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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6.10.4.19(민주화운동)외 형제복지원.실미도 등 등..

5·18 진압 계엄군, 집단 성폭행 사실 등 공식 확인

by 무궁화9719 2023. 4. 18.

5·18 진압 계엄군, 집단 성폭행 사실 등 공식 확인

등록 2023.05.08 09:50:51수정 2023.05.08 09:52:57

51건 중 24건 마무리…여고생 피해자 최소 2명

계엄군, 최소 2회 이상 집단 성폭행 저지르기도

"반인도적 범죄 문제, 대정부 권고안에 담을 것"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입된 계엄군들이 집회에 참여한 여고생과 여대생을 상대로 성폭행을 가한 사실이 정부 조사 결과 공식 확인됐다.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거나 지역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오랜 시간 입원해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에 따르면 5·18 당시 계엄군이 자행한 성폭행 사건 51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대상 51건은 지난 2018년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등이 조사한 내용 17건,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서 추려낸 26건, 자체 제보를 받은 8건을 합친 수다. 조사위는 이중 24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했다.

조사 결과 전체 성폭행 피해자들 가운데 최소 2명은 여고생이었으며, 이들 중 피해 회복을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했거나 관련 치료를 받은 피해자들도 7명에 달했다. 계엄군은 최소 2회 이상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도 파악됐다.

피해자 가운데 당시 여고생이었던 A씨는 1980년 5월 19일 다른 여성 2~3명과 함께 계엄군에 체포돼 광주 남구 백운동 한 야산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또다른 피해자 B씨는 5월 20일 새벽 언니의 집에서 돌아오던 중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한 B씨는 1982년부터 지역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88년부터 나주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도 있었다. 당시 여고생 C씨의 유족과 주변인 등 10명은 C씨가 5월 19일 계엄군에 납치돼 광주 모처 야산으로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5·18 이후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C씨는 1985년 분신해 목숨을 끊었다.

계엄군 주도 성폭행은 은밀히 이뤄진 탓에 부대 이동 경로를 비롯해 개인별 이동 경로 파악, 내부 고발이 중요 단서로 지목된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위는 전체 성폭행 사건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계엄군 2명을 만나 조사를 벌였으나 이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범행이 은밀히 이뤄진 탓에 특정 가해자들이 범행을 대체로 부인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며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5·18 당시 벌어진 성폭행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처벌 문제는 공소시효가 끝났더라도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어 대정부 권고안에 담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사위는 5·18 당시 행방불명된 미성년자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조사위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손에 붙들렸다가 광주 상무대에서 사라진 이모(당시 7살)군 등의 구체적인 행적을 쫓고 있다. 조사위는 이 군이 5·18 이후 요양시설에 맡겨진 뒤 해외로 입양된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軍, 5·18최후항쟁 때 도청진압 뒤 민간인 추가 살해"

등록 2023.05.16 16:49:40

사망 경위 불분명 민간인 다수, 계엄군 작전 휘말려

주남마을서도 시민 사살·암매장한 당사자 진술 확보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광주 시민들이 1980년 5월 24일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 발포로 사망한 시민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이 시민군을 무차별 학살한 직후 비무장 민간인을 추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는 5·18 43주기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5·18 항쟁 기간인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계엄군의 학살 행위로 숨진 민간인 수는 166명으로 집계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저항 능력이 없거나 시위와 무관한 시민들이었다. 숨진 사람들 중 14세 이하 미성년자는 8명, 여성 12명, 장애인과 60세 이상 노인 5명으로 파악됐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광주 도심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를 물리력을 동원해 진압, 시민들을 학살했다.

이후에는 광주를 봉쇄하기 위해 26일까지 외곽에 주둔하며 주변 마을 주민이나 지나는 차량에 총격을 가하는 식으로 살상 행위를 이어갔다.
 
5·18조사위는 최후항쟁일인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상무충정작전 직후 민간인을 살해한 사실을 최근 새롭게 확인했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20사단 등은 옛 전남도청에서 살아남은 시민군을 상무대 등으로 압송하고 있었다.

계엄군은 이 과정에서 전남도청 주변 YMCA 건물에 숨어있던 시민 김모씨가 밖으로 나오자 총을 쐈다. 쓰러진 김씨는 주변에서 현장을 취재하고 있던 프랑스 사진작가 패트릭 쇼밸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이 사이 또다시 총을 맞았다.

김씨의 사인은 검시보고서에 전신 다발성 총상에 의한 사망으로 기재됐다. 최근 쇼밸로부터 관련 사진을 받아 분석한 조사위는 사진 속 김씨가 검시보고서의 주인공이라고 확인했다.

이보다 나흘 앞선 5월 23일 11공수여단이 광주 동구 주남마을을 지나던 버스를 향해 사격한 것과 관련, 부상자 2명을 살해하고 암매장 한 계엄군의 실체도 확인됐다.

계엄군은 당일 오전 주남마을 초입부의 광주~화순 간 15번 국도위를 지나던 25인승 미니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이 총격으로 승객 15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3명이 다쳤다.

11공수는 부상자 3명 중 채수길·양민석씨를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총살하고 암매장했다. 숨진 채씨와 양씨는 같은해 6월 2일 마을 뒷산에서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5·18조사위는 최근 채씨와 양씨를 사살한 계엄군 당사자를 특정하고 인정 진술을 영상으로 확보했다.

5·18조사위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건과 관련해 부상자들을 향한 확인 사살이 있었다는 다수 증언도 확보하고 관련 조사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그동안 사망 경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오모씨 등 민간인 4명은 5월 23일 31사단이 벌인 광주변전소 확보 작전에 휘말려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20사단 전투상보에 기록된 5월 22일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진입로 확보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 3명은 집과 공장 내부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5·18조사위는 이같은 민간인 살상 행위의 배경으로 '권력 찬탈을 위해 자국민 학살을 방기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살생 행위가 통제되지 않고 당사자 문책으로 이어지지 않아 민간인 살상이 반복됐다는 분석이다.

5·18조사위는 민간인 집단 학살과 발포 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이어간 뒤 내년 6월 보고서를 펴낼 방침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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