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1월21일 ‘독도대첩’…그날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등록 :2021-11-19 11:56수정 :2021-11-19 13:18
독도의용수비대, 일본 순시선, 비행기 격퇴
일본이 독도 불법 침범 못하는 계기 만들어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니, 독도에 고기잡으러 간 울릉도 어민들이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란 팻말을 세운 것을 발견하고 뽑아왔다는 것이다. 울릉도 경찰이 독도에 ‘한국 울릉군 독도'란 팻말을 꼽았지만 일본이 팻말 바꿔치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독도 근처에서 미역을 따는 우리 어부들을 쫓아내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행정력과 경찰력이 독도에 미치지 못한 틈을 타서 일본이 독도에 침략의 발을 디딘 것이다.

홍 대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과 울릉도 주민 33명을 모아 ‘독도의용수비대'를 꾸리기로 했다. 그는 “나라가 국난의 위기에 놓인 이때, 백의종군하는 의병으로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데 동지들 독도로 가지 않으렵니까”라고 호소했다. 1952년 가을 부산에 나간 홍 대장은 오징어를 판 돈과 마을 주민들 오징어 판매 수수료를 모아 무기와 식량을 구입했다. 부산 ‘양키시장’(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을 거래하는 암시장)에서 기관총, M1 소총, 총알 등을 마련했다. 의용수비대가 독도에 가져간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칼빈소총 3정, M1 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등이었다. 울릉도~독도 연락은 전서구(통신연락에 쓰이는 훈련된 비둘기) 3마리를 활용했다.
홍 대장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20일 낡고 작은 오징어잡이 어선을 타고 3시간 항해끝에 독도에 상륙했다. 석달 뒤인 1953년 7월23일 새벽 5시 독도수비대 200m 앞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나타났다. 결사대를 꾸린 의용수비대는 보트에 경기관총을 싣고 순시선 20m까지 접근해 수백발을 집중 사격했다. 보트의 기습 총격과 독도에서 쏘아대는 지원사격에 놀란 일본 순시선은 황급히 도망갔다.
홍 대장은 첫 전투에서 이겼지만 중화기가 없어 일본 순시선을 격침시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그는 백방으로 노력해 소련제 직사포 한 문과 조준대가 없는 박격포 1대를 구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019987.html?_fr=mt2#csidxe010c6039e801e1908062792910d13f
'독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1) | 2022.09.16 |
---|---|
[단독]미군 기밀도서, 대마도 한국 섬으로 분류 (0) | 2022.09.16 |
110년전 한국의 독립·발전상 내다본 헝가리 신부의 '일기'와 '고지도' (1) | 2022.09.16 |
英정부, 여행안내 사이트 한국지도서 '일본해' 단독표기 삭제 (0) | 2022.09.16 |
[단독]독도는 한국땅, 미발굴 서양 고지도 6점 첫공개 (1) | 2022.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