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1000억 달라"… 14년째 되풀이된 문화재 인질극
소장자 배익기씨, 2011년부터 기존 입장 되풀이
국가유산청, 초강수 법적 대응
입력 2024.10.08. 16:32업데이트 2024.10.08. 18:50

매년 한글날이 되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이목이 쏠린다. 하지만 다가오는 올해 한글날에도 세상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훈민정음 혜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61)씨는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1000억원만 주면 즉각 내놓겠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배씨는 “지금으로선 국가에 보상 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지자체나 기업에서 구매할 의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내놓을 의사가 있다”며 “하지만 구매에 나선 이들도 1000억원만 제시하면 이후부터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소장한 상주본이 잘 보관되고 있느냐는 질문엔 “국가가 보관해야 하는 국보급 문화재를 개인이 보관하는 데 관리가 잘 되겠냐”고 답했다.
상주본은 지난 2008년 7월 고서적 판매상인 배씨가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지역방송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배씨가 주장하는 상주본 보상가 1000억원은 2011년 9월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상주본=1조원’이라는 감정가액을 평가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배씨가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 감정가의 90%는 국가에 양보하고 10%인 1000억원을 주면 내놓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배씨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상주본의 감정가액을 의뢰하자 문화재위원 등 4명이 모여 심의했다”며 “금전적 판단 자체가 값을 논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017년 4월 배씨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아”며 국가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19년 9월 대법원은 “훈민정음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현재까지 버티고 있다. 앞서 검찰과 국가유산청은 수차례 배씨 주변을 압수수색을 했으나 상주본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인 상태다. 국가유산청은 최근까지 배씨 집 벽장, 이웃에 보관 중이던 배씨의 개인금고, 텃밭과 인근 야산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 같은 방법으론 상주본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자 국가유산청은 배씨에 대해 초강수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상주본이 국가 소유인 만큼 배씨가 계속 반납하지 않을 경우 사법기관과 협의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배씨는 상주본을 낱장으로 뜯어서 몰래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버티다 문화재 훼손·손괴 등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고, 2012년 2월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그런데 같은 해 9월 대구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배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배씨도 이전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상주본을 내놓겠다고 했다. 2014년 5월 2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재물손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로 판단한 것이지 배씨의 상주본 소유권을 인정해준 판결은 아니다.
상주본 가치 1조원?..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허윤희 기자2019. 7. 22. 03:05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11년 공방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가치가 1조원이라고? 애초에 문화재청이 터무니없는 액수를 써준 게 문제다."
지난 15일 "상주본은 국가 소유"라는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도 소장자 배익기(56)씨는 "1000억원을 주면 돌려주겠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를 볼모로 11년의 법적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상주본은 적절한 보존·관리 조치 없이 방치되는 상황이다. 문화재계에선 "일부 서지학자의 말만 듣고 문화재청이 감정평가서를 너무 쉽게 써주는 바람에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상주본이 1조원의 가치?'
상주본=1조원' 얘기는 2011년 9월 처음 나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상주본의 감정가액을 의뢰했고, 문화재위원 등 서지학자 4명이 모여 심의했다"며 "금전적 판단 자체가 부적절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왜 하필 1조원일까. 이 관계자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경제 가치가 8000억원 정도라고 책정한 자료가 있었다. 회의에서 '직지보다는 해례본이 가치가 더 크니 1조원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가 나온 것"이라며 "1조원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제 감정가액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문화재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이 결정해야 하는데 뚜렷한 근거도 없이 '1조원'이란 액수를 명시한 게 문제다. 배씨가 1조원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요구하며 이용하는 데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현재 상주본은 전체 몇 장이 남아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다. 배씨는 지난 2017년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주본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그는 "2015년 3월 집에서 불이 났을 때 1장은 소실됐고, 나머지 일부도 탔다. 이후 산속 깊이 숨겨 두었다"고 했다.
김영복 K옥션 고문은 "이미 간송본이 국보로 지정된 만큼 유일본도 아닌 데다 불에 타 훼손됐고 보존 상태도 장담할 수 없다. 습도·온도에 취약한 지류(紙類)문화재인 만큼 11년 전보다 가치가 현격히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같은 11년의 법적 공방
상주본은 지난 2008년 7월 세상에 처음 나왔다. 고서적 판매상인 배씨가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지역방송에 공개했다.
그런데 방송을 본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배씨를 형사 고발했다. "내 가게에서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상주본을 몰래 훔쳐갔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고, 형사재판에선 배씨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지만, 배씨가 상주본을 훔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왜 이런 모순된 결론이 났을까. 도진기 변호사는 "O.J. 심프슨 사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며 "심프슨은 전처 니콜을 살해한 혐의로 받은 형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전처 유족이 심프슨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는 유족이 승소했다. 민사재판에선 조금이라도 증거가 많은 쪽이 이기지만, 피고인 한 명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은 99%의 증거도 모자랄 때가 있다"고 했다.
형사재판 와중에 약간의 변수도 있었다. 문화재 도굴꾼 서모씨가 법정에 출석해 "안동 광흥사 복장(腹藏) 유물(불상 배 속에 넣어두는 유물)을 훔쳐 조씨에게 500만원 받고 팔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서씨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서씨가 이전에도 감형받기 위해 하지도 않은 도굴 사례까지 거짓 증언한 사례가 있는 등 발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소유권을 인정받은 조씨는 2012년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고 문화재청은 기증식까지 열었다.
◇회수는 가능할까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회수할 수 있을까.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압수수색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1년간 이미 검찰과 법원, 문화재청이 수차례 압수수색을 했으나 허탕이었다. 한상진 반장은 "배씨 집 벽장도 뒤지고 텃밭과 인근 야산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배씨가 끝까지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버티면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한글의 제작 원리와 사용법, 예시를 풀어쓴 판본이다. 한글 창제 3년 후 세종 28년(1446) 발행됐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간송미술관 소장본(간송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2008년 상주에서 같은 판본(상주본)이 발견됐다. 상주본에는 누군가가 표기와 소리에 대해 한글이 섞인 주석을 붓글씨로 적은 내용이 있다.
문화재로 인질극 벌이는 전 국회의원 출마자
조회 02019. 8. 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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