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9차 변론서 국회 측 증거 공개 조지호 검찰 조사 기록서 '의원 체포' 진술 "여인형이 체포명단 15명 불러줘, 나중에 한동훈 추가"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당시 조지호 경찰청장에 전화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검찰 수사기록이 공개됐다.
조지호 경찰청장. (사진=이데일리 DB)
1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서는 국회 측에서 ‘소추 사유 입증을 의한 증거’로 조 청장의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를 공개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조 청장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1시 30분쯤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3분쯤까지 윤 대통령으로부터 총 6번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조 청장은 검찰에 “전화를 받았더니 대통령은 저에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했다”며 “뒤의 5회 통화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굉장히 다급하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자신에게 전화해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는 취지로도 진술했다. 여 전 사령관이 불러준 명단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동현 판사를 포함해 15명이 있었고, 두 번째 통화에서 여 전 사령관이 “한동훈 추가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회 측은 여 전 사령관 진술도 공개했다. 여 전 사령관은 군 검찰 조사에서 “14명을 특정해 체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직후 장관으로부터 처음 들은 게 맞다”며 “(대통령이 평소에) 비상조치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국회 측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진술을 더해 “체포 대상자 명단이 거의 일치한다. 체포 대상자 명단의 존재, 대상자에 대한 체포 지시가 있었다는 점은 증거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국회 측이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피의자 진술조서를 제시하자 윤 대통령 측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 조대현 변호사는 “이의있습니다”라며 문 전 사령관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쓰려면 윤 대통령 측이 문 전 사령관을 직접 심문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이런 진술조서 내용도 증거로 진술한다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는 것을 탄핵심판에서 증거로 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증거 채택은) 4차 기일에 결정이 이뤄졌다”며 “지금 이의 신청은 기간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한다”고 거절했다. 조 변호사는 “서류에 대한 증거지, 진술 내용(에 대한 증거 채택)이 아니었다”고 항의했지만 문 대행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조 변호사는 그대로 일어나 심판정에서 퇴장했다.
김혜선 (hyeseon@edaily.co.kr)
[단독]조지호 “윤 대통령,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하라해 ···목소리 다급했다” 계엄 전후 8번 통화
유선희 기자2025. 2. 20. 11:09
“의원 체포” 닦달, 뜻대로 안되자 해제 후에도 2번 더 조 청장에 전화 “덕분” 발언 들은 조 “뼈 있는 말”
조지호 경찰청장이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조지호 경찰청장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해제 이후까지 총 8차례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 청장은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직접 했고, 계엄 해제 이후에는 별다른 해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2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조 청장으로부터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조 청장은 검찰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포고령 1호’를 근거로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내렸다고도 진술했다.
조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이 저에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전화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대통령이 굉장히 다급하다고 느꼈다”며 “그 뒤에 다섯 번의 통화 역시 같은 내용이었고, 여러 번 전화에서도 똑같은 내용과 톤으로만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비상계엄 선포 3시간30분 전인 지난해 12월 3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김봉식 당시 서울경찰청장, 윤 대통령,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 등을 운운하며 계엄 선포 계획을 말했다. 그리고 군과 경찰이 장악할 기관으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언론사 MBC 등, 여론조사 꽃 등의 명단이 적힌 A4 용지를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 조 청장은 당시 윤 대통령 계획의 현실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는데, 윤 대통령은 포고령 1호를 거론하면서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닦달했다는 것이다.
조 청장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되고도 윤 대통령에게서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 이 통화에서 조 청장은 “국회 봉쇄 해제 지시를 받지는 않았다”고도 밝혔다. 또 다른 통화에 대해선 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4일 오전 5시쯤 조 청장에게 전화했다. 조 청장은 검찰에서 “대통령이 ‘조 청장’이라고 하기에 제가 ‘죄송하다’고 했더니 대통령이 ‘아니야, 수고했어. 덕분에 빨리 끝났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뼈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여러 차례 ‘국회의원 체포’를 닦달했지만 윤 대통령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빨리 끝났다” 등의 말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취지다. 김봉식 전 청장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조 청장으로부터 들은 이 통화 내용을 ‘격려로 받아들였다’고 했지만, 조 청장의 진술은 달랐다.
조 청장은 이날 오후 7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혈액암 투병 중인 조 청장은 세 차례 불출석 사유서를 냈는데, 헌재가 ‘구인영장’을 발부하자 결국 출석하기로 했다. 조 청장에 대해선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두고 질의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4일 새벽 국회로 들어가려는 군 차량이 시민들이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12·3 내란사태’ 당시 경찰 지휘부의 무전 녹취 내용이 12일 공개됐다. 계엄군의 진입은 돕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출입은 막으라는 취지의 대화들이 생생히 담긴 서울지방경찰청 지휘망 녹취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이 공동 입수해 공개한 녹취를 편집해 내란 세력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침탈하려 한 ‘서울의 밤’을 재구성했다.
밤 10시47분 “외부 진입 전원 차단하라”
경찰이 외부인의 국회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3일 밤 10시47분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19분 만이고, 김봉식 서울청장이 국회 내부 출입통제를 지시한 직후다. 김 청장은 조지호 경찰청장과 함께 계엄 선포 3시간 전에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윤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은 밤 10시47분 무전을 통해 “현 시간부터 국회 안쪽에서 외부로 나오는 것은 가능하나, 외부에서 국회 안쪽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은 전원 차단하라”고 지시한다.
이어 밤 10시 53분, 경찰은 기동대 버스로 국회 각 출입문에 차벽을 설치한다.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은 “5개 기동대 경찰 버스로 각 출입문 차벽 설치를 지시했다. 다만 차벽으로 부족한 공간이 있을 수 있다. 영등포경찰서 행정 차량까지 필요한 경우에는 지원해서 좁은 공간이라도 비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말한다. 빈 틈 없이 출입을 통제하라는 지시다.
밤 11시31분 “계엄군 출입 조처하라”
밤 11시25분,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지명되고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호가 공포됐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1항으로 명시됐다.
밤 11시31분, ‘계엄’이란 단어가 무전 녹취에 처음 등장한다.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은 “군 계엄 관련 사람들이 도착을 했는지 파악하고 도착한 경우에는 신분 확인 후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한다. 진입자를 전원 차단하라고 지시하고, 계엄군에게만 길을 터준 것이다. 경찰이 내란에 적극 가담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밤 11시37분,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이 거듭 말한다. “각 출입문 현 시간부터 재차 통제입니다. 전원 통제입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등포경찰서 경비과장이 즉답한다. “국회의원 포함해서 전원 통제 조치하겠습니다.” 그 밤, 의원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월담해 국회로 진입했다.
밤 11시42분 “포고령이 하달됐다”
밤 11시42분, 현장 경력에 계엄 포고령이 하달됐다.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합니다. 조금 전 계엄 포고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경력은 계엄 포고령에 따라 차단함을 관련 사람들에게 안내하고 아울러 가능한 장소부터 차 벽을 설치하세요.” 국회 출입문 폐쇄 조처가 뒤따른다. 뒤이어 11시54분 김봉식 서울청장이 지시한다. “23시부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가 발령되었습니다. 포고령에 근거해서,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고 내용이 있습니다. 현 시간부로 국회 내에서 출입하는 국회의원, 보좌관 등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를 하기 바랍니다.”
밤 11시55분, 더불어민주당은 전 당원에 국회·여의도 중앙당사에 집결하라는 호소를 담은 문자를 발송했다.
0시6분 “대테러부대 이동 조처하라”
자정을 넘긴 0시6분, 서울청 경비과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탔다. “대테러 특임부대 등 병력이 오면 경정문으로 경정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세요.” 국회 봉쇄에 투입된 707특입단을 언급한 것이다. 0시9분, 국회 경비부대장이 “지금 1, 2문은 인파가 많이 몰려서 병력이 들어오기 힘들다. 3문 쪽으로 이동을 시켜주시면 좋겠다”고 응답한다. 비슷한 시각 계엄군 280여명이 헬기를 동원해 국회 경내에 진입하고 본청 출입을 시도했다. 본청으로 진입하는 유리문마다, 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이 막아섰다. 0시16분, 국회 경비대 상황실에서 “국회 내 본관. 본관에서 군 병력과 (국회) 인원들이 대치 중이다”고 보고한다.
0시24분 “군 병력 길 열고 월담자 막아라”
4일 밤 0시24분, 수도방위사령부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완료했다는 서울청의 무전이 뜬다. 사실상 계엄군의 길잡이 역할을 경찰이 한 것이다. 경찰은 “월담자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그쪽에 경력 대비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밤 0시32분, 국회 경비대 상황실에서 보고한다. “현재 군 병력이 국회 본관 정현관으로 진입 시도하려다가 대치 중에 있어 우회해서 창문 깨고 진입 시도 중인 상황입니다.” 1951년 국회 경비를 위해 창설된 국회 경비대의 임무는 국회를 대상으로 한 테러 등 각종 위해 요소에 대비하고, 국회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지만 내란의 밤 경비대는 본연의 임무를 잊은 듯했다. 밤 0시34분 서울청 경비안전계장이 지시했다. “금일 근무에 지원된 경력들에 일방 지시합니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국회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차단입니다. 다만, 군 병력, 군 병력의 경우에는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거나 열려있는 길로 안내 조치하세요.”
밤 0시50분, 영등포서 경비과장이 보고한다. “조금 전 국회 3문을 통해서 군인들 100명이 국회 안으로 이동조치 완료한 상황입니다.” 수백 명의 무장 군인들이 국회로 밀고 들어왔지만, 무전에 참여한 경찰 간부 중 누구도 이 상황에 의문을 품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과, 위험을 감수하고 국회로 모여든 의원, 보좌진, 직원들이 결국 국회를 지켜냈다. 새벽 1시1분, 국회 본회의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상정돼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새벽 1시3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계엄 선포는 무효라고 밝혔다. 그러나 새벽 내내 이어진 경찰 무전 기록에 이런 내용을 언급한 이는 없다. 계엄이 선포됐고, 포고령이 하달됐다고 했던 이들은 날이 밝도록 계엄 해제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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