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미군에 F-35A 48대 추가 배치 방위비 분담금 주일미군에 전용 사례 이어져 한국, 미국, 일본 사실상 하나의 군
주일미군의 F-35A 배치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서 역외에 쓰이는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주일미군에게 전용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레하나 회원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미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대폭 삭감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9차 특별협정이 적용되던 2014~2018년 주한미군이 한반도 바깥 지역의 군사 정비 지원으로 954억 원을 전용했다. 2019년에는 134억원을 주일미군 장비 정비에 사용했다.
미국은 역외 비용도 한국이 부담하라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미 국무부는 현재 진행 중인 12차 특별협정 협상에 앞서 “(방위비 분담금은) 강력한 투자”라며 대놓고 대폭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일미군은 3일 주일미군의 F-16 전투기 36대를 F-35A 전투기 48대로 교체해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F-35A는 비행시간당 비용이 3만5,000달러(약 4800만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F-35 공동개발국인 네덜란드는 F-16과 비교해 운용비가 약 60% 비싸다고 밝힌 바 있다. 주일미군에 배치된 F-35A가 늘어나면서 방위비 분담금의 역외 군수지원도 늘어날 전망이다.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은 말 그대로 특별하게 예외를 두고 한국이 비용을 부담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당연한 권리처럼 누리면서 주일미군 장비를 정비하는데 사용하는 등 꼼수를 이어오고 있다.
2023년 정상회의장에 입장하는 한미일 정상 ⓒ뉴시스
국방부는 2020년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에 대해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되는 전력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군대가 협력을 넘어 하나처럼 움직인다고 시인한 셈이다.
미국은 동북아에 필요한 F-35A 중 일부는 한국과 일본에 팔아서 운용비를 떠넘겼다. 한국에 F-35A 도입이 결정된 것은 박근혜 정권 시절이다. 7조 77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F-35A 40대를 도입했다. F-35A 40대에 필요한 운영 유지비는 약 40조원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작년 F-35A를 20대 더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처음 도입을 결정한 당시 가격면에서도 기술이전 수준에서도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전쟁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을 통해 미국이 추진하는 동맹전략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짜도 반복되면 권리가 되지요.” 사극 ‘정도전’에서 박영규(이인임 역)가 했던 대사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 호의를 베풀면 처음에는 고마워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당연히 여긴다. 나중에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며 화를 낸다. 인간관계나 비즈니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미국 대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일 위스콘신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미 관계에서도 이같은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놓고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상당한 규모의 분담금을 지급하며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돕고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커지는 고립주의 노선과 더불어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진다면 주한미군과 방위비 문제를 놓고 갈등이 생길 위험이 크다.
◆트럼프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과 관련해 “우리는 위험한 위치에 4만명(실제는 2만8500명)의 병력이 있다”며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왜 다른 누군가를 방어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아주 부유한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은 매우 부유한 나라인데 왜 돈을 내고 싶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한국에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기 시절 한국에서 50억 달러(약 6조9000억원)를 받지 못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짜뉴스’다. 한국은 미국에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을 동맹을 돕기 위한 ‘호의’ 차원에서 특별히 지원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일 미시간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와 여건 등을 규정한 제도적 장치는 1966년 7월 한·미가 서명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다.
SOFA 제5조는 ‘미측은 한측에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주한미군 유지비는 미국 정부의 몫인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1년 이전까진 주둔 유지비는 물론 한국이 제공해야 할 시설까지 대부분 자국이 부담했다. 이같은 추세는 1991년부터 바뀌었다. 1980년대 미국 재정적자 확대와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미국은 주둔비 분담을 요구해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과 SOFA 5조에 대한 예외조항 성격을 지닌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1991년부터 2~5년 단위로 체결했다. 이를 통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규모를 정해왔다.
현재 방위비분담금은 1조원을 넘어섰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방위비분담금은 1조1833억원에 달한다.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인건비(5598억원), 숙소와 훈련장 등이 포함된 군사건설비(4368억원), 탄약저장과 정비 등을 다루는 군수지원비(1867억원)에 쓰인다.
미 육군 병사들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에 대한 지원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지출이 직접적으로 수반되는 직접지원 항목에는 미군의 통신선과 연합 지휘통제체계(C4I) 사용비가 포함되어 있다.
한미연합사 통신비용부담합의서와 이행협정서 등을 근거로 제공되는 사용비 적용대상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한국전구 범세계연합정보교환체계(CENTRIXS-K)다. CENTRIXS-K는 한미연합사를 중심으로 합참 및 각군의 연합, 합동작전을 지원하는 한·미 연합 C4I의 핵심이다.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도 직접지원에 포함된다.
카투사는 미8군에 보내진 한국 육군으로 주한미군에서 한미 연합 관련 임무를 수행한다.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합의로 탄생, 1000~2000명이 지원되고 있다.한국 정부는 카투사 지원인력에 대해 기본급과 피복비, 한국군지원단 운영 지원비용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평택 기지 주변도로정비와 평택 지역 지원, 주한미군 훈련과 공무집행으로 인한 재산피해와 인명 상해에 대한 배상 지원 등도 포함되어 있다. 방위비분담금을 포함한 직접지원 규모는 총 2조1000억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
지출은 없지만 주한미군에 재정·자원 절감효과를 가져다주는 간접지원도 있다.
주한미군에 무상 제공하는 공여토지에 대한 임대료 평가, 카투사 병력을 미군으로 채울 경우 미국이 추가로 부담할 비용, 한국군 훈련장과 사격장을 주한미군이 이용하는데 따른 지원비 등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세금과 공과금 감면 또는 면제 조치도 있다. 관세와 내국세, 지방세, 석유 수입 및 판매 관련 세금은 면제가 적용된다. 도로와 항만, 공항, 철도 이용료도 면제다.상하수도료와 전기료, 가스사용료, 전화통신료는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이같은 간접지원 규모는 총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주한미군이 반환한 기지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토양오염정화를 실시하는 것과 반환된 공여구역 개발에 필요한 토지 매입금 일부 지원 등을 포함하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제공되는 재정지원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이처럼 한국은 동맹인 미국의 입장과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위해 SOFA 규정상 지급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국민 혈세를 들여 제공해왔다.
그런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빌려준 돈을 빨리 받으려는 대부업자처럼 행세하며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동맹에 대한 경시와 사업적 거래에 익숙한 그의 속성이 뒤얽힌 결과라는 해석이다.
◆美 고립주의 확산…대책 마련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정치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기류에 원인이 있다.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7일 미국 성인 3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83%에 달했다.
‘세계의 경찰’로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다른 나라에 개입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 문제에 개입하는 다자주의·공동안보에 익숙지 않은 나라다. 역사적으로는 고립주의·일방주의·미국 우선주의 외교 역사가 더 길다.자유 교역과 공동 안보로 구성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주도 국제 질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흔들리기 쉬운 체제다.건국 초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유럽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고립주의 외교를 했다.
1823년 ‘미국은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 유럽도 아메리카에 간섭하지 말라’는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열세였던 유럽에 고립주의를 표방하며, 유럽 열강들의 전쟁을 수수방관했다. 반면 비유럽권에는 일본 개항(1853),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처럼 힘을 앞세운 일방주의를 앞세웠다.
이같은 기조는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결정적 전환을 맞이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 개의 큰 바다가 자국을 보호해주리라 믿고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했던 미국은 본격적인 공동안보 체제에 발을 들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추축국과 싸웠다. 전후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주기구(OAS) 등을 만들어 유럽과 중남미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한국, 일본, 필리핀 등과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공동안보 체제를 굳혔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체제는 쉽게 흔들리는 법.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면서 동맹국들과 공동안보를 유지하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고립주의의 도전을 받았다. 작용-반작용 법칙처럼 해외 전쟁에 개입한 직후에는 국제 이슈에서 후퇴하곤 했다.
베트남전쟁 직후 아시아에서 미군의 군사 개입을 축소한 닉슨 독트린이 등장했고, 1차 걸프전 직후 대선에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이 유행,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도 고립주의가 강해졌다. 최근 거세지는 고립주의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대선 출마 과정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는 것도 미국 유권자 사이에 퍼진 기조와 무관치 않다. 대선 켐페인에서 표를 모으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동맹 체제를 북한보다는 중국을 겨냥하도록 바꿀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압박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던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국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베트남전쟁의 여파에 직면했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시절엔 주한미군 2만명 철수가 이뤄졌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면, 한반도에서 중국과 북한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들이 국제질서를 훼손하려 하는 것도 막기 어렵다.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것에 대비, 동맹국들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가속화 등 독자적인 국방정책을 시행할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난 2월14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에서 진행된 공화당 대선 예비선거에서 유세 중 손짓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에서 배우 류승범이 했던 유명한 대사다. 사회 생활하다 보면, 좋은 뜻으로 형편이 어려운 상대를 도왔더니 나중에는 상대가 당연한 권리처럼 요구하는 황당한 경우를 가끔 겪는다. 개인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이런 상황이 생긴다. 한국과 미국이 주고받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이 그렇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일부를 한국 정부가 나눠 내는 돈이 방위비분담금이다.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에 쓰인다.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첫 회의가 지난 23~25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렸다. 외교부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마련과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강화를 위한 우리의 방위비 분담이 합리적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방위비분담금이 “한-미 동맹에 대한 강력한 투자”라고 주장하며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마다 미국은 돈을 더 달라고 했고 우리는 덜 주려고 맞섰다.
지난 2021년 3월 미국 워싱턴에서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왼쪽)와 도나 웰튼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 협상대표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9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은 1991년부터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주고 있다. 한국이 30년 넘게 방위비분담금을 내다보니 마땅히 줘야 할 돈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원래 방위비분담금은 우리가 낼 필요가 없는 돈이다.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는 1966년 체결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 규정돼 있다. 소파 5조에 명시된 주한미군 경비 부담 원칙의 뼈대는 “한국이 주한미군에 시설과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 모두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부동산을 공짜로 제공하고, 그 외 주한미군 운영과 유지에 필요한 모든 돈은 미국이 낸다.
소파 규정에 따라 1980년대까지는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모두 부담했다. 1980년대 미국이 무역·재정적자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지자 미국은 “한국도 이제부터는 주한미군 운영유지비를 분담하라”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미국이 운영유지비를 전액 부담하기로 된 소파 규정을 건너뛰고 한국이 주한미군에 돈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1991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s Agreement)을 맺었다.
이 협정에 ‘특별’(Special)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소파 5조(미국이 주한미군 운영유지비 전액 부담) 적용을 이 협정 유효기간 동안 임시 중단시키는 특별한 조처이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원래 미국이 모두 내야할 주한미군 운영유지비의 일부를 한국에 떠넘긴다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한국에겐 ‘특별한’ 부담이고 미국에겐 ‘특별한’ 이익이다.
지난 3월20일 경기 연천 임진강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미연합 도하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지난 23일부터 한국과 미국은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 종료되기까지 1년8개월이 남은 상황(2025년까지 효력)에서 2026년부터 적용될 12차 협상에 나섰다. 그동안 협상 기간이 1년가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행 협정이 1년8개월 남은 상태에서 다음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빠르다. 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지만,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협상을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양국 갈등 재연을 걱정해 바이든 임기 내 새 협정을 맺으려 하고, 미국은 한국의 이런 다급한 처지를 활용해 더 많은 방위비분담을 받아내려고 조기 협상에 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분담 대폭 증액을 연계해 한국을 압박했다. 그는 당시 매년 1조389억원(2019년)이던 방위비분담금을 5배가량 올려 5조8천억원을 요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에게 삼성 텔레비전을 파는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준다. 이는 맞지 않는다”며 한국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한다고 주장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동맹의 가치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했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는 당시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존보다 대폭 증액된 금액도 놀라웠지만, 미국이 제시한 인상 근거도 충격적이었다. 예컨대 주한미군 정찰기 1회당 정찰 비행에 드는 세부 비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등 주한미군의 각종 비용을 조목조목 명시하고, 이를 분담해 달라고 한국에 요구했다. 마치 상거래 때 주고받는 비용 상세내역서나 대금청구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2014년 이후 방위비분담금 현황. e-나라지표
도널드 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인상 요구로 2020년 3월 타결됐어야 할 11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장기 표류했고, 한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 그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로 협상을 미뤘다. 결국 11차 협상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하고 한달 뒤인 지난 2021년 3월 타결됐다. 한국은 2021년 방위비분담금으로 1조1833억원을 내고 앞으로 4년간은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만큼 매해 올려주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지난해 방위비분담금은 1조2896억원이었다.
민간 경제활동에서는 돈거래를 할 때 돈을 주는 사람은 앉아있고 돈을 받는 사람이 일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위비분담금의 경우는 반대다. 돈을 내는 한국이 서서 주고 미국은 앉아서 돈을 받는 모양새다. 원래는 안 줘도 되는 돈을 한국이 특별히 주는데도, 미국은 응당 받아야 할 빚을 받아내는 빚쟁이처럼 채근했다. 나의 호의가 상대의 권리가 된 전형적인 경우다.
한미상호방위조약 70년, 5가지 불평등 개정해야
한겨레2023. 10. 9. 18:30
사진은 1954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배경과 필요성 및 추진방법에 관한 문서와 조약문 전문(좌측), 1954년 제네바정치회담을 전후한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대통령간의 서신(우측), 제네바회의에 관한 유엔 16개국 공동성명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고승우 |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지난 10월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미 정부 인사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긍정평가하면서 이 조약보다 더 강한 동맹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이승만이 1953년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고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으며 남한을 미국의 군사적 종속국이자 미군의 영구기지로 전락시킨, 지구촌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불평등 조약이라는 점은 침묵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필리핀·미국 상호방위조약, 미일 상호안보조약 등과 비교할 때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위해 집단 안보를 추구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자국영토와 가까운 지역에 국한한 외국 경우와 달리, 태평양 지역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해 자칫 주한 미군이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실현을 위한 발진기지가 될 우려가 있어 개정해야 한다.
둘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반도에 무력충돌이 발생해 한미 등이 개입할 경우에도 유엔 안보리에 보고할 의무 등이 없다. 이는 일본·필리핀의 경우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군사적 개입은 유엔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게 돼 있는 것과 차이가 있어 개정해야 한다. 미국이 자의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국이 한국에 군사기지를 요구할 경우 한국은 허여할 수밖에 없고 이런 규정에 힘입어 평택 미군기지는 해외 미군기지 가운데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기지 오염문제도 심각하고 미군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지 않고 있다. 반면 필리핀은 필리핀 군 기지 안에 미군기지가 들어설 수 있게 하는 등 주도권을 갖는 것으로 돼 있다. 일본도 미군 배치가 미국의 권리로 규정돼 있지 않다. 한국도 필리핀·일본처럼 미군기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돼 있지만 필리핀·일본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돼 있다. 따라서 기한 만료 뒤 재협상 등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섯째, 필리핀·일본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게 돼 있으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이른바 안보를 담당하면서 기여했다고 하지만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온 뒤부터 오늘날까지 미 국익을 최우선하는 과정이었다. 종전 이후 소련의 극동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남한에 진주했다. 미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자생적인 건국추진 기구를 일체 불허하고 해외 독립운동 세력도 개인 자격으로 입국토록 했다. 미국은 3년의 군정 기간을 통해 남한 내 군경을 주축으로 친미 세력의 확대를 시도했고 유엔을 통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 강행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친미 정권의 수립이 목적이었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선포한 것도, 6·25전쟁이 나자 유엔 깃발을 앞세워 남한에 군대를 파견한 것도 미 국익이 최우선이고 한민족을 돕는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미국은 정전협정 뒤 평화협정 타결에 소극적이었다가 1950년대 중후반에 냉전이 심화하자 핵무기를 남한에 들여와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은 박정희·전두환 쿠데타 정권도 미 국익을 우선해 그 정통성을 인정해 주면서 평화협정 체결에 대비해 주한미군의 남한 영구주둔을 목표로 한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오늘날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중국 견제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북 상주에 배치하고 북한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북한에 대한 선제 핵타격이 가능한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은 대북 핵공격 때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파괴될 것이 뻔한데도 자국의 전략 추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나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나 적은 없다. 미국의 군사적 세계 전략은 자국의 안보이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고 다른 지역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하위 개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러의 대치국면에서 한반도가 자칫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20세기 초 미국은 가스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과 제국주의적 암거래를 통해 한반도를 흥정수단으로 삼았다. 세계 군사전략의 대상에 북한 핵과 미사일을 포함시키면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의 큰 흥정이나 대결 상황에서 한반도를 엿 바꿔 먹기 식으로 이용할 가능성에 대해 눈감는 식의 대응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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