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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 자와 죽은 자의 함성..광화문에서 제주4·3을 외치다

by 무궁화9719 2022. 9. 15.

산 자와 죽은 자의 함성..광화문에서 제주4·3을 외치다

안채원 입력 2018.04.03. 18:12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주 4.3사건 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들의 모습을 한 예술인과 일반인 403명이 '403 광화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18.04.03. park7691@newsis.com

 

70주년 범국민위 주최한 '403 광화문 프로젝트'
100여명 배우·300여명 시민 등 총 403명 참가
광화문광장에 모여 울부짖고 퍼포먼스 선보여
"짓눌렸던 70년 이야기 못한 답답함…광장 분출"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70년간 변방을 떠돌던 제주4·3의 한 맺힌 이야기가 서울 한복판에서 많은 시민들의 참여 속에 함성과 몸짓으로 표현됐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모습을 한 시민들이 ‘4.3 대한민국을 외치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지난 21일부터 ‘4.3대한민국을 외치다’ 일반인 참여자를 모집해 이날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18.04.03. suncho21@newsis.com

 

3일 오후 4시께, 서울 광화문 일대 양옆 5차선을 달리는 차들의 소음조차 물리치며 제주 4.3 희생자들을 위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펼친 '403 광화문 퍼포먼스'가 그 공간을 만들었다.

 

이날 퍼포먼스는 100여명의 배우와 마임이스트, 무용수와 함께 300여명의 시민 등 총 403명이 모였다.

 

박선후 제주 4.3 범국민위 홍보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부터 60대 노인은 물론 장애인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참가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퍼포먼스는 광화문역 7번출구와 교보빌딩 일대, 세종문화회관 일대, 광화문 지하도 일대에서 시작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묻힌 듯한 회색빛의 사람들이 네개의 공간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움직였다. 모두가 숨죽인 듯 조용했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던 이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아'하는 낮은 소리가 비집듯 나왔다. 그 낮은 탄식은 잔잔한 광장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 명의 목소리는 하나의 큰 함성이 돼 광장에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높이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세월호광장을 돌던 이들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세종대왕상 앞이었다. 거대한 물결이 됐던 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윽고 '애기동백꽃의 노래'의 가락이 흘러나왔다. 한 두명이 주저앉았고 뒤에선 하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노래가 끝난 광장을 채운 것은 울부짖음이었다. 한 청년은 살려달라는 듯 허공에 대고 두손을 연신 빌었다. 오랜기간 사무치도록 그리워한 이를 만난 듯 서로 부둥켜 안고 아무말 없이 울기도 했다. 굽은 허리에 쪽진 머리 여성과의 포옹이었다. 마치 70년 만에 그리운 부모를 만난 듯했다.

 

절절한 만남을 마칠 때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그 이름이 또다른 이름을 부른 듯,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울부짖듯 내뱉었다. 어느새 광장에는 수많은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찼다. 70년 전 제주의 한 맺힌 목소리가 비로소 터져나온 것 같았다.

 

 

각자의 이름을 외치면서 찢어낸 회색빛 외투 안 속 흰색 티셔츠가 드러나자 풍물패의 흥겨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참가자들은 마침내 '생(生)'을 찾았다는 듯 붉은빛, 노란빛, 푸른빛, 초록빛 갖가지 색의 띠를 올려 들었다. 정제됐던 몸짓은 자유로워졌고 굳었던 표정에는 옅은 미소가 배었다.

 

흥겨움을 뒤로 하고 분향소 앞으로 이동한 이들은 조용히 회색빛 외투를 벗어놓았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기도 했고, 누군가는 고이접은 외투를 나직히 만지기도 했다. 70년의 세월동안 고생했다는 듯 위로를 전하려는 듯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분향소 앞에 섰다. 정부가 공식으로 인정한 14231명의 희생자의 고향과 이름이 적힌 흰 천이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분향소에 헌화를 했다. 제주 4.3 희생자들과 2018년의 시민들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헌화를 마친 이들은 경복궁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뛰며 퍼포먼스를 마쳤다.

 

 

퍼포먼스는 광장을 지나던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시민들은 휴대폰을 꺼내 퍼포먼스 장면을 찍거나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행사를 지켜보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박선후 위원장은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중요하다"라며 "짓눌려있던 70년의 세월, 이야기하지 못한 답답함을 대한민국 심장인 광화문광장에서 표현하고 분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퍼포먼스 중간 '내 이름은 000'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제주 4.3에는 이름없는 '백비'가 있고, 제주 4.3이 사건인지 항쟁인지 등 이름 논란도 계속돼 왔다"라며 "희생자와 4.3을 명명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4·3사건 희생자를 기리고자 하는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분향소 내부에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사진전을 열어온 김흥구 사진작가 작품이 걸렸다. 또 조소가인 신건우 작가가 제작해 한라산을 형상화한 '설문대할망' 조소 작품도 설치됐다.

 

 

박 위원장은 "제주 4.3 사건이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영정사진이 아닌 사진을 사용했고, 제주도를 감싸안은 한라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놓았다"라고 전했다.

 

앞서 오전에도 제주 4.3 사건을 추도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오전 10시에는 제주4·3 70주년을 맞이해 광화문 광장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박영선·우상호·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과 수도권 지역 제주도 유족 등 80여명이 자리했다.

 

이어 오전 11시에는 제주4·3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영산제가 열렸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주 4.3사건 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들의 모습을 한 예술인과 일반인 403명이 '403 광화문 퍼포먼스'를 마친 후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2018.04.03. park7691@newsis.com

조계장 총무부장인 정우스님은 추도식에서 "제주의 아픔과 깊은 고통을 이 나라는 오랜 시간동안 시대와 사회에 남겨놓았다"라며 "먼저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 명예회복이 이뤄진 후에 국민적 화해와 상생 그리고 자계의 마음으로 대화합을 이루어야할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국회에서 진행중인 특별법 제정이 원만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힘을 모을 것"이라며 "불교계도 이 기간에 여러 스님과 사찰이 피해를 당한 아픔이 있어 이 또한 명확히 진실이 드러나고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k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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