살’을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5·18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추모승화공간으을 방문한 뒤, 낮 12시쯤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오월영령들에 참배할 예정이다.

할아버지 전두환의 수많은 과오
전두환씨는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님에도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전 재산 29만원’을 운운하며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노태우 아들 “1000번이라도 사죄”
노태우 전 대통령 또한 신군부 실세로서 1980년 5월의 학살과 관련해 광주 시민과 국민에게 한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 2011년 펴낸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나고 아들 재헌씨가 2019년 이후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아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했다. 그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에게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희생자 묘역에 하얀 국화를 헌화하고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노재헌씨는 “(아버지는) 항상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하셨다”며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해 5·18 단체는 “몇 차례 참배가 5·18 학살의 책임을 용서받은 것처럼 평가받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사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5·18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만이 그의 죄업을 씻는 최소한의 길”이라는 성명을 냈다.

29일 오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고(故)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2020.5.29 노재헌 씨 측 제공

5·18 재단 “안쓰럽고 가슴 먹먹”
5·18 재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가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죄를 하기 위해 광주를 찾은 일에 대해 “가슴이 먹먹하고 안쓰럽다”고 평가했다.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는 손자의 모습이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며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조 이사는 “전두환은 사죄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의 죄과는 결코 사라지거나 덮어지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역사적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믿어 왔다”며 “역사적 죗값을 치르지 않은 범죄자 후손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 지금 전우원 씨가 바로 적나라하게 입증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 후손이 또 그런 무거운 죗값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조진태 이사는 “(전우원씨는) 본인이 처벌을 무릅쓰고 귀국까지 했다”며 “전두환 후손이라는 굴레, 그런 부분들을 한 청년이 감당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안쓰럽다”라며 “매우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 유족과 피해 당사자 단체 대표들이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고 묘지 참배에 동행해서 전우원씨의 사과, 사죄, 참배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김유민 기자
전두환 손자 "5·18진상규명 위해 우리 가족 모두 죄 고백해야"
최성국 기자 이수민 기자입력 2023. 3. 30. 16:04수정 2023. 3. 30. 16:15
광주 찾은 전우원씨 "이제는 피해자 입장에 설 것"
31일 공식 일정 소화 후에도 광주 방문 의사 밝혀
31일 공식 일정 소화 후에도 광주 방문 의사 밝혀

(광주=뉴스1) 최성국 이수민 기자 =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는 30일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우리 가족 모두의 죄 고백이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우원씨는 이날 오후 3시쯤 광주 서구 치평동의 거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완벽한 진실이 밝혀지려면 저희 가족 모두 앞서서 모든 죄를 공개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광주
서구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는 전씨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직접 광주에 와서, 저라도 먼저 사과를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원씨는 "제가 사죄를 드린다고 용서가 되는 것도, 그분들(피해자와 유족)의 마음이 다 풀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한 분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드릴 수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려는 것"이라고 자신의 광주방문 배경을 전했다.3
1일 공식 사죄 일정을 앞둔 그는 추후 행보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게 없지만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 이후에도 필요하다면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사죄 등을 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우원씨는 이날 광주에서 보낸 하루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어떻게 보면 제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너무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걸어주신 모든 시민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방송에 나오다보니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응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며 내일 일정을 기다릴 것"이라며 "숙소로 올라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민분들과 대화를 나누겠다"고 알렸다.
우원씨는 "시민분들이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내일 사죄하는 마음을 준비할 것"이라며 "제가 이기적인 마음, 무서운 마음에 과거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저희 가족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위주로 봤다. 이번에는 조금 더 피해자 분들의 입장에 서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위주로 보다 공부하며 내일 일정을 기다리겠다"고 강조했다.
가족과 관련해서는 "최근에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고 당분간 연락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stare@news1.kr
사죄 나선 전두환 손자 돕는 5·18 단체 “환영 아냐, 지나친 의미 부여 말아야”
고귀한·강은 기자입력 2023. 3. 30. 16:44수정 2023. 3. 30. 17:12
전우원씨 행보에 조심스러운 반응
일가 전체 면죄부·진정성 등 우려

5·18민주화운동 단체가 “사죄를 하겠다”며 광주를 찾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의 행보를 두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씨의 사죄는 돕겠지만 그를 환영한다거나 ‘전씨 일가를 대표한 사죄’ 등으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3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씨는 31일 오전 5·18단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5·18민주묘지 참배 등 공식 일정에 나선다. 5·18기념재단과 공법단체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는 그의 요청에 따라 사죄 일정을 돕기로 했다.
전씨의 광주행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이날 통화에서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우원씨)의 용감한 언행과 행동은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며 “그의 발자취가 마약 같은 것에 묻혀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전태삼씨를 비롯한 5·18부상자회·공로자회 일부 회원들은 마약 투약 혐의로 지난 3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를 향해 “광주행을 격하게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5·18단체는 전태삼씨와 5·18부상자회·공로자회 일부 회원들이 전날 보인 행보에 대해서는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은 “환영하지 않더라도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다만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도 “손자 전씨에 대해 환영한다고 하면 ‘엎드려 절받기식 사과가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사과를 하러 온 사람의 말을 듣고 진정성을 확인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의 행보가 자칫 전씨 일가 전체에 대한 면죄부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전씨 손자 중에 이런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버젓이 살아있는 이순자씨와 장남 전재국씨 등은 아무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손자의 독단적 행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부모 입장에서 그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돼 격려하고 위로하는 차원에서 도울 뿐이지, 그를 영웅시하던가 용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행보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5·18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는 “마약 투약을 인정한 손자 전씨의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행위와 발언에 5·18단체와 시민 전체가 놀아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그가 부디 진정 어린 사죄를 하고 그 마음이 전씨 일가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자 전씨는 미국 뉴욕에 체류하던 지난 13일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며 5·18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8일 입국 직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29일 오후 7시55분쯤 석방돼 곧바로 광주를 찾았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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