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세균전실험실 뿌리 ‘생체실험·집단학살’자행한 731부대②
[연재] 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40)
- 기자명 고승우
- 입력 2022.07.28 07:45
천인공노할 전쟁범죄를 저지른 731부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69년)다. 그는 의학 박사, 일본 육군 중장으로 731부대 창설자이자 최고 지휘관이었다. 그는 일제의 중국 침략 시기인 1935~1945년까지 관동군 방역급수부장 신분으로 중국 하얼빈 등지에서 수년간 세균 감염, 동상 실험, 생체해부 등 잔혹한 생화학실험을 진행해 중국의 수많은 군인, 민간인을 감염시켜 살해했다.
이시이 시로는 지바현 산부군 시바야마정에서 많은 땅을 소유하는 지주였던 아버지의 4남으로 태어났다.2) 그의 맏형은 러일전쟁에서 전사했고 둘째, 셋째 형은 육군에 입대해 나중에 731부대장이 되었다.
그는 유년기부터 기억력이 뛰어난 수재로 이름을 떨치면서 현립 치바중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자와 4고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군의로 복무하다가 1924년 4월에 세균학과 혈청학, 예방의학, 병리학 연구를 위해 교토대학원으로 파견되었다.
731부대 창설, 최고 지휘관 이시이 시로 폭음과 도박, 바람둥이 기질
그는 재학 중 박테리아 배양을 즐겨하면서 연구 이상의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만치 못했다. 그는 독불장군처럼 굴거나 남에 대해 무관심했다. 예를 들면 그는 한밤중에 연구실에서 작업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동료학생들이 깨끗이 청소해 놓은 실험도구를 더럽혀 놓아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교토대학 총장의 관사를 매일 방문하여, 그의 딸과 결혼을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는 1927년 일본군의 세균전 무기 개발에 찬성하면서 그 다음해 일본 육군 장관과 고위 장성의 지원과 후원을 받아 유럽을 2년 동안 방문해 세계 1차대전 당시의 세균 및 화학전 무기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1931년 진급했다. 당시의 동료에 따르면 그가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로 일본 천왕에 대단한 충성심을 보이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에도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작업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는 동시에 폭음과 도박,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다
그는 1936년 731부대를 지휘하게 되면서 부대원들의 생체실험을 지휘해 각종 전염병으로 감염시키거나 강제 임신, 생체해부, 동상에 걸리게 만들기와 같은 극악한 실험을 자행했다. 그는 계속 승진해 1945년 3월 중장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지휘관 시절 복장이 단정치 못했고 옷에 음식찌꺼기나 담배재가 묻어 있었다. 그가 차고 있던 칼은 느슨하게 묶어져 바닥에 질질 끌렸다. 그러나 그는 전후에 외모부터 확 달라졌다. 그는 흠집하나 없는 군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칼도 허리춤에 단단히 붙들어 매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일본 항복이 가까워오자 이시이는 미국 본토의 서부 연안에 흑사병이 오염된 벼룩을 살포할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이 항복하면서 중단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이시이와 일본 정부는 731부대를 포함한 일본 본토 생체실험 시설과 장비들을 은폐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731부대 일부는 파손됐지만 도쿄에 있던 한 대학의 비밀 실험소와 중국 하얼빈에 있던 주요 시설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731부대 부속 간호부였던 아카마 마사코에 따르면, 이시이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731부대원과 가족에게 ‘전쟁은 졌다. 나는, 자네들 모두를 고향에 돌려보낸다. 귀향한 자네들이 731부대의 비밀을 누설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 이시이(石井)는 끝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낼 것이다’라고 악마와 같은 형상으로 부르짖었다.
이시이는 말년에 후두암에 걸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1959년 67살에 사망했다. 그는 사망하기 전 가톨릭교로 개종했다. 이시이의 딸은 “아버지는 온순한 분으로 명랑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따라오지 못할 경우 고함을 치며 화를 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독일인과 그 문화를 매우 존경했다.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해 세례를 받았고 세례명은 요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731부대 과학기술설비로 639.5킬로그램의 세균을 배양했고 3가지 특허발명을 냈는데, 그것은 세균배양상자, 물 여과기, 도자기세균폭탄이다. 도자기세균폭탄은 세균전의 주요 무기 중 하나다. 이시이는 1955년 12월 교토대학 때의 지도교수였던 기요노 겐지의 장례식장에서 731부대 등이 설립되기까지의 경위와 규모, 목적 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술회했다
“육군이 여러 차례 회의한 결과 지역마다 기온의 변화, 환경이 다르므로··· 하나는 만주의 북단으로 가면 좋겠다는 것이어서 결국 연구소를 그곳에 두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전쟁터가 4천 킬로미터나 넓어져··· 1년 내내 동시에 계속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선 장병의 신체를 보호하고 사망률을 낮추려는 국가 백년의 계획을 세울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육군군의학교에 연구실을 만들었고 다음으로 만주는 하얼빈에 연구실을 만들어 실시하였고 결국 324개의 연구소를 만든 겁니다. 그 결과 전염병 및 전염병 사망률이 낮아져 대장성이 매우 기뻐하여 그렇다면 계속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얼빈에 큰, 그러니까 마루 빌딩의 14배 정도의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 전차도 있고 비행기도 있었습니다. 모든 종합대학에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열심히 연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가장 주력하신 것인 인적요소입니다. 각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 후보를 모아 주셔서 여기 계신 이시가와 교수, 그리고 도호쿠대학의 오카모토 교수 그 외 십여 명의 교수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대동아의 전면에 걸쳐 방어의 제1차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련이 왔기 때문에, 패전 때문에 부대는 폭발하고 모두 태우지 않을 수 없었고 비운으로 끝난 것입니다.”
이시이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학 이상의 규모와 기동력을 가진 연구기관을 창설하여 운영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고 324개의 연구소를 갖추고 일본을 대표하는 의학자, 과학자들이 참가한 세계 최대의 생체실험센터를 만들어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그는 패전으로 야망이 좌절되고 생체실험 등에 대한 것이 알려져 비판받고 있지만 한마디의 반성도 하지 않고 오히려 패전으로 연구나 실험이 중단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을 밝혔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세계 최악의 집단학살 범죄를 저지른 것을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사악한 모습만을 드러냈다.
731부대에는 일본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의사나 과학자가 다수 있었고, 이들은 전쟁 후에 전범 기소를 받지 않은 채 각 대학으로 돌아가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활동했다. 특히 1970년대 발생한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약에 에이즈에 오염된 혈액제제가 사용되어, 그 약을 복용한 혈우병 환자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일이 속출했던 사건으로 피고가 된 녹십자 제약회사의 창시자는 이시이의 최측근이었던 나이토 료이치이다. 그는 731부대장을 역임한 바 있는 기타노 세이지를 고문으로 두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실체를 부인해 오다가 50년이 지난 후에야 부대 존재를 시인했지만 1930-1940년대에 일본이 중국의 만주 등을 점령했을 때 25만 명의 중국인‧조선족‧연합군 포로를 실험용으로 학살한 만행에 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동시에 731 부대원들의 증언내용을 확인하는 것 역시 거부했지만 2018년 4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1945년 1월 당시의 731부대 전체 소속인원 3,605명(군의관 52명, 기사[技師] 49명, 간호부[看護婦] 38명, 위생[衛生] 1,117명 외)의 성명‧계급‧당시의 연락처가 기록된 명부가 공개되었다.
미국, 731부대 악마들과 거래하고 일본 정부는 모르쇠
이시이는 귀국 직후 다른 731부대원 간부들과 함께 미군당국에 체포되어 소련군에 의해 심문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생체실험과 세균전 자료를 미국에 건네는 조건으로 1946년 전범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면책처리 되었다. 소련은 이시이 등을 처벌하도록 시도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미군사령부는 731부대원의 행동과 우편물 등을 살피면서 그들이 소장한 데이터가 세균전 연구에 소중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적성국, 특히 소련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미국 국무부는 1947년 9월 연합군총사령관으로 일본군정 최고 지휘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이시이 등이 가진 세균실험 자료 등을 얻기 위해 “이시이와 동료들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된다”고 지시했다. 맥아더 장군은 731부대에 대한 보고를 받고 비밀리에 이 부대원들에 대한 사면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부대원들이 지녔던 생체실험과 세균전 연구 결과를 넘겨받는 거래를 본국 정부의 지시대로 성사시켰다.
당시 미국의 생물학연구소 책임자는 731부대원에 대해 일차 조사를 마친 뒤 보고서를 통해 ‘그들의 정보는 막중하다. 미국에서 인체 실험은 연구윤리 때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정보는 매우 저렴한 대가로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731부대원들을 면책처분 했지만 미군 비행사 포로를 생체 실험한 일본 의과대학 교수 두 명을 사형에 처하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15-20년 형을 선고했다.
이시이에 대한 면책 조치는 1948년 종결되었다. 그는 1947년부터는 한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그에 대해 일부 사실이 알려졌다. 즉 그는 일본에 계속 머물면서 병원을 개업하고 자유롭게 실험과 치료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기를 남겼지만 731부대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치 않았다.
한편 소련은 731부대원과 이 부대와 공동 작업을 했던 1644 및 100 부대원 12명을 전범재판에 넘겨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2-25년간 복역토록 했다.
미국은 731부대 세균전 데이터 자료를 얻기 위해 25만 엔화를 지불했다. 이시이 시로는 이 부끄러운 거래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이시이와 731부대의 악랄한 죄상을 감추고, 이시이를 미국의 포트 데트릭 생물무기 실험소의 고문으로 삼았다.
이시이 등 인물이 지속적으로 미국 측에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제공했는데, 이시이가 주도한 세균무기 인체실험보고서, 세균무기가 농작물과 가축에 미치는 파괴효과 연구보고서를 비롯해 이시이가 직접 작성한 20년간의 세균전 전면 연구총결 등이 포함됐다. 이밖에 8천여 장의 세균무기를 이용한 생체실험과 생체해부 병리학 표본과 ppt 등도 있었다.
인간 생지옥 속에서 만들어진, 원한과 피맺힌 생체실험 자료의 교환 방식으로 미국은 이들 악마부대를 감쌌다. 2017년 8월, 일본 NHK 방송국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미국의 비호로 731부대원은 대다수 그들의 죄에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731부대에 근무하면서 생체실험 등의 전쟁범죄를 자행했던 일본군인, 의사 등 3,607명의 명단은 일본 [저팬타임즈]가 2005년 4월 최초로 공개했다. 이들 명단은 종전 후 미군이 관련자들로부터 생체실험 자료 등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주면서 공개되지 않았었다.
도쿄 법원은 2002년 731부대가 세균전 실험에 종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일본 정부는 2011년 이 부대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자행한 가혹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731부대 의무실 부근에서 발굴된 유골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DNA샘플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악마들의 한국전 참전과 미군의 세균전
한국 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한 뒤인 1951년 초 중국, 북한, 소련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자행했다고 주장하자 미군측은 즉각 이를 근거 없는 선전전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계속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세계평화협회는 ‘중국과 한반도에서 세균전에 관한 사실 확인을 위한 국제과학위원회(ISC)’를 만들었다.
이 기구에는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역사학자 조지프 니덤 (Joseph Needham, 1900~1995)를 포함해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브라질, 소련 등의 저명한 과학자와 의사 등이 동참했다. ISC는 많은 증인과 의사들의 증언, 환자로부터 채취한 의학 자료, 포탄 케이스 등을 수집했다. ISC는 1952년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미국이 한반도에서 세균무기를 실험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1953년 한국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힌 미군 4명으로부터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탄저균, 흑사병, 콜레라 등을 사용한 생물학 무기를 비행기로 공중 살포하거나 도자기 폭탄, 종이로 만든 폭탄, 나뭇잎 폭탄 등으로 제조해 공중 투하했다고 결론내리고 731부대 사령관 이시이와 다른 2명의 일본인 생물전쟁 전문가들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들 일본인들은 1951년 한반도에서 세균전 추진에 필요한 장비들을 실어 나른 수송기에 탑승했던 것으로 중국 언론 등에서 제기한 바 있었다. ISC는 이시이가 1952년 상반기에 두 차례, 1953년 3월에 한 차례 한반도를 방문했다는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ISC의 발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과 북한이 허위사실을 조작했다고 주장했고 유엔 등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포로로 잡혔던 미군 공군 병사 4명은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뒤 포로로 잡혔을 때 미군이 세균전을 자행했다고 고백한 것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번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1998년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미국의 한반도 세균전 자행에 대한 거짓 정보를 만들어 퍼뜨리는 작전을 폈다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ISC의 발표가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는데 미국 역사학자 제프리 케이(Jeffrey S. Kaye)는 2020년 9월 미국중앙정보국(CIA)의 비밀이 해제된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한국전에서 세균무기 사용한 것은 사실이며 ISC의 발표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프리 케이는 ISC가 당시 작성한 조사 자료가 6백 쪽이 넘는데 그 중 60쪽만 발표된 것이 진위논쟁을 불러온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CIA의 비밀자료에 따르면 ISC의 조사 결과가 진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CIA가 중국에서 귀환한 미군 포로들을 역정보 전문가나 심리전문가들이 심문하게 하면서 중국 쪽에 한 말을 번복하지 않으면 군법회의에 회부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고문에 해당하는 가혹 행위를 가했고 그 때문에 귀환 포로들의 발언 번복 가능성이 컸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2년 3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와의 회견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 중 생물무기를 사용했고 쿠바와 동독에 대해서도 생물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에는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미국은 지금 또 다시 이들 무기를 사용할 위험한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이 비밀리에 생물무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더 많은 정보를 폭로해야 한다. (미국이) 수십 년 전의 일을 감추는 것은 그 당시 발발한 전쟁 중 불법 행위를 한 것에 난처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1952년 영국의 저명한 생화학자였던 조셉 니담 등을 초빙해 한국전쟁 기간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미국의 세균전 관련 조사를 벌였던 것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의 조사 참여가 있어야만 세계가 비로소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케이는 먼저 미국이 포트 데트릭 실험실과 세계 곳곳, 특히 러시아 주변에 대량의 생물실험실을 운영 중인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미국이 '화학생물무기 금지협약(BWC)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2차대전 말과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시기의 문건도 공개함으로써 미국이 수백 개 실험실에서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1940년대 후반에도 당시 진행하던 생물무기 연구를 극비로 유지했고 그러한 극비 유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비밀 생물무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한국을 전 세계적 생화학전 전술 실험장으로 가동?
미군이 전 세계적으로 생화학 공격 및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을 생물학전 현장 실험실로 삼고, 탄저균과 보툴리눔 등의 맹독성 물질을 마음대로 들여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른바 ‘주피터 프로그램’(JUPITR, 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겨레] 신문이 2015년 6월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미국 육군 ‘에지우드 화학 생물학 센터’(ECBC)의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로 주피터 프로그램을 이끄는 피터 이매뉴얼 박사는 2014년 12월 <화학·생물·방사능·핵 포털>(CBRNe Portal)이란 미국 군사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생물학전 대응 실험 장소로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주한미군 고위급들이 (주피터 프로그램이란) 선진적인 개념을 실험해보길 원했기 때문이었다”며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자원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주둔국(한국)도 우호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해, 전 세계 미군의 생물학전 대응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실험실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인식을 뚜렷이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진행하는 주피터 프로그램을 “생물무기 공격을 더 빠르게 감지해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모두 4가지 분야로 진행된다. 이 중 가장 큰 우려를 낳는 분야는 ‘생물학 분석 능력 세트’(BICS)이다. 전쟁에서 병사들이 휴대가 가능하고 다루기 쉬운 검사 장치를 이용해 적군이 사용한 생화학무기의 독소나 병원균 표본을 채집한 뒤 짧게는 4시간, 길어도 24시간 안에 어떤 성분인지 감식해내는 체계를 뜻한다.
생물학 분석 능력 세트의 1단계에선 검사 장치를 이용해 탄저균과 보툴리눔 등 세균·독소 표본을 분석한다. 이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세균과 독소의 표본을 들여와야 한다. 오산 공군기지의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소에서 지난 2015년 5월 27일 ‘살아 있는 탄저균’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되는 사고가 벌어진 것도 바로 이 1단계 분석을 위해서였다.
'살아있는 탄저균' 사고는 미국 유타 주에 위치한 미 육군 생화학무기연구소인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실수로 탄저균을 민간 운송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공군기지에 보냈다는 내용으로 당시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10kg의 탄저균은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 탄저균이 배송된 지역은 점점 늘어났고, 미군이 지난 10년간 미국, 한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총 5개국 69개소에 탄저균을 보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 정부의 어떤 부처도 주한미군으로부터 탄저균 반입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고 그 이후 한미간에 논란이 제기되지 않았다. 이 자료만 보아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최소한 70개 가까운 생화학무기 연구소를 가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매뉴얼 박사는 2014년 인터뷰에서 “이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본토 등에 있는 실험실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렸다”며 “2년 전에는 한국의 지휘관에게 이런 능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한국 내) 연구소에서 샘플들을 정확히 분석해 4~6시간 만에 결과를 보고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생물학 분석 능력 세트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으며, 사실상 한국 내 생물학전 실험이 언제라도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또 다른 분야인 ‘환경 평가 감식기’(AED)도 한국 내 실험이 진행되는 등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다. 이 감식기는 대기 등 환경에서 생화학무기용 독소나 병원균이 퍼지지 않았는지 24시간 탐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매뉴얼 박사는 “2014년 9월부터 2015년 12월 오산 공군기지 안에서 2개 시스템을 야외에 설치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봤다”고 말하고 ‘에지우드 센터’는 “연구자들이 한국에 9개의 감식기 시스템을 가져갔고, 이 중에는 휴대전화와 호환되는 감식기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단 1g으로 100만 명을 몰살할 수 있는 보툴리눔 등의 생화학전 물질들이 한국 정부도 모르는 사이에 주한미군 실험실로 비밀리에 오가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주한 미군기지내 탄저균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며 그런 실험실을 즉각 폐쇄하라고 아래와 같이 촉구했다.
이장희 불평등한 한미SOFA개정 국민연대 상임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20년 6월 9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주한미군은 지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용산 미군기지에서 모두 15차례의 사균화된 탄저균 검사용 표본을 반입해 분석하고 식별장비의 성능을 실험했으며 교육훈련도 진행했다”며 “당시 SOFA합동위원회에 주한미군 생물학 검사용 샘플의 반입 절차를 문서화한 합의권고안을 제출했으나 형식적인 절차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장희 상임대표는 이어 “미군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세균실험실을 배치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 가입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대한민국을 위험천만한 세균실험실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임대표는 “미군당국이 탄저균 등 세균실험실(세균전부대)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에 전면 배치하려는 계획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공개하게 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에서 생화학 세균전 준비용인 탄저균 실험실 및 그 후속인 센토 프로그램의 운용을 당장 중단하도록 미군 당국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21대 국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탄저균 진상규명 및 실험실 폐쇄와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와 방역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특위를 즉시 설치하고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의 언론보도로 미뤄 미국은 한국을 비밀 생물무기, 세균전 실험기지로 가동 중인 것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731부대의 유산을 추악한 방식으로 손에 넣은 미국은 21세기에도 생물무기, 세균전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국의 실험장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화나고 서글픈 일이다.
미국은 731부대원들의 피에 젖은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731부대는 물론 일본정부의 전쟁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역사의 어둠 속에 묻어버렸다. 미국과 일본정부는 731부대의 흉악범죄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이 부대에서 희생된 조선인의 피해도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당시 조선인 피해자는 독립운동가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중국인 피해자 다음에 그 숫자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731부대원들을 세균전에 동원했고 이시이 히로가 적극 동참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함구하거나 부인하고 있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을 미국의 생물무기, 세균전 개발과 실험을 담당하는 세계 최대 비밀실험장소로 전락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731부대의 추악한 유산이 21세기에도 그 긴 그림자를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주)
1) https://blog.naver.com/karancoron/221386705024
2) Williams and Wallace "UNIT 731" p. 246, 247.
3) Sheldon Harris, Factories of Death, 2002, p. 142.
4) Harris, Sheldon H. (1994). Factories of Death: Japanese Biological Warfare, 1932-45, And the American Cover-up. New York: Routledge. p. 39. ISBN 9780415932141.
5) Harris, Sheldon (2002). Factories Of Death. p. 15.
6) https://ko.wikipedia.org/wiki/731%EB%B6%80%EB%8C%80#cite_ref-26
7) Deane, H. (1999). The Korean War 1945–1953. China Books. p. 155. ISBN 978-0835126441. Retrieved 2017-07-08.
8) Harris, Sheldon (2002). Factories Of Death. p. 14.
9) 『고 기요노 겐지 선생 기념존문집』 제3집
ttps://ko.wikipedia.org/wiki/731%EB%B6%80%EB%8C%80#cite_ref-26
10) https://www.nytimes.com/2005/04/20/world/asia/japan-rejects-appeal-for-war-compensation.html
11) y, Howard; Leonard, Sarah E.; Nie, Jing-Bao; Weindling, Paul (April 2014). "United States Responses to Japanese Wartime Inhuman Experimentation after World War II: National Security and Wartime Exigency". Cambridge Quarterly of Healthcare Ethics. 23 (2): 220–230. doi:10.1017/S0963180113000753. PMC 4487829. PMID 24534743
12) BBC News – Unit 731: Japan's biological force. Archived 2017-12-29 at the Wayback Machine.
13) Gold, Hal (2011). Unit 731 Testimony (1st ed.). New York: Tuttle Pub. p. 97. ISBN 978-1462900824.
14) BBC Horizon "Biology at War: A Plague in the Wind" (29 Oct. 1984)
15) Brody, H.; Leonard, S. E.; Nie, J. B.; Weindling, P. (2014). "United States Responses to Japanese Wartime Inhuman Experimentation after World War II: National Security and Wartime Exigency". Cambridge Quarterly of Healthcare Ethics : Cq :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care Ethics Committees. 23 (2): 220–230. doi:10.1017/S0963180113000753. PMC 4487829. PMID 24534743.
16) "Daughter's Eye View of Lt. Gen Ishii, Chief of Devil's Brigade". The Japan Times. 29 August 1982.
17) 青木冨貴子「731 – 石井四郎と細菌戦部隊の闇を暴く」新潮社(新潮文庫)、2005年。ISBN 4103732059
18) Materials on the Trial of Former Servicemen of the Japanese Army Charged with Manufacturing and Employing Bacteriological Weapons (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50). (French language: Documents relatifs au procès des anciens Militaires de l'Armée Japonaise accusés d'avoir préparé et employé l'Arme Bactériologique / Japanese language: 細菌戦用兵器ノ準備及ビ使用ノ廉デ起訴サレタ元日本軍軍人ノ事件ニ関スル公判書類 / Chinese language: 前日本陸軍軍人因準備和使用細菌武器被控案審判材料)
19) 인민일보 2021년 6월 9일.
20) https://www.newsweek.com/identities-japanese-war-crimes-unit-killed-pows-released-889544
21) "Deafening silence". The Economist. 24 February 2011. p. 48.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 March 2011. Retrieved 16 March 2011.
22) McCormack, Gavan; "Korea: Wilfred Burchett's Thirty Year's War"; in Kiernan, Ben (ed.); Burchett: Reporting the Other Side of the World, 1939-1983; London: Quartet Books; 1986; pp. 202–203.
23) nternational Scientific Commission (20 February 2018) [1952]. "Report of 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ssion for the Investigation of the Facts Concerning Bacterial Warfare in Korea and China". Retrieved 22 May 2019 – via DocumentCloud.org. / Winchester, Simon; The Man Who Loved China: The Fantastic Story of the Eccentric Scientist Who Unlocked the Mysteries of the Middle Kingdom; New York: Harper Collins; 2008; pp. 203–208.
24) Harris, Sheldon H.; Factories of Death: Japanese Biological Warfare, 1932–45, and the American Cover-up; Taylor & Francis; 2002 ISBN 978-0-203-43536-6.
25) Harris, Sheldon H.; Factories of Death: Japanese Biological Warfare, 1932–45, and the American Cover-up; Taylor & Francis; 2002 ISBN 978-0-203-43536-6.
26) Lech, Raymond B. (2000), Broken Soldiers, Chicago: University of Illinois, pp. 162–163, ISBN 0-252-02541-5.
27) Weathersby, Kathryn; Leitenberg, Milton; "New Evidence on the Korean War";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Wilson Center; 1998; retrieved 4 March 2011.
28) Kaye, Jeffrey (16 September 2020). ""A real flood of bacteria and germs" — Communications Intelligence and Charges of U.S. Germ Warfare during the Korean War". Medium.co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9 June 2021. Retrieved 25 September 2021.
29) 환구시보 2022년 3월 23일.
30) 한겨레 2015년 6월 4일.
31) 오마이뉴스 2015년 7월 3일 / 미군이 맘먹은 대로 세균전 샘플을 한국에 반입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 규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32) 미래일보 2020년 6월 9일.
[단독]"美, 6·25서 세균전" '니덤보고서' 전문 나와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미국이 세균전 방법을 일본으로부터 배워 한국전쟁에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니덤 보고서' 원본 전문이 최초 공개됐다.
올해 초 64쪽짜리 니덤 보고서 요약본이 미국 학자에 의해 대중에 공개된 바 있지만, 세균 투하 지역 비행지도와 당시 세균전에 참여했던 미군의 자필 진술서 등이 소상하게 기록된 전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일 소장자인 영화감독 임종태 씨와 경매회사 코베이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 의혹에 관심을 갖고 10년간 관련 증거를 찾아온 임 감독은 2013년 가을께 영국의 한 고서점에서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 이른바 니덤 보고서를 입수했다.
니덤 보고서는 영국의 생화학자인 조지프 니덤을 단장으로 하는 국제과학자협회 공식조사단이 1952년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미 공군이 일제 강점기 생체실험을 자행해 악명이 높았던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등에게 기술을 건네 받아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세균전을 치른 것으로 추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니덤 보고서는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올해 초 미국 심리학자 제프리 카이가 진보 성향의 온라인 블로그 '디센터'에 64쪽짜리 요약본을 공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에 발견된 전문은 조사 내용만 670쪽으로, 요약본 분량의 10배가 넘는다.
이와 함께 참고자료로 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 일대에 뿌려진 벼룩 사진, 해당 지역의 주민 사진, 세균을 뿌리다 잡힌 미군 포로의 수기 진술서, 미군의 세균 배포 경로 비행지도 등 세균전을 뒷받침할 증거가 200장 가까이 수록됐다.
보고서를 보면 세균을 살포하다가 포로로 잡힌 것으로 여겨지는 미 공군 조종사 플로이드 오닐은 1952년 6월 30일 진술서에서 "미국의 한 시민으로서, 북한과 중국 북동부 주민들에게 세균무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어떤 정당성도 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민간인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무기를 쓸 이유는 없다"면서 "이런 식의 무기는 민간에게 쓰인 어떤 무기보다 비인간적이고 (전쟁 포로의 인권을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자백했다.
피해 지역 현장검증 사진과 세균이 투하된 지역의 비행사진, 미군이 떨어뜨린 세균폭탄 사진, 이시이가 2차대전 당시 만든 세균폭탄 사진 등은 조사가 얼마나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짐작게 한다.
이외에도 '콜레라균을 이송한 관료에 대한 보고서', '미군이 중국 선양지역에 투하한 세균에 의한 새로운 질병에 관한 보고서', '체포된 미 공군 4인과의 인터뷰', '한국 보건부 장관에게 행해진 질의' 등 다양한 자료가 포함됐다.
이 보고서는 임 감독이 약 2년간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해 코베이의 6월 경매에 내놓기로 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세균전을 공식 부인하고 있어 보고서만으로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진짜로 세균무기를 사용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 보고서가 제삼자에 의해 작성되긴 했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전쟁 당사국이었던 중국에 의해 발행했다는 점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eun@yna.co.kr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세균전: 유행성 출혈열 - 한탄 바이러스
미군이 일본 ‘731부대’에서 세균무기 배워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내용이 공개되었습니다.
2015년 1월 26일(현지시간) 제프리 카이라는 미국 심리학자는 진보 성향 온라인 블로그인 ‘디센터’에 영국의 유명 생화학자였던 조지프 니덤이 1952년 주도적으로 작성한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 원문을 공개했습니다. ‘니덤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당시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중국이 작성한 것으로, 보고서 원문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 것이었습니다.
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생화학전 부대였던 ‘731부대’에서 세균무기 개발과 사용 방법을 배워 한국전쟁에 사용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공개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았던 당시, 개인적으로 한국전쟁당시 포천일대에서 발병한 유행성 출혈열(한탄바이러스)이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그 당시 이 발표로 인해 연합뉴스, 경향신문을 비롯해서 한국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며 보도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 보고서를 살펴보면 1945년 일제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미 군정이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해 악명이 높았던 이시이 시로 731부대장과 공범들을 사면했고, 이시이는 1952년초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서 세균전이 사용됐다는 혐의를 받기 전에 두 차례나 연거푸 한국을 방문했으며, 1952년 3월에도 한국에 있었다는 언론보도를 인용하여 한국전쟁에서 세균전이 자행되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보고서는 이어서 “일본에 있던 미 군정이 그의 활동을 조장했는지, 또 미군 극동사령부가 실질적으로 일본식인 세균전 기술을 사용하는데 관여했는지가 조사위원들의 마음에 의문으로 남아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는 또 ‘한국에서의 사고(전염병)’ 부분에서 “위원회로서는 모든 관련 사실을 종합해볼 때 미 공군이 일본이 2차대전 당시 전염병을 확산시키는데 이용한 것과 유사한 세균전 기술을 한국에서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세균전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미군 조종사 전쟁포로들의 브리핑을 받았다는 진술들이 포함돼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 지적에 대해 적군에 의한 고문과 ‘세뇌’로 인해 허위진술을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조지프 니덤은 “이 보고서는 미 군정이 세균전을 연구하고 실행하기 위한 자체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미 군정은 당시 이시이와 공범들을 사면해주는 대가로 일본이 수년간 생체실험을 통해 획득한 세균전 자료에 접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1952년 당시 미 군정과 일본 전범들의 ‘협력’은 일급비밀에 속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역사학자들조차 당시 미 군정과 731부대간의 거래가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세균무기를 사용했는지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는데다가 당시 세균전이 있었다고 진술한 미군 전쟁포로들은 미국으로 귀국 후에는 세균전을 수행했다는 진술을 모두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했다고 그 자백을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보고서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국가인 영국인 학자가 주도적으로 작성했지만 당시 전쟁 기간에, 전쟁의 당사자였던 중국이 발행하고 관영언론사인 신화사가 국외에 배포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작성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수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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