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남쪽 대통령, 북 시민에 첫 연설 “평화의 큰 걸음 내딛자”
등록 :2018-09-19 23:23
수정 :2018-09-20 10:56
문 대통령·김 위원장, 대집단체조 함께 관람
만찬 뒤 능라도 경기장 찾아
“백두서 한라까지 평화터전 만들자”
문 대통령 연설에 15만 관중 함성·박수
9·9절때 첫 공개 ‘빛나는 조국’
문 대통령 귀환 뒤 정치적 비난 우려해
체제선전 등 내용 일부 수정한 ‘배려’
만찬 뒤 능라도 경기장 찾아
“백두서 한라까지 평화터전 만들자”
문 대통령 연설에 15만 관중 함성·박수
9·9절때 첫 공개 ‘빛나는 조국’
문 대통령 귀환 뒤 정치적 비난 우려해
체제선전 등 내용 일부 수정한 ‘배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시민들을 향해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 북한 대중을 상대로 한 첫 연설이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이날 밤 9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았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1시간 반가량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관람한 문 대통령은 마지막 순서로 마이크 앞에 서서 평양 시민을 향한 연설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합의했다”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나는 김 위원장과 동포들이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며 “어려운 시절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 일어서고자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나는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5만여명의 북한 관중들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함성과 박수로 호응했다. 북한 최대 규모의 종합체육경기장인 5·1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의 귀중한 한 걸음의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공연단은 대규모 매스게임으로 경기장 관중석에 ‘온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강국 세우자’는 대형 글씨를 선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 입장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을 소개하자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을 소개하자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매스게임인 대집단체조는 중요한 기념일에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바를 체육과 예술적 형식에 담아내는 공연이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인 지난 9·9절을 맞아 드론 등 최신 기술을 동원해 ‘빛나는 조국’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연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두 정상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빛나는 조국’의 틀은 대체로 유지하되, 체제 선전 부분을 일부 들어내는 대신 문 대통령을 환영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문 대통령이 귀환한 뒤 남쪽에서 ‘북한 체제 선전극을 보고 왔다’는 식의 정치적 비난을 받지 않도록 김 위원장이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카드섹션을 할 때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길, 땅길, 바닷길 민족의 혈맥을 잇다‘
‘헤어져 이대로 못살아 통일을 이루자‘ 등 주로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어 ‘해솟은 백두산은 내조국입니다‘라는 카드섹션이 나타날 때 배경화면으로 4·27 판문점선언 당시 두 정상의 사진이 등장하자 시민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상에서 첫 만남 뒤 악수를 하고,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에 서명하는 장면, 또 2차 정상회담 때 기념사진도 있었다. 공연자들은 모두 한반도기 흔들며 환호했고, 공연 내내 인공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앞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북한의 대집단체조인 ‘아리랑’을 관람한 것을 두고 남쪽에서 논란이 일었던 선례가 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전통 무용과 기악곡을 중심으로 짜인 공연 ‘평양성 사람들’을 봤다. 송경화 엄지원 기자 freehwa@hani.co.kr

북한 공연단이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축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중 문재인 대통령 방문을 환영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김정효 기자
김정은 위원장
친애하는 평양시민 여러분 대집단체조 화려한 공연 펼쳐준 청소년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평양시 각계층 인민들이 모여 하나와 같은 모습 마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남쪽 대표단을 따뜻하고 열렬히 맞아주는 모습 보니 감격스러운 마음입니다.
나와 문재인 대통령은 북남관계발전과 평화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소중한 결실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의 이 귀중한 한걸음 전진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에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 보내주길 바랍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회담을 기념해 평양시민 여러분 앞에서 뜻깊은 말씀을 하심을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줍시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시민 여러분 북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이렇게 만나게 돼 참으로 반갑습니다. 남쪽 대통령으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맹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평화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에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평양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습니다. 김 위원장과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봤습니다. 얼마나 민족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자존심 지키며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습니다.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000만 겨레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오늘 많은 평양시민 청년 학생 어린이들이 대집단체조로 나와 우리 대표단을 뜨겁게 환영해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문 대통령 ‘소박한 7분 연설’ 절정의 지점에 이르렀다
등록 :2018-09-21 16:04수정 :2018-09-21 16:43
[13년만에 다시 가 본 평양 - 염무웅 기고]
“평양 시민들 활기차고 밝아져
문 대통령 소박한 언어의 연설
평범함의 위엄과 역사성 보여줘”
“백두산 함께 간 이재용 부회장
백낙청 교수에게 공손히 다가가
‘대1때 선생님 강의 들었습니다’ 인사해”
“평양 시민들 활기차고 밝아져
문 대통령 소박한 언어의 연설
평범함의 위엄과 역사성 보여줘”
“백두산 함께 간 이재용 부회장
백낙청 교수에게 공손히 다가가
‘대1때 선생님 강의 들었습니다’ 인사해”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향하는 거리에 시민들이 꽃을 흔들며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새벽 5시 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2박3일 뒤 저녁 7시 무렵 성남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내 몸에 닿은 가장 구체적인 경험은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소식들로부터의 차단이었다. 그것은 내 눈이 보고 내 귀에 들리는 것을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하는 원초적 단계로의 일시적 회귀였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비행시간은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들판은 잘 정비되어 보였고 우리 땅 어디나 그렇듯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물결로 한가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내원에게 들으니, 북녘도 지난여름 폭염과 태풍에 시달렸는데, 그래도 올해는 벼농사가 풍년이란다.
순안공항에서의 대통령 환영행사는 간단했다. 나는 비행기 트랩에 선 채로 그 장면을 멀리 바라보았는데, 원경으로 보이는 김정은 위원장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자주 보았던 대로 당당하고 기운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인민’들이었다. 공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환호를 연발했지만, 평양 중심부까지 오는 동안 목격한 열렬한 환영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떤 ‘합리적’ 해석도 구차한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한반도기와 꽃장식의 거대한 파도 사이를 지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눈시울로 밀려오는 감동을 억제하며 나는 동승한 안내원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인민들이 몇이나 거리로 나왔을까요?” 하지만 그는 쓸데없는 질문 말라는 듯 대꾸했다. “거 어케 셀 수 있갔습네까!”
2005년 7월 남북작가대회 참석차 와서 묵었던 고려호텔은 13년 전보다 내부가 더 단장된 것 같았다. 내게 배정된 20층 방에서 내다본 거리 풍경도 13년 전에 비해 훨씬 밝고 활기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는 우리 작가들이 방문의 주역이었기에 일정도 작가들 중심으로 짜였다. 반면에 이번에는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개인적 우의를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운명에 관해 논의하는 회담에 따라온 만큼 수행원들의 모든 일정은 정상회담의 진행에 의해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방에 앉아 쉬다가도 벨이 울리면 로비로 모이고 휴게실에서 환담을 나누다가도 버스 타라는 연락이 오면 달려가는 수가 많았는데,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당연히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왔기에 종교계나 시민사회 대표들과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많았다.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대표들의 일상생활을 내가 자세히 알 리 없지만, 곁에서 지켜본 느낌으로는 그분들은 이렇게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진 일정을 따르는 것을 그리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내게 떠오른 공상은 경제계 인사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온 건 아니지만, 아무튼 유명짜한 대기업 회장·부회장들이 버스에 멍하니 앉아서 또는 명령을 기다리는 직원들의 보좌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마 거의 난생처음 또는 수십년 만에 처음 겪는 생소한 체험일 것이었다. 짓궂은 추측일지 모르나, 이 낯선 시간들은 늘 결정하고 지시하는 데만 익숙해온 그들에게 귀중한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돌아간 뒤 그들이 장차 남북의 경제협력사업에서 큰 역할을 맡을 것이 기대되지만, 그런 역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도 오늘 겪어보는 ‘을’의 체험은 보약이 될 것이다.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 온 평양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장면은 백두산 이곳저곳에서 사진들을 찍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백낙청 교수에게 다가가더니 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대학 1학년 때 선생님께 교양영어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요.” 가까이 섰다가 우연히 듣게 된 나에게 그건 아주 흥미로운 추억담이었다. 어떤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우리 사회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적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인 셈이기 때문이었다.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갈을 누군가로부터 들으며, 그리고 회담 결과에 국내 언론과 미국 정계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렴풋이 추론하면서, 그러나 우리 수행원들은 때로는 모두 함께, 때로는 정계·경제계 인사들과 다른 팀을 이루어 각기 서너 군데를 방문했다. 내가 특히 감명을 받은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국가적 배려의 적극성과 치밀함이었다. 만경대소년궁전 곳곳에 게시된 “어린이를 왕으로 받드는 내 나라 정말 좋아라”라는 구호도 그렇지만, 교원대학에서 이 교실 저 교실 안내받으며 보았던 교육현장의 모습도 내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물론 잠깐 들른 외부자의 피상적 관찰에 불과하므로 남북 교육의 심층적 현실을 제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라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음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이곳 교육현장을 지도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교원대학 안으로 들어서자 담벽에 붉은 글씨로 크게 적힌 구호도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자’였다. 남쪽에 사는 우리도, 아니 지구 어디에 살든 명심할 만한 원칙 아닌가. 버스로 시내를 달리면서 보니 이 구호는 다른 건물 벽에서도 가끔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점에서 북한은 일상생활의 전 과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그리고 입시 스트레스와 학원폭력에 못 이긴 자살 학생 보도를 수시로 접해온 사람에게 이것은 아주 낯설면서도 눈물겨운 교훈이었다.
마지막날 오전 예정에 없던 백두산 등정은 13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던 터라 내게는 감명이 덜했다. 새로운 것은 케이블카로 400미터를 내려가 천지 물에 손을 담가보고, 그리고 일어나 사방에 솟은 날카로운 백두산 연봉을 쳐다보며 숨을 들이쉬고 내쉰 것이었다. 그 심호흡은 사실 전날 밤 5·1경기장에서 보았던 그 형언할 길 없이 막강했던 장면을 내 나름으로 소화하기 위한 반추작용이었다. 1만7490명의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벌이는 카드섹션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드넓은 운동장과 공중에서 펼쳐지는 수천명 대군중의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령, 1200명의 예술가들이 운동장 가득히 앉아 연주하는 ‘가야금대병창’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체조·무용·교예·연주가 결합된 공연이 말할 수 없이 압도적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보는 내 가슴속에서는 그 집단성에 대한 저항의 습성도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엄청난 공연이 가능하기 위한 사회적 동원이 과연 정치적으로도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 한구석 꼼틀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의 소개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자 모든 것은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연설은 그렇게 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언어는 소박하고 어쩌면 평범한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선동적이지 않았고 그의 제스처도 연극적인 데가 없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의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고 하는 그의 메시지도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과 7분의 그의 연설은 그 모든 평범함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절정을 순도 높게 결합한 위엄과 역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북한의 지도층과 정계 인사들에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15만 평양의 학생과 시민 들 앞에서 육성으로 그렇게 실현한 것이었다. 그 직접성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의 성취였다. 이 순간은 한반도 민족사에 영원히 기록되어 ‘평화와 번영’의 추동력이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문정인 특보 “문 대통령, 15만 평양시민한테 ‘비핵화’ 동의 이끌어냈다”
등록 :2018-09-20 21:13수정 :2018-09-21 07:11
1∼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 모두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문정인 특보
‘가장 인상적인 순간’ 물음에
문 대통령 5·1경기장 연설 꼽아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남북정상회담 기간 동안 환대해 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18. 9.19.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15만 평양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2000년과 2007년, 그리고 2018년 세 차례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모두 참석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20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특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19일 저녁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 열리는 평양 5·1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연설을 한 장면을 꼽았다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고 말하면서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김정은 위원장과) 확약했다’고 했다”며 “그러자 평양 15만 인민이 주춤하는 듯 하다가 바로 엄청난 환성과 박수를 보냈다. 북한 지도자와 인민들 모두가 핵 위협 없고 핵 없는 한반도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문 특보는 “김 위원장이 이날(19일) 오전에는 선언문을 발표 하면서 육성으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가기로 (문 대통령과) 확약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저녁에는 문 대통령의 입으로 김 위원장 발언을 다시 확인했다”며 “핵·경제 병진 노선 정책을 취하면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했던 북한에 신선한 충격 줬고, 동의를 이끌어 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관람을 위해 입장하자 평양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8.09.19.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특보는 북한 정부가 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수행원에게도 전례없는 환대를 베푼 점에 대해서도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문 특보는 “1차(2000년), 2차(2007년) 때도 북쪽에서 환대했지만, 이번과 같은 배려와 환대는 없었다”며 “특별수행원 모두가 대접을 크게 많이 받았다. (갑작스레 가게 된) 백두산도 특별기를 내서 고려항공으로 다녀왔다. 정중하게 엄청난 대접을 해줬다. (김 위원장이) 남쪽에 오면 답례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2박3일 내내 국정을 마다하고 문 대통령과 시간을 같이 했다. 부부가 엄청 호의와 성의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엄청난 배려와 환대는 국제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문 대통령 평양 연설에 여당 “꿈인가?” 하태경도 “격한 전율”
등록 :2018-09-20 11:59수정 :2018-09-20 15:52
민주 박광온 “문 대통령, 늘 상대 자존감 세워”
바른미래 하태경 “한반도 대전환 상징적 사건”
바른미래 하태경 “한반도 대전환 상징적 사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연설’을 놓고 20일 정치권에서도 ‘감동’과 ‘감격’의 탄성이 쏟아졌다. 특히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최고위원은 “큰 감동이고 격한 전율”이라며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틀째인 19일 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아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연설했다.
여당 의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감격스런 속내를 나타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늘 상대의 자존감을 세운다. 문 대통령의 위대함이다”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이번 방문에서 나는 김 위원장과 동포들이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 어려운 시절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 일어서고자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말한 데 대한 평가다. 이학영 의원도 트위터에 “평양시민들 앞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듣다니, 이게 꿈인가?”라며 “팔천만 민족이 모두 바라보는 가운데 끊어진 혈맥을 다시 잇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자는 오늘의 선언, 다시는 역사를 되돌리지 말아야지”라고 적어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2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어젯밤 15만 평양시민 앞 문재인 대통령 연설은 8000만 겨레에 큰 감동을 줬다. ‘5000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는데 다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많은 국민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도 트위터에 “어젯밤 15만 평양시민 앞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핵과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 시대를 직접 연설로 밝혔다”며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바른미래당에선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어젯밤에 문 대통령이 경기장에서 15만 북한 주민에게 한 연설을 봤다”며 “큰 감동이다. 격한 전율이 몰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하 최고위원은 “제가 기억하기론 과거 사회주의권 지도자도 그렇게 많은 주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적이 없다”며 “문 대통령의 연설은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큰 변화의 물결에 우리 야당과 보수 진영이 함께 해야 한다. 시대가 크게 변하고 있는데 이 흐름과 함께 하지 않고 흐름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역사의 대세 앞에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동포들 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등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간 큰 행보와 다양한 접촉을 의미 있게 평가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이 조속한 시일 내에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논평을 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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