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만에 끝난 韓·美 관세협상 오는 31일(이하 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통상 협의를 갖기 위해 29일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한 구윤철(오른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양국 재무장관 협의에 앞서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김정관(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네 번째)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하워드 러트닉(왼쪽 세 번째) 미 상무장관을 만나 통상 협의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박준희·나윤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의 관세 협상이 내일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에 ‘최고이자 최종적인 협상안’(bestandfinaltradedeal)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과 맞물려 양국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상호관세 발효일(8월 1일)을 이틀 앞두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러트닉 장관과 회담하는 등 최종 담판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취재진의 ‘한국과의 관세 협상을 내일 끝낼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일 무엇을 끝낸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질문자가 ‘관세’라고 하자 “관세는 내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과의 협상이 상호관세 발효 전까지 마무리되기 쉽지 않음을 내비친 것이다. 러트닉 장관도 한국의 협상안에 불만족을 표시해 이러한 우려를 짙게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러트닉 장관이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김 장관·여 본부장과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안을 제시할 때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bringitall)”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파트너와 이미 다수의 무역 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왜 한국과 새로운 협정이 필요한 것인지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WSJ는 “트럼프 정부 관계자와 회담을 진행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8월 1일 관세(25%) 부과 전에 협상을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한국 정부의 긴급성을 반영한다”고 논평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CNBC와 인터뷰에서 “8월 1일은 미국이 새로운 관세 세율을 책정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 속에 구 부총리는 이날 미 상무부 청사에서 러트닉 장관과 통상 협의를 실시했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도 함께한 이번 협의에서 한·미 양측은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한 최종 협상 카드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구 부총리는 워싱턴DC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출국 당시와 마찬가지로 “조선 협력”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4000억 달러(약 552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협상의 막판 쟁점이 되고 있다. 한국 측이 1차로 제시한 1000억 달러의 4배에 이르는 액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이 꽤 괜찮은 카드를 여러 개 제시했는데 (미국이) 계속 ‘더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어디까지 양보해야 타결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협상, 내일 안 끝날 것”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29일 영국을 떠나기 전 전용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관세협상이 내일 끝나느냐’는 질문에 “내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AP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무역협상과 관련해 4000억 달러(약 552조 원)의 대미 투자 규모를 놓고 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조선업 협력을 위한 카드로 제시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도 부정적 입장을 시사하며 “더 많은, 최선의 최종안을 가져오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통화에서 “관건은 주로 투자에 대한 부분”이라며 “현재는 긍정의 전망도, 부정의 전망도 내놓기 힘든 단계”라고 밝혔다. 대미 투자 규모를 놓고 양국 입장이 엇갈리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협상 초기에 ‘1000억 달러(138조 원)+α’의 투자 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은 투자금액을 늘려 2000억 달러(276조 원) 이상을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결국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 미국은 4000억 달러를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일본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타결한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5500억 달러(759조 원)의 투자 카드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통화에서 “제조업이 낙후된 일본과 이미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며 “4000억 달러 투자는 과도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구윤철-러트닉, 통상 협의 구윤철(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통상 협의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목전에 두고 ‘최선의 협상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한국 정부 당국자에게 “관세 협상과 관련해 최선의, 최종적인 무역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려달라.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수십조 원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나 농·축산물 일부 개방 등 한국 측의 카드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화끈한’ 투자 보따리를 풀거나 새로운 카드를 역제안해 미국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8월 1일 이전 타결’이 불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협상 테이블에는 미국산 쌀 수입량 확대,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규제 해소, 과일 수입 등의 카드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미국의 조선업 공급망이 사실상 붕괴된 만큼 ‘조선 협력’이 대체 불가능한 카드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해 “조선 등 경제협력 사업을 잘 설명하면서 국익 중심의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과 군사적·경제적 해양 경쟁을 펼치는 미국은 조선업 복원이 절실하다”며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러트닉 상무장관과의 통상 협의에 나선 구 부총리는 2시간 동안 마스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일본·유럽연합(EU)과 비슷한 수준의 관세율 인하 등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구 부총리는 오는 31일 미국 경제 수장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최종 담판에 나선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저율관세할당(TRQ) 쌀 수입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협상 초기부터 최대한 방어하려 했던 민감품목이 결국 협상테이블에 오른 셈이다.
마지막까지 숨겨왔던 ‘쌀 카드’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만큼은 피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대신 조선업 분야 대규모 투자와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을 포괄하는 패키지를 제안하며 미국을 설득하려 했다.
한국·미국 관세 협상 /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정부 관계자는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걱정했던 것보다 그 이상”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쌀 개방 요구를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계별로 양보 가능한 수준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 25일 통상현안 긴급회의 후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도 포함됐다”고 공식 인정했다. 그동안 애써 부인해온 농산물 개방이 결국 협상테이블에 올랐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은 수입 쌀에 51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되, 연간 약 41만톤에 한해서는 5%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중 미국 할당분은 13만2000톤으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는 이 같은 TRQ 물량을 일부 늘려 미국에 더 많이 할당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일본 사례 따라 ‘차선책’ 모색
한국·미국 관세 협상 / 출처 : 연합뉴스
정부가 참고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사례다. 일본은 수입 쌀에 국가별 쿼터가 없어 의무 수입 총량에서 미국의 비중만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 개방 확대 없이 미국 측 요구를 맞췄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별 쿼터로 운영되고 있어 수입 총량 확대 없이는 미국산 물량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부득이 일부 개방 확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 확대로 인한 농업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지난 24일 여야 합의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농민들 “식량주권 포기” 강력 반발
하지만 농민단체들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주요 농민단체들은 쌀 수입 확대가 농민 소득 감소와 농업 생존권 위협으로 직결될 것이라며 협상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미국 관세 협상 / 출처 : 연합뉴스
농민들은 정부가 농산물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식량주권의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각 단체들은 “전면 거부” 입장을 밝히며 집회와 단체 행동을 예고한 상태다.
특히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농민들과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실질적인 피해 보전 대책과 지원 정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쌀 수입 확대는 국내 쌀 공급과잉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쌀 가격 하락으로 인한 농민 소득 감소와 생산 규모 축소, 소규모 농가의 도태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협상 시한이 촉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꺼내든 쌀 수입 확대안이 과연 한미 양국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농민들의 강한 반발과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 나라와의 관세 협상에 적극 개입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협상 중이던 미국 상무장관이 트럼프의 갑작스런 호출에 협상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일도 있었던 걸로 JTBC 취재 결과 파악됐습니다.
워싱턴 정강현 특파원입니다.
[기자]
한국과 관세협상을 이끄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호출을 받았습니다.
당시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한창 협상이 진행 중이었지만, 러트닉은 곧바로 양해를 구하고 협상을 중단했습니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당시 러트닉이 '지금 백악관에 들어가야 한다'며 80분 만에 자리를 떴다고 확인했습니다.
러트닉은 백악관에 다녀온 다음 날, 이번엔 김 장관만 자신의 뉴욕 자택에 불러 단독 협상을 이어갔습니다.
백악관 주변에선 당시 트럼프가 러트닉을 호출해 한국을 비롯한 협상 상대국에 대규모 대미 투자를 요구하는 전략 등을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실제 같은 날 트럼프는, 일본처럼 관세를 낮추려면 돈을 내라는 요구를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 일본은 사실상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춘 겁니다. {다른 나라도 가능한가요?} 네,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출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직접 압박에 나서는 방식으로, 최종 합의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앞서 일본에는 제안서에 적힌 투자 액수를 직접 고쳐가며 압박한 바 있습니다.
이번 유럽연합의 대규모 투자 역시 트럼프와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정상급 회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다음달 1일까지 협상 시한이 사흘밖에 남지 않은 만큼, 결국 우리나라도 이런 '톱다운' 협상 전략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가 우리 협상단을 상대로 수백 조 원 상당의 대미 투자를 직접 압박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문진욱 영상편집 류효정 영상디자인 신재훈]
美, 협상 카드로 ‘K조선’ 콕 집었다…MRO 패키지로 반전 가능할까
오유진 기자2025. 7. 28. 15:41
정부, 투자·금융지원 담은 MASGA 패키지 제안 美 수요 충족할 한국 인프라 활용해 ‘시너지’ 노릴까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지난해 10월24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사진 오른쪽)과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스티븐 쾰러 제독(가운데)이 거제사업장에서 정비 중인 월리 쉬라함 정비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한화오션 제공
한·미 관세 협상 데드라인(31일)이 임박한 가운데 조선업이 협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한국 조선업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한·미 협력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통상 압박을 이어가는 만큼, 기술력이 입증된 한국 조선업이 협상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 내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미 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 분야 협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 한·미 산업장관 협상에서 조선 산업 협력 구상을 담은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조선업(Shipbuilding)을 더한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현지 투자와 금융지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측은 한화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액을 구체적으로 제안했으며,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도 정부와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업 협력 중에서도 새로운 협상의 '키'로 주목받는 건 미 해군 군함의 유지·보수에 참여하는 함정 MRO다. 함정 MRO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 분야로, 해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과도 맞닿아있는 영역이다. 군함의 경우 수리 과정에서 군사기밀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과만 협력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등 일부 동맹국에 함정 MRO 시장을 개방하고 있는데, 선박 설계·제작·정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경쟁력을 갖춘 국가는 단연 한국이 최고 수준이다.
당장의 MRO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도 한국 조선업의 강점이다. 현재 미 해군 함정의 80%가 2010년 이전에 진수된 노후 함정으로, 가까운 시일 내 MRO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내 조선 인프라만으로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한국 등 동맹국과의 협력이 필연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원함·보급함 등 비전투 함정의 MRO 사업을 공개 경쟁입찰로 전환하기도 했다. 정동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군 내 해군·민간 조선소는 숙련공 부족으로 항공모함 등 1티어급 함정 건조만으로도 이미 포화상태"라며 "외국 조선소에 낮은 티어의 함정 건조와 MRO를 맡겨 주요 함정 건조에 집중하고, 납기 지연과 비용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MRO 패키지, 협상 활용 가능한 시나리오"
MRO를 협상 유인책으로 활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현지 투자'와 '국내 조선업 활성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조선소를 활용해 MRO 수주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해 양국 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활용도가 낮았던 수리 조선소를 MRO 거점으로 활용하면 중소형 조선사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군산 등지에 사실상 셧다운된 조선소를 미군의 MRO 기지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시나리오"라며 "미국 측이 요구하는 현지 투자안을 제시하되, 국내 산업과도 연계할 수 있는 MRO 분야를 패키지로 제안하면 (협상 과정에서) 승산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내 조선사들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MRO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참여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모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함정 MRO 시장은 지난해 577억6000만 달러(약 79조원)에서 오는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8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부터 미 해군 군함 3척의 MRO 사업을 연달아 수주했다. 향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 조선소를 기지로 삼아 미 해군 함정 건조와 MRO 시장 점유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도 올해부터 본격 MRO 사업 수주전에 뛰어들며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 회사는 각각 6척, 3척 규모의 MRO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SK오션플랜트, 대한조선·케이조선 등이 미 함정 MRO 입찰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세협상 지렛대 ‘K조선’…투자·기술이전·인력양성 제안에 美호응
김형욱2025. 7. 28. 05:02
2000억弗 대미 투자 패키지 제시 반도체·자동차·에너지 협력 제안 마지노선 농산물도 협상 테이블에 일본·EU 수준 관세 타결 점쳐져
[이데일리 김형욱 정두리 기자] 정부가 지난 주말 이어진 미국과의 산업·통상장관 간 ‘연장 협상’ 끝에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대부분 카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은 건 오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기로 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최종 담판이다.
통상 전문가는 대체로 31일 직후 일본이나 유럽연합(EU) 수준으로 한·미 관세협상도 타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 결렬 땐 당장 8월1일부터 전 품목에 대한 25%의 상호관세 부과 충격이 현실화한다.
美에 어떤 제안 건넸나
27일 정부와 통상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4~25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통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 약 2000억달러(약 277조원) 안팎의 산업협력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기발표한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에 더해 1000억달러를 보탠 것이다. 일본의 투자약속 5500억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경제규모가 3분의 1 수준인 걸 고려하면 미국 측이 납득할 만한 규모라는 평가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특히 직접투자에 집중한 일본과 달리 현지 조선 인프라 투자에 더해 조선분야 기술 이전과 인력양성 방안을 통해 무너진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돕겠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미국 측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조선 분야에 대한 미국 측의 큰 관심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은 물론 미국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나 미국산 LNG 수입 확대, 원자력 협력 등 부문에서도 일본 안이나 기존안보다 업그레이드한 제안을 건냈으리란 분석도 뒤따른다.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해 대만은 투자의향서(LOI)를 제시하고 일본은 미·일 조인트벤처 설립 안을 제시했다면 우리는 여기에 더한 플러스 알파가 있었으리란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김 장관이 미국 상무장관 외에 에너지장관이나 국가에너지위원장과 면담했다”며 “산업뿐 아니라 에너지협력에서도 일본과 차별화된 제안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금융지원 카드도 거론된다. 정책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외국 지원이 어렵지만, 국내 기업의 해외사업 수주나 수출에 대한 간접지원은 가능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미국 투자에 5500억달러 투자 펀드를 결성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미·일의 설명이 서로 다른 상황”이라며 “우리도 이 같은 기술적 협상으로 (실제 투자가 아닌) 금융지원안을 카드로 쓰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전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하고 있다.(사진=산업부)
미국 측이 줄곧 강조해 온 농산물 시장 개방의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실질적인 국내 농가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처럼 쌀 전체 수입량은 유지한 가운데 미국산 쌀 수입 물량만 확대하고, 민감성에 비해 실효가 크지 않은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제한은 유지하는 등의 절충 가능성이 거론된다.
31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한·미 재무장관 간 협상에선 안보 문제도 다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통상협의와 안보 문제가 서로 별개라며 공식적으론 선을 그어 왔지만, 실질적으론 국방비 증액 등 안보 협력을 통해 관세 분야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日·EU 수준 타결 낙관”
지난 25일 한·미 재무장관 간 협의가 구 부총리의 출국 직전 취소되는 등 양국 고위급 만남의 잇따른 불발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 가능성을 대체로 크게 보고 있다. 우리가 일본 못지않은 제안을 건넸고, 미국으로서도 한국이 중국과 EU, 일본 다음으로 주요한 협상 국가라는 게 그 근거다.
허윤 교수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으로선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충분히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며 “우리가 미국 측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설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원장 역시 “협상 결과가 주말(~8월3일)까지 늦어질 순 있지만 결국 일본이나 EU와 비슷한 선에서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협상 낙관론과 함께 협상 타결을 위해 너무 많은 카드를 내주리란 우려도 뒤따른다. 아무리 급해도 뭘 주고 뭘 지킬 지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선 (일본 수준의) 협상 타결 가능성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자칫 타결을 위해 너무 많은 걸 내줄 수 있다”며 “이제부턴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안을 잘 묶어서 미국 측에 시너지 효과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결과와 별개로 한·미 정상회담도 서둘러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31일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만나 이를 논의한다. 허윤 교수는 “미국으로선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 계속 한미 동맹을 굳건히 가져갈 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라며 “빠른 정상회담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흔들림 없이 가져가려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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