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태원 진상규명 발목잡은 정부여당
최종수정 2023.01.14 08:40 기사입력 2023.01.14 08:40
유가족 증언 이태원 국조 마지막에 이뤄져
정부여당, 이상민 지키고 유가족 멀리해
변화의 시작은 책임 회피 아닌 당사자 직면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뗐다. 지난 12일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공청회에 참석한 김씨는 "참사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 진상규명만큼 큰 치유는 없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이태원 국조는 오는 17일 종료되는 만큼 관계부처 책임자에 대한 추궁도 끝났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직도 참사가 벌어진 그날, 이태원에 있다. 유가족들은 이날 공청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가족을 만난 적도 사과한 적도 없다"고 절규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허위·부실자료와 책임회피성 답변, 일부 국조위원의 정쟁을 지켜보면서 실망감과 좌절감이 컸다고 했다.
참사 규명의 가장 기초단계인 당사자 증언은 국조 마지막에서야 이뤄졌다.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간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가족 대면을 놓고 여당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유가족 증언은 가장 마지막 순서로 미뤄졌다. 여당은 유가족 증인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국조에서 참사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는 여야간 정쟁이다. 하지만 곰곰히 뜯어보면 정부의 책임 회피가 진상 규명을 가로막았다. 여야간 협상이 더뎌질 때마다 여당 소속 특위 위원들은 '지도부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움직일 수도, 어떠한 입장을 표할 수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부여당은 이 장관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유가족은 최대한 멀리했다. 정부여당은 유가족이 좌절과 분노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 여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운 것이 아닌가.
참사는 예기치 못하게 벌어졌지만, 이후는 분명 달라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면하고 함께 개선점을 찾는 일이다.
"일부러 민 사람 없는데"… 군중이 파도처럼 떠밀려 넘어졌다
특수본 '이태원 참사' 재구성... '군중 유체화' 원인
4번 넘어지고 겹겹이 쌓여, 저산소증 겪다 질식
1㎡에 11명 밀집, 희생자 1명당 '0.5톤' 압력받아

손제한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장이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 브리핑실에서 수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해온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13일 참사의 직접적 원인으로 '군중 유체화'를 지목했다.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군중이 한 덩어리로 유체(流體)처럼 움직였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폭 3m 남짓의 비좁고 가파른 골목에 인파가 몰리면서 누군가 뒤에서 떠민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지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 1㎡당 11명 가까운 인파가 겹겹이 엉키며 최대 560㎏의 힘이 희생자에게 가해졌다고 봤다.
특수본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의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수본은 현장 주변 폐쇄회로(CC) TV와 제보 영상 등 180여 점(600여 시간 분량)의 자료를 분석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두 차례에 걸쳐 현장 합동감식도 실시했다. 3차원(3D) 시뮬레이션 감정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참사 77일 만에 사고 원인을 규명한 결과물을 내놨다.
밀집도 '임계점' 넘자… 군중이 갑자기 떠밀려 내려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전 해밀톤호텔 뒷골목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T자형' 골목에 인파가 밀집하면서 오후 9시쯤부터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나와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올라가는 사람들과, 이태원역 쪽으로 내려오는 인파가 뒤섞여 골목은 아수라장이 됐다. 생존자들은 특수본 조사에서 "파도타기처럼 왔다갔다 하는 현상이 있었다"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공중으로 떠서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오후 10시 15분쯤 음식거리 일대 밀집 군중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골목 쪽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군중 내부에서 힘이 응축돼 일종의 '난류(亂流)'를 일으켰다. 골목 위쪽 주점 앞에서 여러 명이 넘어졌고, 뒤편에 있던 사람들도 연쇄적으로 전도(顚倒·넘어짐)됐다. 특수본 관계자는 "첫 전도가 발생한 뒤 15초간 뒤편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지는 상황이 네 차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초 전도 지점부터 10m에 걸쳐 수백 명이 겹겹이 쌓이게 됐다.
'끼임' 상황을 모르는 인파가 10분 이상 계속 내려오면서 밀집도는 더욱 증가했다. 골목길 1㎡당 밀집도는 7.72~8.39명(오후 10시 15분)→8.06~9.40명(10시 20분)→9.07~10.74명(10시 25분)으로 갈수록 높아졌다. 사고 당시 희생자들은 평균 224~560㎏ 정도의 힘을 받았을 것으로 박준영 금오공대 교수는 설명했다. 견디기 힘든 압력에 시달리던 희생자들은 10분 이상 저산소증을 겪다가 외상성 질식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소방의 구조 작업은 사고 발생 약 15분 뒤인 오후 10시 32분쯤부터 시작됐다.
특수본은 다만 희생자 개개인이 받은 압력이 제각기 달라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은 특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각시탈·토끼 머리띠… 참사 음모론 모두 '거짓'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골목 오른편이 해밀톤 호텔 건물이다. 연합뉴스
해밀톤호텔의 불법 시설물과 무질서 통행은 압사 위험을 키웠다. 호텔 옆 골목의 도로 폭은 평균 4m 정도였고, 사고 발생 지점은 3.2m에 불과했다. 호텔 측이 에어컨 실외기 등을 가리기 위해 설치한 폭 70㎝의 철제 가벽이 골목을 좁게 만들어 병목 현상을 심화시켰다. 박 교수는 "구조물이 있으면 보행자들에게 102∼153㎏ 무게가 더 가해진다"고 했다.
사고 골목을 단순화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양방향 통행의 경우 인파가 800명에 도달하면 '막힘' 현상이 발생했다. 반면, 일방통행 시에는 1,000명까지도 별다른 막힘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좁은 골목에선 일방통행으로 바꿔야 밀집도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사 직후 '토끼머리띠' 남성이 사람들을 밀었다거나, '각시탈' 남성이 아보카도 오일을 바닥에 뿌려 사람들을 미끄러지게 했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났다. '클럽 가드가 손님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을 밀었다' '주점이 문을 닫아 사고를 키웠다' 등의 의혹도 사고 원인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승민 “이태원 참사, ‘높은 분들’은 모두 무혐의…이게 정의냐”
등록 :2023-01-13 14:50수정 :2023-01-13 14:55

이상민·윤희근 무혐의…이태원 경찰 수사, 23명 송치로 마무리
등록 :2023-01-13 11:39수정 :2023-01-13 14:24
[영상] 참사 당시 군중밀집 보여주는 CCTV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유족·의원 눈물바다…"이상민 브리핑 보고 처음 무너져내렸다"


이태원 유족 “몰랐다는 국가의 대답, 그게 썩은 거 아닙니까”
등록 :2023-01-12 15:17수정 :2023-01-12 22:26
[한겨레21] 이종철 대표 인터뷰
“슬퍼할 때 정부나 여당이 손 내민 적 있나
우린 정쟁 몰라, 살려고 내민 손 잡았을 뿐”

“대화 좀 하자”에 “야당과 같은 편이네”라는 의원

설 명절 전에 수사 마무리하겠다는 특수본
정치적으로라도, 안 되면 도의적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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