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8일!] 5차례 죽을 고비 넘긴 정치거목… 평화의 빛 지다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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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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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처음' 남북 첫 정상회담… 햇볕정책과 노벨평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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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거목, 영원히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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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이자 상인' 김대중 전 대통령…"역사는 바른길로 진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 출간…2006~2007년 생전 인터뷰 담아
마지막 일기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적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김대중 지음. 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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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합의 상징 대한민국 위대한 정치가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 모음_<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2. 22:00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행사로, 영화로, 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책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재출간하였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40년 정치 인생을 통해 많은 분이 김대중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김대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어록입니다. 달변가로 통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수많은 연설과 대담, 인터뷰, 글에서 두고두고 새기면 좋은 말을 많이 남겼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갈등 또한 극단으로 치닫은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이야말로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출세하는 정치쟁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 국민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가 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해줄 말이 없습니다. 꼭 듣고 싶다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현대 정치는 국민에 의한 정치입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앞질러 갈 수도 없고, 대중에게 뒤쳐져서 낙오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 손을 잡고 같이 가야 합니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뜀박질은 실패를 향한 뜀박질입니다. 국민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달려간 역사상의 그 어떤 독재자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서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습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더불어 여러분께도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바른 정치인이라면 서생적 문제의식書生的 問題意識과 상인적 현실감각商人的 現實感覺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원칙에 대해서는 서생과 같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상인과 같이 현실에 입각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지금 들어도, 누가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란 철칙을 지켜내기 위해 살해 위협과 사형 언도 앞에서도 두려울지언정 소신을 꺾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지금도 심금을 울리는 그의 말과 그 말을 고스란히 실천했던 그의 삶을 책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제공: 김대중평화센터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의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 공립 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나 5·16쿠데타로 인해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1963년 민주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7·8·13·14대 국회의원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1970년에는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90만 표 차로 낙선했고, 이후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1973년 8월에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1980년에는 내란음모 사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 뒤에는 가택연금이 반복되었다. 1987년과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3년 영국에서 귀국하여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에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2000년 6월에는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6·15공동선언’을 발표했으며, ‘햇볕정책’을 펼쳐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 2000년에는 남북관계 진전 및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헌신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모스크바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등 국내외 20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대통령 임기를 마쳤고, 2009년 8월 18일에 향년 85세로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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