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세균전실험실 뿌리 ‘생체실험·집단학살’ 자행한 731부대①
[연재] 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39)
- 기자명 통일뉴스
- 입력 2022.07.25 00:00
- 수정 2022.07.25 00:04
세계사를 보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도 등급이 있다. 세계 최악으로 지탄받는 악마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죄악은 그 내용을 보도 듣는 것조차 너무 힘들 정도로 지독하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가슴속이 토할 듯이 뒤틀리게 만들 정도다. 그런데 한 술 더 뜬 악마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 731부대가 태평양전쟁 당시 한민족, 중국인 3천~1만 명을 대상으로 자행한 생체실험이 포함된 전쟁범죄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암거래였다.
미국 정부는 2차 대전 후 일본군정 책임자였던 맥아더를 시켜 731부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생체실험과 생물무기, 세균전 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731부대원들을 면책 처리했다. 인류사 최악의 범죄 집단의 하나인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와 면책특권을 맞바꾼 미국의 파렴치한 행각 또한 세계 범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추악한 거래였다. 731부대에 대해 미국, 일본 정부는 그 실체나 범죄사실을 감추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등의 원혼을 달래기는커녕 역사 속에 묻어버리는데 급급했다.
미국, 731부대가 학살한 조선인 참극 역사에 묻고 한국을 미래 생물학전 실험실로 삼아
미국은 전후 731부대원들이 안락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일부는 미국의 세균전 연구소에 초빙하기도 했고 한국전쟁 기간 동안 731부대원과 함께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자행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날 주한미군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세균전 실험시설을 가동 중이며 미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주한미군 세균전 실험시설의 뿌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행각을 저지른 731부대인 셈이다.
미국은 21세기에도 한국을 생물학전 현장 실험실로 삼아 전 세계적으로 생화학 공격 및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저균(Bacillus anthracis)과 보툴리눔(botulinum) 등의 맹독성 물질을 마음대로 한국에 반입, 반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으나 미국은 귀를 막고 있다. 731부대의 천인공노할 범죄 행각을 감추고 악용한 미국, 일본의 범죄는 오늘날에도 한반도에서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731부대가 생체실험으로 희생시킨 무고한 피해자 3천~1만 명 가운데 한국인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미군이 한국전쟁 때 중공군 등을 상대로 전쟁범죄로 규정된 세균전을 자행했다는 점, 21세기에도 주한미군이 세균전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될 부분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731부대 악마들에게 희생당한 조선인을 낱낱이 밝혀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 땅에서 비밀리에 수행되고 있는 미국의 생물무기, 세균전 실험실의 정체를 파악해서 당장 폐쇄시키고 미국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731부대만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전쟁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주었고 일본은 그 대가로 아시아에서 반공보루의 역할을 하는데 앞장서왔다. 그 결과 일본은 아시아 침략과 2차대전 때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는커녕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최근까지 강제징용이나 성노예 문제로 한국 정부와 충돌했다. 아베 전 총리가 앞장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면서 개헌을 주장하다가 최근 총격에 의해 사망했는데 일본우익의 파렴치한 전쟁범죄 부인은 그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고 보아야 한다.
악마보다 더 한 세계사적 살인마 집단 731부대와 그 책임자 이시이 시로
731부대는 일제 말기 이시이 시로(石井四郎)라는 희대의 살인마, 흉악범이 한국인, 중국인 3천~1만 명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아 살해 하고 중국인 수십만 명을 세균전 예행연습으로 죽게 만들었다.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에 대한 자료는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일부는 파손하고 일부는 미군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파악은 아직껏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숫자는 중국인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보이고 그 다음이 한국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시이는 일본제국주의 정부가 만주에 만든 731부대 지휘관이 되어 한국인 독립운동가, 중국인 등을 산 채로 실험대상으로 삼아 수백 가지의 의학, 세균 감염 등에 대한 연구를 자행했다. 일본제국주의는 731부대와 같은 세균전 연구부대를 다수 만들었고 거기에 배치된 1만 여 명의 일본 군인이나 의사 등이 악마와 같은 짓을 자행했다.
이시이 시로가 진두지휘한 731부대는 인류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인간 도살장이자 생지옥이었다. 이시이가 직접 제 손으로 생체실험을 하면서 부하직원들을 시켜 자행한 연구목적을 빙자한 인간 살해행위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가혹했다. 그러나 기록이나 증언에 따르면 이시이와 그 부하들은 생체실험 피해자들을 ‘마루타’(통나무)로 불렀고 추호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연쇄학살 행위를 자행했다.
731부대는 3천~1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중국인, 몽골인, 조선인들을 포함해 소련과 영국 포로를 생체실험 등으로 희생시키고 흑사병균이 들어 있는 세균탄을 중국인 거주지에 투하해 최손 25만~30 만 명이 사망케 만들었다. 부대 주변 주민들은 일본군에게 납치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고 일부 중국 어린이는 부대 주변에서 노닐다가 납치돼 희생당했다.1) 실험대상이 된 무고한 사람들은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실질적 사형수가 되어 실험실 등에서 산 채 해부 당하는 방식 등으로 희생당했다.
731부대와 베이징, 광둥, 다롄, 난징 등 10여 개 지역에 만들어졌던 실험 시설에서 세균이나 생물학 무기 실험이 자행돼 중국인 25만~30만 명이 사망했다. 지역 주민들은 콜레라균의 직접 살포나 이 균으로 감염된 음식을 섭취한 뒤 사망했다. 중국 광둥 부근의 한 대학에서 주둔해 있던 8604부대에서는 2만 여 명이 희생됐다. 이들은 처음에는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군에 의해 전염병 실험의 대상이 된 것으로 밝혔다. 당시 희생된 피해자들의 시체가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들어 있는 채 발견되거나 시신이 구덩이에 버려지고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옹기에서 파손되었다는 지역주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일본군은 강제로 붙잡아온 사람들을 생체실험하기 전에 실험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 좋은 음식으로 살찌게 만들기도 했고 흑사병, 콜레라, 천연두, 식중독 균을 배양해 수천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이들에게 감염시켰다. 일부 희생자는 말의 혈액이 주입되는 고통을 당했다.
일본군은 무고한 사람들을 동사시키거나 불에 태워죽이고 마취제 없이 생체 해부를 했으며 총으로 쏘거나 고압전기로 살해했다. 끓는 물속에서 죽게 하거나 거꾸로 매달아 사망하게 만들었다. 저압실에 감금된 사람은 눈알이 튀어나오는 식의 고통스런 실험 대상이 되었다. 페스트 균 부대에 소속됐던 일본인들은 731부대에서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행했던 참혹한 행위를 나중에 아래와 같이 술회했다.
-- “나는 마루타의 목에 외과용 칼인 메스를 박아 넣고 가슴을 절개했다. 처음에는 처절한 신음소리가 나왔지만 곧 잦아들었다. 부대에 배치된 뒤 우리는 보지도 말하지도 묻지도 말라는 명령을 들은 뒤 마루타의 눈을 도려내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그대로 이행했다.”
--“3살짜리 어린애를 주사기로 찌른 뒤 얼음물 속에 집어넣었고 여인의 배를 갈라 생식기를 검사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위를 잘라내고 식도를 내장과 연결시키거나 오른쪽 팔을 잘라 왼쪽팔에 접합수술을 했다.
--“마루타를 섭씨 영하 40도가 되는 공터를 끌고 나가 기둥에 결박해 놓은 뒤 물을 팔뚝 아래쪽에 얼어서 딱딱해질 때까지 퍼부었다. 그리고 일본군이 동상 치료를 실험한 뒤 팔뚝 아래쪽을 절단했다. 동일한 작업이 팔뚝 위쪽과 두 다리에 반복되었다. 결국 머리와 몸뚱이만 남은 마루타는 다른 질병시험 부대로 보내졌다.”
수십만 명을 학살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전후 거짓 장례식 치르고 잠적
1945년 8월 소련군이 참전하자 이시이 시로는 731부대 부하들을 시켜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부대 학살시설을 폭파하고 부대시설에 생존해 있던 실험대상이 될 뻔한 사람들을 집단 살해했다. 이시이는 부하들과 함께 일본으로 도주하면서 이른바 생체실험 연구결과를 지니고 갔으며 일본에서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거짓으로 장례를 치르고 잠적하기도 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티끌만큼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자가 자신의 목숨을 끔찍이 여기는 야비한 짓을 한 것이다. 이시이는 731부대에서 생체실험 대상이 된 남녀노소 심지어 간난아이들이 고통 속에 학살당하는 것에 일말의 동정도 보내지 않았던 냉혈한이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으려 발버둥친 것이다.
이시이는 결국 미군정에 의해 체포되고 소련군에 의해 심문을 받게 되었지만 미국이 이시이의 생체실험 연구결과에 눈독을 들이면서 처벌을 면하게 된다. 미국은 소련이 이시이 등 731부대원들을 전쟁범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묵살하면서 이시이에게 생체연구 및 세균전 자료 등을 넘겨주면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제의한다.
이 과정에서 맥아더는 미국 정부에게 이시이 등 731부대원 전원을 면책할 것을 미국 정부에 건의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이시이와 그 부대원으로부터 집단학살을 통해 얻은 지식을 넘겨받으면서 일부 부대원들에게는 사례금을 주기도 했고 결국 731부대가 저지른 사상 최악의 범죄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 더 큰 반인륜적 죄악이 벌어졌다. 전 인류의 이름으로 지탄받고 심판받았어야 할 악마 이시이와 흥정을 해서 그가 범죄 속에 취득한 지식을 받아 챙기는 조건으로 악마를 사면해준 것이다.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과 미국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731부대원들은 그 후 일본 정부나 의료, 의학계 사회에서 승승장구하게 되고 일본 정부는 중국 등이 731부대의 죄악상을 추궁하자 증거가 없는 거짓주장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 2차대전 등을 통해 자행한 전쟁범죄를 부인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731부대 등의 일본 전쟁범죄를 최대한 탕감해주면서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기지가 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일본이 태평양전쟁 전후의 반인륜적이고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집단학살, 인권유린 행위를 부정하는 것의 가장 큰 원동력은 731부대의 범죄라 하겠다.
이시이는 미국으로부터 전쟁범죄에 대한 추궁을 받지 않게 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게 되었고 자서전 비슷한 것도 써냈지만 731부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치 않았다.7) 이시이는 일본 사회 각계에서 버젓이 행세하던 731부대원들과도 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시이는 식도암으로 사망하기 몇 년 전 가톨릭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이는 사상 최악의 악마와 같은 인간이 남의 목숨과 고통에 완벽하게 무감각했다가 자신의 생이나 사후에 집착하면서 뻔뻔하고 철면피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낸 사례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악마 이시이가 만들어낸 독기가 오늘날 한반도에서도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세균전이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을 시도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 간 지속되다가 몇 년 전 공개된 미국 정부의 관련 비밀자료를 통해 그것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과거 그 논란이 자심할 때도 사실무근이라고 강변했지만 이 또한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이 나게 되었다. 미국 역사학자 제프리 케이(Jeffrey S. Kaye)는 2020년 9월 미국중앙정보국(CIA)의 비밀이 해제된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한국전에서 세균무기 사용한 것은 사실이며 ISC(International Society for Criminology, 국제범죄학회)의 발표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은 세균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주한미군이 탄저균과 같은 맹독균을 아무런 제약 없이 반입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과 이시이가 자행한 생체실험, 세균전의 흉계가 미국에 수용되어 한반도에서 그 독기를 품어내고 있다는 것은 모두를 전율케 한다. 이시이의 죄악상이 너무 엄청나 최악의 악마 같았는데 더 지독한 악마의 짓을 하고 있는 존재가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다는 것은 더욱 소름끼치는 일이다.
악마보다 더 지독한 731부대의 정체
중국 하얼빈 외곽에 있던 731부대는 일본제국 육군 소속 관동군 예하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있던 부대로 공식 명칭은 관동군 검역급수부이다. 1936년에 설립되어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 ‘동향부대’로 불리다가 향후에는 ‘731부대’로 개명했고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해체되었다.
731부대는 이시이 히로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세계 2차대전, 일본이 세균 전쟁을 위해 천인공노할 실험을 준비하고 진행했던 잔혹한 부대로 인류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가 범죄를 자행했다. 731부대는 일본제국이 세운 생물전 연구기관 중 하나였으며, 516부대, 543부대, 773부대, 100부대 등 일본과 중국, 싱가포르 등지에 세워진 10개 부대도 731부대와 유사하거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뒷받침했다.
731부대는 부지가 6km²이고 150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개개 시설은 포격 등으로 쉽게 파괴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건물 안에는 각종 실험실과 부대 운영에 필요한 물품 생산 공장이 들어 서 있고 벼룩을 키울 4,500개의 컨테이너, 각종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가마솥 같은 거대한 용기, 세균을 배양하는 컨테이너 1,800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부대에서는 수일 동안에 페스트균 30kg을 생산할 수 있었다.
731부대가 실험대상으로 삼은 피해자는 민간인과 군인 신분인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미국인과 유럽인 등 연합군 전쟁 포로 등이 포함됐다. 한국인 항일지사, 팔로군 전사에 심지어 국제 반파시즘 인사들도 있었다.11) 이들은 생체해부, 세균감염, 동상실험 등 방식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수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 없이 이뤄졌고, 이는 부패 등이 실험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부대에서 중국 민간인 거주지를 대상으로 세균전 무기를 실험해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사망했다.
이시이는 일본이 세균전을 준비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참패할 것이라며 세 가지 근거를 댔다. 첫째, 일본은 금속광물이 부족해 신식 무기를 찾아야 한다. 둘째, 세균전은 살상 범위가 넓다. 셋째, 전략적으로 이롭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일본 고위층의 지지를 받으며 731부대가 악마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 집단의 등장과 집단살해 만행으로 이어졌다.
731부대는 세균폭탄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페스트균, 장티푸스균, 하라티푸스균과 콜레라균을 사용해 세균 효력 실험과 감염경로 실험을 했는데 임신부와 아이도 포함됐다. 잔인한 세균탄 실험의 하나인 야외실험은 731부대에서 전투용 비행기를 개조하여 세균 폭탄을 싣고, 야외에 묶어둔 피 실험자들에게 투척하는 방식이었다.
일본군은 피 실험자들의 노출 부위를 각각 다르게 하기 위해 청동 판으로 어떤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어떤 사람은 팔을 가리는 등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군은 이 같은 실험 과정에서 어떤 세균을 언제 얼마만큼 투여했고 결과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기록했다.
731부대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
731부대는 생체실험 대상자들을 정확히 집계하는 등의 작업은 하지 않아 전체 희생자가 얼마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이 그에 대한 확인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피해자 명단을 발굴 공개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는 6명으로 아래와 같다. 대부분 항일운동 또는 반파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 심득룡(沈得龍·1911년생·소련 공산당 첩보원·1943년 10월 1일 체포)
• 이청천(李淸泉·독립운동가·1944년 7월 체포)
• 이기수(李基洙·1913년생·함남 신흥군 동흥면·1941년 7월 20일 체포)
• 한성진(韓成鎭·1913년생·함북 경성·1943년 6월 25일 체포)
• 김성서(金聖瑞·함북 길주·1943년 7월 31일 체포)
• 고창률(高昌律·1899년생·소련 공산당 첩보원·강원도 회양군 난곡면·1941년 7월 25일 체포)
그러나 이시이를 우두머리로 해서 731부대가 준비했던 세균전을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1945년 8월 5일, 소련이 일본 관동군에 공격을 시작했고 일본군은 대항하기 위해 소규모 세균전을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일본군은 비축했던 세균전 무기도 다 시도해보지 못한 채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은 실험을 하면서 세균탄 등을 제조했어도 전쟁 상황에서는 기후와 대상지역 등에 따라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해 오자 731부대시설을 파괴하고,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수감돼 있던 사람들을 살해한 뒤 철수하도록 명령하였다. 그에 따라 일본군 공병대가 긴급 투입되어 8월 9일부터 13일까지 4일간 본부 동을 제외한 주요 건물들을 모두 폭파시켰고, 당시 생존해 있던 수감자들도 모두 몰살시켰다. 731 부대원 대부분은 8월 15일까지 철수했으나, 일부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하바롭스크 재판에서 전쟁범죄인으로 처벌받았다.
일본 항복 후 이시이 등 731부대원 일부는 1949년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인체실험 자료를 미국에 제공하는 대가로 면책특권이 주어졌다. 미국은 인체실험의 범죄사실을 은폐하면서 재판에 회부된 부대원에게 금전을 제공하기도 했다.
731부대원들은 미국에 의해 전쟁 범죄 재판을 면하게 되고 자신들이 집단학살을 통해 얻은 결과물은 미국에 제공하는 대가도 챙겼다. 무고한 사람들의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몇 만장의 실험 보고서를 수단으로 삼아 가해자들은 추악한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게 되었다.
미국이 전쟁범죄자들로부터 세균전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비밀리에 입수한 방식은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과학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것과 같은 수법 이었다. 미국은 1945~1959년 고위 나치 당원이었던 과학자, 엔지니어 등 1,600여 명을 미국 정부에 고용했다. 이들 두 케이스는 미국이 국가이기주의 차원에서 실리를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윤리적이고 파렴치한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의 일부다.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몇 년간 미국 본토에 있던 포트 데트릭 기지 세균전 전문가를 일본에 파견해 731부대장 이시이를 포함한 주요 731부대원을 통해 일본 세균전 상황을 파악했다.
1949년, 이시이와 그 부하들이 포트 데트릭으로 와서 생물학 무기 개발에 참여했으며 이시이 중장은 한국전쟁 당시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다.
악마들의 생체실험
731부대는 총무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교육부, 자재부, 진료부로 구성됐다. 총무부는 '마루타'의 관리와 해부를, 제1부는 세균 연구, 제2부는 실전 연구, 제3부는 세균배양기와 도기폭탄 제조, 제4부는 세균 제조를 담당했다. 진료부는 부대원의 진료와 마루타의 인체 실험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4개의 지부와 1개의 실험장, 직속 항공부대를 운영했으며 총 규모는 3천여 명이었다.
731부대원 가운데 연구원은 의사와 세균학자 등을 포함해 약 3백여 명이이었고 이들은 잔인한 실험을 하면서도 무감각한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시신의 신체를 절단하거나 거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놀이를 하는 악마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731부대는 중국의 핑팡, 한첸, 창천 및 기타 지역에서 만주, 소련 연방, 미합중국, 영국, 호주 등 타국 출신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 등을 자행했다.
731부대는 인간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에 위치시켜 수류탄의 살상력을 시험하거나 화염방사기, 생화학무기나 기타 폭탄들의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일부 부대원들은 학술지에 실험 결과 일부를 공개했는데 그 경우 실험 대상은 만주의 원숭이 등 인간이 아닌 것처럼 속였다.
731부대원들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예방약이라고 속이고 병균 등을 주사해 그 결과를 측정했다. 또한 성병을 치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진행 과정을 조사했다. 붙잡혀 온 여성들은 부대 보초병들에게 계속 성폭행을 당했다.
수천 명의 수용소의 사람들은 생체 해부의 대상이 되었으며, 많은 해부가 실험의 유효성을 위해 마취 없이 이루어졌고 피해부자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수용자들을 다양한 질병에 감염시킨 후 외과수술로 해부했으며,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했다. 감염이나 해부를 당한 대상은 성인 남녀뿐 아니라 아동이나 영아도 포함됐다.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다리를 절단하였고, 절단된 팔이나 다리를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봉합하는 실험 또한 진행되었다.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는데 일부는 다시 녹여져 치료받지 않은 채 괴저 및 부패의 영향을 연구에 사용되었다.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었고 식도와 장이 연결되기도 했다. 이외에 뇌, 폐, 간 등의 절제 수술 또한 행해졌다.
동상실험
일본군은 저체온 증을 실험한다면서 사람들의 손발을 얼음물에 담가놓아 얼어붙게 만든 뒤 동상에 걸리는 시간을 체크했다. 얼어붙은 사지는 막대기로 두들겼을 때 나무통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다음 동상에 걸린 손발에 뜨거운 물을 끼얹거나 불을 쬐도록 해서 그 사람의 얼어버린 혈액이 녹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실험했다.
생체실험
생체실험은 살아있는 신체의 작동을 연구한다는 목적으로 중국 공산당원이나 어린이, 농부 등 수천 명을 상대로 마취제 없이 강행됐다. 일본군을 이들에게 콜레라나 페스트균을 주입한 뒤 감염된 사람들의 신체를 떼어내 조사했다. 이 작업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실시했는데 그 목적은 사망해서 신체가 부패하기 전 질병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는 명분이었다.
일본군은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의 팔 다리 한 쪽을 절단한 뒤 몸의 다른 손발을 제거하거나 얼리고 혈액순환을 중단시킨 뒤 접합시키려 시도했다. 이렇게 가혹한 실험을 당한 사람들은 사살하거나 독극물로 살해했다.
일본군은 총검이나 칼 등이 얼마나 잘 베는지를 수감자들을 상대로 실험했고 화염방사기 성능을 수감자의 피부를 보호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했다. 또한 가스 실험실을 만들어 수포가 생기거나 신경을 마비키는 가스 실험을 했으며 X-레이를 오래 쐬도록 해서 수천 명을 생식능력이 없게 하거나 죽게 만들었다.
성병연구
일본군은 매독의 증세와 그 치료법을 개발한다면서 매독에 걸린 채 잡혀온 사람에게 여성을 강간하게 해고 그 발병 과정 등을 점검했다. 강간은 매독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지속토록 강요했다.
인간의 한계 능력 실험
일본군은 잡혀온 사람들을 감금하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을 때 얼마나 생존하는지를 체크했다. 또한 충격실험을 하기 위해 무거운 물체를 결박한 사람들 위에 떨어뜨렸다. 비행사나 낙하산병사에게 가해지는 가속도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사람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속도를 높여서 어느 정도에서 의식을 잃거나 사망하는지를 점검했다.
강간과 강제 임신
일본군은 잡혀온 가임여성을 강제로 임신시켜 무기의 성능이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실험을 강행했다. 이들 여성은 다양한 질병에 감염시키거나 화학무기에 노출시키고 충격 실험을 하거나 총탄과 포탄 파편에 의한 부상을 체크했다. 이 경우 가임여성을 해부해 태아에 대한 영향을 점검했다. 일본군은 매독에 걸린 가임여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세균전 실험
731부대는 2차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 1644부대, 100부대와 함께 세균전 실험 작업을 하면서 콜레라, 흑사병 등 다양한 세균을 중국인 부대와 도회지의 일반인, 농지, 저수지, 우물 등에 살포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자행해 중국인 30만~40만 명이 살해됐다. 일본군은 최소 12곳의 대규모 야외 지역과 11개 중국 도시를 상대로 세균전 실험을 자행했다.
731부대와 1644부대는 흑사병 세균전을 준비하기 위해 벼룩과, 쥐, 흑사병 균을 사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들 부대는 자체 배양한 흑사병균이 들어 있는 세균탄을 1940-1941년 중국의 닝보, 장두, 후안성 등의 인구밀집지역을 저공비행한 비행기에서 살포해 수 만 명이 죽게 만들었다. 또한 오염된 음식이나 옷가지를 비행기로 일본군이 점령한 중국 땅에 떨어뜨렸다. 1941년 장두 지역에 대한 콜레라 세균전 공격으로 주민 1만 명과 함께 방역조치가 허술했던 일본군 1,700여 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세균탄 실험을 하는 동안 방호복을 입고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조사했다. 세균이 묻어 있는 음식이나 과자류를 피실험자에게 주어 의심치 않도록 속였다. 페스트 비슷한 설치류의 전염병으로, 사람·가축에게도 감염되는 야토병(野兎病)도 중국 민간인을 상대로 실험했다.
일본군의 세균전 실험 방식은 잔혹했는데, 첫 번째 방식은 흑사병균으로 오염된 벼룩을 목욕 조같은 곳에 배양한 뒤 그것을 밀과 섞어서 쥐에게 먹였다. 그 다음 오염된 쥐를 1940–1942년까지 중국의 후안성이나 저장성의 민간인 거주지에 공중에서 살포했다.
해당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갑자기 병이 생겨 몸이 부은 다음 피부가 검게 변해 사망했고 그 장례식에 다녀온 주민들도 귀가한 뒤 비슷한 증세로 고통을 당하거나 사망했다. 당시 사망한 중국인은 2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중국 정부는 추정했다.
다른 방식은 흑사병에 감염된 벼룩과 쥐를 특별히 만든 배양기에 넣어 놓은 뒤 사육하면 한 달에 흑사병균을 지닌 벼룩 40 파운드가 생산됐다. 체중이 500g인 쥐 한 마리에는 3천 마리 정도의 벼룩이 붙어서 자랐고 이들 쥐를 민가에 풀어놓으면 흑사병을 전염시켰다. 일본군은 흑사병 균을 공중에서 살포하거나 우물 속에 집어넣어 수천 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다.
장개석 총통은 일본군의 세균전 공격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외국인 의료 전문가 등이 포함된 조사단을 1941년 11월 현지 조사를 실시하면서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 결과 일본군이 중국 장두에 흑사병균으로 오염된 벼룩을 살포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연합군에 의해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이 1943년 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전쟁 막바지가 되자 일본군은 731부대가 만든 세균탄을 가미가제 특공대가 1945년 9월 22일 미국의 산디에고, 캘리포니아에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흑사병에 걸린 벼룩이 기생하는 쥐를 자기로 만든 폭탄 속에 넣어 가미가제 비행기가 미국 본토까지 싣고 가 낙하산으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항복하면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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