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84'가 현실이 된 2024 김건희의 한국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고 조작하는 '빅브라더' 세상
디올백, 권익위는 "종결처리" 행정관은 "깜빡했다"?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앞뒤 다른 궤변에 덮기 급급
주권자 국민은 짖다가 조용해지는 개, 돼지인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무대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다. 집안에까지 설치된 CCTV가 대중의 일상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거리 곳곳에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선전 구호가 붙어 있고, TV와 영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을 선동하고 세뇌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 기록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진리부는 보도, 예술, 연예,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이고, 기록국은 현재에 맞춰 과거의 기록을 삭제하고 조작하고 생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빅 브라더의 부인이 받아서는 안 되는 고가의 명품 선물을 받았다면, 어제는 불법이었으나 오늘은 합법으로 바꿔 관련된 모든 기록을 삭제하고 조작하고 새로 생산하여 명품 선물 받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거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연합뉴스
국가권익위원회는 공직사회의 청렴을 감시하는 국가기관이다. 공직자 또는 공직자의 배우자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권익위가 심사하여 수사기관 이첩 등을 결정한다.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가 중앙아시아 방문을 위해 출국한 6월 10일, 권익위는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 선물을 받았다는 신고 사건에 대해 공직자 배우자에게는 처벌 규정이 없고, 대통령의 직무 관련 여부와 국가기록물인지에 대해서는 논의는 했지만 그냥 종결했다고 발표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신고가 접수된 지 110일이 지났는데 왜 시간을 끌기만 하느냐는 질문에 빠른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더니 대통령 전용기가 오전에 서울공항을 이륙하자 오후 4시에 느닷없이 발표를 예고하고 퇴근 시간을 앞둔 오후 5시 30분에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이 기자실에 나타나 72초에 걸쳐 일방적으로 종결 처리 발표를 한 뒤 질문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국민권익위의 유철환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이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례대표에 지원했던 이력이 있고, 정승윤 부위원장은 서울대 법대 후배이며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은 이력이 있다. 좋은 머리를 나쁘게 쓰는 건 범죄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좋은 머리를 나쁘게 쓰면 사회 기강,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고 법을 우롱하는 중대한 범죄가 된다. 권익위의 ‘그냥 종결했음’ 발표에 권익위 게시판에는 ‘대통령 부인에게 300만원 어치 엿을 선물하고 싶은데 괜찮은가?’ 등등 권익위의 해괴하고 몰상식한 막가파식 억지와 배째라 궤변을 조롱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이정문 의원이 지난 6월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제제 규정 없음' 이유로 종결한 국민권익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2024.6.12. 연합뉴스
그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뇌리를 스쳤다. 권익위 공무원들은 현재에 맞춰 과거의 기록들을 삭제하고 조작하고 재생산하는 소설 <1984> 속의 진리부 기록국 직원들처럼 ‘디올백 선물 괜찮음’ 결정을 정당화하느라 쓸데없는 고생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다고 과거의 ‘불법 행위’가 삭제되는 게 아닌데...
그런데 이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다. 대통령실에서 김건희 여사의 수발을 드는 ‘여사팀’의 행정관이 검찰에 출석하여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을 받은 날 돌려주라는 지시를 했는데 일이 바빠 깜빡 잊고 있었다’고 진술할 거라는 건, 솔직히 말해 진짜 정말 상상조차 못했다. 그 진술은 명품백 선물을 받았으나 즉시 돌려주라고 했으므로 김건희 여사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거다. 검찰에 가서 그렇게 진술을 한 행정관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콘텐츠 직원이었고, 김 여사를 따라 대통령실에 ‘취업’을 하여 ‘여사팀’에서 근무해온 행정관이란다.
나는 경찰서 출입하는 사건기자를 오래 한 편인데, 조폭 두목이 직접 연루된 사건이 발생하면 조직원 한 명을 찍어 뒤는 조직에서 봐줄 테니 경찰에 가서 ‘단독 범행’이라고 자백하고 죄를 뒤집어 쓰고 잠시 감방에 다녀오라고 회유한다는 얘기를 형사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터미네이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해결사를 보내 현재의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할 수 없으니 부하에게 모든 죄를 몰아주는 ‘꼬리 자르기’를 하기로 한 걸까? 새로운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갈수록 가관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비결은 정직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 한다. 진실을 덮은 거짓이 드러나면, 그 거짓을 다른 거짓으로 덮는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그렇게 쌓인 거짓이 산을 이룬다. 거짓이 이미 산을 이루었는데 새로운 거짓을 창조하여 그걸 감추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거짓을 가둔 저수지의 둑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지경인데.
따져보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서 디올백 선물을 받은 건 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넉 달이 지난 2022년 9월 13일이다. 최 목사는 카톡으로 ‘디올백 선물’을 준비했다는 걸 알렸고 사진까지 보냈다. 김건희 여사는 최 목사가 가져온 디올백 선물을 “아니 이런 걸 자꾸 왜 사오세요” 하며 받았다. 그건 강한 거절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은 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값비싼 선물이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를 수 없는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니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야 했다. 그랬는데도 가져왔다면 그 자리에서 거절했어야 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경고했어야 했다. 이럴 거면 다시는 연락도 하지도 말라고.
7월15일 MBC 뉴스데스크 유튜브 화면 갈무리.
7월15일 MBC 뉴스데스크 유튜브 화면 갈무리. 국힘당 이철규 의원은 1월22일 기자들 앞에서 “절차를 거쳐서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횡령이다. 그 누구도 반환 못한다”고 말했다.
7월15일 MBC 뉴스데스크 유튜브 화면 갈무리. 국힘당 이철규 의원은 1월22일 기자들 앞에서 “절차를 거쳐서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횡령이다. 그 누구도 반환 못한다”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디올백 선물을 돌려주라고 ‘여사팀’ 행정관에게 지시했다면, 그 행정관은 디올백을 자기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돌려줘야 하므로 어디에 몰래 감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 선물을 받았다는 게 인터넷 독립언론 ‘서울의 소리’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2023년 11월까지 자기 책상의 서랍이나 사물함에 보관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책상에 두었든 사물함에 두었던 창고나 금고에 보관했든, 1년이 넘도록 일하느라 오다가다 그 디올백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었을까? 봤는데도 바빠서 돌려주는 걸 또 까맣게 잊었을까?
백번 양보하여 설령 그랬을지라도, 디올백 선물을 받았다는 게 언론을 통해 폭로되면 아차 싶어 보고를 하고 그때라도 돌려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 행정관이 잊고 있었더라도 언론에 보도되고 사회문제가 됐으니 선물을 받은 대통령 부인은 지시를 한 행정관을 불러 선물을 돌려주었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짜 그랬다면 그 행정관은 진작에 사표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니 나머지는 검찰이 알아서 좋은 머리 좀 굴려보라고 그냥 떠넘긴 게 아닐까? 국민권익위가 ‘그냥 종결했음’ 하고 될 대로 돼라 하는 것처럼.
대통령 부인이 받아서는 안 되는 선물을 받았다고 세상이 시끄러운데 대통령실에선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었다. 받아서는 안 되는 선물이라 받은 즉시 돌려주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실 그대로 해명하면 그걸로 끝날 수 있었는데 그런 일도 없었다. 선물을 받은 게 문제가 아니라 몰카 촬영을 한 함정 취재가 문제라고 강변을 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이라 하기도 하고 용산 대통령실의 심기를 대변한다고도 하는 여당의 어느 ‘찐윤’ 국회의원은 대통령 부인이 받은 선물은 국가기록물이라 돌려주면 국고 횡령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때도 대통령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디올백 선물에 국민이 뭐라 하든 아무 말이 없던 대통령은 연두 회견을 대신한 KBS 앵커와의 대담에서 ‘박절하게’라는 생소한 표현을 써가며 누가 선물을 가져오면 대통령 부인은 매정하게 거절하기가 힘들다고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 받은 행위를 감쌌었다. 그랬다가 국민을 개, 돼지 취급한다는 비난에 봉착하고 총선에서 호된 심판을 받게 되자 마지 못해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었다’며 처음으로 사과를 했었다. 그때도 부적절한 선물이라 늦었지만 돌려줬다는 말은 없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받은 선물은 국가기록물이고 김건희 여사가 받은 디올백은 포장 그대로 대통령실 청사 내에 보관 중이라고 했었다. 그게 7월 1일, 그런데 이틀 뒤에 검찰에 출석한 ‘여사팀’ 행정관은 김건희 여사가 디올백은 받은 날 돌려주라고 지시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손발이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용산 대통령실에 윤석열 라인과 김건희 라인이 경쟁하며 공존하고 있어서 그런가.
영화 <내부자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차피 민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대통령 부인이 받은 부적절한 디올백 선물로 인해 이 나라의 주권자들은 수시로 개, 돼지 취급을 받고 있다. 그게 벌써 몇 번째인가.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주권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국가에서 권력이 이렇게 국민을 우롱해도 되는 건가. 이 나라의 주권자 국민인 나는 오늘 또 영화의 그 대사처럼 적당히 짖다가 왜 짖었는지 잊는 개, 돼지 민중이 되었다. 憤怒(분노).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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