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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채상병 특검법’ 거부…10번째 재의요구권 행사

by 무궁화9719 2024. 5. 21.

윤 대통령, ‘채상병 특검법’ 거부…10번째 재의요구권 행사

민주, 28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 예고

기자이승준
  • 수정 2024-05-21 18:01
  • 등록 2024-05-21 15:29
 
 
윤석열 대통령이 5월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의 생중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이 지난 2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뒤 19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열어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한 뒤 오후 이를 재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께서 국무회의를 거친 순직 해병 특검 법률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이번 특검 법안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경북 수해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다 숨진 채 상병 사건의 조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에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이 압력을 행사해 수사 결과를 왜곡하고 수사를 은폐했는지 등을 밝혀내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에 전날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진보당·정의당·새로운미래 등 야권 7당의 지도부 인사들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이 10번째 거부권 행사에 나선다면, 이는 총선 민심 정면 거부 선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윤 대통령은 취임 뒤 법률안에 대해 10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등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특검법은 국회에서 재표결에 부쳐진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나서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에 대해 임명 재가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채 상병 전우 “윤 대통령님, 저희도 죽음 이용한다 생각하십니까”

[전문] 윤 대통령에 특검 수용 촉구 공개서한
“특검 통과는 나쁜 정치” 비난한 대통령 향해
“모든 책임은 부하들이, 선처는 사단장님이
모두가 아는 진실 밝히는 것이 나라의 책무”

기자김가윤
  • 수정 2024-05-08 09:05
  • 등록 2024-05-07 10:21
지난해 7월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채아무개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을 당시 다른 해병대 동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7월 고 채아무개 상병과 함께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렸다 생존한 병사 2명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를 썼다.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에 부탁했다.
 
군인권센터는 7일 채 상병과 함께 군 생활을 한 뒤 만기 전역한 해병대 제1사단 예비역 생존 해병 2명이 쓴 편지를 공개했다. 센터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겪어온’ 예비역 해병들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생존 해병들은 편지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죽음을 이용한 나쁜 정치’라고 표현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뉴스로 접했다. 하지만 이런 저희마저 채 상병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하고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라며 “진실을 알고 싶다”라고 썼다.
 
이어 “눈앞에서 채 상병을 놓쳤던 그때처럼, 채 상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며 “대통령님.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달라. 저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편지를 맺었다.
 
센터는 편지를 전하며 “이들이 전해 온 진심이, 특검법이 통과되기 무섭게 ‘특검법 통과는 나쁜 정치’라고 맹비난한 대통령에게 과연 ‘나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검법 수용은 순리다.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생존 해병 특검법 수용 촉구 공개편지’ 전문. 편지에 적힌 채아무개 상병의 실명은 ‘채 상병’으로 고쳐 적었다.
 
윤석열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필승, 저희는 해병대 제1사단 고 채아무개 해병의 전우, 예비역 해병 ㄱ, ㄴ입니다. 채 상병과 함께 군 생활을 했고, 채상병을 떠나보낸 후 만기 전역했습니다.

 

2023년 7월19일 아침, 저희는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으라는 지시에 따라 하천에 들어갔습니다. 위험한 작전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늘 그랬듯 함께 고생하고 다 같이 부대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채 상병은 저희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날, 채 상병과 저희 두 사람, 그리고 여러 전우들은 무방비 상태로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저마다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 사라져 가는 채 상병이 보였습니다. 살려달라던 전우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날 이후 저희는 채 상병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간부님들, 동기, 후임들 모두 너무 힘들어 보였지만 서로 다독일 뿐, 사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가 무너지면 다들 무너질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일상을 찾아갔습니다. 조사를 나왔던 군사경찰 수사관님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얘기했으니 채 상병과 부모님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나라에서 잘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채 상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전우인 저희에게 남은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채 상병의 죽음을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질 거라며 눈물을 참던 중대장님은 여단의 다른 보직으로 전출되셨고,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대대장님은 보직해임 되어 떠나셨습니다.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험하고 무리한 작전을 지시했던 사단장님과 여단장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뉴스에서는 사단장님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부하들을 선처해달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현실은 거꾸로였습니다. 모든 책임은 부하들이 지고, 선처는 사단장님이 받았습니다.

 

그 뒤로 9개월 동안 채 상병과 저희가 겪었던 끔찍한 일이 매일 뉴스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걱정되어 꺼내지 못했던 채 상병 이야기는, 이제 서로의 안위를 위해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말하는 주제였지만, 저희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대 분위기가 사나워 다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병대를 이끄는 사령관님과 사단을 이끄는 사단장님이 다 엮인 일인데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나마 곧 전역한 저희들은 취업과 복학을 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사고를 같이 겪었던 후임들은 대부분 아직 부대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힘들다고 어디 말할 데조차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그렇듯이, 그 친구들도 죄진 것 없이 죄 지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두 달 뒤면 채 상병 1주기입니다. 채 상병을 기리는 자리에 사령관님, 사단장님 같은 분들도 아무렇지 않게 참석하시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자리에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분노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채 상병을 맘껏 그리워하고, 솔직하게 미안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임들은 현역 군인이니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죄진 것 없이 죄지은 마음으로 다녀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 내 대통령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님.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해주십시오.

 

채 상병 특검법을 ‘죽음을 이용한 나쁜 정치’라고 표현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희마저 채 상병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발생하고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피해 복구를 하러 간 우리를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급류가 치던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둑을 내려가 바둑판 모양으로 흩어져 걸어 다니면서 급류 속에서 실종자를 찾으라는 어이없는 판단을 내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현장과 지휘 계선에 있었던 모두가 누구의 잘못인지 잘 알고 있는데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희와 채 상병 모두 내가 나고 자란 나라를 지키고자 남들이 말린 힘든 해병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그리고 해병대를 믿고 하나뿐인 아들을 맡기신 채 상병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나라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저희는 정치에 별 관심 없었던 평범한 20대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채 상병을 놓쳤던 그때처럼, 채 상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4년 5월7일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 해병 ㄱ, ㄴ 드림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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